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Usurper, Hunter Who Sees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92
운명찬탈자 미래를 보는 헌터 292화
292화
그날부터 송진우의 지위는 쟁자수에서 막내 아가씨가 아끼시는 쟁자수로 격상되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은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매일 연오란이 찾아오자 조금씩 신경 쓰는 눈치였다.
저러다가 만에 하나라도 진짜 둘이 맺어지면 자신의 상관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송진우에게는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간섭하지 않으니 편하게 움직일 수 있어 좋았다.
연오란과 접촉해서 뜻밖의 퀘스트를 얻긴 했지만, 송진우의 최우선 목표는 어디까지나 마지막 구극혈공서를 얻는 일이다.
‘지금은 혈교에만 집중하자.’
오늘은 큰 의뢰를 맡아서 국주인 연정권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송진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따리를 등에 지고 마차의 뒤를 따랐다.
종일 걷는 쟁자수 일은 지루하고 힘든 행군이었지만, 송진우는 이런 일이 익숙했다.
‘예전 생각나네.’
이러고 있으니 과거 짐꾼이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가득 짐을 가지고 헌터들을 따라다녔다.
오히려 지금이 더 편했다.
그때는 위험한 사냥이 끝나면 쉴 시간도 없이 아이템을 주워 담고 도축 작업을 해야 했으니.
최소한 지금은 쉴 시간에는 같이 쉬지 않는가?
만약 전투가 일어난대도 쟁자수는 구석에 숨어 있으면 된다.
표행에서 가장 위험할 때는 역시나 산길을 지나야 할 때다.
대부분의 습격자들은 인적이 없는 산길을 선호한다.
산의 중간쯤 왔을 때, 역시나 누군가 나타났다. 그들은 흉악한 인상의 산적 떼였다.
“어이! 그냥 지나가시게?”
이들은 삼검채의 산적으로 녹림은 아니지만, 제법 규모가 큰 산채에서 온 자들이다. 무공도 제법 뛰어나다는 평이다.
산적들이 주위를 순식간에 둘러쌌지만 일행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더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통행세를 지불해야지.”
거친 인상의 산적이 칼로 위협하자, 연정권이 앞으로 나서 정중히 포권하며 말했다.
“반갑소. 나 연정권이 삼검채의 호걸들에게 인사드리겠소.”
연정권을 알아본 산적 대장이 조금은 말투를 누그러트렸다.
“국주께서 어찌 친히 행차하셨소?”
“허허! 요즘 시국이 어수선한데 내 어찌 수하들에게만 일을 맡기겠소?”
그렇게 말하면 연정권은 준비했던 돈주머니를 그에게 건넸다.
“후하게 넣었으니 부족하지는 않을 거요.”
돈주머니의 묵직한 무게를 느끼고는 산적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하! 역시 국주께서는 호탕하시군. 무사히 표행을 마치시길 바라겠소.”
산적과 표국은 어찌 보면 공생 관계다.
표국이 있어야 산적들은 돈을 벌고, 산적들이 있어야 표국은 그들을 무서워하는 의뢰인들을 얻는다.
그러니 대부분의 만남은 이렇게 하하 호호 웃으면서 끝났다.
무사히 산을 거의 지날 무렵, 지친 표국 인원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뭐, 뭐야? 아가씨?”
표물을 실은 마차를 확인하던 도중 예상치도 못한 표물을 발견한 것이다.
“거기 무슨 일이냐?”
연정권이 직접 확인하러 갔다가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오란이? 네가 왜 이곳에 있는 거냐?”
놀랍게도 연오란이 표물 사이에 숨어들어 있었다.
다른 자식들, 딸도 나이를 먹고 무공을 익히면 표행에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오란은 무공을 익힌 적도 없고 표행에 참가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국주가 직접 참여한 표행이라도 언제 어디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 위험한 행사에 화초처럼 자란 연오란이 따라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연오란의 행동이 연정권으로 하여금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연정권의 말에 아무 대꾸도 없던 그녀가 몸을 돌려 어디론가 종종종 이동하더니…….
“아.”
매미처럼 송진우의 옆에 착 붙은 것이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금이야 옥이야 막내딸을 길렀던 연정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허허!”
딸자식 키워 봤자 아무 소용없다지만, 막내딸이 남자 한 명을 위해서 이런 짓까지 벌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다른 이들은 모른 척 고개를 숙였고, 아마에 핏줄이 울퉁불퉁하게 선 연정권이 이를 악물며 송진우를 불렀다.
“자네…… 나 좀 보지.”
“아, 네.”
진심으로 그 어떤 악마보다 더 무서웠다.
국주를 위해 마련된 탁자에서 연정권은 속이 타는지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미심쩍은 눈빛으로 송진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 혹시 우리 딸아이가 이곳에 숨어들어 온 걸 알고 있었나?”
“맹세코 몰랐습니다.”
“그래? 도와준 게 아니고?”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뭔가 예비 장인과 상견례 하는 기분이었다.
연정권은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이마에 주름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체념했다.
갑자기 10년은 더 늙은 모습이다.
“그래. 나이는 몇인가?”
“네? 스, 스물다섯입니다.”
“양친은 다 살아계시고?”
“아뇨.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는 호구 조사까지 하고 있었다.
‘이 양반 설마?’
송진우의 불안은 점점 사실화 되어 갔다.
연정권은 어차피 실어증 걸린 딸을 평생 끼고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차라리 쟁자수를 데릴사위로 삼으면 딸을 평생 혼자 살지 않게 해도 되지 않겠는가?
‘오란이만 좋다면야…….’
얼굴 번지르르 한 것 빼면 뛰어난 구석은 어디에도 없지만 사지가 멀쩡하니 쓸 곳은 많을 것이다.
“쟁자수 일은 그만두고 내일부터 표사들과 같이 훈련하게.”
쟁자수에서 하루아침에 표사가 되었다.
파격적인 인사까지는 아니지만, 목적을 생각하면 이제 누구도 송진우를 쉽게 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잠입을 위해 쟁자수가 되었던 송진우에게는 난감한 제안이었다.
‘그렇다고 거절하면 단숨에 쫓겨날 거 같고.’
이럴 때 미래 예지라도 발동해서 옳은 선택지를 알고 싶은 순간이다.
그때 변고가 일어났다.
놀랍게도 변고를 가장 먼저 알아낸 것은 무표정하던 연오란이었다.
“아!”
그녀는 갑자기 두려움에 떨며 송진우의 팔을 잡았다.
“왜 그래요?”
이상함을 느낀 송진우가 반문했을 때 갑자기 뭔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슛슛슛슛!
그건 화살촉을 거멓게 칠한 화살비였다.
“으악!!”
휴식을 취하던 일행은 급습에 큰 피해를 보아야 했다.
“습격이다!!”
“모두 진형을 갖춰라!”
평소 훈련이 잘되어 있어 날아온 화살에는 능숙하게 대비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와 전투 불능이 된 자들도 많았다.
기습에 분노한 연정권이 검을 뽑았다.
“어떤 놈이냐?”
연정권은 절정 초입으로 이 지방에서는 이름난 무인이기도 하다.
날아오는 화살을 검으로 쳐내고 송진우에게 소리쳤다.
“오란이를 데리고 마차 안에 들어가 있게!”
이런 상황에서 딸을 보호하면서 싸울 수 없다. 차라리 숨겨두고 자신을 따로 움직이는 것이 낫다.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아직도 화살비가 쏟아지는 곳으로 뛰었다.
“이놈들!”
연정권이 앞으로 나가 화살을 쳐내자 더 이상 다치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그가 시간을 번 사이에 다른 표두와 표사도 혼란을 잠재우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화살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쏟아지던 화살비는 그쳤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작은 표국치고는 제법이군.”
숲에서 거친 기운을 뿜어내는 자들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숫자는 약 20명 정도로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개개인이 표사들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그중에는 유명한 인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암명편귀. 하북삼견…… 너희가 여긴 무슨 일이냐?”
그들은 강호에서 악명 높은 사파 고수들이었다.
분명 큰 사고를 저질러 현상금이 붙고 쫓긴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본래는 뭉쳐서 행동할 리 없는 자들이 같이 나타난 것이 우연일 리 없다.
“설마…… 너희 흑도 연합에 가입한 거냐?”
참회동의 마두들이 만들었다는 흑도 연합에 정파 무인들에게 쫓기던 상종 못 할 종자들이 들어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여기에는 무슨 일이냐?”
그 말에 철편을 들고 있는 암명편귀가 대답했다.
“맹에 가입하면 일정한 금액을 내야 하거든. 그 금액을 너희 표국에서 좀 대줘야겠다.”
저런 놈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었지만, 표국 식구들을 위해 연정권이 마지못해 물었다.
“얼마를 원하는가?”
이런 습격을 했으니 연정권도 얼마간의 피해는 감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이상을 원했다.
“전부 다! 짐만 곱게 놔두고 가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개자식들!! 처음부터 살려둘 생각은 없었구나!”
연정권이 분기를 참지 못하자 그들을 콧방귀를 뀌며 무기를 들었다.
흑도 연합이 세를 급격히 불리기 위해서 많은 자금을 모으고 있다는 말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흑도라고 해도 무인들의 모임이고 자존심은 있다.
표물을 탈취하는 것은 도적 떼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존심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모두 죽여!”
이들을 이끄는 암명편귀의 명령에 살기가 가득한 적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차자장!!
두 진영이 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숫자는 표사들이 훨씬 많았지만, 역시 몰아붙이는 자들은 사파 고수 쪽이었다.
“으악!”
칼에 맞고 쓰러지는 자는 대다수가 표사들이었다.
그 안에서 연정권이 분전하기는 했지만, 사방에서 몰아치는 적들을 홀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모습을 암명편귀가 느긋하게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음?!”
일방적으로 학살해야 하는 싸움인데 속도가 생각했던 것만큼 빠르지 않았다.
게다가 표사들이 위급한 순간에 꼭 사파 무인들이 휘청거리며 빈틈을 보였다.
암명편귀가 눈살을 찌푸리고 자세히 봤을 때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암경?”
어디에선가 무형의 기운이 날아가 표사들를 지원하고 있었다. 자신조차 깜빡 속을 정도로 상승 수법이었다.
“웬 놈이냐!!”
암명편귀가 철편을 휘둘러 마차를 공격하자 그 안에서 누군가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바로 송진우였다.
‘쳇! 역시 안 통하나?’
처음 송진우는 혈마장을 통해서 조용히 지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단순하게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전황을 뒤집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욕심을 내 힘을 실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암명편귀에게 딱 걸린 것이다.
“대원표국에 너 같은 자가 있었냐?”
약해진 송진우도 절정 무사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암명편귀는 혈마장을 보고도 그 경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주화입마 전이었다면 깽 소리도 못 내고 낫에 두 조각으로 나누어졌을 것이다.
‘난감하네.’
송진우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구극혈마공이 전부다.
하지만 일정 이상, 정확히는 반 이상의 힘을 끌어올리면, 마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렇게 되면 표국을 구해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반 이하의 힘을 사용해도 몇 초만 있으면 벌레들이 내장을 파먹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니 최대한 짧게 싸우는 것이 좋은데 상대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암명편귀
(엘리트)
(LV 825)
가장 레벨이 높은 암명편귀는 825레벨이고 하북삼견이라는 자들도 700대 후반이다.
쉽지 않은 상대이지만, 그렇다고 표국이 몰살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할 수 없지. 되는대로 하는 수밖에.’
송진우는 며칠 연구하다가 이 상태에서 최대한의 힘을 낼 방법을 알아냈다.
‘그레이프.’
[준비되었습니다.]그건 바로 그레이프와의 합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