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Usurper, Hunter Who Sees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9
운명찬탈자 미래를 보는 헌터 049화
49화
“네, 영애님.”
“죽었을 때 기억이 나?”
항상 당당하던 영애였지만 지금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 지금 송진우에게 죽음을 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큰 실례였지만 영애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영애님.”
“……어땠어? 당연히 우릴 원망했겠지?”
영애도 그날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화살이 빗발처럼 쏟아지던 그 전쟁의 한 가운데서 레오나르드는 흔들리지 않은 목소리로 백작과 영애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고 자신은 당당히 죽음을 선택했다.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남자다. 그런 사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믿기 힘들었다.
“아닙니다, 영애님.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을 품겠습니까?”
그 말에 영애는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서 송진우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어깨의 흔들림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럼. 한 번 죽었는데도, 지금 그…… 그 모습이 되어서도 우릴 원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야?”
그 말에도 송진우는 어조의 변화 없이 부드럽게 말했다.
“백작님과 영애님을 보호하는 건 당연히 제가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백작님과 영애님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병력을 움직이는 제 일이었습니다. 일이 잘못되었어도 제 잘못입니다.”
“……당신은 예전부터 그랬어.”
돌아본 영애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죽어서도 변한 게 없네.”
말을 마친 영애는 송진우를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휴~”
무뚝뚝한 송진우와 레오나르드의 기억으로는 훌쩍 커버린 영애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5년이란 시간은 사춘기 소녀에게 너무 긴 시간이었다.
* * *
그 후로도 다시 몇 주가 흘렀다.
송진우는 혼자 남아 있는 하나가 걱정되었지만 애써 잊으며 도적 떼를 도벌했다.
자신이 알기로는 이곳에서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현실로 돌아가면 균열에 들어설 때와 같은 시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하나는 자신이 이런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송진우는 그날도 마을에 해를 끼치는 도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비상종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뛰쳐나온 잭의 말에 종을 울린 경비대가 허겁지겁 달려와 소리쳤다.
“바르샤 후작이 다시 우리 영역에 쳐들어왔습니다.”
“이놈들이 또?”
바르샤 후작은 레오나르드를 죽인 범인이라고 여겨지는 자다.
그 후로도 계속 에드워드 영지에 도발하고 있었다. 그롬과 잭의 활약으로 막아내고 있었지만, 힘의 차이는 여전히 저쪽이 우위에 있었다.
“저놈들은 왜 자꾸 우리 영역에서 삽질하는 거야?”
도발적으로 영역을 침범하고 있지만 전면전을 하지는 않았다.
영주 간의 영지전은 국왕의 허락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지만 꾀 많은 바르샤 후작의 능력이라면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후작은 전면전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아예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 이거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 자식들!”
그롬과 잭, 그리고 갑옷으로 자신을 가린 송진우가 병력을 데리고 급하게 후작의 병력이 쳐들어 온 산맥으로 갔다.
하지만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후작의 병력이 모두 도망간 후였다.
“또 이러네. 우리를 가지고 노는 건가?”
잭이 씩씩거리며 분통을 터트렸고, 그롬도 분을 삼키며 사라지는 적들의 뒤를 보고 있었다.
송진우도 그 모습을 수상하게 봤다.
“저들이 자주 오는가?”
그 말에 그롬이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올해만 벌써 4번째입니다.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우리를 우습게보고 있는 거죠.”
“4번이나?”
“스승님이 사라진 후부터 계속 나타났습니다. 특히 이 주변만요.”
“흐흠~ 그래?”
이곳은 바르샤 후작과 에드워드 백작의 영역이 만나는 경계이다.
하지만 평지가 아닌 산맥이라서 넘기도 쉽지 않은데 자꾸 나타나는 것이다.
“그건 좀 이상하군. 이곳만 온단 말이지?”
“네.”
송진우는 눈을 찡그리려다가 눈이 없는 것을 깨닫고는 애꿎은 두개골만 긁적였다.
“이곳은 그냥 산맥이지?”
“네. 저도 저들이 자꾸 오는 게 수상해서 혹시 광산이라도 숨겨졌나 구석구석 찾아봤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습니다.”
광산을 찾는 건 위치를 정확하게 알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조금 찾아서 완벽하게 찾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다.
저런 병력으로 광산 또는 광맥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주변에 마을이 있나?”
“어…… 아마 저쪽에 작은 마을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일단 그곳으로 가보자. 확인할 게 있어.”
송진우가 말하자 반신반의하면서도 모두 그를 따랐다.
갑자기 몰려온 병사들을 보고 마을 주민들이 혼비백산했다.
겁먹은 촌장이 쭈뼛거리며 나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 여기는 어쩐 일이신지…….”
그 말에, 투구를 써서 얼굴을 가린 송진우가 대표로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에드워드 가문의 병사들이다. 그저 대화할 것이 있어서 왔다.”
“네? 그게 무슨…….”
“여기서 이야기할 수 없고 조용한 곳으로 안내해 주게.”
“암요. 그러겠습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촌장은 서둘러 송진우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다른 이들은 밖에 대기하고 있었고 그롬과 잭만 집으로 들어왔다.
“마실 거라도…….”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자네가 여기서 최고 연장자인가?”
“그, 그건 아닙니다. 저보다 나이 먹은 이들이 있습니다.”
“알았다. 그럼 혹시 이 주변에 떠도는 소문이나 전설 같은 것을 알고 있나?”
“소문이요?”
“그래.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소문이나 전설이 아니더라도 근처에서 수상한 것을 발견한 사람이 있으면 알려다오.”
송진우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촌장이 별안간 손뼉을 쳤다.
“아~ 혹시.”
“뭔가 아는 게 있나?”
“마을에 있는 가장 늙은이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했습니다.”
“이상한 소리? 그게 뭔가?”
“누가 봐도 헛소리라서 신경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괜찮으니까 말해봐라.”
“그가 말하길…… 이곳 어느 곳에 신들의 유산이 묻혀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송진우의 목소리도 심각해졌다.
“신들의 유산? 그게 뭐지?”
“그. 그건 저도 잘…….”
“됐다. 그 노인을 이곳으로 데려와라”
“아, 알겠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촌장이 추레한 몰골의 노인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문제는 그 노인의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고 눈이 반쯤 풀려 있다는 것이다.
“이 노인이 맞나?”
“네. 그러니까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다들 헛소리라고 생각했다고.”
“늘 이런 상태인가?”
“네. 그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술에서 깨면 상태가 더 안 좋아집니다.”
“알겠다.”
노인은 인사불성의 상태였다. 무장한 기사가 앞에 있어도 태도가 변하지 않는 것은 병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꺼억~ 누구야? 한스냐?”
심지어 노인은 송진우의 가슴을 툭툭 치며 헛소리를 했는데, 노인이 건들 때마다 송진우의 갑옷에 기름때가 잔뜩 묻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잭이 한소리 하려 했지만 송진우가 제지하고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히꾹! 이놈아! 내가 귀까지 먹은 줄 알아? 당연히 들리지.”
“그럼 이 주변에 얽힌 전설에 대해서 알려주시겠습니까?”
“전설?”
“네. 알고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헷! 내가 그렇게 말하고 다닐 때는 믿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일 없다!”
노인을 그렇게 말하고 다시 손에 들고 있는 술병을 들이켰다. 그 모습에 더 조바심이 난 촌장이 노인을 재촉했다.
“노인장. 그러지 말고 제대로 이야기해줘요. 평소에 떠벌리고 다니던 말 있지 않나요?”
“술 떨어졌으니까 술이나 더 가지고 와. 가지고 오면 생각해보지.”
이제는 아예 주저앉아서 진상까지 부리는 노인이다.
다들 시간 낭비가 아니냐고 생각할 때였다. 송진우가 무릎을 꿇고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노인장.”
“응? 왜 자꾸 불러?”
송진우는 쓰고 있던 투구를 벗어 던졌다.
텅!
투구가 떨어지자 드러난 것은 송진우의 맨머리, 즉 해골이었다.
“히익!!”
가장 먼저 뒤로 자빠진 것은 아무것도 모르던 촌장이었다.
이제까지 기사로 알던 사람이 알고 보니 피처럼 붉은 스켈레톤이었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리고 노인 역시 격한 반응을 보였는데 송진우의 얼굴을 보는 그 즉시 고개를 조아리며 벌벌 떨었다.
“아이고! 악마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가!! 욕심에 눈이 멀어서 그만…….”
발음마저 정확해진 노인이 식은땀을 뻘뻘 흘려가며 자신의 죄를 고하기 시작했다.
“유적을 감춘 것은 제가 독차지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더는 그곳에 들어가 사고를 당하지 않게 그런 겁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유적? 무슨 유적을 말하는 거지?”
“50년 전 우연히 발견된 유적에 커다란 나무를 심어서 그 입구를 감추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니까 어서 말해보라. 그 유적의 입구가 어디 있지.”
“서쪽의 거북이 바위의 꼬리 쪽에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송진우가 다시 촌장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 거북이 바위라고 불리는 곳이 있나?”
“네.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보이는 거대한 바위지만 실제로는 거리가 상당합니다.”
“이곳에서도 보인다고?”
“네. 이곳으로 나와 보시겠습니까?”
밖으로 나가서 촌장이 가리킨 방향으로 보니 정말로 거북이 모양의 바위, 아니 산이 있었다.
“꼬리 쪽이면 저쪽인데, 저쪽에 나무가 심어져 있나?”
“저도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저곳은 워낙 험한 곳이라서 저희들도 함부로 가지 않는 곳입니다.”
“그렇군. 알았다.”
송진우는 멀리 보이는 산을 보며 중얼거렸다.
“신의 유적이란 말이지….”
송진우는 직감적으로 저곳에 이 퀘스트를 해결할 열쇠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
송진우는 유적의 존재를 알고도 그곳에 곧장 돌입하지 않았다. 그 유적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모두 살아나오지 못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곳에 존재하는 유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대처하기 위해서 성에 존재하는 모든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밤새우며 문헌들을 뒤진 끝에 결국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찾았다!”
표지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낡은 책에서 찾은 것은 과거 부흥했던 종교의 흔적이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이 고대 신앙은 우습게도 신앙으로 소원을 이룬 자가 탄압하기 시작해서 없어졌다.
그는 고대 신의 힘으로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지만, 다시 누군가가 이 신에게 소원을 빌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병사를 시켜 사제들을 모두 죽이고 신전들을 부쉈는데, 문헌에 따르면 오직 한 개의 신전만을 남겨놓았다고 했다.
혹시 다른 위험이 닥치면 그 힘으로 위기를 넘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대 신이 배은망덕한 자를 가만히 놔둘 리 없었고, 그 왕은 권력을 얻은 후 불과 몇 달 만에 천벌로 몸이 썩어갔다.
그제야 부랴부랴 신에게 용서를 빌려고 다시 신전을 찾아 떠났지만, 도착하기 전에 숨이 끊어졌다. 그 후 신전의 위치는 영원히 비밀에 묻혔다.
에드워드 가문의 중요 인물들이 오랜만에 회의실에 모두 모였다.
“동화 같네.”
이름마저 잊힌 고대 신의 흔적이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이면 그 어느 유적보다 귀중한 곳임에는 분명했다.
“문헌에는 신전이라고 나왔는데 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거지?”
송진우의 말에 그롬이 골똘히 생각하고 말을 했다.
“분노한 신의 힘이라면 충분한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정말 유적을 막고 있는 자가 고대 신이라면 그 누가 들어가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 말에 반박하는 자도 있었다.
“신도가 없는 신은 현세에 행사할 수 있는 힘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신도가 없었던 신이라면 그리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겁니다.”
여러 말을 듣고 있던 영애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눌렀다.
“생각 같아서는 계속 묻어두고 싶지만, 문제는 바르샤 후작이 찾고 있는 것이 이것 같다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만약 그들이 찾는 것이 이 유적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들어갈 방법도 알고 있을 수도 있죠.”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