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ent of the Demon Master RAW novel - Chapter (995)
마존현세강림기-996화(994/2125)
마존현세강림기 41권 (2화)
1장 지배하다 (2)
털썩.
보어스의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진 다.
가웨인은 지독한 역겨움을 느꼈 다.
전신이 꿰뚫린 보어스의 시신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역겨움을 느끼는 이유는 보어스의 시신이 처참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저 시체는 본디 보어스라 불리던 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시체일 뿐이 다.
죽은 시체는 더 이상 보어스라 불릴 수 없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살아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 까.
삶과 죽음.
그 극명한 격차의 전환이 눈깜짝 할 새에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곳은 지금 세상 어디
보다 삶과 죽음이 근접해 있는 곳이 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가운데 저 강진호가 있었다.
‘주여.’
가웨인은 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신을 그저 방관자라 생각했다.
신이 전능하다면, 그가 정말 인간 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세상에 내려 지는 수많은 불운과 불행을 그저 좌 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유와 어떤 목적이 있든 그는 그저 지켜보
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신이 있었다.
신을 정의하는 개념이 ‘인간이 어 찌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초월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전능자’ 라는 의미라면, 눈앞의 강진호는 더 없이 그 ‘신’이라는 개념에 부합하 는 존재였다.
죽음의 신.
헛웃음이 난다.
삼백 년의 시간을 잠들어 있다 깨어나 조우한 존재가 죽음의 신이 라니.
그의 삶은 너무도 길었다.
하지만 이런 안식은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다. 만약 저 강진호라 는 존재가 그에게 그만 안식을 주기 위하여 신이 보낸 존재라면, 이건 너무도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가웨인.”
가웨인의 시선이 살짝 옆으로 돌 아갔다.
백금발의 미청년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란슬롯.”
엘더 나이트들 중에서도 가장 미 지에 쌓여있던 존재.
가웨인은 엘더 나이트의 리더 격 인 존재다. 하지만 그 역시 엘더 나 이트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엘더 나이트라는 개념이 존재 했으니까.
그 비밀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있 다면 바로 이 남자일 것이다.
란슬롯.
최초의 엘더 나이트.
하지만 결코 자신에 대한 이야기 를 하지 않는 존재.
그저 하나의 엘더 나이트로서 묵 묵히 봉사하는 존재.
엘더 나이트들 중에서도 가장 이 질적인 존재가 지금 천천히 입을 열 고 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저자를 죽 일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방법?
태평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그럼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이라면 저 강진호를 죽일 방법이 있단 말인 가.
가웨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 법을 알 수 없었다.
저건 무적의 존재다.
신화적인 무력을 쌓아 올렸다고
자부하는 엘더 나이트들이 저자의 손에 지금 벌레처럼 죽어 나가고 있 다. 방심하지 않았음에도, 할 수 있 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너무나도 큰 힘의 격차를 감당하지 못하고 학살 당하는 중이다.
무슨 수로 저자를 죽인단 말인가.
“틈을 만들어주십시오.”
“란슬롯?”
“장담은 못하겠지만……
란슬롯의 눈이 가라앉았다.
“파고들 틈을 한 번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떻게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웨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란슬롯은 신뢰할 수 있는 자인가.
‘ 모르겠군.’
평소라면 그렇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말하는 신뢰는 평 소의 신뢰와는 다르다.
란슬롯이라는 사내를 믿고, 자신 과 모두의 목숨을 건 단 한 번의 도박을 시행할 수 있겠는가.
그게 지금 가웨인이 생각하는 신 뢰 였다.
“장담해라.”
“어차피 우리는 죽는다. 단 한 번
의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모두 의 목숨을 버려야 한다. 그럴 거라 면 차라리 허세라도 떨어라. 기회를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내가 반드시 저자를 죽이겠다고.”
란슬롯이 입을 다물었다.
“우린••••••
가웨인이 창을 부러져라 움켜잡았 다.
“그 허세에 속아줄 테니까.”
란슬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은 죽을 겁니다. 하지만 원탁이 무너지지는 않게 하겠습니 다. 나의 명예와 목숨을 걸고.”
“나쁘지 않군.”
부웅.
가웨인의 창이 크게 휘둘러졌다.
“엘더 나이트들이여.”
가웨인이 남은 이들과 시선을 맞 추었다.
갤러해드, 케이, 트리스탄, 퍼시 벌
남아 있는 란슬롯과 이미 죽어버 린 다섯을 제외한다면, 남은 이는 그를 포함한 다섯뿐이었다.
열하나로도 감당하지 못했는데 다 섯으로 감당한다?
‘웃기는 일이지.’
그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 다.
저 피에 굶주린 살귀는 절대 그 들의 생존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원탁을 저자에게 들어 바치 고 삶을 구걸한다는 선택지는 애초 에 그들에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린 죽는다.”
“하지만 저놈도 죽는다.”
모두의 눈이 단호해졌다.
“미련을 버려라. 우리는 이미 죽 은 이들이다. 살아생전의 이름은 사 라졌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명예의
의무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죽 음으로 명예를 지키고, 죽음으로 그 의무를 다한다. 모든 것은 원탁을 위하여!”
동시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구구절절한 작전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이미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 의 대처가 머릿속으로 떠올라 있다.
남은 것은 완벽한 호흡으로 결과 를 만들어내는 것뿐.
가웨인이 창을 움켜잡고 앞으로 나섰다.
마법사 하나, 궁수 하나.
그리고 창수 하나와 검사 둘.
‘조합은 나쁘지 않군.’
파티로서는 최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실이 가웨인에게 자신 감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떨어지 지 않는 발을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을 보이지 않 게 가리며 가슴을 편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기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 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죽느냐다. 그 리고 가웨인은 자신의 마지막을 수 치스럽게 장식할 생각이 없었다.
“동양에서 온 전사여.”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 봤다.
강진호의 머리카락을 따라 핏방울 이 떨어져 내린다. 수많은 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본 가웨인이건만, 저 모습은 이상하게도 섬뜩하게 느껴졌 다.
‘그렇겠지.’
죽음이라고 다 같은 죽음이 아니 다.
운에 맡겨진 죽음과 확정적으로 죽음을 만들어내는 존재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되레 궁금해진다.
저자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건 무 슨 의미일까?
가웨인의 죽음과 저자의 죽음은 같은 의미를 가질까?
‘의미 없는 이야기지.’
시간을 끌려는 건 아니다.
아니…… 솔직하게 시간을 끌고 싶었다.
이미 그는 죽은 자다.
엘더 나이트가 되기로 결심한 순 간, 그는 자신을 버렸다. 이름과 과 거를 잃은 자는 살아도 산 것이 아 니다. 원탁을 위해 목숨과 삶을 바 친다는 명예는 그에게 죽음마저도
담담히 받아들이게 했다.
하나…….
‘그래도 살아 있었다는 거로군.’ 이토록이나 두려운 것을 보니 말 이다.
그는 죽음을 초월한 게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죽음이라는 결과가 다가 오지 않을 것이라 어설프게 믿었을 뿐이다. 그 어떤 인간도 죽음을 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도…….
“너는 죽는다.”
가웨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설사 그게 죽음을 지배하는 자라 고 해도!
인간인 이상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듯 이 저자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러니 죽음을 내려줄 것이다.
강진호가 검을 털어냈다.
촤악.
새하얀 바닥에 선명한 핏줄기가 생겨난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강진호가 적루와 청루를 늘어뜨리고 천천히 가웨인을 향해 걸었다.
“그전에 하나 묻고 싶은데……
가웨인이 씹어뱉듯 말했다.
“어떻게 그리 강하지?”
“우리 역시 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의 강함은 우리의 강함마 저 초라하게 만드는군. 너와 우리는 뭐가 달랐던 거냐? 너는 어떻게 그 리 강할 수 있지?”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가웨인 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 알면?”
“알면 뭐가 달라지나?”
가웨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강진호의 말이 맞다.
알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어차 피 그는 죽을 텐데.
“이유는 간단하지.”
하지만 강진호는 자비를 베풀어주 었다.
“너는 그걸로 충분했던 거야.”
“나는 아니고.”
너무도 간단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렇군.”
가웨인은 웃어버렸다.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 를 하나하나 찾자면 수백 가지가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 도 지금 강진호의 말보다 명확하지 는 않았다.
이곳으로 올라올 때까지 가웨인은 자신의 무학에 조금도 의심을 가지 지 않았다. 설사 그보다 강한 이가 있다고 해도 엘더 나이트들과 함께 라면 누구라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웨인의 한계를 만들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더 라면, 더 강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 꼈다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을 어떻게든 더 강해지는 데 사용했 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는 대 신 마법의 잠에 빠져드는 것을 택했 다.
원탁을 수호하기 위해…….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건 지금도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다.
다만.
다만….
가웨인이 창을 앞으로 겨누었다.
“같은 무인으로서…… 그대가 가 진 무에 존경을 표한다. 엘더 나이 트를 대표해서.”
그의 창이 자신의 가슴에 맞닿는 다.
가웨인의 좌우를 지키고 있던 이 들도 다들 경계를 풀고 예의를 표했 다.
엘더 나이트.
원탁을 수호하는 이들.
유럽의 자부심과 같은 이들.
그들이 단 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이전까지 없던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었다.
그 경건한 경의를 받으면서도 강 진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만 끝내자.”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가웨인이 이를 악물었다.
강제로 끌려나온 마나가 폭발적으 로 그의 전신을 타고 돌았다. 심장 이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하며 마나를 끌어 올린다.
과도한 마력 운용.
평소라면 부작용을 우려해 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지금 그는 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죽음 뿐일 테니까.
“간다!”
가웨인이 가공할 속도로 뛰어 나 갔다.
퍼시발과 트리스탄이 보조를 맞추 며 그와 함께 달려든다. 그리고 갤 러해드는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며 활시위를 당겼다.
“ 얼어붙어라!”
케이의 양손이 새하얀 광선을 뿜 어낸다.
할 수 있는 모든 것.
원탁의 모든 정화를 담고 있는 엘더 나이트들이 목숨을 돌보지 않
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 을 퍼붓고 있었다.
강대하기 짝이 없는 무력.
지켜보는 이가 다 살이 떨리는, 어마어마한 마나의 폭풍이 강진호를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마나의 폭풍을 바라보 며 강진호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피가 끓는다.
몸이 떨린다.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 뒤를 돌보 지 않고 상대를 향해 악의를 뿜어낸 다.
그래, 이게 전장이다.
이게 강진호가 살아온, 그리고 앞 으로 살아갈 곳이다.
이곳이
적루와 청루가 검은 마기를 줄기 줄기 뿜어낸다.
경의를 표했다고?
그건 너무 일렀지.
아직 다 보여준 게 아니니까.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