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Usurper, Hunter Who Sees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87
운명찬탈자 미래를 보는 헌터 287화
287화
한두 개 정도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수천 개가 넘어 보였다.
“뭐, 뭐가 이렇게 많아?”
소용돌이가 주변 인물에 비례해서 생긴 것이다.
“도망쳐!”
드루이드는 자연을 조종할 수 있는데, 주변에 있는 자연은 호수만이 아니었다.
드루이드가 다시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근처에 있던 나무와 풀이 갑자기 움직이더니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붙잡았다.
“히익! 발이, 발이 안 빠져!”
“조심해! 나무가 공격한다!”
숫자가 많아서 좁은 산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끼리 부딪치고 넘어지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밟혀서 일어날 수 없는 경우도 상당했다.
“크아악! 살려줘!”
그들이 원한 대로 수분은 마음껏 보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혹독했다.
호수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는 많으면 많을수록, 뭉치면 뭉칠수록 강해지는 성격이었다.
그런 것이 무려 수천 개가 모였다. 송진우가 저곳에 있었다고 해도 부리나케 도망쳐야 했을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이번 소용돌이로 무려 만 명에 가까운 인명이 죽었다.
부상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아니, 상처를 입지 않은 자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커어억!”
이번 공격은 비토리오의 호위병도 막아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운 좋게도 비토리오는 죽지는 않았지만, 죽음의 위기를 느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사제들이 긴급히 치료하긴 했지만 공포는 지워지지 않았다.
“이, 이럴 수가.”
3만 명이 넘는 숫자가 출발했는데 어느새 전투를 할 수 있는 인원수는 만 명도 되지 않았다.
이제는 도시에 도착한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가야할 길도 아직 많이 남았고, 식량과 물은 바닥이 난 상태였다.
다른 신도들이 죽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지금 사고로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가 애타는 눈빛으로 비토리오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정신이 없다고 해도 그 눈빛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결국 비토리오도 비통한 얼굴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신께서 거부하신 원정이다. 이대로 돌아가겠다.”
결국 룩스 교단의 병력은 네크로폴리스 도시,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해산해야 했다.
* * *
일단 기지를 발휘해 급한 불은 껐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거대 교단이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시 신도를 모아 쳐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프는 모든 능력을 룩스 교단을 감시하는 것에 쏟아야 했다.
며칠간의 조사 끝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생각한 것보다 룩스 교단의 내부 알력이 심각합니다.]“좀 더 자세하게 말해봐.”
[이번 피해는 룩스 교단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피해가 컸습니다.]만 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이 날아간 일이다. 웬만한 대형 재해가 도시 중심을 덮쳐야 이 정도 피해가 생긴다.
[룩스 교단의 현 교황은 나이가 너무 많아 곧 새 교황을 추대해야 합니다. 그 자리를 두고 현재 두 명의 추기경이 경쟁하고 있는데 비토리오는 그중 한쪽의 세력에 포함되어 있습니다.]“그럼 다른 세력이 이 실패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겠네.”
[그렇습니다. 이미 비토리오와 그가 섬기는 추기경의 실패와 무능함에 대해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라면 훨씬 쉽고 빠르게 네크로폴리스를 점령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그러면 위험한 거 아니야? 이번에는 저쪽에서 공격해올 텐데?”
[오히려 이번에는 비토리오 대주교가 이 공격은 신의 뜻이 아니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정쟁이 끝날 때까지는 쳐들어올 일은 없을 겁니다.]비토리오 쪽 입장에서는, 네크로폴리스 공격이 신의 뜻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만이 자신들의 실패를 무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만약 상대측이 자신들이 실패한 원정에 성공하면 신의 뜻이 아니라고 한 자신들의 말이 거짓이 되는 셈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 했다.
“그럼 일단은 안심해도 된다는 소리지?”
[최소한 지금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의 유용성을 알았으니 언젠가 다시 쳐들어올 위험은 남아 있습니다.]“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자. 지금 쌓여 있는 현황만으로도 골치가 아프니까.”
[그럼 계속 예의 주시하고 있겠습니다.]그레이프와의 짧은 대회가 끝난 후에야 송진우는 밖에 대기하고 있던 하녀에게 신호를 보냈다.
하녀가 공손히 인사를 하고 사라지고 잠시 후, 문을 정중히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들어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정중하게 인사한 것은 뒷골목을 지배하던 오크 종족의 소년, 레오였다.
“앉아.”
송진우의 말에 레오는 예의를 갖추고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어쩐지 허탈한 표정인 그에게 송진우가 말을 꺼냈다.
“그래, 왜 날 보자고 했지.”
송진우의 물음에 깊은 한숨을 내쉰 레오는 대답 대신 긴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저희 메디치 가문은 이탈리아에서 유서 있는 가문입니다. 대대로 선조님들은 정직과 신의, 그리고 용기를 강조하셨죠. 그 가르침을 지키려 노력했기 때문에 몇몇 작은 잘못을 저지르곤 했으나 부정한 일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메디치 가문이 송진우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해진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큰 부를 쌓거나 강한 무력을 내세우기보다는 정직하게 부를 축적하고, 힘으로 약자를 돕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저희 아버님은 그 누구보다 정의롭고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부패한 룩스 교단이 백성들을 유린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으셨죠.”
이탈리아에서 점차 세력을 확대한 룩스 교단은 메디치 가문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그 비옥한 땅과 오랜 세월 쌓아 올린 부를 탐내며 기부를 강요했다.
메디치 가문의 무력도 절대 낮은 것이 아니었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서 대항했으면 룩스 교단이라도 쉽게 넘볼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아버님은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주민들에게 배반당해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종교에 무서움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영토에 살던 룩스 교단 신도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가문을 배반했다.
그들 중에는 가문에 충성하던 기사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메디치 백작과 5남 3녀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막내였던 레오 혼자다.
그를 수행했던 기사 30명과 겨우 목숨만 부지한 것이 고작이었다.
“겨우 중앙 대륙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아직 저희를 쫓는 교단 때문에 돌아갈 수는 없었죠.”
중앙 대륙에서 현실로 돌아가면 꼭 들어왔던 포탈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그곳은 룩스 교단의 추격자들이 지키고 있었으니, 현실로 돌아가는 것은 나 잡아 달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오크로 환생까지 하며 정체를 숨기고, 중앙 대륙에서 살았던 것이다.
레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진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복수를 하려던 건가?”
“그렇습니다. 이 남은 인원으로는 절대 가문을 되찾을 수 없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저들에게 크게 한 방 먹여주고 작열이 최후를 맞이하려 했죠. 그런데…….”
레오가 복잡한 심경으로 송진우를 보며 말했다.
“포식귀 님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을 한 겁니다.”
룩스 교단이 수많은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심 이 도시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무려 3만 명이다.
아무리 포식귀가 뛰어난 랭커라고 해도 절대적인 숫자의 차이는 막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송진우가 완벽하게 도시를 방어한 것이다.
룩스 교단은 만 명이 넘는 피해를 보았지만, 공허 교단에서는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더 놀란 것은 룩스 교단에서는 자신들이 계략에 당했다는 것조차도 모른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미래 예지를 통해서 적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기상천외한 함정을 파고 적들을 차례로 무너트렸다.
한 치의 오차라도 있었으면 이뤄낼 수 없는 기적적인 승리다.
물론 이런 것을 말해 줄 수 없었기에 송진우는 대충 얼버무렸다.
“뭐, 운이 좋았던 거지.”
하지만 레오는 그 말에서 희망을 얻은 듯했다.
“제가… 저도 포식귀 님 같은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영지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형식은 질문이지만 눈에는 처절할 정도의 간절함이 들어 있었다.
송진우는 그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가능하다.”
이건 듣기 좋으라고 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절름발이에 비루한 짐꾼이었던 자신도 이처럼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송진우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단지 행운에 행운이 겹쳐 지금에까지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능했던 일을 아직 장례가 창창한 레오가 못 할 리 없다.
“물론 쉽지는 않지. 나도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수십 번도 더 넘게 겪었으니까.”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영지를 되찾고 아버님과 형님, 누님의 원혼을 달래줄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능할 수 있지.”
그 말에 굳게 결심한 레오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심장 부분에 가져다 댔다.
쿵!!!
무릎이 바닥과 부딪치는 소리가 성 전체를 진동시켰다. 밖에서 기다리던 병사가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웅성거렸을 정도다.
송진우는 그 모습을 보고도 차분히 물었다.
“이게 무슨 의미지?”
“저희를 거두어 주십시오, 포식귀 님.”
송진우가 말없이 보고만 있자, 조급해진 레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다시는 입에 올리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그 단어를 말입니다!”
레오의 외침은 피눈물보다 더 짙고 간절했다.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라고 해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뛰어들 기세였다.
하지만 송진우는 여전히 냉정했다.
“그럼 내가 룩스 교단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라고 해도 그러하겠나?”
송진우의 말에 레오는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것처럼 주저했다.
“그, 그건…….”
“곤란하겠지. 나도 그래. 아무리 너희가 뛰어난 기사라고 해도 원한에 사로잡힌 자를 영지에 둘 수 없어.”
통제되지 않는 병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궁극적인 목적이 다르다면 언제든지 등에 칼을 찌를 수도 있다.
물론 기사도로 똘똘 뭉친 이들이 배신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너희끼리라면 칼을 물고 적진에 뛰어 들어가도 상관없어. 하지만 내 길드에 들어오려면 무조건 내 말에 따라야 해. 그러니 묻겠다. 너는 네 복수를 포기할 수 있겠냐?”
그 말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레오는 힘겹게 말을 뱉었다.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돌려 말할 수 있을 텐데 너무 정직하게 한 대답에 송진우는 피식하고 웃었다.
하지만 귀엽다고 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진짜 포기하라는 말이 아냐. 그러면 우리 길드에 들어올 이유도 없을 테니.”
그 말에 레오는 의아하다는 눈으로 송진우를 봤다.
“나는 꼭 이뤄야 하는 목표가 있다. 이건 나 자신을 위한 일일뿐 아니라, 인류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
동생을 위해서 노배 레스의 야욕을 저지하는 것. 이것이 현재 송진우가 이뤄야 할 목표다.
뭔가 거창하게 포장했지만 레오는 그 말에 감명받은 듯했다.
자신은 가문의 복수에 얽매이는 데 송진우는 인류를 위해 힘쓰고 있다니…….
그 표정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송진우는 안면에 철판을 깔고 계속 이야기했다.
“복수를 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겠지. 거대 교단과 싸워 이기길 원한다면 나와 내 길드가 울타리 정도는 되어줄 수 있다. 내 목표가 달성되거나 그렇지 않아도 좋은 기회가 있다면 도와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송진우는 목소리를 높여서 강조했다.
“복수에 눈이 멀어 따로 행동하거나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판단하면 룩스 교단이 아니라 내 낫이 먼저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어느새 빼든 송진우의 거대 낫이 레오의 눈앞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