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y Usurper, Hunter Who Sees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562
운명찬탈자 미래를 보는 헌터 562화
외전 4화
“허억! 허억!”
짧은 순간 모든 힘을 쏟아낸 헤이즈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손뼉 소리가 울렸다.
짝짝!
그건 이 모든 일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그렉이었다.
“역시 내 동생답다. 그럼. 아무리 기습이라도 그런 허접한 놈에게 무너지면 안 되지.”
그렉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파마트는 쓰다가 버릴 패였다.
애초에 그처럼 모자란 놈에게 자신의 누이를 넘길 생각이 없었다.
“수고를 덜었군.”
“큭!”
그렉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헤이즈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모 형제도 팔아넘길 자다.
그런 그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장 주의했었다. 하지만 헤이즈도 파마트의 배신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남자의 탐욕에 대해 제대로 모른 너의 패배다. 이제 내 무대에서 나가줘야겠어.”
그렉의 말에 여래장이 손을 풀면서 움직였다.
헤이즈 일행은 이번 퀘스트에 실패해서 모두 죽은 거다.
던전은 아무리 뛰어난 헌터라도 하루아침에 죽어 나가는 곳이니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거다.
“아쉽네. 준비한 게 더 많았는데. 써먹지 못한 게. 이 뒤에 숨겨놓은 병력도 많은데.”
준비가 철저한 그렉은 헤이즈를 완벽하게 끝내기 위해서 과할 정도로 준비를 많이 했다.
이제 헤이즈 왕녀가 살 방도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안 돼!”
다가오는 여래장 앞을 문호진이 막아섰다.
손에는 가방에서 꺼낸 검이 또 들린 채였다.
하지만 아무리 전설급, 신화급 검이 있더라도 랭커인 여래장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여래장 역시 볼품없는 문호진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건 또 뭐야? 개그하냐?”
여래장이 허공에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문호진의 복부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퍽!!
“컥!”
여래장이 진심으로 공격했으면 문호진은 곤죽이 되었을 거다.
고통만 주려 힘 조절을 했기 때문에 문호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다.
“커억! 커억!”
문호진은 고통으로 숨도 못 쉬는 상황에서도 절대 비키지 않았다.
“얼씨구? 네가 백마 탄 왕자라도 된 줄 아냐?”
다시 여래장이 손을 휘두르자 이번에는 얼굴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빡!!
눈코입을 비롯한 안면이 모두 뭉개지고 이도 절반 이상이 부러졌다.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문호진은 끝내 쓰러지지 않았다.
“어라?”
이번에는 여래장도 조금 놀랐다.
그래서 멈칫하는 사이에 헤이즈 공주가 문호진을 뒤에서 감싸 안았다.
“그만! 그만 하세요! 이 사람은 아무 관계 없습니다. 그냥 나를 죽이세요.”
죽음을 앞두고도 당당한 헤이즈 왕녀다.
물론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 증거로 다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죽어서 당신들을 저주하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끝내세요.”
헤이즈 왕녀는 팔을 양쪽으로 뻗으며 와볼 테면 와보라는 식의 행동을 했다.
그 모습에 얼굴을 찌푸린 여래장은 슬쩍 그렉을 봤다.
정말 끝내도 되냐는 뜻이었다.
그렉은 씨익 웃으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졌으니 여래장이 돈 받은 만큼 일할 차례였다.
“아쉽군, 공주님. 상황이 달랐으면 좋은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여래장의 입장에서도 착하고 용감한 헤이즈 왕녀를 죽이는 게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일은 일이다.
그렉이 주기로 한 거금이라면 망설일 이유는 없다.
여래장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본 문호진은 절망에 빠졌다.
‘결국 난,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하는 건가?’
비록 약속이었지만, 헤이즈 공주는 자신을 흔쾌히 받아준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을 용감하고 강인하다고 말해 주었다.
난생처음으로 듣는 좋은 평가였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평생 그녀의 충실한 부하가 되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처럼 냉혹했다.
‘내게 힘이 있었다면. 조금만 성장할 시간이 있었다면…….’
누구라도 좋았다.
그 어떤 수단이라도 좋았다.
지금 이 위기에서 공주를 구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영혼도 팔 의향이 있다.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
여래장이라는 강력한 적은 의지만으로 물리칠 수 없었다.
‘제발…….’
문호진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래장의 손이 휘둘러졌다.
문호진에게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강력한 힘이 담겨 있으니 헤이즈 공주의 몸은 산산이 조각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툭!
갑자기 일어난 일에 모두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
분명 여래장이 공격했는데, 헤이즈 공주는 멀쩡히 서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힘없이 떨어진 것은 놀랍게도 여래장의 팔이었다.
뒤늦게 자신의 팔이 잘렸단 걸 인지한 여래장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내, 내 팔이!”
여래장이라는 별호답게 여래장은 여래신장이라는 전설급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여래신장을 익히면 비단 강력한 무공만을 사용하는 게 끝이 아니다.
온몸이 금강석보다 단단해져서 웬만한 공격에는 생채기도 입지 않는다.
특히 가장 단단한 것은 팔이다.
여래신장을 직접 사용하는 팔은 설사 운석이 충돌한다고 해도 멀쩡할 거라 자부했다.
그런 팔이 허무하게 잘린 것이다.
“뭐, 뭐야?!”
놀란 여래장이 잘린 팔을 부여잡고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문호진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일이 이렇게 되자 더 당황한 것은 문호진이었다.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난, 아무것도…….”
그때였다.
이제까지 잠자코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누군가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하아암! 여기까지군.”
그는 놀랍게도 문호진과 같은 짐꾼.
처음에 문호진과 정답게 이야기했던 그 짐꾼 아저씨였다.
단지 일어섰을 뿐인데 강력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것을 느낀 여래장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너, 넌 뭐야?!”
여래장이 단단히 자세를 잡고 있음에도 그 짐꾼은 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잔뜩 긴장한 여래장을 무시하고 문호진에게로 왔다.
“수고했어.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네.”
“네? 네?!”
“더 일찍 나서고 싶었지만, 저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네. 아, 죽었더라도 부활했을 테니까, 너무 원망 말게.”
아저씨 짐꾼이 등을 보이며 자신을 무시하자 여래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래서 잘리지 않은 한쪽 팔에 기운을 잔뜩 불어넣었다.
“죽엇!!”
콰지지직!!
문호진에게 날린 공격은 물론이고, 헤이즈 공주에게 날린 것과도 차원이 다른 공격이다.
대지도 부술 강력한 여래신장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부처님 손바닥 모양의 장풍.
장법 중에서는 최고봉이라는 여래신장의 현신이다.
모두가, 심지어 문호진과 헤이즈조차, 여래장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때, 뒤돌아 있던 짐꾼이 슬쩍 움직였다.
스앗!
가볍게 허리를 한 바퀴 돌린 짐꾼의 손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거대한 낫이 들려 있었다.
그건 금속이 아닌 거대한 동물의 사체를 조각해 만든 낫.
문호진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포식……왕.”
포식왕의 애병인 파괴신이다.
수천, 수만 번 봤었기에 헷갈릴 리가 없다.
여래신장을 가볍게 자른 짐꾼 아니, 송진우는 어느새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해골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래. 내가 왔다.”
그리고 그 순간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엄청난 동요가 일어났다.
“포, 포식왕!”
“어째서 이런 곳에!”
지구를 구한 영웅.
현 최강자.
그를 수식하는 말이 너무 많아서 다 떠올릴 수도 없을 지경이다.
그런 그가 이곳에, 그것도 자신들의 적으로 나타난 거다.
모두가 얼어붙어 있을 때, 송진우가 여래장에게 담담히 말했다.
“여래장.”
송진우의 말에 잔뜩 굳어 있던 여래장이 턱을 덜덜 떨며 말했다.
“네. 넷!”
마치 도살자를 앞둔 사형수의 모습이다.
300위권의 랭커 타이틀도 포식왕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넌 단순히 고용된 거였지. 운이 좋군. 여기서 빠져라.”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말이다.
그 말에 면죄부라도 받은 것처럼 여래장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네, 넷! 감사합니다!”
여래장은 송진우와 눈도 못 마주치고 굽실거리다가 발에 불이 날 정도로 빠르게 뛰어 도망쳤다.
잘린 팔도 그대로 방치한 상태였다.
믿었던 여래장이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간 상황.
갑작스러운 송진우의 등장에 그렉이 떨면서 물었다.
“어, 어째서 당신이 이곳에…….”
“그걸 몰라서 묻나?”
“이, 이건 왕국 내의 일이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럴 권리는…….”
“물론이야. 나도 남의 나라 남매 싸움에는 관심 없어.”
“그런데 어째서…….”
“문제는 네놈이 손잡은 자들이다, 그렉.”
그 말에 그렉이 찔리는 게 있는 듯이 흠칫 떨었다.
“보기보다 강단이 있더군. 압호스 교단과 노배 레스와 손을 잡다니.”
“그, 그건…….”
변명거리는 찾던 그렉은 안 되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모두 놈들 죽여! 아무리 포식왕이라도 놈은 혼자다!”
그렇게 말하며 그렉은 수신호를 보냈다.
지금이야말로 숨겨놓았던 전력을 모두 꺼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수신호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당황하는 그렉을 보며 송진우가 담담히 말했다.
“소용없어. 왜 내가 지금까지 시간을 끌었겠어?”
“뭐?”
송진우의 의미심장한 말이 끝나고 숲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툭두둑!
그건 놀랍게도 세 개의 사람 머리통이었다.
모두 경악한 표정을 하며 혀를 쭉 빼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200위권 안에 든 랭커들로, 그렉이 믿었던 비밀 병기다.
그런 자들이 목만 남아서 날아온 것이다.
그리고 곧 머리통이 날아온 곳에서 세 명의 여인들이 날아왔다.
한 명은 커다란 활을 든 엘프, 다른 한 명은 빛나는 성복을 입은 성직자, 남은 한 명은 파워 아머를 입은 여성이었다.
그들을 보고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문호진이었다.
“설마? 뇌궁후, 백금의 성녀 그리고 엘리샤?!”
그들은 포식왕의 여인이라고 알려진 절세미녀들.
단지, 옆에서 보좌하는 것만이 아니라 각각이 모두 고위 랭커들이었다.
그 셋이 왔다는 것은…… 포식왕의 병력이 다수 왔다는 소리다.
그렉도 그것을 알았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비틀거렸고 여성들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모두 제압했습니다, 구원자님.”
“별거 아니었네. 노배 레스의 주력은 안 온 모양이야.”
“저들도 아직은 신중하게 움직이는 거겠죠.”
그녀들의 말처럼 그렉이 끌고 왔던 이들은 모두 죽거나 제압당했다.
송진우는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그렉에게 말했다.
“어차피 너도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피라미에 불과하다는 뜻이지. 항복해라. 그렇지 않으면 들고 가기 간편하게 목을 잘라 버릴 거다.”
송진우의 으름장에 그렉은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그를 따르던 이들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아이리스. 부활을 부탁해.”
“알겠습니다, 구원자님.”
송진우는 뒤처리를 맡기고 문호진에게 다가왔다.
“괜찮나?”
“네, 넷!”
자신의 우상인 포식왕을 눈앞에 둔 문호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게 꿈이 아닌지 볼을 꼬집어 보고 싶을 정도.
바짝 얼어 있는 문호진을 보고 송진우는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무척 용감한 행동이었어. 자네 덕분에 작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네.”
“아, 아닙니다. 저 같은 게 어찌…….”
“아니야. 이 일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모든 게 틀어지는 것이었어. 자네의 도움이 컸네.”
“헤, 헤헤.”
자신의 우상이 칭찬하니 문호진은 부끄럽다는 듯이 목덜미를 긁으며 웃었다.
“참 이거.”
송진우는 품에서 작은 보석 같은 것을 꺼내 문호진에게 건넸다.
“이, 이게 뭐죠?”
“이건 내가 퀘스트를 하다가 얻은 아이템이야. 하지만 어디에 쓰는지 도통 알 수가 없더군.”
“그런데 왜 이걸 저에게…….”
“그냥. 자네라면 이것의 비밀을 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네. 그러니 한 번 자네가 이 아이템의 비밀을 풀어보게.”
송진우의 말에 문호진은 그 보석을 유심히 보았다.
하지만 당연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문호진의 어깨를 두들기고 송진우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그것을 지켜보던 노혜미가 물었다.
“저거 그거지? 우리 개고생하면서 얻어낸 아이템.”
“그래, 맞아.”
“저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어? 꼭 쓸 데가 있다면서?”
“맞아. 그러니까 사용했잖아.”
“뭐?”
그 말에 노혜미가 문호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저 꼬마에게 주기 위해서였다고?”
“맞아. 저 아이는 나중에 우리에게 아니, 세계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자라날 거다.”
모든 건 송진우가 본 예지대로다.
문호진은 나중에 벌어질 거대한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거다.
그 말에 한수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차라리 우리 길드에 영입하는 게 낫지 않나요?”
“유감이지만, 그의 운명은 우리와 함께하지 않아요.”
송진우는 문호진에게 안기는 헤이즈를 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운명을 만났어요. 하지만 그 인연은 결국, 우리와도 이어질 겁니다.”
월드 스톰이 끝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자신들이 노력한 덕분에 세계는 빠르게 회복하였지만, 송진우는 알고 있다.
이 평화가 폭풍전야와 같다는 것을.
“곧 노배 레스가 돌아올 겁니다. 우리는 거기에 대비해야 해요.”
그 말에 노혜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놈의 노배 레스. 다른 차원에 넘어가서도 바퀴벌레처럼 살아 있네.”
아직 지구 멸망의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파멸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송진우는 아직 할 일이 많다.
결연한 분위기도 잠시뿐.
노혜미가 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예전에 말했던 대로 우리 셋은 9박 10일 동안 여행 갈 거야. 그러니까 그동안 육아는 네 몫이야.”
그 말에 송진우가 멈칫하며 말했다.
“셋 모두 다 가?”
그 말에 한수정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 일종에 육아 휴가예요. 그러니까 10일간 아이들 잘 부탁해요, 아이 아버지.”
믿었던 한수정마저 노혜미와 손을 잡고 빠르게 가버렸다.
마지막에 남은 아이리스는 머뭇거리더니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셋 모두 착한 아이들입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구원자님.”
“……내 걱정은 말고 잘 갔다 와.”
“네.”
그렇게 아이리스마저 가 버리자 송진우는 목덜미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지구를 지키는 것보다 애 돌보는 게 더 두렵네.”
소망이까지 합쳐 어느새 네 아이의 아빠가 된 송진우는 터벅터벅 걸으며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