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Usurper, Hunter Who Sees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79
운명찬탈자 미래를 보는 헌터 279화
279화
그건 허선 모습의 고스트였다.
찾으려던 인물을 예상한 것보다 빨리 만났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허선의 원망
◆허선의 분노
◆허선의 체념
…….
“뭔 허선 시리즈냐?”
비슷한 얼굴이지만 표정만 조금 다 허선들이 나타났다. 모두 엘리트 등급이었고 1,050레벨이었다.
“뭔 레벨이 이렇게 높아?”
보스인 법해보다도 레벨이 무려 100이나 높다.
“빨리 끝낸다. 지원 부탁해.”
[알겠습니다.]“준비 완료했습니다.”
허선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 패턴을 알 수는 없지만 한곳에 뭉치기 전에 각개격파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먼저 다가가 낫을 휘둘렀는데…….
스르륵!
손에 아무 느낌 없이 그대로 통과했다.
아무리 고스트 타입이지만, 공허의 기운을 둘렀으면 최소한 몸이 흩어지기는 했어야 한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공격을 통과한 허선은 그대로 다가와 송진우에게 들러붙었다. 그러자 마치 자신의 일처럼 허선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잘못이야. 아내를 끝까지 믿었어야 했어.]백소정이 요괴라는 것을 알고 법해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한 이별을 불러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싶어.] [소정이에게 사과해야 해.]‘물리 공격이 아냐!’
송진우와 스친 허선의 기억 조각은 그대로 사라졌다.
이렇게 사라져도 물리친 것으로 판정 나서 경험치까지 획득했지만, 송진우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심장이, 감정이 마모될 것 같아.’
차라리 베해모스처럼 강력한 몬스터였다면 웃으며 상대했을 것이다.
1,050 레벨 몬스터라 해도 전에 만난 노배 레스 기사단에 비하면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정신 공격이 들어올 줄을 상상도 못 했다.
때로는 가슴이 찢어지게 슬프고, 때로는 사무치게 그립고,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까지.
다양하면서도 농도 짙은 감정이 송진우의 정신을 잠시도 가만 놔두지 않고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워! 너무 보고 싶어.] [승려들이 날 속였어!] [다 죽여 버리겠다!] [난 죽어 마땅해.]백소정은 그 자리에 앉아 오열하고 있고, 그레이프 역시 송진우와 심령이 연결되었기 때문인지 견디지 못하고 송진우의 그림자로 들어갔다.
“으윽!”
마침내 송진우는 무릎까지 꿇고 괴로워했다.
만약 이 감정의 파도를 이겨내지 못하면 백치가 되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몸이 될 수도 있다.
모두 움츠러들었지만 오직 레이만이 고요했다.
그녀는 담담히 밀려오는 기억들을 분석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들을 알 수 없습니다.”
레이는 비록 기계지만 작게나마 감정표현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프로그램의 일환일 뿐이다.
레이 역시 허선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그뿐이다. 이토록 격양한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절망이라는 감정입니까? 제 감정 회로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레이는 주저앉은 송진우와 백소정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송진우는 자신이 아는 자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 그가 고작 감정을 이겨내지 못해 주춤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생명체는 왜 이런 과도한 감정을 느끼는 것인가요? 불필요한 일입니다.”
예전 한 연구소에서 쥐의 뇌를 일부분을 잘라 공포를 못 느끼게 만드는 실험을 했었다.
공포가 사라진 쥐는 고양이 무서운 줄 모르고 오히려 공격하기도 했다.
고양이도 처음에는 자신을 공격한 쥐를 보고 당황해했지만, 결국 제압하고 잡아먹었다.
쥐에게 있어서 고양이에 대한 공포는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용감해진 쥐는 가장 손쉬운 사냥감이 되었다.
이처럼 두려움, 공포, 질시, 슬픔, 분노 등의 마이너스한 감정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을 두렵고 알려지지 않은 것에서 보호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감정의 선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오히려 사람을 주저앉게 만든다.
그게 절망과 좌절이다.
“이제는 인간이 많은 가능성을 가진 생명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찰나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주어진 것을 놓는 건가요?”
기계인 자신은 어쩌면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시련일까요?”
먹이 사슬의 최강자로 군림한 인간에게는 천적이 없다. 의학도 매년 빠른 속도로 발달하여 질병으로 죽는 숫자도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즉, 개체를 조절할 효율적인 수단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적이 없으니 대신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건가요?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도태하는 건가요? 생명체들이 가진 영혼이라는 것은 그토록 나약한 건가요?”
만약 인간의 의지가, 영혼이 그런 것이라면 어쩌면 연구할 가치도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은 감정 따위는 숫자에 불과한 기계가 옳은 것일 수도…….
그때 백소정이 일어나 앞으로 달려 나갔다.
“상공!”
아직 송진우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윽! 기다려!”
송진우는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과 터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섰다.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송진우도 결국 이겨낸 것이다.
“제길!”
백소정을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비틀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방금까지 위기의 순간이었던 것을 잊은 듯한 걸음이다. 그건 돌발 퀘스트의 보상을 위한 탐욕이 시킨 것이 아니었다.
“위험해요! 돌아오세요!”
송진우는 진심으로 백소정을 걱정하고 있었다.
방금 만났던 사람, 심지어 현실의 인물이 아닌 퀘스트의 NPC에 불과한 인물을 말이다.
레이는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드러난 공동에서는 죽은 듯이 쓰러진 백소정 뒤로 말라비틀어진 허선의 미라가 보였다.
뜻밖에도 그건 단순한 사체가 아니었다.
형체는 사체와 다름없지만 눈에서는 아직 강력한 안광이 나오고, 주위에서는 강력한 요기가 용솟음쳤다.
요괴가 된 것이다.
◆허선
(???)
이번에도 허선은 송진우에게 강력한 사념을 남겼다.
이번에 허선이 준 기억은 백소정이 뇌봉탑에 갇힌 후의 자세한 내용이었다.
백소정이 갇히고 허선은 매일 뇌봉사에 찾아가 아내를 돌려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승려들은 요괴를 절대 인간 사회에 내보낼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허선은 뇌봉사의 승려에 비하면 너무나도 약한 평범한 서생에 불과했다.
당시 승려들의 권력, 특히 그들이 요괴와 싸울 수 있는 도력 높은 승려인 것을 생각하면 그 어떤 인맥을 동원해도 저들과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수없이 계절이 바꿀 동안 찾아가 용서를 구했지만, 승려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 해, 두 해…… 십 년이 지나고 또 십 년이 지났다.
하늘이 감동할 만한 정성이었지만 여전히 백소정은 풀려나지 않았다.
하지만 허선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가진 재산도 모두 사라지고 건강마저 잃어 가죽이 뼈에 달라붙었지만 그는 여전히 간청했다.
그렇게 다시 십 년이 지날 무렵, 허선은 마침내 병들고 지쳐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허선은 죽어서도 강한 집념을 버리지 못했다.
그 강력한 집념과 한이 섞여 결국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허선이 요괴가 된 것이다.
요괴가 된 허선은 바로 뇌봉사를 쳐들어가 공격했다.
수십 년 묵은 허선의 원망은 강력했지만, 뇌봉사 승려들의 저항도 거셌다.
뭐가 그리 두려웠는지 자신들마저 탑에 가두면서까지 백소정이 세상에 나가는 걸 끝내 막아낸 것이다.
수십 년간 쌓아 온 허선의 요기도 이 봉인을 뚫어낼 수 없었다.
요괴가 되면서까지 백소정을 구하고자 했던 허선은 결국 좌절했다. 그러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아내의 종족인 백사족을 생각한 것이다.
[지금 백사족은 너무 위험해.]백사족은 아이를 얻기 위한 최선의 조건으로 진화했다.
아름다운 외모, 품성, 뛰어난 요리 실력까지…….
원래 모습은 뱀이기에 백사족이 인간 남성 따위를 사랑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아이가 무사히 크면 이제까지 깍듯이 모셨던 남편과 그의 가족까지 잡아먹기도 했다.
백사족은 점점 효율적으로 진화했다.
인간을 알면 알수록, 닮으면 닮을수록 인간 남성을 꾀는 것은 쉬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자 백사족은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문화를 배우고 동화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고 그것을 동경했다.
그러니 인간 사회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졌고, 그 때문에 정체를 들키는 경우가 늘었다.
심지어 들켰음에도 남편을 떠나지 않다가 붙잡혀 죽는 경우도 늘었다.
허선은 그것이 가여워 모든 힘을 백사족을 위해 사용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요마연’이다.
인간 남성이 없어도 종족 보존을 이어갈 수 있는 신비한 연못.
그것은 요괴가 된 허선의 바람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드드드드!!
허선의 기억은 송진우의 감정을 흘러넘치다 못해 폭발하게 만들었다.
“컥!”
송진우도 송진우지만 백소정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지금 허선의 몸에서 일어나 요동치는 요기는 약해진 백소정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그것을 파악한 송진우가 겨우 감정을 진정시키며 소리쳤다.
“허선! 정신 차려! 백소정이 왔다! 네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아내가 왔다고!”
하지만 송진우의 외침은 허선에게 닿지 않았다.
수백 년이 지나 요괴로서의 삶도 끝이 다가왔기에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요마연이 고장 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제 허선이 영영 소멸할 때가 되었기에 그가 내렸던 기적도 같이 사라지려는 것이다.
“이 멍청한!!”
송진우는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와 맞서 힘겨운 걸음을 내디뎠다.
지금 허선이 내보내는 감정은 절망과 좌절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전혀 반대인 감정이다.
“결국은 사랑이잖아!”
이것은 허선의 사랑이다.
너무 큰 사랑 때문에 절망도 얻고 좌절도 얻었다. 그렇기에 백사족의 사랑을 원천부터 봉쇄하였다.
요마연이 생겼기에 백사족은 더는 인간 사회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영영 남녀 간의 사랑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사랑을 잃은 백사족은 예전보다 안전할 수는 있었으나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냥 요마연을 지키며 하루 이틀을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결국 허선의 보호는 오히려 그녀들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이 감정만큼은 레이조차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감정회로가 과부하 되었습니다. 폭주할 위험률 120%.”
인간의 감정을 무시하던 레이도 사랑만큼은 버틸 수 없었는지 활동을 멈추었다.
결국 움직일 수 있는 이는 송진우 한 명밖에 없다.
으드득!
처절한 사랑이 송진우의 심장을 난도질하고 있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허선의 감정에 완전히 휩쓸릴 판이다.
절대악과도 맞섰지만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이런 무시무시한 형태로 맞이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포식이가 정신없이 사방의 에너지를 빨아먹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밀려오는 에너지는 점점 더 커졌다.
“정신 차려! 백소정을 이대로 죽일 생각이야?”
아무리 송진우가 외쳐도 허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감정 없는 괴물이 되었는가?’
이미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매개체인 육신을 분해해서 저 감정의 근원을 없애는 편이 좋을 거다.
‘조금만 더.’
앞으로 몇 발자국만 더 앞으로 가면 혈마장의 힘이 닿는 지점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목표한 지점에 도달했을 때였다.
“상공.”
언제 일어섰는지 백소정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위험해!”
지금 허선은 바람 빠지는 풍선과 같은 상태다. 무너지는 육체 때문에 유형화된 요기가 사방팔방으로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