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Usurper, Hunter Who Sees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42
운명찬탈자 미래를 보는 헌터 442화
442화
“웃지 마. 뭘 잘했다고 웃어.”
송진우는 전에 없이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큭큭큭! 마지막인데 웃는 낯으로 보내야지.”
그 말에 송진우가 입술을 꾹 다물자, 검성은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앉게. 오늘 고생 많이 했지 않나?”
“……하아.”
송진우는 더 군말하지 않고 말했다.
다른 망자와 달리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 버티고 있지만, 그것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검성을 제외한 다른 죽은 자들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송진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검성이 손자에게 말하듯이 자상하게 말했다.
“잘해주었네. 올바른 선택을 했어.”
“난 모르겠어. 이게 정말 올바른 선택인 건가?”
어쩌면 후에 이번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검성의 말은 달랐다.
“누구도 미래를 확신할 수 없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지나온 길에 대한 후회, 그리고 갈 수 없는 길에 대한 동경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중요한 건 매 순간마다 옳은 길을 선택하는 일이야.”
“그 끝이 파멸일지라도?”
“물론 파멸이라면 돌아가는 지혜도 필요하지. 하지만 지금 자네가 선택한 길은 끝이 보장된 바른길이네.”
“결과도 모르면서 점쟁이 같은 말만 하네.”
“클클! 이 나이가 되면 어느 정도 길이 보이지. 내가 보장할 수 있어.”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그 말에 검성은 이 순간에도 빠르게 썩어가는 팔을 들어 올렸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 이 몸이 없어도 잘 돌아가는 밝은 미래를 보았으니.”
송진우는 입을 열려 했지만, 코끝이 찡해서 한참이나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했어. 이미 죽은 몸이라도…… 세상에 남아 있었으면 했어.”
왜 이렇게 슬픈지 송진우도 알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도 그리 많지 않은데.
짐작할 수 있는 건, 그는 좋은 사람이고 이 세계에 필요한 건 그 같은 어른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검성은 홀가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무 낡아서 움직이기도 힘든 몸이야. 원 없이 사용했으니 이제는 쉴 때가 됐지.”
본래 고아인 송진우는 할아버지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궁운경이 예전부터 꿈꾸던 이상적인 할아버지와 가장 흡사한 사람이었다.
장난기 있으면서도 송진우를 위해 자신의 비전과 진심 어린 충고도 아끼지 않는 사람.
막연하게 그와의 인연이 이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찍 끊어질 줄은 몰랐다.
그건 검성도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자네를 너무 늦게 만났다는 점이야. 우린 제법 죽이 잘 맞지 않았나?”
그렇게 말하면서 검성은 송진우의 어깨를 잡았다.
부패한 살점이 옷에 고스란히 묻었지만 송진우는 피하지 않았다.
이제 그의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송진우는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약속할게. 앞으로도 당신에게 부끄러운 선택은 하지 않을 거야.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겠어.”
“클클! 그건 내게 있어서 최고의 말이군.”
검성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었다.
자신의 목숨과 바꿔서 젊은 영웅을 지켜낼 수 있다면, 크게 남는 장사다.
“난 언제나 자네가 자랑스러워…….”
검성은 결국 말을 끝내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정순하고 강력한 그의 내공이라도 지금까지 버티는 게 한계였기 때문이다.
“……잘 가. 그리고 잡아줘서 고마웠어.”
빠르게 부패된 검성은 금방 백골이 드러났지만, 송진우는 그를 그대로 놔둘 수 없었다.
검게 변한 시체를 잘 수습해서 품에 소중하게 안았다.
검성의 유해는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묻어줘야 한다.
“돌아가자.”
* * *
검성의 장례는 성대하게 치러졌다.
구의겸에게 잡힌 무인들이 상당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모두 검성 덕분이다.
무림맹에서 활동하면서 검성에게 도움을 받지 않았던 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직접적인 게 아니라 간접적인 것까지 모두 치면 중국인 모두가 검성에게 은혜를 입었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전쟁을 멈추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검성을 추모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송진우는 그들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이제 그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검성님이 목숨을 걸고 협상해서 받아낸 결과입니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검성의 이름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역시나 무림맹 측의 반발은 엄청났다.
“그럴 순 없습니다! 어찌 그런 간악한 자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희생된 민간인의 수만 해도 수만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반발이었다.
압호스 교단의 악행은 노배 레스보다도 훨씬 더 악랄했으니.
하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구의겸과 손을 잡지 않는다면 무림맹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미 검성님에게 감화되어 회개했습니다. 압호스에게서도 등을 돌리고 죄를 갚을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는데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무림맹의 수뇌부들은 곤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이 정말 그랬단 말입니까? 연기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제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그들은 무기를 버리고 백기 투항할 의사도 보였습니다.”
“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다른 이들에게는 구의겸이 송진우가 압호스 교단에 투입한 첩자라고 할 셈이지만, 이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말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검성이라는 이름이 큰 도움이 됐다.
“모두 검성님 덕분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분이 진심으로 대하면 어떤 악당이라도 감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그 말에 사람들은 다시 숙연해졌다.
“그분은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큰 빚을 남기고 가셨군요.”
“그분의 유지를 이어받는 일은 최대한 그들과 협력해서 다시 중국을 예전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송진우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그들도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들이 고집스러워도 현 상황에서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파멸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송진우는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옛 영광을 되찾을 기회입니다. 지금은 과거의 앙금을 털고 새로운 출발을 할 때입니다. 그게 검성님이 마지막에 당부한 말입니다.”
“……포식귀 님이 그렇게까지 말하면 좋습니다. 그들과 협력하겠습니다.”
“옳은 결정이십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이것으로 무림맹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물론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노배 레스와 손을 잡았다는 추기경을 가만 놔둘 수는 없다.
‘그건 지후 형에게 맡겨야겠네.’
신지후라면 송진우가 몇 가지 정보만 알려줘도 잘 해낼 것이다.
그렇게 협상을 마무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구의겸과 못다 한 말을 나누었다.
“……일이 그렇게 되었어. 협력한다고는 했지만 분명 반발하는 자도 있을 거야. 큰 소동 없도록 관리 잘해.”
[명심하겠습니다.]구의겸은 충신 모드가 되어 깍듯이 말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그리고 물어볼 게 있어.”
[말씀하십시오.]“전에 이상한 마법진을 봤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그게 압호스 교단과 관련된 것 같아서 말이야.”
송진우는 내전 후에 갑자기 나타나 전사자들의 에너지를 모조리 빨아들였던 마법진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힌트만 얻을 생각이었지만, 의외로 구의겸은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건 압호스의 권능 중 하나인 흡수입니다.]“흡수? 압호스의 권능이라고? 그럼 압호스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는 뜻이야?”
[아닙니다. 아직은 압호스가 이 땅에 강림할 수는 없습니다.]“그럼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사실 기밀인 사실인데, 한국에도 압호스 교단의 추기경이 있습니다.]“추기경이? 한국에도 있다고?”
[그렇습니다.]생각해보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노배 레스와 그랬듯이 압호스의 힘을 탐내서 그들과 손을 잡으려는 자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자는 압호스에게서 흡수의 권능을 받았습니다. 시체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죠.]“흡수? 추기경들은 모두 능력을 받나?”
[그렇습니다.]“그럼 네 능력은 뭔데?”
[제 것은 오염과 증식이었습니다. 몬스터를 빠르게 늘릴 수 있는 능력이죠. 하지만 당신께 기도한 순간 그 능력은 사라졌습니다.]“그렇군. 혹시 그 추기경이 누군지 알고 있어?”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들려오는 말을 송진우를 놀라게 했다.
[네. 그자의 이름은 한대운이라고 합니다.]“뭐? 그거 확실한 거야?”
[그렇습니다. 아는 자입니까?]“……잘 알지.”
한수정의 셋째 오빠이자, 마지막까지 한영 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던 자다.
사람을 다루는 데 천재지만, 너무나 과격하고 변태적이라서 엘리샤 길드도 그를 상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필 그가 압호스 교단과 손을 잡았다니.
“그자는 노배 레스와 손을 잡았던 거 아닌가?”
[욕심이 많은 자였습니다. 압호스 교단에 들어와 노배 레스의 정보를 빼돌렸죠.]“하긴, 그런 놈이었지.”
[지금은 남쪽 정부를 거의 다 손에 넣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뭐?”
이건 송진우도 처음 듣는 정보다.
“하지만 그들은 노배 레스와 완전히 손을 잡았잖아?”
[저번 내전의 실패로 노배 레스의 입지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한대운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정부를 장악했습니다.“돌아버리겠네.”
노배 레스도 문제지만 한대운은 더 문제다.
한수정에 대한 집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마법진이 하는 일이 정확히 뭐야?”
[간단합니다. 시체가 되기 전의 사람이 지닌 스탯의 일부를 흡수하는 겁니다.]“흡수한다고? 영구히?”
[그렇습니다.]“그렇게 간단하게 흡수할 수 있는 거야?”
[물론 흡수율은 높지 않습니다. 고작 해봤자 1%도 되지 않습니다.]1%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때 죽은 자의 수는 수천이 넘었다.
얼마나 많은 힘을 축적했는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골치 아프네.”
송진우가 아는 한대운이라면 그 힘을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자다.
만약 그가 남쪽 정부의 실세가 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것도 지후 형에게도 알려야겠네.”
송진우는 복잡한 머리를 두들기며 집으로 갔다.
* * *
송진우는 다음 날 오후 늦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본래 컨디션이 최악인 상황에서 강행한 중국행이다.
일이 잘 풀렸으니 망정이니, 잘못하면 과로로 쓰러질 뻔했었다.
해가 넘어갈 때쯤에야 눈을 뜬 송진우는 비몽사몽간 상태로 문밖을 나섰는데 뜻밖의 반가운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하나야.”
오랜만에 보는 동생 송하나다.
요즘 아이돌 활동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 집에 오기도 어렵다.
게임의 시대가 되고 TV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도 한정되어 있어, 송하나가 속한 그룹, 프레셔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만에 보는 동생의 모습에 송진우의 표정도 밝아졌다.
“잘 왔어. 요즘 바쁘지?”
“바쁘긴 한데 괜찮아. 우리 때문에 힘을 얻는다는 말을 들으면 힘이 나.”
“너무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해.”
“걱정하지 마. 근데 소개할 사람이 있어.”
“응? 소개할 사람?”
송진우는 같은 멤버를 소개하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송하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송진우의 정신을 날아가게 만들었다.
“내 남자친구.”
“쿨럭!”
송진우는 한참이나 마른기침을 하다가 겨우 숨을 돌렸다.
“뭐?! 남자친구라고?!”
나른한 기분까지 모조라 날려버리는 말이다.
“나, 남자친구라니?!”
언젠가는 동생도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날이 되니 머리가 먹먹했다.
송진우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하나가 남자친구가 생겼구나.”
왜 주먹이 쥐어지는지 그 이유도 모르겠다.
눈동자는 심하게 떨렸고, 머릿속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쁜 놈이면 어쩌지? 바람둥이라거나, 아니면 유부남인 걸 속이고…….’
좋은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고, 모조리 부정적인 생각뿐이었다.
마지막에는 그놈을 포식이로 씹어 먹는 상상까지 했다.
‘아니, 이러면 안 되지.’
명색이 오빠가 돼서 동생의 남자친구를 씹어 먹을 수는 없다.
그런 송진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하나는 밝게 말했다.
“여기 데려왔어. 인사 시켜 줄게.”
“으, 응? 여기 왔다고?”
“응.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으니까 같이 가자.”
“아, 알았어.”
송진우는 저도 모르게 손에서 만든 혈마장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써야 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기어들어 와?!’
여자친구의 집.
들어는 보았는가?
남자들의 로망이 가득한 지상의 낙원.
놈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지금 송진우의 머릿속에서는 상식이라는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옆방으로 갔더니…….
“……!”
송진우는 눈을 번뜩인 채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