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Usurper, Hunter Who Sees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48
운명찬탈자 미래를 보는 헌터 148화
148화
송진우의 목소리는 밖에 닿지도 않았다. 이미 적인해가 기막을 펼쳐서 소리가 밖으로 새는 걸 막은 것이다.
“소용없어. 얌전히 있어.”
적인해가 구한 미약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다. 한 방울이면 평생 산속에서 수련한 고승도 색마로 만들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런 미약을 혹시 몰라서 술잔에 통째로 부었다. 그 바람에 언데드조차 버틸 수 없을 만큼 약효가 강했다.
송진우는 마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몸의 반응은 막을 수 없었다.
“아, 안 돼!”
송진우의 의지는 향긋한 살 냄새와 함께 무너졌다.
…….
‘무한한 힘’이 발동됩니다.
…….
《엠블럼 획득》
▲녹림왕의 애인
(랭크 A)
▷조건 : 녹림왕의 애인이 된다.
▷능력 :
녹림의 2인자가 된다.
그날, 송진우는 20년 넘게 지키고 있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 * *
따뜻한 빛이 송진우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몸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었다.
그 빛은 공허 교단의 회복 마법이었다.
신성 마법을 대표하는 마법답게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줄었던 생명 포인트가 금세 차올랐고, 피로도 사라졌다.
공허 교단은 버프에 더 특화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회복 마법은 빈약하지만 그래도 중간은 갔다.
회복 마법 캐스팅을 마친 공허 교단의 성녀, 아이리스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역시 저는 되는군요.”
“그러네. 아이리스만 되네.”
피루를 구하는 퀘스트에서 아이리스의 버프 스킬이 적용되어 매우 놀란 적이 있었다.
그 후 공허 신전의 사제들을 불러서 시험해봤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오직 성녀인 아이리스의 신성력만이 송진우에게 통했다.
“왜 이렇지? 왜 다른 사제들의 신성력은 통하지 않는 거야?”
언데드지만 최하급 신이 되어서 신성 페널티는 사라진 송진우다. 그래도 여전히 회복 마법이나 버프는 얻지 못했다.
아이리스의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직위 때문인가? 아니면 호감도?”
여러 가정을 떠올렸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송진우가 고심하고 있는 것을 본 아이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성녀는 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입니다. 그래서 저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세상과 신을 잇는다고?”
“네. 그게 저의 역할입니다.”
“그럼…… 나중에도 아이리스밖에는 안 되는 건가?”
“구원자님께서 힘을 더 키우시면 분명 다른 이들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하아…… 그래?”
최하급 신이 아닌 최소 하급 신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신의 등급을 올리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무공이나 레벨을 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할 수 없지. 그래도 아이리스의 스킬은 통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걸로 되었어.”
“영광입니다.”
원리는 알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아이리스를 데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아이리스는 성녀이자 교주와 같은 위치였다. 그런 그녀가 죽기라도 하면 교단 전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그냥 사제 한 명이면 큰 부담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사제를 소모품처럼 다룰 생각은 없었다.
송진우는 일단 아이리스를 안전한 곳에 있게끔 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리스도 각인해야 할 텐데…….”
아이리스가 디멘션 월드뿐 아니라 중앙 대륙을 드나들려면 각인이 필수다.
하지만 NPC를 각인하는 건 아이템을 각인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많은 포인트가 필요하다
현재 아이리스의 레벨은 611. 지금 송진우가 가진 포인트를 다 쏟아부어도 각인할 수 없다.
모리유야 자신의 레벨을 1로 만들어서 쉬웠지만, 아이리스는 그럴 능력이 없고, 또 귀중한 성녀의 레벨을 1로 만들 수도 없었다.
결국, 각인 포인트를 개처럼 모으는 수밖에.
“에고, 내 신세야.”
강해지는 방법이 많은 것은 좋지만 그만큼 신경 써야 할 일도 많다. 그리고 그만큼 골드가 많이 들어간다.
“어째, 예전보다 더 돈~ 돈~ 거리는 것 같네.”
물론 지금은 포식의 힘을 얻기 전보다 훨씬 풍족했다.
하지만 마을에 신전 하나 짓는 데도 최소 몇십억이 필요했다.
“이제 노가다로는 어림도 없겠군.”
송진우가 낙담하고 있자, 아이리스가 다가와 그를 위로했다.
“너무 낙담하지 마십시오. 구원자님이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위로해줘서 고마워.”
“이건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성녀로서의 신탁입니다.”
“……그게 나한테도 돼? 원래는 내가 내려주는 거 아닌가?”
그래도 명색이 모시는 신인데 자신의 성녀에게 신탁을 받았다.
뭔가 모순되는 상황인데도 아이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구원자님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은 제가 더 신전의 힘을 잘 활용할 수 있죠.”
생각해보면 몸은 자신의 것이지만 아직 대부분의 힘은 정체불명의 신에게 귀속되어 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힘으로도 예지를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이날도 결론은 평소와 같았다.
“하아…… 더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겠네.”
* * *
오늘은 동생, 송하나의 콩쿠르 예선이 치러지는 날이다.
송하나는 5년마다 핀란드에서 열리는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 참가하기로 했다.
핀란드에 가기 전 한국에서 예선전이 치러지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짝짝짝짝짝.
“최고다!”
준비된 연주를 마친 참가자가 진이 빠진 모습으로 퇴장했다. 이제 곧 송하나의 차례다.
“후유~”
송진우는 아직 송하나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손에 땀이 가득했다.
평소 하나의 실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예선을 통과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대회는 평소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송진우의 마음을 아는지 따라왔던 노혜미가 그의 등을 두들겼다.
“괜찮아. 하나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이번 콩쿠르가 있다는 사실을 안 노혜미와 한수정도 이 자리에 왔다.
그녀들은 모두 꽃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모두 송하나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대회는 연세대학교 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이번 콩쿠르는 바이올린 콩쿠르 중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대회다. 그래서 많은 관계자가 이곳에 모였다.
바이올린이 연주될 때는 다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다가 연주가 끝나면 우레 같은 손뼉을 쳤다.
짝짝짝짝!
또 한 명이 연주를 마치고 퇴장하자, 노혜미가 아직 얼어 있는 송진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치며 말했다.
“하나 차례다.”
마침내 송하나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푸른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예전 학교에서 하던 독주회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드레스였다.
이번 연주회를 위해서 한수정이 소개해준 디자이너에게 특별히 맞춤 드레스를 주문했다.
그 덕분에 수천만 원이 깨졌지만 아름다운 동생의 모습을 보니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송하나가 무대 위에 올라가니 다시 장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후유…….”
심호흡을 한 한수정이 신중하게, 하지만 자신 있게 바이올린 활을 움직였다.
끼잉~
바이올리니스트인 동생을 두었지만 음악에는 문외한인 송진우다.
하지만 지금 연주가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는 배경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전에 나왔던 연주자들도 모두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송하나에 연주에 비하면 어린아이들 재롱잔치에 불과했다.
그만큼 송하나는 또래, 심지어는 대여섯 살 많은 참가자보다도 월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송하나의 연주를 들으면서 한수정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와-!”
재벌 집 딸로 태어나서 이런 연주회를 수도 없이 많이 봤던 그녀다. 대부분 세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실력자의 연주였다.
송하나는 그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테크닉적인 면에서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만, 송하나의 연주에는 실력 이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이게 천재구나.’
어렸을 때부터 수재 소리를 듣고 자랐던 그녀다. 하지만 진짜 천재가 마음껏 발휘하는 재능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함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 송하나의 연주를 듣고 있다가 갑자기 자신이 또 하나의 복덩어리를 얻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송하나는 송진우의 추천으로 길드에 들어온 상태다. 그녀의 클래스인 바드는 연주의 완성도에 따라서 생기는 버프의 질이 달라진다.
물론 화살과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얼마나 집중력을 발휘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어쨌든 지금 그녀의 실력을 보니, 이변이 없는 한 퍼펙트로 연주를 끝마칠 듯했다.
아직 레벨이 낮지만 모자란 레벨은 길드에서 밀어주면 된다. 적당한 아이템만 구할 수 있으면 어느 길드 부럽지 않은 바드를 영입한 셈이다.
한수정은 아직 바짝 얼어있는 송진우의 옆모습을 보았다.
‘진짜 복덩어리는 이 사람이지.’
송진우가 들어오고 나서 길드 일이 놀라울 만큼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그를 영입한 한수정도 기대하지 못한 효과였다.
지잉~!
꿈처럼 흘러가던 연주가 어느덧 막을 내렸다.
다른 때라면 공연이 끝난 후 바로 박수갈채가 나왔을 것이다. 전에 했던 연주자들도 그랬다.
하지만 멍하니 공연을 감상하고 있던 사람들은 연주가 끝났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송진우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송하나의 완벽한 연주를 축하해주고 싶었다.
짝짝짝!
처음에는 송진우의 박수만 들렸다. 하지만 이내 박수 소리가 들불처럼 번졌다.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자신의 심경을 표출했다.
짝짝짝짝!!
“최고다!”
“저 학생 누구야?”
많은 관계자가 모인 곳에서 송하나는 당당히 자신의 가치를 보여줬다. 콩쿠르가 끝나면 그녀의 위상은 또 달라질 것이다.
“으흐흑!”
박수 소리가 잦아지지 않는 가운데 송진우는 눈물까지 흘렸지만 박수를 그치지 않았다.
결국 노혜미가 그를 제지하고 나서야 겨우 앉을 수 있었다.
모든 연주가 끝난 후, 송 씨 남매와 두 여성은 근처의 음식점에 가기로 하고 송하나를 기다렸다.
공연의 긴장 때문에 송하나는 아침을 거르다시피 적게 먹었고, 송진우는 아예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포식이도 밥을 보채는 일이 없었다.
다시 교복으로 갈아입은 송하나가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서 다가왔다.
“오빠!”
역시 오빠인 송진우부터 보이는 송하나다. 송진우를 감격스럽게 끌어안은 후에야 다른 두 여성이 보였다.
“언니들도 오셨군요.”
이미 길드 생활을 통해서 많이 친해진 그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혜미와 한수정 사이에서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먼저 한수정이 송하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축하해! 분명 본선에 진출할 거야.”
관객의 반응으로 봤을 때 송하나의 본선 진출은 거의 확실했다. 하지만 송하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결과가 나와 봐야 알아요.”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지. 네가 진출이 아니면 심사의원들이 모두 귀가 먹은 거겠지.”
“헤헤~ 언니가 준 바이올린 덕분이에요.”
한수정이 준 바이올린은 송하나의 보물 1호다. 관리가 완벽하게 된 이 바이올린은 돈을 주고서도 사기 힘든 명품이었다.
“이제야 주인을 만난 거지. 나한테 있을 때는 먼지만 먹던 것이니까.”
어렸을 때 항상 들고 다녔던 바이올린이지만 커서 검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이제라도 좋은 주인을 만났으니 한수정은 만족했다.
뒤이어 노혜미도 송하나를 축하해주고 넷은 근처 음식점으로 갔다. 대학교 근처라서 고급 음식점은 아니지만 맛집으로 유명한 분식집이었다.
송진우가 일단 한수정의 의향을 물었다.
“괜찮겠어요?”
재벌 집 딸이라서 이런 곳에 잘 안 왔을 것 같아 한 이야기였다.
한수정도 그 말뜻을 알아듣고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저도 친구들이랑 떡볶이 먹으러 다녔어요. 진우 씨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네요.”
“아~ 그래요?”
너무 드라마를 많이 봤나 보다. 송진우 머릿속의 한수정은 평생 스테이크 같은 호텔 요리만 먹고 사는 공주였다.
“제가 단무지를 가져올게요.”
송하나가 신나서 단무지를 가지러 갔다. 송하나가 멀어지자 노혜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목발은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야?”
송진우는 지금 목발을 짚고 소아마비를 연기 중이다.
“어…… 그게 실은 사정이 있어서.”
송진우도 자신의 다리가 완치되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동생에게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