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Usurper, Hunter Who Sees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92
운명찬탈자 미래를 보는 헌터 492화
492화
동동이를 따르는 자들은 일반적인 몬스터들이 아니다.
죽고 죽이기만 하는 불합리한 자신들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고행을 자처하는 구도자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유토피아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죽고 죽이는 처절한 삶에서 벗어나, 서로를 위하며, 사랑하고 함께 지내는 생활을 원하고 있었다.
마치 인간처럼.
동동이는 전투에 질린 몬스터들을 이끄는 지도자다.
[이곳은 우리의 새로운 터전. 손님이 오는 것은 처음이야.]“이 산이 터전이라고?”
그러고 보니 어설프지만, 산의 이곳저곳이 개간되어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본 송진우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농사라도 지을 생각인가?”
말하는 송진우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동동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맞아. 다행히 모두 곡물만 먹어도 사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었어.]여기 모인 몬스터들은 대부분 흉측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생긴 것은 영락없는 육식 동물인데 곡물을 먹어도 된다니 우습기도 했다.
“어…… 너도?”
[물론! 난 고구마를 제일 좋아해.]“이곳에도 고구마가 있어?”
[이곳에는 없지. 지구에서 가지고 왔어. 난 지구 태생이니까.]“아, 그렇겠지.”
새로 생겨난 신은 중앙 대륙이 아니라 지구에서 태어났다. 모습은 이렇고 사람도 아니지만, 동동이라는 슬라임도 분명 지구에서 태어났다.
동동이는 통통 튀면서 말했다.
[그런데 나를 어떻게 찾은 거지? 사람들의 눈에 닿지 않게 이곳에 숨었는데. 설마 벌써 위치가 공개된 건가?]“아니, 그건 아니다. 내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찾아올 수 있었다.”
[그런가? 그럼 날 찾은 이유는? 나와 싸우고자 하는 건가?]물론, 지금 동동이와 싸워 그를 처치하면 신성력을 빼앗아올 수 있다.
동동이는 소망이와 마찬가지로 아직 최하급에 불과하다. 그래도 세레나자드의 말에 따르면 그를 죽이면 소망이가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다.
많은 몬스터가 동동이를 호위하고 있었지만, 이 거리라면 충분히 벨 수 있다.
하지만 송진우는 그러지 않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다. 우리는 너와 싸울 생각이 없다.”
[그거 다행이네. 우리로는 너를 막지 못할 것 같았거든.]마라가 그랬던 것처럼 동동이도 송진우의 강함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몬스터로 태어났지만 슬라임이서 그런지 동동이는 공격성이 높지 않아 보았다. 그래서 송진우의 말에 크게 안심하고 경계를 풀었다.
‘아직 순진하군.’
아무 보증 없이 말뿐인 약속인데도, 동동이는 너무 쉽게 믿어 버렸다.
만약, 일행이 아닌 검은 속내를 지닌 자들과 먼저 만났다면 그들에게 실컷 이용당하다가 버려졌을 것이다.
“그럼 너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지?”
[준비? 뭘 준비해?]“앞으로의 전쟁 말이다. 설마 이런 곳에 있다고 안전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꼭꼭 숨는다고 해도 앞으로 2개월 후에는 위치가 공개될 거다. 전쟁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세레나자드의 배려다.
송진우의 경우처럼 동동이에게도 세레나자드가 왔을 테니, 그걸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동동이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가?]아무 긴장도 없는 동동이의 말에 송진우는 발을 헛디딜 뻔했다.
“……그런가라니. 설마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거야?”
[웅~ 하지만 그동안 농사짓는 것도 힘들었는걸?]“그동안이라고? 설마 고작 밭 조금 만든 걸로 시간을 다 쓴 건 아니지?”
[우리 중에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 없으니까. 시행착오가 좀 있었어.]“하아~ 그러냐?”
한마디로 아무 대책도 없다는 뜻이다. 송진우는 왜 자신에게 미래 예지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위치가 공개되면 바로 쓸렸겠네.’
물론,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은 헌터들도 쉽게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하지만 게임의 시대가 되면서 한층 강해진 세력들을 막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일단, 이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기로 하고 중요한 것부터 물어봤다.
“네 목표는 무엇이지?”
[목표? 정확히 뭘 물어보는 거야?]“너는 저들에 의해서 이곳에 불려온 거야. 그렇다면 그들의 의지를 대변할 생각이겠지. 아냐?”
기승전농사 이야기다.
[우리가 바라는 건 단지 평화야. 인간들에게는 전혀 피해가 가지 않을 거야.]동동이는 자신들이 위해만 가하지 않으면, 사람들도 자신들을 가만히 놔둘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그렇지 않아. 이 전쟁은 결국 한 명만 남게 된다. 여기서 농사만 짓고 산다고 해도 전쟁을 피할 수 없어.”
[그건 왜?]“너에게서 빼앗을 게 있기 때문이지. 사람들의 욕심을 너무 얕보지 마. 아무리 네가 평화롭게 살아가려 해도 그들은 널 집요하게 추격할 거다.] [그러니까…… 내 신성력을 노릴 거란 말이지?]
“그래.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어. 이대로 아무것도 대비하지 않는다면, 결국 모든 것을 뺏길 거다.”
그냥 변종 슬라임이었다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을 거다. 하지만 월드 스톰과 관련된 슬라임이니, 그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
만약 그가 도망친다고 해도 문제다. 일 년 후에도 결말이 나오지 않으면 지구가 폭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우선 목표를 명확히 해야지.”
그러면서 송진우는 주변의 몬스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단지 이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면 내가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
이 주변에 있는 몬스터는 대충 둘러 봐도 수백이 넘는다.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지금 송진우라면 이들이 평화롭게 머물 곳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슬라임신이라고 해도 목표가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
역시나 동동이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난 깨달은 모두를 구원하고 싶어. 앞으로도 이와 같은 친구들은 더 나올 거야.]“깨달은 자란 말이지…….”
깨달았다는 것은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은 몬스터들을 말한다.
동동이의 말에 따르면 그런 몬스터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있고 또 계속 생길 거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송진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런 몬스터들이 수천, 수만 마리가 모인다면 엄청난 전력이 되겠지.’
슬라임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만약 그가 평화가 아닌 투쟁이나 세계 정복을 위해서 움직였다면 세상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을 거다.
몬스터는 각각 행동하기에 사람들에게 사냥당하는 거지, 만약 종족과 상관없이 연합할 수 있다면 강력한 헌터들도 함부로 상대할 수 없을 거다.
‘슬라임이라서 다행이네.’
만약 포악한 오크나 교활한 고블린만 되었어도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없었을 거다.
“네 방식으로는 세상에 있는 깨달은 자들을 구하기는커녕, 여기 있는 자들까지 모두 죽게 될 거다.”
그 말에 동동이는 눈에 띄게 시무룩 해하며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싸워야지.”
[싸워?]송진우의 단호한 말에 동동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말했듯이 우리는 평화롭게 살기 위해 모였어.]“그래. 물론 네 뜻은 알겠어. 그러니까 싸워야 한다는 거다. 미안하지만 평화는 단지 자신이 남과 담을 쌓고 지낸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평화는 투쟁해서 얻어내는 거다.”
[투쟁해서? 평화를 싸워야 얻을 수 있다고?]“그래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더 피와 땀을 많이 흘려야 해. 그렇다고 남을 해치라는 뜻이 아니다. 남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힘이 있어야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어.”
송진우의 말에 동동이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웅~ 네 말은 너무 어렵다. 싸우지 않고 살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니.]“나도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어. 하지만 역사를 공부한다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지.”
연역적이 아닌 귀납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중립을 표방했던 나라나 세력은 모두 강력한 힘에 무너졌다.
[웅~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방법은 있다.”
[그게 뭔데?]“말했듯이 싸우지 않고도 살 수 방법은 없다. 특히 너희들이 몬스터인 이상. 하지만 옳은 방향으로 투쟁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그런 방법이 있어?]“어렵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전에 네가 약속할 게 있다.”
[그게 뭔데? 말만 해.]“우리가 널 도울 수 있어. 하지만 너희도 우리를 도와야 해.”
[그건…… 전쟁을 이야기하는 건가?]“그래.”
몬스터를 이끌 수 있는 힘이다. 지금은 수백 마리이지만 엘리샤 길드가 도우면 훨씬 더 많은 몬스터를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들이 돕는다면 분명 연합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동동이의 협조가 필수다.
“거대한 전쟁이 일어날 거다. 어쩌면, 아니 분명 많은 자들이 희생될 거야. 그래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해.”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동동이를 거짓말로 구슬리는 것도 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송진우는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밝혔다.
여전히 곤혹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동동이도 그 말 뜻을 알아들었다.
[함께 싸우자는 말이지?]“힘을 합치자는 말이다. 만약 우리가 승리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그러니까 몬스터들이 살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해 주겠다는 소리다.”
이미 세상에는 엘프나 오크 등의 이종족이 살고 있다. 사람들에게 잘만 설명하면 몬스터라고 함께 살 수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승리한다면 네 신성력을 우리에게 양도해다오.”
결국, 하나만 남아야 하는 전쟁이다. 둘의 이해관계가 맞는다면 이런 협상을 할 수도 있다.
만약 신성력이 사라지면 동동이는 아무 능력도 없는 평범한 슬라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본래부터 평범했다면 모르지만, 무려 신의 힘을 가진 자가 그 강력한 힘을 버리는 것은 선뜻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동동이의 대답은 의외로 빨랐다.
[그러지. 약속만 지켜준다면 신성력 같은 건 없어도 상관없어.]“……좋아. 그러면 계약한 거다.”
[그래, 좋아.]생각보다 협상이 잘된 것을 깨달은 송진우는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럼 일단 터전을 옮기자. 이곳은 너무 위험해.”
험한 산지이지만, 아무 구조물도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다른 세력이 쳐들어오면 금방 뚫릴 거다.
[하지만 이제 막 농사를 시작했는걸?]“음식은 우리가 조달해주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 시설이면 너희는 굶어 죽고 말 거다.”
몬스터의 덩치에 비해 그들이 경작한 밭은 너무 작고 조잡하다. 자급자족도 못 하는 초보 농사꾼이라는 소리다.
“우리 도시 근처에 너희가 살 만한 곳을 만들어주마. 식량도 주고 제대로 농사할 수 있게 씨종과 도구도 주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농사보다는 전투에 더 집중해야 할 거다.”
[알겠어.]그 후로도 이야기를 하며 둘이 할 수 있는 것을 의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른 슬라임이 이쪽으로 꾸물꾸물하며 기어왔다.
동동이와는 다른 그냥 펑범한 슬라임이었다.
“이것도 네 백성이냐?”
단순한 몬스터라고 생각했는데, 동동이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우리 엄마야.]“뭐?”
[세레나자드의 말로 하면 내 보호자지.]“이게?”
송진우는 어쩐지 겁먹은 것 같은 슬라임을 내려다봤다. 신안까지 동원했음에도 다른 슬라임과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로 보호자라면 동동이가 강림한 것이 이 슬라임의 간절함 때문이라는 뜻이다.
“그런 거였나?”
플레이어들에게 가장 많이 사냥당하는 몬스터인 슬라임. 심지어 필요하지 않을 때마저 장난삼아 공격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 슬라임은 수만 번을 죽고 리스폰되었을 수도 있다. 즉, 수만 번을 죽으며 고통받았다는 뜻이다.
이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동동이라는 신을 강림시켰다.
그리고 동동이는 이 전쟁에 가장 큰 변수다.
“고작 슬라임 하나 때문이라는 거지.”
송진우는 슬라임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그것은 적의가 없음을 깨닫고 가만히 있었다.
몬스터가 아니라 귀여운 동물 같은 모습이다.
[엄마가 좋아하네.]“……다행이네.”
이번 월드 스톰의 컨셉은 침략이 아니라 내분이다. 하지만 그 내분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부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할 전쟁을 예상할 수 있었다.
“결국, 어느 쪽이 더 간절하냐에 달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