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Usurper, Hunter Who Sees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19
운명찬탈자 미래를 보는 헌터 219화
219화
심기태 의원은 서재에서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다.
한적한 시간 조용한 서재에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그가 가진 유일한 취미였다.
인기만큼 적이 많은 심기태라서 그의 집은 요새나 다름없고, 항상 뛰어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다.
그런 그의 집에 이방인이 침입했다.
“음?”
인기척을 느낀 심기태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검은 해골 가면을 쓰고 있는 검은 사신, 송진우가 유유히 서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보면 바지에 실소할 정도로 무서운 모습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심기태는 활짝 웃으며 반겼다.
“놀랍군! 능력이 있으니 금방 찾아낼 것으로 생각했지만, 고작 30분도 안 돼서 이곳에 올 줄은 생각 못 했어.”
그러고는 옆에 있는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낸 후에 물었다.
“선물로 받은 와인이네. 한잔할 텐가?”
“난, 일할 때는 술 안 마셔.”
이곳에 있는 것이 일이라고 표현했지만 심기태는 여전히 웃기만 했다.
“큭큭! 좋은 생각이군.”
심기태는 여유롭게 잔에 와인을 따르고는 음미하며 마셨다.
“하, 솔직히 난 비싼 와인하고 싼 와인은 구분하지 못하겠어. 내 입에는 그게 그거 같은데?”
한 병에 수천만 원이나 하는 와인이지만 심기태는 한 모금만 마시고는 흥미 없다는 듯이 옆으로 치웠다.
그 모습을 뻔히 보고만 있던 송진우가 입을 열었다.
“왜 김택현 기자를 납치하고 나를 불렀지?”
송진우가 마음만 먹으면 심기태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송진우는 대화를 원했다.
심기태는 다시 자리에 앉아 천천히 송진우의 모습을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납치라는 과격한 방식을 택한 것은 알려주기 위함이었네. 검은 사신을 쫓는 단체에서 김택현 기자와 자네의 관계를 짐작하고 있다는걸.”
송진우의 검은 사신 활동은 모두 김택현 기자가 알려준 정보로 하는 것이다.
최근 검은 사신을 쫓는 정부 기관에서 그 연관성을 파악했다.
“그자들이 아직 움직이지 않은 것은, 섣불리 움직여 일을 그르치기보다는 김택현 기자를 감시해서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함이지. 벌써 기자 집 주변에는 정부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어.”
“그래서? 위험을 알리자고 납치를 했다고? 더 점잖은 방법도 있을 텐데?”
“물론 그렇긴 하지만 이건 나도 비밀로 해야 하는 일이야. 나를 노리는 적들이 내가 검은 사신과 이야기했다는 것만 알아도 사정없이 물어뜯을 테니까.”
“좋아, 그렇다면 그것은 더 말하지 않겠다. 어차피 예상했던 바니까. 그래서 용건은?”
“큭큭! 나도 자네의 팬이야. 그리고 자네의 활동이 이 사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네. 그러니 도움을 주고 싶었네. 그리고 나도 도움을 받고,”
“도움?”
“그래, 도움. 좋은 단어지 않나?”
송진우가 계속 이야기하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거리자 심기태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지금 이 나라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실은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는 상태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과 같지. 그러니 그것을 바로 잡을 뛰어난 지도자가 필요해.”
“그게 당신이라는 건가?”
“나도 편하게 집에서 책이나 읽고 싶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 말고는 인재가 없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 국회의원 중에서도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자들이 없지는 않아 보였어.”
“물론 동의하네. 월드 스톰 이전이라면 이 심기태도 믿고 따르고 싶은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네. 하지만 시대가 변했어.”
그와 동시에 심기태는 뜬금없이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그곳에서는 긴급한 뉴스 속보가 방송되는 중이었다.
[강원도에서 일어난 화재가 다섯 시간 만에 잡혔습니다. 경찰은 이번 산불 사건을 화염 능력자의 보고 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박물관에 침입한 투명 마법 헌터가 가야 시대의 금관을 탈취해서…….]TV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디멘션 월드의 능력을 지닌 자들의 범죄가 쏟아졌다,
이것도 검은 사신 활동으로 많이 억제된 것이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가 된 경우도 많았다.
송진우가 묵묵히 TV를 보고 있으니 다시 심기태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난세야. 선함과 의기만을 가지고는 헤쳐 나갈 수 없는 진흙탕이지.”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건가?”
“기꺼이 진흙탕을 뒹굴면서도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지.”
자리에서 일어난 심기태는 송진우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빛나는 신념을 지닌 사람이 정치판에 물들어 욕망의 화신이 되는 것을 수없이 봤어. 권력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야. 악마의 열매처럼 달콤하지. 하지만 나만은 그런 유혹을 떨칠 수 있어.”
그의 눈은 20대 청춘처럼 꿈과 열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의 말이 진솔하다는 것은 통찰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를 도와주게, 검은 사신. 더 늦기 전에 이 사회를 정화해야 해.”
“내가 정확히 뭘 하기를 원하는 거지?”
“정치권 인사들의 더러운 짓거리가 담겨 있는 비밀 장부를 넘겨주겠네. 거기 있는 자들을 처단하고 장부를 언론에 퍼트려주게.”
“그들은 당신의 정적들이겠지?”
“그렇다네. 돌려 말하지 않겠네. 거기에 있는 자들만 죽으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자들은 없을 것이야.”
송진우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 심기태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당연히 보상은 충분히 하겠네. 그게 돈이든 권력이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마땅한 보상을 받는 거니까. 원한다면 자네를 위한 정부 부서도 만들어주지.”
최고 권력자가 되어서 주는 보상이니 모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약속을 지킨다면 검은 사신 활동도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송진우는 여전히 냉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거절하겠어.”
생각지도 못한 거절에 심기태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이유가 뭐지? 자네에게도 좋은 기회가 아닌가?”
다른 사람도 아닌 검은 사신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람 목숨을 거두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그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를 믿지 않는 건가?”
“그렇지는 않아. 최소한 지금 이 순간은 진실해 보였어.”
“그런데 왜?”
“당신이 아니라 당신 주변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
아무리 강력한 독재자라도 모든 권력을 오롯이 손에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 자신에게 제안한 것처럼 일정 부분은 나눠야만 할 것이다.
그런 사람까지 심기태와 같을 수 있을까?
아니다. 분명 그 부스러기 권력을 노리고 개미 떼처럼 모이는 자들이 생길 것이다.
그들은 국가를 안에서부터 썩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만이 거절의 전부는 아니다.
“당신이 권력을 쥐게 되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안전해지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도 있을 거야. 지금 당신이 한 말을 지키면 분명 그렇게 되겠지.”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 분명 그렇게 될 것이야.”
“그건 오직 당신이라는 한 사람의 힘에서 나온 것이야. 사람들이 스스로 싸워 쟁취한 것이 아니라.”
안타깝지만 세계정세는 점점 더 안 좋아질 것이다. 그건 노배 레스의 존재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더 큰 전쟁에 맞서 싸울 힘을 키워야 한다.
“당장은 행복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불의와 맞서 싸우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말 거야. 그냥 기다리기만 하겠지. 또 당신 같은 사람이 나오기만을 기대하면서 말이지. 그건 결국 더 큰 비극을 불러올 것이야.”
“하지만 그건 지금 검은 사신이 하는 일과 같지 않나?”
심기태의 말처럼 검은 사신도 악하고 부패한 자들을 심판하고 있다. 법이 아닌 방식으로 말이다.
“난 단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파동을 일으킬 뿐이야. 하지만 당신은 호숫물을 다 빼고 새로운 물로 채우려 하고 있어.”
“필요하다면 그리해야지!”
“모르겠어? 당신의 계획은 듣기에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변수가 너무 많고 불안전해. 당신이 어느 날 심장마비라도 걸려 쓰러지기라도 하면 이 나라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이야.”
송진우의 말에 심기태는 불편한 듯이 눈을 굴렸지만 반박하지는 못했다.
“…….”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먹이를 물어 입에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야. 그게 국회의원의 참된 자세지.”
송진우의 말에 크게 한숨을 쉰 심기태는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검은 사신이 이렇게 달변가일 줄은 몰랐군.”
그의 말에 송진우는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최근에 지혜 스탯이 많이 올랐거든.”
그 말에 심기태는 실소하고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건전한 생태계를 만들기에는 너무 늦었어. 그들이 국회까지 장악하려고 하고 있거든.”
“그들? 누굴 말하는 거지?”
그리고 심기태의 입에서는 가장 우려하던 단어가 나왔다.
“누구긴 누구야. 노배 레스지.”
설마 여기서 또 노배 레스에 대해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상한 힘과 거대한 자금력으로 국회의원까지 포섭하려고 하고 있어. 그 기류를 느낀 내가 손을 쓰려 했지만 가장 믿었던 동료까지 매수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침묵해야 했지.”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언제 등 뒤에서 칼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다가는 오히려 당할 것이 뻔했다.
심기태가 이런 방식으로 송진우를 부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송진우도 그냥 떠날 수는 없었다.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송진우도 다시 자세를 바꿨다.
“그러면 내게 주려던 명단에 있는 자들이 매수된 자들인가?”
“그건 나도 몰라. 그냥 노배 레스에게 매수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추린 거지.”
정확한 상황을 모르니 평소 국회의원의 책무보다는 재물과 권력에 관심이 더 많은 자들을 추렸다.
검은 사신이 움직이고 여론이 집중 조명하기 시작하면 노배 레스도 더는 움직이기 힘들 것이다.
“노배 레스가 스카우트한 혹은 할 자들을 모두 없앤다는 거군. 파격적이긴 하네.”
“국회의원이 노배 레스와 손을 잡는 것은 월드 스톰 전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최근 그들은 파격적인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지.”
“그래도 아직은 양지에 나오기는 힘들 텐데?”
“국회를 장악하면 다음에 여론을 잠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자신들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노배 레스에 대한 경계가 무너질 거야.”
“하~ 보통 일이 아니군.”
“나도 이렇게 일을 극단적으로 진행하고 싶지는 않았어. 하지만 때로는 극약처방이 필요할 때가 있지.”
골치가 아파진 송진우는 머리를 감싸며 고심했다. 그리고 믿을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기자님을 이리로 데려오지.”
* * *
김택현 기자는 밧줄 같은 것에 묶이지도 않고 비교적 안락한 방에 갇혀 있었다.
납치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을 어디론가로 데려가니 최악의 가정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끌려간 곳에는 뜻밖의 검은 사신과 현직 국회의원이 있었고, 그보다 더 황당한 얘기도 들었다.
“노배 레스가 국회에 손을 댔다고요?”
“그렇다네, 기자 양반.”
“그리고 포섭되었거나 포섭될 만한 자들을 몽땅 죽이겠다고요?”
“그게 최선이라 생각하네.”
심기태의 말을 들은 김택현 기자는 깊게 한숨을 푹 쉬더니 어처구니없다는 어투로 말했다.
“아니, 의원님.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이 무지하고 무도한 인간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 죄송합니다, 검은 사신님. 하여간.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동료 의원들을 싹 죽일 생각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