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Usurper, Hunter Who Sees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6
운명찬탈자 미래를 보는 헌터 016화
16화
평소에는 깨끗한 집이 도저히 사람 사는 곳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이유는 모두 동생이 없어서다.
단순히 집을 나간 것이 아니다. 분명 운명에 휩쓸려 죽었거나 그에 준하는 불행을 겪고 있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래의 송진우가 그렇게 낙담하고 있을 리가 없다.
동생이 음악계에서 매장당하는 미래는 막았지만, 결국 또 파멸은 막지 못했다.
“한 주라도 아니, 하루라도 더 빨리…….”
환영을 보고 난 후에 송진우는 더 미친 듯이 작업에 몰두했다.
《LOG OUT》
* * *
며칠 후, 송진우는 다시 중앙 대륙의 탐험에 동참하기로 되었다. 당연하겠지만 이번에도 짐꾼으로서 가는 길이다.
총 25명의 헌터와 3명의 짐꾼으로 이루어진 파티다. 평범한 규모지만 이번에 팀을 이끄는 팀장이 특별했다.
“안녕하세요, 송진우 씨.”
“안녕하십니까.”
이번 팀을 이끄는 사람은 바로 한영 기업의 다섯 번째 자녀인 한수정이었다.
“잘 지내셨어요?”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빈말이 아니다. 물론 송진우가 끝까지 참아낸 덕도 있었지만, 어쨌든 한수정 덕분에 2억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헌터가 한낱 짐꾼에게 이렇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수정은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모든 짐꾼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특히 송진우에게 더 살갑게 굴었다.
오늘은 대단한 퀘스트를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다.
그냥 중앙 대륙을 탐험하면서 혹시 얻을 수도 있을 퀘스트를 구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사냥을 통한 레벨 업이 주목적이다.
원래 한수정급이 되면 전처럼 더 많은 헌터들을 대동하고 다녀야겠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팀을 꾸리려고 작정했다. 그래서 작은 규모로 시작하려는 것이다.
“그럼 출발합니다.”
그녀의 곁에는 전처럼 김 실장이라고 불리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길을 떠난 후에 김 실장은 한수정의 눈치를 보더니 헛기침을 하면서 송진우에게 다가왔다.
송진우가 왜 그러느냐는 듯이 쳐다보자, 김 실장은 다시 목을 가다듬더니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험! 험! 아가씨가 자네를 좋게 보는 모양이야. 이번 여정에도 특별히 자네가 함께하기를 원하시더라고.”
왠지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자신이 이 여행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한수정 덕분이었다.
여정에는 짐꾼이 필요한데 이왕이면 송진우였으면 좋겠다고 특별히 김 실장에게 주문했다.
“그렇습니까?”
송진우는 그 말을 듣고도 별생각이 없었는데 김 실장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송진우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이야기하는데…… 아가씨는 사람이 좋은 분이라서 그런 거니까 말이야.”
그 말에 송진우는 고개를 까닥하고 기울이며 되물었다.
“네?”
“그게 그러니까…… 크흠! 남녀 관계를 말하는 거네.”
그제야 송진우는 김 실장의 말을 알아듣고 어이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제 현실 모습을 보셨지 않습니까? 제가 오해할 리가 있겠습니까?”
냉정한 송진우의 말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김 실장이었다. 그는 송진우의 말을 듣고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이런 반응도 송진우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송진우가 자신의 장애를 말하면 반응은 몇 개로 나뉘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부류는 대개 성격도 비슷했다.
‘착한 사람이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고 선량한 사람이다. 그가 따라다니는 한수정처럼 이 김 실장이라는 사람도 선한 마음의 소유자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송진우는 더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아가씨가 모두에게 상냥하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오해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 그렇지?”
평생을 열등감에 찌들어 살았던 송진우다. 그저 평범한 여성과의 로맨스도 꿈꾸기 힘들었는데 한수정이라니…….
과분하다 못해 꿈도 못 꿀 사람이다.
송진우의 단호한 대답을 들은 김 실장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쓴 것을 삼킨 사람처럼 좋지 못했다.
부잣집 자녀와 가난한 집안의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삼류 드라마의 스토리 같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실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끌리는 경우가 지난 과거를 돌이켜 봐도 재벌가에 많이 일어났다.
한수정의 주위에는 온통 잘생기고, 집안 좋고, 머리 좋고, 능력 좋은 남자들로 가득했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집에 고급 요트 하나 없는 사람은 오히려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랬기에 송진우처럼 무언가를 얻거나 달성하기 위해 독기를 품고 지독하게 애를 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길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친딸처럼 길러온 아가씨다. 그녀가 남자에게 호감을 표한 것이 이번에 처음이라 더 불안했다.
그전에는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니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몸의 거동이 불편하고 한수정보다 왜소한 송진우다. 잘생기지도 언변이 좋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김 실장은 송진우에 대한 관심을 접으려 했지만 자꾸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출발합니다.”
김 실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수정은 평소처럼 팀을 지휘하며 앞으로 나섰다.
* *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한수정의 말이 떨어지자 헌터들이 한숨을 내쉬면서 주저앉았다. 중앙 대륙에서의 일은 언제나 고되고 위험하다.
오늘은 전처럼 큰 퀘스트는 없었지만 작은 퀘스트 3개 정도를 성공해서 나름 흡족한 여정이었다.
물론 송진우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파티가 얻는 경험치와 골드와는 별개로 짐꾼이 받는 보수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매고 있던 보따리를 건네주고 몸수색까지 마쳤을 때다.
다들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사이에 한수정이 송진우에게로 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그냥 짐만 들었을 뿐인데요.”
김 실장에게 말을 들은 후라 그런지 송진우는 사무적으로 한수정을 대했다.
왜 그가 자신에게 다가와 경고까지 했는지는 몰라도 조심하는 편이 좋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다치는 건 자신이다.
유난히 딱딱한 송진우의 태도에 잠시 멈칫한 한수정이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을 붙였다.
“짐꾼 생활은 힘들지 않으세요? 쉽지 않은 일인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괜찮습니다.”
“혹시 제가 도울 일이라도 있으면…….”
“괜찮습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뭔가 벽과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살면서 남자가 자신에게 이렇게 차갑게 반응한 적이 없었다.
그다음에도 몇 번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당황할 정도로 냉정한 반응이었다.
그 때문에 한수정은 실수로, 하지 않기로 한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 때문에 짐꾼 생활을 한다고 들었어요.”
갑자기 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송진우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빠르게 돌렸다.
전에 최강현의 일과 미래 예지 때문에 안 그래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 참이다. 그런데 아무 상관없는 한수정이 동생 이야기를 꺼내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송진우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한수정이 손사래를 치며 빠르게 말했다.
“아니, 아니 뒤를 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말이 들리기에…….”
사실은 그냥 소문만 들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시켜서 송진우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왜 그가 그토록 돈에 집착하는지에 대해 알고 더 호기심이 생겼다.
물론, 그 말은 송진우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무심코 나온 거다.
한수정이 당황해서 변명하는 것을 보고 송진우도 다시 안색을 고쳤다.
상대는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재벌가의 아가씨다. 설사 그녀가 최강현처럼 악질이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동생을 위해 위험한 짐꾼을 자처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한수정이 안다고 해서 새삼 놀랄 이야기는 아니다.
“괜찮습니다. 다 아는 사실이니까요.”
송진우가 다시 부드럽게 말하자 속으로 한숨을 쉰 한수정이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면서요? 진우 씨가 동생분 자랑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생 실력은 학교에서도 알아주거든요. 어려서부터 영재로 불리고 지금은 천재라고 불리죠.”
동생 자랑을 하기 시작하자 자신도 모르게 입에 미소가 걸리는 송진우다.
그래서 한수정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한수정이 일개 대원의 이름을, 그것도 짐꾼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도 예전에 바이올린을 연주했는데 어려워서 지금은 연주하지 않고 있어요.”
“그렇습니까?”
송진우는 놀랍다는 눈빛으로 한수정을 바라봤다.
물론 재벌가 아가씨가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건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당당한 여장부라고 생각했던 한수정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는 건 생각하기 힘들었다.
“매력 있는 악기지만 저와는 안 맞았던 같아요. 그보다는 검술 연습이 더 재미있었죠.”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잠깐, 그게 무슨 소리죠?”
송진우의 말에 한수정은 새침한 표정을 했고 그것을 본 송진우는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한수정이 따라서 웃고 둘의 분위기는 어느새 화기애애해졌다.
그러다가 한수정이 무심코 말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까 집에 있는 바이올린이 놀고 있는데…… 혹시 필요하시면 드릴까요?”
한수정 입장에서는 정말 별거 아닌 소리였다. 어차피 집에 구석에서 처박혀 있는 악기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송진우의 입장에서는 전혀 별것이 아닌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됩니까?”
송진우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한수정은 그저 태연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제 쓰지도 않는 물건인데요. 장차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투자하는 셈 치죠.”
그 소리를 듣자 송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한수정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어…….”
불시에 손을 잡힌 한수정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고 자신을 실책을 깨달은 송진우가 깜짝 놀라서 손을 뺐다.
“아…… 죄,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해서.”
“아, 아니에요. 그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어요.”
동생을 위해서 위험한 짐꾼까지 하는 것을 알았지만 이토록 좋아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송진우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욕 없는 동생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다른 것도 아닌 좋은 바이올린이다.
그동안은 평균 이하의 것을 사용했고 이제야 목돈을 얻어서 좋은 것을 사려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수정이 사용했던 바이올린이라면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명품일 거다.
아무리 중고라도 그렇다. 아니, 쓰던 바이올린이라도 잘만 길들이면 오히려 소리가 더 좋아진다.
그러니 송진우가 뛸 듯이 기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송진우가 기뻐하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한수정은 인심 쓴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전에 송진우 대원님이 한 것에 비해서 드린 것이 너무 없어서 그래요.”
재벌가 아가씨의 후한 제안이었지만 송진우는 이번에도 거절하려 했다. 바이올린을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더 이상의 호의는 오히려 자신에게 해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저…… 한영 길드에서는 중앙 대륙에 점거한 마을이 있죠?”
“마을이요? 그럼요. 저희 길드는 중앙 길드에만 마을 두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혹시…… 제가 거기서 일을 할 수 있게 도움 좀 주시겠습니까?”
마을의 모든 것은 점거한 길드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길드에서는 마을 내에서 일하는 상인이나 직원들에게 세금을 걷는데, 세금도 세금이지만 허가증을 얻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가게에서 일하는 것도 그렇다. 아무나 와서 일하면 통제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일부러 적절한 수에게만 허가증을 준다.
“네? 일이요? 무슨 일을 말하시는 거죠?”
“그냥 단순한 작업입니다. 도축이나 벌목 등의 일이죠.”
지금 송진우는 디멘션 월드에서만 생활 스킬의 레벨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하루에 고작 7시간밖에 접속할 수 없는 디멘션 월드니 스킬 업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낮에도 일을 할 수 있는 중앙 대륙에서 일하고자 하는 것이다.
송진우의 말을 들은 한수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아요. 금방 처리해 드릴게요.”
한수정의 말을 들은 송진우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이것으로 생활 스킬을 올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둘이 친해지는 모습을 뒤에서 보던 김 실장은 끙 하고 앓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둘을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