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Usurper, Hunter Who Sees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76
운명찬탈자 미래를 보는 헌터 476화
476화
말을 하는 바니슈 여왕은 겉옷을 옆으로 끌렀다. 그러자 옷이 툭 하고 떨어지더니 새하얀 나신이 보였다.
놀랍게도 여왕은 속옷도 입지 않고 이곳에 온 것이다.
“우왓!”
너무 놀란 송진우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허둥거렸다.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여왕님 일단 옷을 입으시고 이야기하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도의 여왕이다. 아니, 인도의 여왕이 아니라고 해도 갑작스럽게 아이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바니슈는 침착하게 말했다.
“저는 여왕입니다. 이렇게 나라가 어려울수록 후사를 낳아 왕가를 안정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약 후계자를 낳거나 지정하지 않고 여왕이 죽는다면 인도는 다시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질 거다.
남자 왕이었다면 본처와 후처를 두어서 황족을 금방 늘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왕이니 그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바니슈의 간절한 말에 송진우는 아직도 눈에서 손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어째서 저입니까? 인도의 다른 귀족도 많지 않습니까?”
혼인으로 왕실의 강력한 우방을 만드는 것은 고대부터 이어지는 전략이다. 때에 따라서는 가장 위험한 적을 아군으로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정실 자리는 더 중요하다.
여왕이 후첩까지 둘 수 있는지는 아직은 모르지만, 어쨌든 첫 아이, 그러니까 왕세자의 부모가 누가 될지는 개인을 넘어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도 무척 중요하다.
그런데 아직 혼례를 치르지도 않은 여왕이 송진우의 아이를 원한 것이다. 하지만 바니슈 여왕도 무턱대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그녀도 다 생각이 있었다.
“지금 저와 인도의 왕실은 무척이나 위태롭습니다. 사실 사나운 코끼리, 브라하드 장군이 없다면 다른 마음을 먹은 귀족이 바로 반역을 칼을 뽑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위해서라도 강한 우군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그게 문제입니다. 지금 제 남편 후보에 오른 귀족들은 모두 세력이 엇비슷하고 특출하게 강한 세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 간의 경쟁이 극에 달했죠.”
차라리 압도적으로 강력한 한 가문이 있었다면 상대를 정하기 쉽다. 이견 없이 여왕의 남편, 즉 대공에 오를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지금 왕당파인 귀족 중 가장 강한 곳은 다섯으로 모두 비슷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가문에서 대공이 나온다면 다른 가문들이 크게 반발할 거고 결국 나라가 찢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차라리 대공을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과거 영국의 유명한 여왕 엘리자베스 1세도 ‘짐은 영국과 결혼했다’라고 하며 독신으로 지냈다.
이유는 마찬가지다. 대립하는 세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왕손이 필요하지만, 대공은 가문 간의 세력 싸움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인도의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왕실의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어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아냈다.
한 명은 인도의 영웅 사나운 코끼리 브라하드고 다른 하나는 인도를 구한 영웅 포식귀, 송진우다.
하지만 브라하드는 나이가 너무 많은데다가 다른 세력과 연관 점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소거법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남는 건 송진우였다.
“대공이 되어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인도의 미래를 위해 저를 품어주세요.”
그러니까 바니슈가 이 야심한 밤에 이런 복장을 하고 온 것은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라는 소리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의지를 표현하고 있었지만 아직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나신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송진우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이불로 그녀의 몸을 감싸주며 말했다.
“여왕님이 이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당연히 여왕님을 포함해서요.”
누구 하나 헛되지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게 착하고 아름다운 바니슈 여왕이면 더더욱.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게 여왕님께 큰 부담이 되겠죠.”
수치심을 무릅쓰고 외간 남자의 방까지 온 바니슈의 간절함은 완전 타인인 송진우도 잘 알 수 있었다.
바니슈는 본래 여왕이라는 자리에 오를 생각이 없었다. 모두 자신의 청에 의해서 폭군 악바르를 대신해 왕좌에 오른 거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였지만, 바니슈는 늘 부담스러워했다. 늘 옆에서 지탱해주는 브라하드가 없었다면 진즉에 무너졌을 거다.
그런 그녀였기에 송진우는 최소한 한 가지는 지켜주고 싶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왕님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왕권은 굳건해지고, 바니슈 여왕은 다른 귀족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질 거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 어떤 누구와 사랑하고 결혼해도 아무도 태클을 걸 수 없게 될 거다.
송진우는 바니슈의 손을 꼭 잡고 따스하게 말했다.
“그러니 혼자 희생하실 필요 없습니다. 부디 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필요가 아닌 사랑으로 혼인을 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저, 전…….”
송진우의 말에 바니슈 여왕이 뭔가를 말하려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송진우는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그녀의 어깨를 따듯하게 두들겼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던 겁니다.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서 편히 쉬세요.”
고개를 든 바니슈는 송진의 눈을 마주 봤다. 그곳에는 욕망 한 점 없는 걱정과 따스함만 담겨 있었다.
그것을 본 바니슈 여왕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포식귀 님만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승리할 겁니다. 인도가 안정되면 여왕님이 이런 걱정을 하실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네.”
그렇게 말한 바니슈는 옷을 챙겨 입고 송진우의 방을 나왔다.
쿵!
밖으로 나온 바니슈가 향한 곳은 자신의 방이 아니었다. 그곳은 왕족만 출입할 수 있는 화단이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브라하드였다. 그를 본 바니슈 여왕은 쓸쓸하게 말했다.
“죄송해요, 실패했습니다.”
“흠……. 제 아무리 포식귀라도 여왕님의 미모에는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믿었는데, 혹시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브라하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바니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그분은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는 거예요.”
사랑을 말하는 송진우의 얼굴은 분명, 사랑에 빠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가진 사랑이 너무나 크고 아름다웠기에 바니슈도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기를 바란 것이다.
“바보. 결국 제 마음은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군요.”
사실 바니슈 여왕도 단지 정치적인 이유로만 송진우의 방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예전 송진우가 자신을 구했을 때부터 바니슈의 마음은 항상 송진우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을 안 브라하드가 이번 작전을 꾸민 거다.
[분명, 여왕님이 아이를 가지면 그도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브라하드는 송진우 같은 뚝심 있는 자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니슈와 동침하게 되면 반드시 대공의 자리에 오를 거라 장담했다.
하지만 송진우가 여왕을 그대로 돌려보낸 것은 계산 밖의 일이었다.
“또 차였어요.”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다가갔었지만 송진우는 단호하게 거부했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다. 예전 중앙 대륙을 떠돌았을 때와는 달리 좋은 환경에서 가꾸었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혹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곡선의 알몸까지 보였는데도 송진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을 보는 송진우의 눈빛은 마치 동생이나 딸을 보는 듯했다.
낙심한 바니슈를 본 브라하드가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어쩌면 접근 방식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둘러댄 것 때문에 포식귀는 더 여왕님을 지키려 했을 수 있죠.”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사정이 나아진 후에 포식귀를 정식으로 초대해서 여왕님의 마음을 전하십시오. 그런 진실한 고백만이 포식귀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분은 사랑하는 분이 계시는 걸요?”
“핫핫! 지금은 난세입니다. 포식귀 같은 영웅이 한 명의 여성에게만 얽매일 리가 없죠. 어쩌면 지금도 포식귀는 여러 여자를 거느렸을 수도 있습니다.”
“에? 그럴 리가요.”
“모를 일이죠. 저는 사람은 믿어도 남자들 아랫도리는 믿지 않습니다. 핫핫!”
브라하드의 말에도 바니슈 여왕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본 포식귀라면 그런 호색한은 아닐 거라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 시간 송진우는…….
“에취!”
어쩐지 코가 간지러워져 기침을 했다.
“누가 내 이야기를 하나?”
코를 훌쩍거린 송진우는 다시 이불을 덮었다.
* * *
예상대로 뇌호가 없다는 소문이 퍼지자 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 대부분의 병력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서쪽 브라함 가문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태국의 병력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들과 손을 잡은 거 같습니다.”
“적 공군이 다수 출현했습니다. 몇 기는 격추했지만 상당수가 포위를 뚫고 이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적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가 정신없이 들어왔다. 왕실군이 수적으로 열세라, 전선이 점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데이브레이커 길드를 비롯한 연합군이 지원을 왔지만, 지원이 있기는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과 영국 연합군이 왕실군을 도왔고, 노배 레스와 태국, 프랑스군이 반란군을 돕기 시작했다.
“악바르가 최전선에 등장했습니다. 그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제길! 어지간히 우리를 깔보는군.”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뒤에 숨었던 악바르가 최전선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불리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악바르만 잡으면 끝나는 전쟁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병사를 투입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반군을 이끄는 건 악바르가 아니라, 시바의 아바타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브라하드는 병력에 명령을 내렸다.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절대로 성에서 나가지 말고 농성해라!”
“알겠습니다!”
공격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왕실군이 집중한 것은 농성이 아니라 정보 수집이었다.
블루 핸드의 위치를 알아내야만 승산이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라. 저들이 승리를 확신한 순간에 분명 빈틈을 보일 것이다!”
지금 연합군이 가진 이점은 단 한 가지뿐이다. 송진우가 인도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
그 때문에 송진우는 아무리 위급해도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송진우가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레이프를 이용해서 적들의 통신을 해킹하고 그것을 아군에게 모조리 전달하고 있었다.
적들이 아무리 보안을 강화한다고 해도 그레이프의 해킹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덕분에 의외로 정보전에서는 아군이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정보를 뒤져도 블루 핸드의 위치는 찾을 수 없었다. 특별히 암호화된 코드도 없는데 말이다.
결국, 가만히 정보를 추리던 송진우는 결론을 내렸다.
“인도에 없군.”
시바의 화신인 블루 핸드는 인도가 예전처럼 부흥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을 뿐이다. 종교의 특색상, 굳이 전면에서 활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곤란하네.”
연합군의 목표는 송진우가 블루 핸드를 무찌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신이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결속은 급격히 무너질 거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블루 핸드는 인도에 없었다. 아마 중앙 대륙, 아니면 노배 레스 본진에 숨어 있을 거다.
이렇게 되면 작전을 바꿔야 한다.
“악바르를 잡아야 하나?”
하지만 시바가 있는 한 악바르가 죽어도 반란군 연합은 건재할 거다. 즉, 지금의 악바르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악바르가 저렇게 최전선에 나와 있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악바르의 성격상, 위험한 곳에 나왔을 리가 없다.
“잠깐, 꼭두각시라고?”
송진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악바르는 지하 감옥에서 구해져서 노배 레스의 장기말로 활용되고 있다.
예전처럼 중요한 인물이 아니기에 노배 레스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카드다.
어쩌면 그가 용맹하게 싸우다가 죽는 것이 적군의 사기를 더 높일 수도 있다.
“악바르도 원하는 일이 아닐 거야.”
지하 감옥에 있는 것보다 몸은 자유롭지만,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전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노배 레스의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어쩌면 이 전쟁을 가장 원치 않는 자가 악바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송진우는 급히 머리를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