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85)
마존현세강림기-986화(984/2125)
마존현세강림기 40권 (17화)
4장 상대하다 (2)
‘의외로 싱거운데?’
이현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상황 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마염들을 투 입해야 할 상황은 벌어지지 않고 있 었다. 바토르와 장민은 일방적이라 고 해도 좋을 만큼 적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리고 방진훈 쪽도 크게 밀리지 않고 있었다.
방진훈 역시 총회의 이사라는 직 위에 걸맞은 힘을 보여주고 있고, 그를 따르는 이들도 아직은 부족하 지만 제 몫을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쪽에서 돋보이는 것은 방진훈들보다는 의외로 슈발리에들 이었다.
‘강하다.’
몰려오는 기사단을 상대하는 슈발 리에들은 그들에 비해 한 단계 높은 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개개인의 힘 자체는 방진훈에 비해 그리 앞서 있
지 못하지만, 저들은 ‘기시단’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일 때보다 둘이 강하고, 둘일 때보다 셋이 강하다.
하나하나의 기사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기사단, 저 많은 기사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하나 의 생물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프랑스의 슈발리에들이 타국의 기 사단보다 특출 나게 강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저들 역시 수련을 해왔지.’
다른 기사단들이 여러 임무를 맡
고, 각자의 업무를 처리해야 할 시 간에 총회의 슈발리에들은 온전히 자신의 무학에 집중했다. 그리고 총 회의 무인들을 가르치며 자신들의 무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기까지 했 다.
가르치며 배운다는 말이 있지 않 은가.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는 것을 먼저 확고히 해야 한다. 어설프게 개념만 지니고 있던 것을 이론으로 확립하는 과정은 꽤 나 큰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런 과정을 거쳤는데 강해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그리고 머나 먼 타국에서 오로지 서로만을 의지 해야 했던 슈발리에들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단합 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총회의 환경, 끝없이 눈으로 확인 하는 새로운 무학, 그리고 언젠가는 이 상황을 벗어나겠다는 의지.
그 모든 것들이 슈발리에들을 강 하게 만들었다.
‘나이트들도 생각보다는…… 아니, 이건 아니다.
이현수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나이트들이 위긴스에 미치지 못하
는 것은 분명하다. 위긴스는 분명 나이트들 중에서도 특출 난 사람이 었다. 하지만 나이트들이 그 위긴스 의 절반 정도 되는 무력만 갖췄다 해도 총회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 는 전력임에 분명하다.
그런 나이트들을 일방적으로 학살 해 버린 강진호가 말도 안 되게 강 한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현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강진호 쪽을 바라보았다.
절반이 죽었다.
그리고 남은 절반은 무기를 잃은
채 강진호와 대치하고 있었다. 저들 은 이제 더 이상 강진호를 막을 수 없다. 변수가 있다면 오직 하나.
이현수의 시선이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향했다. 위긴스의 말이 정 확하다면, 이제 곧 저 아래에서 무 언가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더없이…….
“왜 안 싸우시는 겁니까?”
“음?”
이명환의 말에 이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회주님이요. 남은 애들은 그냥 처리해 버리면 될 것 같은데.”
« o »
이현수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다 시 돌아갔다. 그의 눈에 검을 늘어 트린 채 서 있는 강진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확실히.’
예전의 강진호였다면 지금 저 나 이트들은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뭔가 좀 달 랐다. 강진호가 지닌 특유의 위압감 이나 카리스마는 여전하지만, 강진 호가 싸울 때마다 느껴지던 거칠고 다급한 뭔가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 었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둘의 시선이 강진호를 쫓았다.
나이트 베슬리가 눈을 떴다.
‘내가 살아 있어?’
그 악마가 그를 걷어차던 순간이 떠오른다. 당연히 죽었을 거라 생각 했는데, 의외로 그는 살아 있었다.
그가 신음을 내자 다른 나이트들 이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이들은 왜 살아 있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진호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힘의 격차가 너무도 컸으니까. 그가 쓰러지기 전에 이미 균형은 무너져 있었다. 모두 죽는 데 채 5분이 걸 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다섯이나 되는 나이 트가 남아 있다. 처음 이곳에 ‘살아 있던’ 나이트의 수에 비하면 반이나 줄어든 수지만, 어쨌든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 괜찮소?”
“……살아는 있는 것 같군.”
“다행이오.”
태연하게 말을 걸어오는 이들을
보며 나이트 베슬리가 얼굴을 일그 러뜨렸다.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의 시선이 강진호를 향했다.
불과 5미터 앞에 강진호가 서 있 다.
5미터.
일반인들에게는 안전이 확보된 거 리일지 모르겠지만, 그들과 같은 무 인에게 5미터의 거리는 어깨를 맞부 딪치며 서 있는 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목을 날려 버릴 수 있는 거리.
집채만 한 사자의 바로 옆에 앉 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럼.
저 사자는 지금 배가 부를까?
이미 먹어 치울 만큼 그들의 동 료들을 먹어 치웠기에 더 이상 그들 을 잡아먹고 싶지 않은 건가?
나이트 베슬리가 이를 악물었다.
“왜!”
생각 이상으로 커다랗게 터져 나 온 그의 목소리에 강진호의 시선이 움직인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강 진호가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베슬리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 물었다.
‘이자가 방금 그 악마인가?’
더 이상 검은 기운을 뿜어내지 않고 있는 강진호는 그저 평범한 사 람으로만 보였다.
물론 저 모습의 강진호를 평소에 대면했다면 인상은 전혀 달랐을 것 이다. 저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몸을 떨었겠지. 하지만 세 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지 않은가.
조금 전, 악마처럼 날뛰던 강진호 에 비한다면, 지금의 강진호는 차라 리 순진하게 보일 정도였다.
“……왜 우리를 죽이지 않는 거 요?”
억눌린 질문이 홀러나왔다.
그러자 강진호가 눈을 살짝 찌푸 렸다.
“영어로 말해.”
나이트 베슬리가 살짝 당황하여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 진중한 상 황에 이 무슨 추태라는 말인가.
“왜 우리를 죽이지 않는 거요?” 다시 영어로 말하자 강진호가 알 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고 싶은가?”
“……그렇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지.”
강진호의 목소리에는 조금도 위협 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저 물건을 옮기는 것처럼 별것 아닌 일을 별것 아니게 처리할 수 있다는 어투였다.
그리고 그 어투가 더없이 섬뜩하 다.
강진호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지금 강진호에 게 있어서 남아 있는 나이트들을 죽 이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 순간 할 수 있 는 일.
그렇기에 집착할 필요도 없는 일 이겠지.
베슬리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우리를 모욕하는 거요?”
“ 모욕?”
“기사는 동정을 받지 않소. 차라 리 명예롭게!”
“그럼 죽어.”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렇게 명예가 중요하고 수치스 럽다면 굳이 남의 손을 빌릴 것 없
어. 네 손으로 네 목을 날려 버리면 되니까.”
“이해를 못하는군.”
“……뭐가 말이오?”
“너를 죽이고 말고는 온전한 나의 권리다.”
베슬리의 눈이 떨렸다.
“목숨을 걸고 싸워서 패한다면 모 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너 를 죽이든 죽이지 않든 그건 내 마 음이야. 너는 요구할 권리가 없다. 어떤 불합리한 일도 받아들여야 하 지. 그게 전장에 선 자가 지켜야 할
단 하나의 원칙이다.”
이가 절로 맞물린다.
반박할 말이 없다.
강진호의 말은 어느 하나 틀린 게 없었다.
“패하고 명예를 찾는 것만큼 병신 같은 짓도 없지. 진짜 명예는 패하 지 않는 것이다. 그게 싫다면 죽어. 그렇게 해서 네 명예가 지켜진다고 믿는다면.”
주먹을 움켜쥐었다.
끔찍한 치욕에 몸이 덜덜 떨려왔 다.
“하나만 말해줄 수 있겠소?”
“왜 우리를 죽이지 않는 건지라도 말해주시오.”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참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놈들 이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인지, 현대 와 중원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이유는 없어.”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흥미를 잃었다고 해두지.”
이유가 될 수 없는 말이었다.
나이트 베슬리는 더없는 치욕에 몸을 떨고 있지만, 강진호 역시 이
이상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그가 왜 이들을 죽이지 않는지 강진호 역 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이유는 있다.
원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원탁의 파괴가 아니라 원탁 의 주인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다.
강진호는 그 과정이 굳이 필요할 까 의문이지만, 위긴스가 그걸 원하 니 원하는 대로 해줄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를 죽이는 건 옳지 않다. 아무리 나이트들이
새로 선출된다고는 하지만, 원탁에 만 전념할 수 없는 위긴스를 대체하 기 위해서는 다른 나이트들의 협조 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들은 증인이 되어줘야 한다.
강진호가 얼마나 강한지, 총회에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 지를 말해줄 증인. 그리고 협조자.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이유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 만, 이유의 전부는 될 수 없다. 과 거의 강진호였다면 그런 사정이 있
었다고 해도 자신에게 검을 겨눈 이 들을 살려두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테 니까.
그저 뭐랄까.
‘그냥 그러고 싶다’가 맞다.
딱히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죽이고 싶지 않은데 원칙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는 것도 웃기는 일 아닌가. 애초의 그 원칙 도 강진호의 마음이 동하는 대로 정 한 것뿐이니까.
“그리 고민할 것 없어.”
강진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아직 너희를 죽이지 않겠다고 결
심한 건 아니니까. 이러다가도 생각 이 바뀌면 죽이겠지.”
나이트 베슬리가 깊은 한숨을 쉬 었다.
원탁의 나이트로서 자신의 생사를 온전히 적에게 맡기고 처분을 기다 리는 건 더할 수 없는 수치였다.
“혹시 모르지, 살아날 길이 있을 지도.”
강진호의 시선이 옆으로 돌았다.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나 이트 베슬리가 두 눈을 찢어질 둣 부릅떴다.
‘신전이 열렸어?’
전설처럼 내려오는 나이트의 신전 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렇다는 건 나이트 르보가 엘더 나이트들을 깨우러 갔다는 뜻이다.
이제는 너무도 오래된 전설이라 과연 엘더 나이트가 실존하는가를 의심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전설이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아직 상황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나이트 베슬리의 귓가에 기이한 소 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철컥철컥.
기묘한 쇳소리.
나이트 베슬리는 이 소리가 무엇 인지 알고 있었다.
중장갑.
낡고 오래된 중장갑이 서로 마찰 하며 나는 소리.
원탁의 예식을 소화하기 위해 한 번씩 예식 갑주를 갖춰 입었을 때 그의 몸에서 나던 소리다.
조금 더 둔탁하고, 조금 더 날카 롭지만.
‘그 말은……
지금 저 아래에서 중장갑을 걸친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여러 명이!
나이트 베슬리가 마른침을 삼켰 다.
그리고 그의 눈에 마침내 그 광 경이 들어왔다. 활짝 열린 원탁 사 이로 나 있는 계단을 통해 고풍스러 운 갑주를 챙겨 입은 기사들이 천천 히 걸어 올라왔다.
전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