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51
151
第三十一章 불가해(不可解) (1)
녹천주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아무 손상 없이 고스란히 이어받을 수 있는 방법, 단 하나뿐이다.
녹천주의 죽음!
녹천 사람은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모두가 가족이다.
혈루마옥에 사람들이 갇혔을 때는 서로 안면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지만, 세월을 더해오면서 한 뿌리로 이어지고 말았다. 모두가 가족이요, 친족이다.
어떤 이해득실과 욕망, 혹은 명령으로 구축된 조직이 아니라 혈연으로 구축된 조직인 게다.
무슨 수로 이 조직을 무너트린단 말인가.
방법은 오직 하나, 녹천주가 죽는 것뿐이다.
녹천주가 죽고, 화천이 자연스럽게 부상할 때, 권력이 넘겨진다.
누미는 그 일을 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녹천주를 죽일 만한 시간적인 여유도 없다. 즉각 행동에 옮겨야 하고, 한 사람을 제거해야 한다.
허나 방법이…….
그가 알고 있는 무공은 녹천주도 안다. 그가 알고 있는 암계나 독계 역시 녹천주가 전수한 것이다.
자신보다는 녹천주가 모든 면에서 한 수 위다.
어떻게 죽여야 하나? 자신 보다 무공도 높고, 모든 것을 꿰뜷?있는 사람을.
문득, 화천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혈루마옥 사람들은…… 혈루마옥의 저주만 거둬진다면 당장 중원 무림에 뛰쳐나가 피바다를 만들 생각이었다.
마음껏 살육하리라!
헌데 지금 이게 뭔가. 기련산 이름없는 골짜기에 모여서 서로 암투나 벌이고 있지 않은가.
중원은 피에 젖지 않았다.
중원 사람들은 혈루마옥 마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거의 모른다.
물론 아는 사람은 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 범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무림에서 구 할가량 되는 많은 무인들이 알지 못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적벽검문이 너무 쉽게 멸문했다. 유지자문도 쉽게 꺾였다. 중원 초절정 고수들, 전대 기인들이라는 사람들도 며칠 상관으로 세상을 등졌다.
솔직히 그 순간부터 중원은 무주공산이 된 게다.
무주공산…… 누구든 손만 뻗어서 장악하면 된다.
중원이 그런 상태라는 것을 아는 순간, 안일함이 찾아왔다. 일종의 방심이라고 할까? 중원은 내버려두고 혈루마옥 사람들 간에 암투가 시작되었다.
기련산 한 골짜기에서 누미가 녹천주의 목숨을 노리는 것처럼.
어쨌든 그 일은 화천에게 맡겨졌다.
화천은 그 일을 해내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빠져나가 무주고안이 된 중원을 취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녹천주를 죽이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화천의 눈길이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혈오에게 멈췄다.
‘네가 도와줘야겠다.’
혈오는 화천의 마음을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잠만 잔다.
누미는 화천의 마음을 알았을까? 그녀는 곱디고운 미소를 보내온다. 일면 사악하기도 한 미소를.
유시(酉時).
녹천주가 운공을 하는 시간이다.
녹천주는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유시초(酉時初)만 되면 운공을 시작한다. 그리고 긴 밤을 꼬박 밝힌 후, 새벽이 되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잠을 자는 대신에 운공을 취하는 것이다.
녹천주의 운공은 잠처럼 깊다. 잠은 꿈을 꾸지만, 녹천주는 꿈조차도 꾸지 않으니 잠보다도 훨씬 깊다.
녹천주의 운공은 매우 예민하다. 잠을 자는 사람은 기습하기에 딱 좋다. 하지만 녹천주는 예민하기 때문에, 주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 즉각 반응하기 때문에 기습조차도 용이하지 않다.
녹천주는 압도적인 무공으로 제압하지 않는 한, 제거할 방도가 없는 사람이다.
화천은 혈오를 반듯하게 눕혔다. 그리고 두 손으로 혈오의 발바닥을 꽉 움켜잡았다.
용천혈(湧泉穴)이 두 손에 잡힌다.
화천은 혈오를 쳐다봤다. 혈오도 눈을 말똥말똥 뜨고 화천을 쳐다본다.
이 순간, 혈오는 매우 순진해 보인다.
아니, 영악하다. 혈오는 악마 그 자체다. 움직일 수 있다면, 싸울 수 있다면 화천은 혈오의 손끝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혈오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혈오는 물리적으로, 신체적으로 화천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그러니 순진한 눈망울로 화천을 쳐다본다.
츠으으읏!
화천은 진기를 운집하기 시작했다.
두 손에 운집된 진기가 용천혈을 통해서 혈오에게 주입된다.
파아아아앗!
화천은 혈오의 눈동자가 변하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 혈오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눈동자 색도, 얼굴색도 여전히 똑같다. 하지만 화천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눈동자가 붉게 물드는 것처럼 보인다.
‘넌 날 많이 도와줘야 해.’
츠으으읏!
화천은 계속해서 진기를 주입했다.
쩌엉! 쩡! 쩡!
작은 울림들이 울린다.
이 소리들 역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화천만 감지한다. 두 손으로 혈오를 잡고 있기 때문에. 혈오가 느끼는 것을 화천도 느끼는 것이다.
혈오, 요물!
혈루마옥 사람들은 혈오를 통해서 혈루마옥의 저주를 벗어났다.
혈루마옥 사람들에게 어떤 저주가 덧씌워져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기운들이 혈오를 통해서 벗겨졌다. 혈오가 빨아갔다.
한 사람, 한 사람…… 혈오는 모든 사람을 접했다.
혈우마옥을 벗어나 중원을 활보하는 무인들 중에서 혈오와 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혈오는 그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즉, 혈오는 자신과 접한 모든 무인들의 진기, 무공특성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기억한다. 아니,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탐지하고 있다.
화천이 혈오의 몸을 긴장시킨다.
혈오는 화천의 진기의 반응해서 모든 기억들을 끌어낸다. 그리고 세상이 흘려내는 기운 중에서 자신의 기운과 같은 부분을 찾는다. 끌어낸다.
지금 이 순간에, 유시말(酉時末 )에 운공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혈오에게 탐지된다.
꾸욱!
화천은 혈오의 용천혈을 봉했다.
그의 진기가 혈오의 몸속에서 용트림한다. 혈오의 전신을 누비고 다닌다.
화천이 혈오의 발에서 손을 떼며 중얼거렸다.
“앞으로 한 시진. 한 시진 안에 끝내지 않으면…… 내가 죽어.”
저벅! 저벅! 저벅!
화천은 컴컴한 밤길을 차분하게 걸었다.
“좋은 밤입니다.”
밤의 정취를 즐기는 무인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화천은 고개만 끄덕이고 그들을 지나쳤다.
화천은 운공을 하고 있는 무인들도 보았다. 그들은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깊은 정적에 휘감겨 있다.
깊고, 깊고, 깊은 침묵.
혈오가 탐지한 기운들은 저 깊은 곳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들은 지금이 좋을 것이다. 예전보다 훨씬 조용하고 깊은 운공에 심취해 있을 것이다. 이 순간이 득오(得悟)의 순간이라고 착각하고 본인 스스로 방해받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다.
이것이 혈오의 힘이다.
그는 녹천주의 천막 앞에 섰다.
스읏! 스읏! 스으으읏!
미지의 기운들이 그를 감싼다.
녹천주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넷이 있다.
그들은 녹천주 보호를 제일 임무로 삼는다. 촌장이라고 할지라도 녹천주를 해하는 것은 보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어른이 녹천주다.
녹천주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토록 충성스런 수하를 넷이나 두고 있으니.
“보고할 게 있다.”
“밝은 날 하시지요.”
어둠 속에서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건방진!”
“저흴 아시잖습니까.”
‘알지. 너무 잘 알지.’
화천은 피식 웃었다.
혈루마옥 사람치고 이들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떤 무공을 수련했는지만 모를 뿐.
– 나를 죽이기 위해서는 활화산 두 개를 건너야 한다. 시험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해보고. 단, 사전에 내게 언질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의 칼을 말릴 방도가 없으니까.
평소에 녹천주가 공공연하게 하던 말이다.
그런데…… 녹천주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 아니, 간과한 부분이 있다. 이들 역시 혈오의 손을 거쳤다는 것, 혈오에게 모든 무공을 읽히고 있다는 것.
저벅! 저벅!
화천은 더 이상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무작정 녹천주의 천막을 향해 걸었다.
스으읏!
당연히 저들은 반응했다.
‘어차피 이자들은 내 사람이 안 될 것!’
스릉!
화천은 검을 뽑았다.
“반역이냐!”
“감히!”
저들이 어둠 속에서 차분하게 말했다.
화천은 검을 꾸욱 눌러잡고 눈을 살짝 내리감았다.
‘혈오!’
그는 혈오를 그려봤다. 혈오의 모습을 상기했다. 혈오 곁을 떠나기 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해 낸다.
순간, 화천의 머릿속에 수많은 선들이 그어졌다.
이것이 무공인가? 아니다, 빛의 물결이다. 온갖 색들이 물결처럼 떠밀려 온다.
그 중에는 매우 날카로운 물결도 있다.
빛이 선이 된다. 선이 칼날처럼 반짝이면서 달려든다.
스읏!
화천이 빛의 칼날이 다가오기 전에 미리 피해냈다. 동시에 검을 들어서 빛의 허리를 잘랐다.
쒜에엑!
초식이 아니다. 무공도 아니다. 단지 검을 들어서 빛만 갈라낸다.
“커억!”
답답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엇!”
“이익!”
저들도 깜짝 놀란 것 같다.
혈루마옥 사람들은 이들 네 명의 존재를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이들을 뚫을 방도가 없지 않은가. 어떤 무공을 수련했는지조차 모르는데 무슨 수로 싸우나.
단지 녹천주의 말만 믿는다. 이들을 뚫기 위해서는 활화산 두 개를 건너야 한다는 것.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그런데 화천은 간단하게 베어냈다. 너무 쉽게, 마치 이들의 무공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맙다!’
화천은 혈오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래도 아비라고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나.
후루루루룩! 휘르르르륵!
빛이 물결친다. 이리저리 사방을 빼곡하게 에워싼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한 줄기 빛이 달려든다.
화천은 저들을 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빛만 쳐다봤다. 달려드는 빛의 허리만 잘랐다.
쒜에에엑!
“커억!”
답답한 신음이 또 한 번 울렸다.
스륵!
화천은 녹천주의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그를 지키던 네 명은 어둠 속으로 영원히 잠겨버렸다. 자신들의 무공이 속속들이 읽혔다는 것을 모른체 무작정 검을 휘드르다가 영문도 모르고 죽었다.
그들은 지옥길을 걷고 있는 지금도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그리 쉽게 당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녹천주, 그가 하늘이라고 생각했던 분, 그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공 중이다.
스읏!
화천은 검을 들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녹천주를 향해 검을 쏘아냈다.
녹천주는 혈오에게 진기가 붙들려 있다.
그에게 죽은 네 명처럼…… 녹천주의 진기가 혈오와 접촉하고 있는 이상, 그는 운공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혈오가 계속 깊은 정적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니까.
쒜엑! 퍽!
검을 잡은 손아귀에 묵직한 울림이 전해져 왔다.
‘헛!’
증평주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찬 바람이 전신을 휘감는다. 절곡 밑에서 휘몰아친 강풍이 옷자락을 펄럭인다.
그녀는 한 줄기 빛을 봤다.
혈루마옥을 떠나기 전에 느꼈던 편안함, 안온함……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어낼 때 감지했던 느낌들이…… 그런 것들이 잠들어 있던 그려는 일깨웠다.
“아!”
그녀는 주변부터 둘러봤다.
무슨 일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