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13
113
第二十三章 인화시(引火柴) (3)
“정말……죽었나요?”
“…….”
“정말 죽은 건가요?”
“밥이나 먹자.”
“…….”
유화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검왕이 죽다니!
그녀에게 검왕은 하늘이었다. 무공에 대해서만큼은 평생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하늘이었다.
그런 사람이 죽었다.
사실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유지자문의 고수들, 유지오혼의 죽음에서 일어났다.
유지오혼은 엄청난 고수다.
그들 중 한 명인 유지삼혼은 천력파혈단을 복용하고 펼친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의 합벽을 간단하게 무너트렸다.
헌데 그중 한 명도 아니고 다섯 명 모두가 쓰러졌단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음악오귀와 유화아 정도는 어린아이에 불과해진다. 혈루마옥 사람들에게만큼은 꼬마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유지오혼과 검왕의 죽음!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식으면 맛없다. 따뜻할 때 먹거라.”
자신을 누산이라고 밝힌 화복중년인이 따뜻한 오리고기를 맛있게 뜯어먹었다.
그는 검왕의 죽음이 애통하지 않은 것 같다.
그도 분명히 적벽검문의 사람일진대, 적벽검문이 멸문당했다는 말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마치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중년인은 태연히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다.
“검왕 님, 죽지 않았죠?”
후루룩! 쩝쩝!
“검왕 님 같은 분이 죽을 자리를 모를 리 없어요. 무슨 일을 벌이시는 거예요?”
유화아에게 검왕은 남다른 의미로 각인되어 있다.
어느 순간부터…… 검왕은 그녀의 사내가 되어서 가슴 깊이 똬리를 틀었다.
검왕을 사랑한다.
검왕을 연모한다.
검왕을 그리워한다.
그녀 자신, 검왕에게는 한낱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실컷 쓰다가 용도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내쳐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도 안다.
음악오귀나 그녀나 검왕에게는 다를 바 없다.
검왕이 그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준 것도 아니다. 검왕이라는 사내는 원래부터가 위로라거나 격려 같은 말과는 거리가 먼 사내였지 않은가.
그런데도 검왕이 보고 싶어진다.
검왕에게는 여인이 있다. 지금은 만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귀선부 이령의 그림자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워낙 소문난 사이였으니까.
그녀는 생전 보지도 못한 귀선부 이령에게 질투를 느낀다.
검왕은 그녀 외에 다른 여자를 쳐다보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검왕이 강호를 종횡할 때 많은 여인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중에는 미색이 뛰어난 여인이나 재지가 뛰어난 여인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고.
그런데도 검왕은 일절 눈길을 주지 않았다.
여인들과 동행하고, 말을 하고, 식사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오직 일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령과 헤어졌다고 해도 그녀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더더욱 검왕에게 애착이 간다.
그런 사내라면…… 그만한 사내라면…….
원수처럼 미웠던 사내가 점점 끌리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죽어버렸단다.
솔직히 그녀는 지금 그녀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아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딱 그만큼의 감정이라고.
그래도 그가 죽었다고 하니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기운 차리려면 먹어라.”
화복 중년인이 그녀에게 오리고기를 내밀었다.
‘기운 차리려면?’
누산이 아무 의미 없이 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역시 뭔가 있어! 기운을 차려야 해!’
그녀는 오리고기를 냉큼 받아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먹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검왕도 죽고 유지오혼도 죽고.”
“뭔 놈의 고수가 이리 많은지. 이거 괜히 든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드오.”
이귀가 대부를 만지며 말했다.
“잘못 들었지. 이런 건 들지 말았어야 했어. 이런 걸 드는 순간, 내 목을 쳐주쇼 하는 말이 된 거야.”
일귀가 대도를 신경질적으로 던지며 말했다.
무림에 고수가 이렇게 많을 줄 알았다면 무인이 되지 않았을 게다. 처음부터 병기를 잡지 않았을 게다. 아니, 힘자랑조차도 하지 않고 땅이나 일구며 살았을 게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음악오귀로 무림을 떠돌았던 시가가 황금기였던 것 같다.
지금은 마신천강기라는 절정무공을 터득했다.
마공관의 마공으로 그들의 무공은 능히 십마와 버금갈 것이라고 자부한다.
한낱 졸부였던 음악오귀가 이토록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들 목숨은 예전보다도 훨씬 가벼워졌다. 예전에는 어깨를 펴고 당당히 활보했는데, 절정 무인이 된 지금은 오히려 누가 공격할까봐 눈치만 살핀다.
그들은 누군가와 싸워야 한다.
예전에는 음욕을 채우기 위해서 병기를 들었다. 병기를 들기만 하면 즐거운 쾌락이 따라붙었다. 그러니 한 번이라도 더 병기를 들고 싶었다.
지금은 왜 병기를 들어야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든다.
지금은 왜 싸워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싸운다.
싸운다고 해서 쾌락이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욕념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돈이 주어지는 것도 명예가 따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죽을 위험만 한층 높아졌다.
도대체 마신천강기를 왜 배운 거지?
“어떤 무공이 검왕을 일수에 죽일 수 있는 걸까?”
삼귀가 중얼거렸다.
“패(覇)!”
일귀가 짧게 말했다.
초식이고 뭐고 필요없다. 아주 강력한 힘으로 짓누르는 것만 생각난다.
검왕을 일수에 죽이려면 그런 힘밖에는 없다.
“제길! 어쨌든 우리 목숨도 오래 남지 않았어. 이제 와서 빠져나갈 수도 없고.”
그들은 망연히 기다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검왕은?”
“누강이 땅에 묻었습니다.”
“예는 지키지 못했겠지?”
“개죽음 아닙니다. 예를 차릴 겨를도 없고요. 그럴 정신도 없지 않습니까?”
“휴우! 그렇게 보낼 사람이 아닌데.”
“그저 땅에 묻힌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입니다.”
“십마는?”
“각기 바쁘게…….”
“검성은?”
“여전히 조용합니다.”
“그 늙은이…….”
화복중년인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중원 천하가 바쁘게 움직인다.
혈루마옥이 저주를 깨고 무림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모르는 문파는 없다. 개방 같은 대문파부터 저 지방 촌구석에 있는 문파까지 모든 무인들이 다 안다.
그런데도 모른 척한다.
모른 척한다기보다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법이 강구되지 않는 것이다.
적벽검문이 몰살당했다.
혈루마옥이 일으킨 이 혈사는 모든 무인들의 가슴에 진한 피멍이 되어 자리 잡았다.
적벽검문까지 몰살당했는데 우린들…….
중원은 심한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무엇인가는 한다. 최소한 발버둥이라도 쳐봐야 되지 않겠나. 그렇지 않으면 혈루마옥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굴복해야 한다.
자칫하면 본문 무공을 폐지당할 수도 있다.
혈루마옥의 본심은 무엇인가? 중원 지배인가? 아니면 저주를 깬 것으로 만족하나?
최소한 후자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혈루마옥은 적벽검문에 이어서 유지자문까지 깨부쉈다. 중원에서 가장 강한 문파 두 개를 일시에 멸문시켰다. 봉문을 한 문파까지 일부러 싸움판에 불러내어서 멸문시켰다.
중원 무림은 각기 살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다만 그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너무 눈에 띄게 움직이면 혈루마옥의 눈총을 살 것 같아서, 그러면 표적이 될 것 같아서.
그 중간을 십마가 연결한다.
십마는 부지런히 문파와 문파를 오가면서 서로를 연결시킨다.
이것이, 이런 움직임이 얼마나 효가가 있을까?
검성이 움직여야 한다. 혈천성이 움직여야 한다. 헌데 정작 이 두 문파는 조용하다.
“검성은 움직이고 있고…….”
화복중년인이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했다.
“혈천성도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살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할 테니.”
“문제는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 하는 것이지.”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뭘?”
“저희도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허허! 이런 멍청한 친구를 봤나. 본문이 멸문당한 마당에 뭘 움직여? 움직인다고 뾰족한 수나 있고?”
“…….”
“우리는 숨는다.”
“예?”
“누강과 음사를 데려와. 조용히.”
“그거야 문제없는데…….”
“누강과 음사를 데려오기가 쉽지 않을 거야. 혈루마옥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을 테니까.”
“염려 마십시오.”
화복중년인은 자신있는 말을 귓가로 흘려들으며 중원 전도(全圖)를 쳐다봤다.
혈루마옥이 두 갈래로 나뉘어서 천천히 하강하고 있다.
한 갈래는 증평이고, 다른 한 갈래는 녹천이다. 이 두 부류가 각기 세력을 분리하여 움직인다.
그들은 서둘지 않는다. 하루에 고작해야 백 리 정도 이동하면 많이 이동한 게다. 오십 리에서 백 리 정도 움직이면 멈추고 숙식할 곳을 고른다.
저들은 서둘지 않는다.
저들이 원하는 바는 이미 이뤘다. 적벽검문, 검왕, 유지자문…… 이들을 죽임으로써 모든 것을 이뤘다.
이제 저들은 두 곳을 노린다.
한 곳은 검성과 혈천성이다. 그들을 무너트릴 것이다.
또 한 곳은 중원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구파일방이다.
그들을 모두 무너트린 후에는 혈루마옥 일맥으로 무림을 구성할 게다. 혈루마옥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무림을 호령할 게다. 절곡에서 지냈던 한 많은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이들을 막을 방도가 없다.
아니, 있다. 그 첫발을 검왕이 내디뎌 주었다. 그가 죽음으로써 말해주었다.
‘숨어야겠지. 죽음보다 더 완벽하게.’
그는 중원 전도에서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곳, 텅 빈 곳, 사막을 지켜봤다.
중원에 숨을 곳은 없다. 숨을 곳을 찾으려면 아무도 발길을 들여놓지 않는 곳, 사막으로 가야 한다.
우선은 숨는다.
조용한 이동이 시작되었다.
“어디로 가는 거죠?”
물론 답은 들을 수 없다.
“싸우는 겁니까?”
이 말 역시 대답 같은 것은 없다.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알려고 하지 말고 오직 움직이기만 해야 한다.
화복중년인이 가자고 하니까 간다.
하지만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유화아와 음악오귀, 이들이 무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말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공관의 무공으로 재무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말단이다.
그들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완전히 무명인이나 다름없다.
당금 중원에서 음악오귀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보는가.
한 마디로 그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그런데도 화복중년인은 그들을 중시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들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 다만 따라오라고만 말한다. 멀리 떨어지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 것도 용서하지 않고.
그들을 왜 데리고 가려는 것일까?
이것은 그들 자신이 제일 궁금해하는 점이다. 도대체 자신들이 어디에 쓸모가 있다고.
낮에는 숨는다.
밤에는 움직인다.
누가 봐도 은밀한 움직임, 아무에게도 존재가 발각되지 않는 움직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