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58
158
第三十二章 배신(背信) (3)
슈각! 퍽! 슈가가각! 퍼어억!
손목에 둔중한 울림이 일어난다. 검을 통해서 기분 좋은 진동이 전해진다.
검이 피를 머금었다.
음악오귀의 살점이 베어지고, 피가 쏟아지고, 뼈가 갈린다.
검을 들고 적과 마주 선 무인치고 지금 일어나는 감각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이런 감각이 언제든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할 것이다.
그런 일이 화천에게 일어나고 있다.
상쾌하다! 이 순간만큼 살아있다는 감각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도 없으리라.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화천은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 전력을 다해서 질주하는 야생마다. 힘이 전신 곳곳에 들어가 있으며, 가장 큰 위력을 떨쳐내고 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상태다.
멈춰!
화천은 그 마음의 소리를 따르고 싶었다.
이대로 질주하는 것은 위험하다. 멈추라는 명령은 그의 직감이 내린 것이 아니다. 땅의 울림이다. 땅이 멈추지 않으면 두 다리를 부러트리겠다고 말한다.
땅의 소리는 들어야 한다.
그러나 화천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그는 이미 질주하는 야생마이기 때문에, 진기가 너무 강하게 쏟아져 나가고 있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다.
가가가각! 가각!
계속해서 혈검을 이어간다. 누군가를 베고, 또 누군가를 벤다. 눈앞에 있는 모든 적을 벤다. 그때,
슈웃!
갑자기, 너무도 갑자기…… 땅이 검을 쏘아냈다.
“훅!”
화천은 짧게 헛바람을 내질렀다.
본능적으로 피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최선을 다해서 몸을 비틀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몸을 비튼다.
퍽!
땅에서 솟구친 검이 배를 뚫고 등 뒤로 삐져나갔다.
몸이 꿰뚫렸다.
복부에서, 창자에서, 등에서…… 난생처음 겪어보는 지독한 통증이 치민다.
“허흑!”
화천은 검을 맞는 와중에도 있는 힘껏 신형을 빼냈다. 단 한 수, 지금 땅에서 솟구친 검만 피하자는 생각에서 있는 힘껏 뒤로 몸을 퉁겨냈다.
하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이미 달리는 말이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몸이었다. 죽을 힘을 다해서 멈춘다고 해봤자, 겨우 속도를 약간 늦추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퍽! 푸욱!
검은 정확하게 복부를 뚫고 들어와서 제대로 꿰뚫었다.
“후욱! 훅!”
“크윽!”
소리 없는 신음이 장내를 뒤덮는다.
상처를 입은 자들은 이를 악물어서 고통을 참아내지만…… 그래도 새어나가는 신음은 어쩔 수 없다.
일귀가 양팔이 잘린 채 풀썩 주저앉아있다.
사귀가 일귀 옆에서 장삼을 찢어 상처를 봉해주고 있지만 이미 터져 나온 선혈은 그칠 줄 모르고 흐른다.
이귀는 가슴이 쩍 벌어졌다.
“컥! 컥!”
이귀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오귀가 금창약을 발라주고 있지만, 그의 상태는 일행 중에서 가장 위중하다. 그가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만에 하나도 안 될 듯이 보인다.
삼귀는 얼굴에 긴 검상을 입었다.
화천은 일귀를 베고, 이귀를 깊이 파고들었다가 빠져나오는 길에 삼귀를 쳤다.
화천은 유화아의 검을 복부에 꽂고 꿋꿋한 모습으로 서 있다.
화천의 안색은 매우 창백하다. 복부를 통해서 붉은 선혈이 비 오듯이 흘러내린다. 그래도 그는 지혈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유화아만 쳐다본다.
유화아는 투살진기를 제대로 쳐냈다.
이 땅에서 유화아의 진기는 화천을 능가한다. 이 땅을 벗어나면 상황이 바뀌겠지만, 현재는 유화아가 지력을 받아서 화천보다 강한 진기를 뿜어낸다.
거기에 마벽이 유화아를 완전히 가려주었다.
유화아는 기습을 한 것이다.
토끼가 지나가는 길목을 얌전히 지키고 있다가 아무 경계도 하지 않고 다가오는 토끼를 한 번에 와락 덮친 호랑이.
유화아의 공격은 그랬다.
이치대로라면 화천은 서 있지도 못해야 한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투살진기를 정통으로 터트렸는데, 그것을 고스란히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헌데 화천이 서 있다.
유화아의 검은 한 치를 벗어났다.
화천을 백 번, 천 번이고 즉사시킬 수 있는 공격기회를 잡았는데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 땅은 여섯 사람에게 천력을 실어주었는데, 그 힘을 받고도 화천 한 명 쓰러트리지 못하다니.
음악오귀는 묵묵히 상처만 치료했다.
유화아는 차분한 눈으로 화천을 지켜봤다.
화천과 유화아,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 모두 담담한 표정으로,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서로를 응시한다. 지금 이 결과, 모두 이해한다는 듯이.
“훗! 투살진기를 제대로 겪었군.”
화천이 복부에 꽂힌 검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말했다.
“진식(陳式)은 지력(地力)을 변화시키고, 수십 년에 걸쳐서 쌓이고 쌓인 지력이 한 몸에 모아지고…… 그 힘을 이용해 검법을 구사한다. 과연! 후후!”
화천은 이 땅의 비밀을 알아냈다.
그런 점은 음악오귀와 유화아도 짐작하고 있었다. 수련을 거듭하면서 이 땅의 비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쉽게 이용했다.
마지막 순간, 두 사람은 서로 간에 진기가 동종(同種)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화아의 진기와 화천의 진기가 같다.
유화아가 검에 실은 진기와 화천이 검을 전개하면서 뿜어낸 진기가 같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진기를 수련했는데,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이 땅의 힘이 두 사람의 진기를 짓눌렀다. 두 사람의 진기는 이 땅의 진기로 대체되었다. 즉, 유화아는 물론이고 화천도 이 땅의 힘을 빌렸다는 뜻이다.
이 땅의 힘은 특정한 누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현음자는 단지 지력을 쌓아놓았을 뿐이다. 누가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까지 지적해 놓지 못했다.
“놀랍군요. 언제 알았어요?”
유화아가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방금 전.”
“천재가 따로 없군요.”
“후후후! 사실 천재는 따로 있지. 괴물이라고 해야 하나? 선천적으로 알고 있는?”
“아!”
유화아가 화천 등 뒤에 있는 누미를 쳐다봤다. 아니, 그녀가 안고 있는 아이를 쳐다봤다.
“그래도 놀라워요. 방금 전에 느꼈는데 그걸 금세 이용하다니. 우린 한참 걸렸어요.”
“이제 물러설 건가? 아니면……?”
유화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여기는 우리가 마지막 보루예요. 누산 어르신께 가는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물러서지 못해요. 이제 우리가 할 게 없지만…… 그냥 우리 목숨을 취하고 가세요. 그래야 우리도 속 편하죠.”
“그럴 줄 알기는 했는데.”
화천이 검을 들었다.
“졌습니다.”
누산은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도 눈이 있으니 직접 봤다. 유화아가 실패하는 모습을.
누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화아의 실패는 현음자의 실패를 뜻한다. 현음자의 안배가 실패했다는 뜻이다.
누산이 더더욱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음악오귀와 유화아가 그토록 힘들게 얻은 이 땅의 힘을 화천은 너무 손쉽게 얻었다는 것이다. 일견(一見), 한 번 쓱 보고 얻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이 땅은 유화아가 아니고 화천을 위해서 남겨진 것처럼 보인다.
이 땅은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두 무공만이 이 땅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다. 수많은 무인이 운공을 해봤지만 오직 저들만이 힘을 얻었다.
화천은? 그는 어떤 무공을 수련했기에?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화천뿐만이 아니라 혈루마옥 다른 무인들도 조금씩 눈에 생기를 보인다는 것이다.
저들 모두, 혈루마옥 무인들 모두가 이 땅의 힘을 얻고 있다.
저들은 각기 다른 무공을 수련했을 터인데,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를 배운 자는 없는데…… 저들 간에 공통점이 있다면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었다는 것…….
‘혈오! 혈오였던가!’
누산이 눈썹을 찌푸렸다.
혈오가 이 땅의 비밀을 안다. 혈오를 통해서 저주를 푼 자들, 혈오에게 진기의 비밀을 누설한 자들이 이 땅의 비밀을 얻는다. 혈오가 얻고, 다음에 나눠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현음자가 저들을 막을 생각이었다면…….’
누산은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현음자는 분명히 혈루마옥의 저주가 풀린다는 사실을 예감했다. 혈오를 통해서 풀릴 것까지 예상했다. 허면 이 땅의 힘이 저들에게 건네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생각이 잘 이어지다가 이 부분에서 엉킨다.
‘어떻게 막으라고. 저들을 어떻게 막으라고…….’
저들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이 땅으로 불러들였는데, 오히려 저들에게 더 강한 힘을 준 격이 된다.
현음자가 오판을 했고, 누산이 우행을 저질렀다.
누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몸을 일으켰다.
“가자. 저들은 그나마 남은 저항의 불씨인데…… 저들이 죽으면 조그만 불씨마저 사라질 것…… 허허! 이럴 줄 알았다면 저들은 숨겨두는 것인데.”
누산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암울한 마음으로.
일촉즉발의 순간, 화천은 검을 거뒀다.
유화아의 뒤쪽에서 커다란 사인교(四人轎)가 내려오고 있다.
기련산 같은 험산에서 가마를 타고 산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산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누산이 내려온다.
유화아도 마지막 일전을 벌이려다가 손을 거뒀다.
그녀의 검은 화천의 복부에 꽂혀있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일귀의 대도를 주워들었는데…… 자신의 병기도 아닌 데다가 일전 싸움에서 서로의 실력 차이를 명확히 봤기 때문에 굳이 싸울 필요가 없었다.
부딪치면 죽는다.
이것은 명확하다. 화천이 음악오귀와 유화아를 능가한다.
이 땅은 음악오귀에게만 힘을 준 것이 아니라 화천에게도 주었다. 어쩌면 더 강한 힘을. 천재가 더 강한 힘을 가져갈 것은 뻔한 이치이니까.
죽을 각오로 칼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사인교가 가까이 다가와서 멈춘다.
자신을 호위해 달라고 말하던 누산이 보인다. 사인교 위에 편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수고했다.”
누산이 유화아를 보면서 말했다.
유화아는 고개만 까딱여 응답했다.
누산이 화천을 보면서 말했다.
“누구와 말을 해야 하는 거요? 당신이요, 아니면……?”
누산의 눈길이 화천 뒤에 서 있는 누미에게로 향했다.
“누미예요. 누씨죠.”
“누산이다. 멸문한 족속이지만 그래도 한때는 존장이었으니 말은 내리마.”
“까불지 마요. 누가 말 내리래요.”
“…….”
“누산.”
누미가 누산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하인이나 종을 부르듯이 싸늘하게.
누산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누미를 쳐다봤다. 이 정도 모욕쯤은 참을 수 있다는 듯이.
누미가 물었다.
“재산이 많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돼?”
“성(省) 하나 살 정도는 되지.”
누미는 너무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누산의 말에 놀란 사람은 많다. 화천도, 혈루마옥 무인들도,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음악오귀도.
성(省)을 살 정도가 되다니.
동서고금 천년 중원 역사 속에서 이토록 재산이 많았던 사람은 없다. 거부, 거상이 무척 많았지만…… 현재도 거부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 모두 이 정도는 아니다.
재산이 이 정도라면 황제도 부럽지 않다.
누미가 말했다.
“모두 내놔야겠어.”
이번에는 누산이 웃으면서 말했다.
“까불지 마라. 누가 준다고 그랬나.”
“호호호!”
“하하하!”
누미와 누산이 거의 동시에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누미는 누산을 죽일 수 있다. 누산은 누미에게 재산을 주지 않을 수 있다.
누미가 그 사실을 알았다.
누산은 겁박할 대상이 아니다. 죽이든가, 달래야 한다. 성 하나 살 만한 재산을 가졌으면서도 세상에 재산의 실체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거부라면.
누산이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존장으로 말하마. 저들 상처부터 치료하고 보자. 사람이 그 정도 여유는 가지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