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74)
마존현세강림기-975화(973/2125)
마존현세강림기 40권 (6화)
2장 억누르다 (1)
저벅저벅.
윌슨은 아무 말 없이 복도를 걸 었다.
그의 등 뒤로 위긴스들이 따르고 있지만, 조금 전부터 단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윌슨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다. 침입자가 위긴스라는 것을 알고 나이트 채드윅으로부터 그들을 막으 라는 명이 떨어졌을 때, 윌슨은 다 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긴스 를 막겠다고 말이다.
위긴스에게도 나름의 명분이 있다 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명분은 이 쪽에도 있다. 명분과 명분이 충돌하 는 상황에서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원칙이다.
상황에 맞춰 자신의 입장을 선택 하는 방법 따위는 배우지 못했다.
가터 기사단의 단장이 되기 위해 그 가 익혀야 했던 것은 상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것과 규칙과 규범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부서졌다.
윌슨이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뒤 쪽에서 강진호가 아무 말 없이 걷고 있었다.
평범하다. 그저 평범하게만 보인 다.
하지만 윌슨은 보았다.
자신의 얼굴을 움켜잡은 순간, 강 진호가 내보인 악마성을.
만약 그 순간에 윌슨이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면, 강진호는 아무렇 지도 않게 그의 머리를 터뜨려 버렸 을 것이다.
그에게는 인간의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를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았 어.’
강진호의 눈은 적을 바라보는 눈 이 아니었다. ‘적’이라는 것은 적대 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강 진호의 시선은 적에게 내보이는 감 정을 담고 있지 않았다.
무기질의 무언가를 보는 느낌.
책상이나 의자를 보는 시선과 별 로 다를 게 없었다. 그렇기에 섬뜩 하다.
무기질은 용도가 없어지면 폐기된 다. 윌슨 역시 마찬가지란 뜻이다.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강진 호는 윌슨을 폐기해 버렸을 것이다.
폐기에는 명예도, 긍지도 없다.
무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아무리 강한 자라고 해도 언젠가는 자신보다 더 강한 이를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그 렇기에 언제나 죽음을 각오해야 한 다.
윌슨 역시 언제나 죽을 수 있다 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대면한 적의 손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듯 간단하게 용도 폐 기당하는 죽음은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
살고 싶었다.
강진호의 손에 얼굴을 잡힌 순간,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죽음 과 맞닿아 있음을 느꼈다. 머릿속에 미약한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죽음이 피부에 와닿는 순간, 이제껏 느껴보
지 못한 강렬한 생존 본능이 피어났 다.
그래, 그저 살고 싶었다.
그게 뭐가 잘못됐나.
“복잡해 보이는군.”
위긴스의 목소리에 윌슨이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위긴 스가 그의 옆에서 걷고 있지만, 눈 치채지 못할 정도로 생각에 몰입해 있었다.
“그리 복잡해할 것 없네.”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지금 윌슨이 느끼고 있는 충격이 어떤 것인지 위긴스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처음 강진호의 위용을 그의 눈으로 확인했을 때, 위긴스도 같은 것을 느꼈으니까.
하기야 위긴스는 그때 직접적으로 강진호에게 위협당한 것은 아니었으 니 윌슨보다는 사정이 나을 수도 있 겠다.
“……나이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 까?”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이트가 아 니라니까 그러네.”
“……죄송합니다. 입에 익어서.”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나이트라……
입에 익은 것은 그만이 아니다. 때때로 위긴스도 자신을 나이트라는 이름으로 소개해 버리고는 한다. 이 제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 을 알면서도.
나이트로만 십여 년이 넘게 살아 왔다. 그런데 어찌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겠는가.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묻게나.”
“왜 그러셨습니까?”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물어야 할 상황에는 묻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미 식어버린 뒤에야 물 어온다.
“자네와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 지.”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윌슨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냐 고?
혼란, 공포, 배덕감, 분노, 그리 고…….
‘무력감.’
무력감이 가장 크다.
인간이란 언제나 자신을 과대평가 하기 마련이다. 스스로를 객관적으 로 바라본다는 것은 세상을 완벽히 냉정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배는 더 어렵다.
윌슨은 스스로가 힘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명예를 위 해서라면 목숨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던질 수 있는, 진정한 기사라 믿었다.
하지만 그가 대면한 진정한 자신 은 명예 따위는 목숨을 위해서 아무 렇지도 않게 내버릴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그러니 어찌 무력함을 느끼지 않 겠는가.
“자네의 탓이 아닐세.”
“위로하려는 것이 아니야.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네. 이건 자네의 탓이 아니야.”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사람이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동안 자신이 겪어온 일에 어떻게 반웅하고 대응했는가라네. 자네가 지금까지 겪은 어떤 상황에서도 명 예를 우선시해 왔다면, 스스로가 명
예를 중시하는 기사라고 판단하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닐세.”
“자네가 잘못 판단한 게 아닐세. 그저 뭐라고 해야 할까……
위긴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원탁에서는 결코 겪어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다는 거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니 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원탁과 가터 기 사단을 위해 살아온 윌슨이다.
수많은 전투를 겪었고 수많은 일
들을 해왔다.
하지만 저 강진호 같은 인간은 겪어본 적이 없다. 그의 삶에 있어 서 저자는 명백한 규격 외의 인물이 었다.
“나라고 달랐을 것 같은가?”
위긴스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받은 충격이 자네가 받은 충격보다 못하진 않을 걸세. 나는 내가 알던 세상이 붕괴되는 느낌을 받았다네. 원탁이 전부라고 믿어온 내가 바깥세상에 내가 이해할 수 없 는 것들이 산적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원탁이 우물로 취급될 곳은 아닐 텐데요.”
“나도 그리 생각했네. 그런데…… 여전히 그리 믿는가?”
윌슨은 대답하지 못했다.
원탁은 세상을 관장한다. 그렇기 에 원탁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아 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 진호의 존재는 윌슨의 생각을 여지 없이 깨트려 놓았다.
“그래서 원탁을 나가신 겁니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위긴스가 씨익 웃었다.
“사실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
네.”
윌슨은 입을 다물었다.
화를 내지도, 황당해하지도 않았 다.
‘그렇지.’
그가 아는 위긴스는 이런 사람이 다. 유머 속에 속내를 감출 줄 알 고, 더없이 계획적인 것 같지만, 더 없이 충동적인.
그래서 매력적인.
“……위긴스 님.”
“음?”
“위긴스 님이 원래 그런 분이시라 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 직히 한마디는 하고 싶습니다.”
“……해보게나.”
“앞으로 그런 결정을 하실 거라면 적어도 남겨진 이들에 대한 생각 정 도는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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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우리는 당신을 따를 기회조차 박 탈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돌아와 입바른 말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감정적으로나마 동조할 수 있 겠습니까?”
“그건 내 사과함세.”
위긴스가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하나 변명하자면, 도저히 내가 돌아와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네.”
“전화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닙니 다.”
“……그냥 사과하겠네.”
“흐 ”
仁그 •
윌슨이 불편한 콧소리를 냈다.
하지만 찡그린 얼굴과는 반대로 그의 마음은 꽤나 편해져 있었다. 위긴스와 대화를 나누면서 강진호에 대한 공포심도 어느 정도는 희석되
었고, 위긴스에게 쌓여 있던 불만도 웬만큼은 풀려 나갔다.
“이리된다면 저는 당신의 성공을 기원할 수밖에 없겠군요.”
“한 배를 탄 게지.”
“……그렇게 웃지 마십시오.”
“꽤나 즐거운 상황이라 말이야.”
“못 뵌 동안 성격이 많이 나빠지 셨군요.”
“내 그건 확실하게 인정할 수 있 네. 워낙 험한 양반들이랑 어울리다 보니……. 에잉.”
위긴스가 고개를 젓는 모양새를 보며 윌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위긴스는 좀 변한 것 같 다. 예전에도 유머러스한 면이 없던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장난기가 넘 쳐 나지는 않았다.
‘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뭘 하신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이제 윌슨은 전력을 다해 위긴스를 도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탁은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는 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가 위긴스의 편에 서서 강진호들을 도운 이상, 이들이 패한다면 원탁은 그들을 제
거할 것이다.
게다가…….
‘나이트 르보에게 확실한 명분을 주게 되겠지.’
나이트 위긴스의 배신까지는 어떻 게든 수습해 볼 수 있다. 개인의 일 탈을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는 것은 원탁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시 슈발리에들의 배 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 않은 가.
하지만 마스터가 탄핵되고 가터 기사단까지 원탁에 반기를 들게 된 다면, 나이트 르보는 원탁에서 영국
의 영향력을 줄이고, 영국의 무인계 를 정화할 명분을 얻게 된다.
이대로 나이트 르보가 마스터의 자리에 오르고 이들의 공격을 성공 적으로 막아낸다면, 영국의 무인계 는 다시없을 암흑기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그건 막아야 해.’
윌슨이 이를 악물었다.
배신자가 반역자로 바뀌는 전형적 인 패턴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 지 중 하나다.
하나는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 가터 기사단을 지휘해 이들과 싸우 는 것, 다른 하나는 어떻게든 이들 을 도와 마스터를 복권시키는 것.
전자를 선택한다?
‘그건 죽겠다는 짓이지.’
그리고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휘하 기사단은 이미 한 번 죽음을 각오했다. 그랬다가 이제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런 이들 에게 다시 죽으라 명한다?
반역이 일어나지나 않으면 다행이 다.
비빌 언덕이 없으면 모를까, 위긴
스가 옆에 있는 이상 윌슨의 명을 거부하고 위긴스를 따를 이가 반드 시 나올 것이다. 한 명만 위긴스 쪽 으로 붙어도 대량의 이탈 사태가 벌 어진다.
그럼 끝이다.
그렇다면 결국 윌슨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위긴스 님, 약속해 주십시오.”
“무엇을 말인가?”
“저는 이 사태에 책임을 지겠습니 다.”
“하지만 만약 당신의 목적이 이루
어진다면, 부하들을 부탁드립니다. 저들은 죄가 없습니다.”
“마스터께서……
“마스터는 못하십니다. 아무리 우 리가 그분을 돕는다고는 하나, 그분 은 다른 나이트들의 눈치를 봐야 합 니다. 배신자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는 못할 겁니다. 그러니 위긴스 님 께서 약속해 주십시오. 저들에게 피 해가 가지 않게 하겠다고.”
위긴스가 고개를 돌렸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약속하지. 내 반드시 그리하겠 네.”
“그럼.”
챙!
윌슨이 검을 뽑았다.
“우리는 이제부터 당신의 검이 되 겠습니다.”
위긴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 다.
“환영하지, 윌슨. 그러니 이제 가 세나. 모든 것을 되돌려야지.”
“목표는?”
“물론 나이트 르보의 목일세.”
“앞장서겠습니다.”
윌슨이 박차를 가하며 달려 나갔 다.
그 광경을 보며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정리가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니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