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68)
마존현세강림기-969화(967/2125)
마존현세강림기 39권 (25화)
5장 살육하다 (5)
‘기분이 이상하군.’
커피를 마셔도 맛이 느껴지지 않 는다.
미각이 이상이 생긴 건 아니다. 생각하고 음미하고자 하면 풍부할 정도의 맛이 충분히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조금만 집중을 흐트러뜨리면
맛이란 게 허망할 정도로 사라져 버 린다.
“ 후우.”
나이트 르보가 손을 들어 얼굴을 주물렀다.
아니, 주무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가면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거추장스럽군.’
나이트가 된 이가 가장 먼저 해 야 할 일은 이 가면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나이트 르보 역시 나이트가 되고 나서는 언제나 가면을 쓰고 하 는 생활에 적응하는 것부터 시작했
다.
그래서 이제는 완벽하게 익숙해졌 다고 생각했는데…….
우스운 일이다.
한 몸 같던 가면이 어느 순간부 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보고 있지 않을 때 는 벗어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인인 그가 가면을 쓰고 생활한 다는 것에 딱히 문제를 느낄 리는 없으니, 육체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겠지.
‘정신적인 문제라……
나이트 르보가 미묘한 미소를 지 었다.
가면은 자신을 가리는 도구다.
가면을 쓰는 데 익숙해졌다는 것 은 자신을 가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가 면을 쓰는 게 불편해졌다는 것은, 나이트 르보가 이제는 더 이상 자신 을 숨기고 싶지 않아졌다는 뜻이다.
‘그럴 만도 하지.’
얼마나 자신을 숨기고 살아왔던 가.
원탁은 공정한 곳이다.
하지만 결코 공정하지 않은 곳이
다.
원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 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을 잘 숨기 고 원탁의 법칙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다.
그리고 나이트 르보는 그것에 성 공했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완벽하지는.
마스터와 위긴스는 진작부터 그를 경계했으니까. 하지만 결과가 좋으 면 모든 것이 좋은 게 아니던가. 이 제 나이트 르보는 더 이상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다.
이제 곧 원탁은 그의 손에 떨어
질 테니까.
나이트 르보가 가면을 움켜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얼굴을 가 리고 있던 가면이 부러질 듯 휘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나이트 르보가 들뜬 가슴을 진정 시켰다.
이 나이가 되도록 원탁을 지키며 그가 얻은 교훈 한 가지는, 모든 승 부는 끝나는 그 순간까지 결코 끝난 게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다. 마스터 와 위긴스는 그 진리를 몰랐기에 원 탁의 지배권을 잃었다.
하지만 나이트 르보는 결코 그런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 다.
하루.
이제 단 하루면 된다. 하루만 지 나면 모든 것이 그의 손에…….
콰
그때, 문이 과격하게 열렸다.
나이트 르보가 얼굴을 일그러뜨렸 다.
“무슨 일이냐?”
“나, 나이트 르보! 큰일입니다. 적 이 쳐들어왔습니다!”
“••••••뭐?”
가면에 가려진 나이트 르보의 얼 굴에 당혹이 어렸다.
“지금 적이라고 했나?”
“예! 원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 다.”
“정체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
나이트 르보가 자리에서 벌떡 일 어났다.
적이라니!
“경계 병력은 어떻게 됐나?”
“정확한 보고가 들어오지는 않았 습니다. 하지만 적이 접근하는 속도
를 볼 때, 방어에는 실패할 것으 로……
“이 병신 같은 영국 놈들!”
콰앙!
나이트 르보가 테이블을 내려쳤 다. 석재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두 동강 나며 커피가 허공으로 솟구쳤 다.
“그만큼이나 경계에 만전을 기하 라고 했는데! 무능하기 짝이 없는 놈들.”
보고자가 마른침을 삼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계 병력들 은 경계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저지
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니 경계 병 력들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점을 지적할 담량은 그에게 없었다.
“위치는?”
“지금 입구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 로 보입니다.”
“입구 쪽으로 슈발리에들 집결시 켜!”
“예!”
보고자가 뛰쳐나가려고 하자 나이 트 르보가 손을 뻗었다.
“잠깐.”
“ 예?”
“쳐들어온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파악이 안 됐다고 했나?”
“……예. 아직은.”
“수는? 수는 파악이 됐나?”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수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최대 삼백 정도까 지 추정하고 있습니다.”
나이트 르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다.”
“예. 그럼.”
보고자가 뛰쳐나가자 나이트 르보 가 가만히 가면을 움켜잡았다.
‘위긴스.’
그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쳐들어올 이는 아무 리 생각해 봐도 위긴스 말고는 생각 이 나지 않는다.
‘마스터, 그 영감탱이의 말이 맞 았다는 말인가?’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른다.
마스터는 몇 번이고 그에게 경고 했다. 위긴스가 올 거라고. 그리 고…….
‘ 강진호.’
그자도 함께 올 것이라고 말이다.
노망난 늙은이의 협박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했건만,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제정신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위긴스는 절대 멍청한 자가 아니 었다. 그가 원탁의 전력이 어느 정 도인지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무 슨 생각으로 원탁으로 직접 쳐들어 온단 말인가.
‘아니, 아니지. 알고 있기 때문이 야.’
지금이 아니면 방법이 없을 테니 까.
아직 마스터의 권한을 손에 넣지 못한 그는 병력을 움직이기 위한 회 의를 소집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원탁 자체의 방어 병력과 그의 권속들뿐이다.
타이밍을 노린다면 지금밖에 노릴 수 없다.
하지만…….
‘고작 삼백이라고?’
최대치라고 했으니 더 적을 수도 있다. 고작 그 수로 원탁에 쳐들어 온단 말인가.
“급했구만, 위긴스.”
나이트 르보가 미묘한 미소를 지 었다.
상관없다.
나이트 위긴스가 이 순간을 찌를
수 있다는 건 이미 예측했다. 그 가 능성을 굳이 대비하지 않은 것은 방 심해서가 아니라, 얼마든지 상대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은 당황이 었지, 절망이 아니다.
“절망은 내가 아닌 너희가 느끼게 되겠지.”
나이트 르보가 천천히 걸어 방을 빠져나왔다.
米 米 米
“대충 끝난 것 같은데……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로드, 이 정도가 최선입니다.”
“……조잡한데.”
“성능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위긴스가 빛나는 줄에 묶인 이들 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설사 풀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풀지 않을 겁니다. 이곳에서 풀려나 는 건 이들에게 딱히 좋을 게 없으 니까요. 이대로 우리가 승리한다면 그저 좋은 일이고, 우리가 패배한다 고 해도 제압당했다고 변명할 수 있 습니다. 그렇지, 켄드릭?”
“••••••예.”
상황을 풀어주는 것 같지만, 실제 로는 행동 지침을 말해주는 쪽에 가 가웠다.
조잡하기는 하지만 이 논리로 그 들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 다.
남은 이들을 모두 한 곳으로 밀 어 넣은 위긴스는 마법을 이용해 그 들을 묶었다. 제대로 된 구속력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요식행 위는 될 것이다.
강진호가 살짝 불만스러운 얼굴로 묶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적당히 기절시키고 가도 될 것
같은데.”
“……그러다 죽습니다.”
“부작용은 늘 감수해야 하는 법이 지.”
오가는 대화를 듣던 켄드릭의 얼 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저, 절대로 여기서 벗어나지 않 겠습니다.”
“……흠.”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마음대로 해.”
“감사합니다, 로드.”
“여전히 무르다는 생각은 버릴 수 가 없군.”
“로드와 제 방식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회를 위해서 도 그게 좋은 건 아니지요.”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걸로 좋 아.”
강진호가 먼저 앞으로 걸어가자 위긴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러고는 묶여 있는 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혼란스럽겠지만,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날이 밝기 전에 끝날 테니까.”
“나이트!”
이제는 그리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나이트 라는 말이 나왔다.
“돌아오시는 겁니까?”
“아니.”
위긴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나는 원탁을 나 온 사람이다. 내가 돌아오는 건 모 양새가 좋지 못하지. 게다가……
위긴스의 시선이 이제는 시신이 되어버린 이들로 향했다.
“……실례겠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다.
하지만 그가 과거의 동료들을 죽 인 것 역시 사실이었다.
“나는 그저 뒤틀린 것을 바르게 되돌릴 뿐이다. 그러고는 다시 떠나 가겠지. 그게 전부다.”
“그럼.”
위긴스가 몸을 돌렸다. 그러자 대 기하고 있던 이들이 위긴스를 따르 기 시작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켄 드릭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 르겠지만, 그저 지켜보고 있는 것만
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바르게 되돌려?”
“……쓸데없이 필요할 때만 영어 를 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바 토르 님도, 그리고 회주님도!”
“공용어의 힘이겠지.”
바토르가 이죽이며 웃었다.
“굉장히 포장질에 능숙하군. 누가 보면 원탁의 타락을 보다 못해 고뇌 하며 돌아오는 영웅쯤으로 알겠어.”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걸 대놓고 찌르네.’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한 시대 아
니겠습니까?”
“사기꾼은 아니고?”
“..부정하기 힘들군요. 하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저들은 희망을 가져서 좋고, 우리는 실리를 가져서 좋고.”
“거래는 못할 놈이로군.”
바토르가 피식 웃어버렸다.
위긴스는 이곳에 사명감을 가지고 돌아온 게 아니다.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시 위해 온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몇 마디 둘러대는 것으로 굉 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돌아온 양 코 스프레를 해버렸다.
“순진하게 그걸 믿는군.”
“믿는 게 아닙니다.”
“그럼?”
“믿고 싶은 거지요.”
위긴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사람은 속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믿고 싶은 대로 해주는 겁니 다. 진실이야 어쨌든 저들은 제가 그들을 구원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싶겠죠. 그럼 그렇게 굴어주면 되는 겁니다.”
“그걸 사기라고 하지, 보통?”
“아니요. 이건 사기가 아니죠. 사 기는 한쪽이 다른 쪽에 피해를 주며
이득을 취하는 걸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 없 죠. 제가 얻으려 하는 것은 내버려 두면 나이트 르보가 가져갈 것이니 까요. 그걸 중간에서 가로챈다고 해 서 저들에게 무슨 피해가 가겠습니 까? 그러니 이건 사기라고 할 게 아니지요. 굳이 지칭한다면……
“협잡.”
“네 협…… 네?”
강진호가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협잡이라고 하지, 보통.”
“크하하하하하하하핫!”
바토르가 배를 움켜잡았다. 강진 호의 말에 위긴스의 얼굴이 시뻘겋 게 물들었다. 하지만 딱히 반박은 못하는 모양새가 말할 수 없이 유쾌 하다.
“……크게 웃지 마십시오. 적진입 니다.”
“어차피 이제는 다 알 텐데 뭐.”
“그래도 적진입니다.”
“큭큭큭큭, 알겠다. 작게 웃어주 지.”
“끄응.”
위긴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말 을 할수록 손해다.
“이곳입니다, 로드.”
위긴스가 앞에 드러난 탁 트인 공터를 가리켰다.
“여기라고?”
눈에 보이는 것은 드넓은 공터. 그리고 중간중간 자리한 사람 몸통 만 한 돌덩어리들뿐이었다.
이곳이 원탁이라고?
위긴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 다.
“정확히 말하면 이곳이 아니 라……
그의 손이 아래를 가리킨다.
“원탁은 이 아래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