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79
179
第三十六章 탈몽(脫夢) (4)
세상을 살면서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은 하는 말이 있다.
뜻대로 되는 게 없네.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실패하거나 그릇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세상 일이라는 것,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오산삼귀(吾山三鬼)와 화산오검(華山五劍)이 만났다.
약조를 하고 만난 것이 아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어깨를 스치며 지나쳤다.
그들은 서로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허나 본능적으로 적이라는 사실은 감지했다. 조만간 벌어질 정사대전에서 적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이다.
“어이!”
화산오검 중에 한 명이 지나치는 자들을 불러세웠다.
그것이 시작이다. 몇 번의 말다툼 끝에 그들은 각기 병장기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서로 생명을 노리며 드잡이질을 벌였다.
결과는 오산삼귀의 완패다.
그들은 목숨을 잃었다.
화산오검은 싸움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이 막 오산삼귀를 척결했을 때, 그들 주위로는 어느새 삼십여 명에 이르는 무인들이 밀집해 있었다.
스릉! 스릉! 스릉!
병장기 뽑히는 소리가 싸늘하게 들렸다.
화산오검을 둘러싼 무인들은 왜 싸우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안다. 이미 짐작하고 있다. 그리고 서로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사실도.
“이 자식들이 이렇게 많았나?”
“어차피 오합지졸들!”
그러나 화산오검을 둘러싼 마인들은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그들 중 절반은 혈천성에서 특별히 양성한 정예 무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도 무공의 장단점을 샅샅이 파악한 상태였다.
화산오검이 목숨을 잃었다.
싸움은 이미 벌어졌다.
정사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양쪽이 널찍한 들판에서 만나 ‘시작!’하면 싸우는 그런 싸움이 아니다. 상대를 보고 적이라고 판단되면 무조건 죽이는…… 특정한 적이 없는 싸움이다.
공식적으로 특정한 적은 있다.
정도와 마도가 서로를 응징하려고 한다.
헌데…… 정도와 마도의 구분이란 것이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정사(正邪) 중간에 속한 사람들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세상을 우롱하면서 기행을 일삼는 기인들도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쪽으로부터 공격받는다.
정도 무공을 수련했다고 해서 정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마공을 수련했지만 마성(魔性)을 짓눌러서 정인(正人)으로 대우받는 사람도 있다.
정과 마의 구분은 대단히 작위적이다.
산음에서 무당산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이렇게 적아(敵我)를 구분할 수 없는 무인들이 득실거린다.
그들은 서로가 살기 위해서 적을 죽인다.
적으로 간주되고,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가차 없이 공격을 가한다.
소소하게 벌어진 싸움들은 무리를 불러온다. 응집된 무리는 더욱 강한 힘으로 상대를 압박한다. 핍박받은 자들은 동료를 규합하여 세를 불린다.
이미 싸움은 산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당금 무림정세는 정사대전이 불가피해졌다. 검왕이 말리고 싶어도 말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미 심지에 불이 붙어버린 화약고다.
“검왕, 입장을 분명히 해줬으면 하는데.”
유계판서 화상상이 말했다.
“밥상을 차려놨다고 반드시 밥을 먹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밥을 먹을 것인지 아닌지는 알려줘야지.”
검왕은 여전히 침묵했다.
그는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다. 화천이 물러간 이후에도, 십마가 다가선 다음에도 침묵했다.
하오문이 떨어져 나갔다.
검성 제일령주 휘하 무인들이 물러섰다.
검왕은 이 부분에 대해서 일절 부언하지 않고 있다. 뭔가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침묵한다.
검왕이 무당파를 멸절시킬 생각이라면 지금과는 반대 행동을 취해야 한다. 하오문을 더욱 적극적으로 껴안아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취해야 한다. 제일령주 휘하들을 이용하여 정도무림을 분열시켜야 한다.
검왕은 이런 수단들을 모두 내쳤다.
싸움을 앞두고 칼을 버린 것과 같은 행동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십마가 이런 행동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검왕이 심경 변화를 일으켰다!
그래서 유계판서가 단도직입적으로 캐묻는다. 싸울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 싸우든 말든 간섭하지 않는다. 검왕 자유다. 다만 검왕의 뜻만은 알고 싶다.
별로 어려운 질문이 아닌데도 검왕은 침묵한다.
“상황이 매우 복잡해졌어.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어서…… 아마도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무언가는 해야 될 거야. 그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줬으면 하는데.”
백화요녀가 말했다.
말을 하는 사람은 십마다. 하지만 듣는 귀는 무척 많다. 검왕에게서 내쳐진 하오문, 제일령주 수하들뿐만 아니라 혈천성의 이목까지 검왕을 주시한다.
“키키킥! 굳이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할 일은 이미 정해진 거고.”
십조잔괴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 어떤 경우가 생기든 십마는 이 싸움에서 빠질 수 없다. 그들은 혈천성과 함께 정도 무림을 상대해야 한다. 오랫동안 별러왔던 숙원이니까.
이 싸움에서는 검왕이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무방하다.
정도무림과 혈천성은 팽팽한 편이다. 정도무림에 고수가 많지만 혈천성에도 많다. 물론 검성이 정도무림 편에서 싸운다는 전제조건을 달았을 때.
현재 검성은 정사 중간으로 빠졌다.
검왕이 마인 편에서 싸운다면 검성은 검왕의 뒤를 받칠 것이다. 정도무림이 그토록 믿던 검성에게 어처구니없게도 뒤통수를 얻어맞는 격이 될 게다.
그러나 검왕이 뒤돌아선다면…… 검성은 정도무림 쪽에서 싸울 공산이 높다.
허면 하오문은 어느 쪽인가?
하오문도 검성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검왕과 손을 맞잡을 것이다. 검왕이 어느 쪽에서 싸우든. 하지만 검왕이 물러선다면? 그때는 아마도 정도무림 쪽에 설 공산이 높다.
검왕은 적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놓아주었다.
마도 무림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크게 염려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정도무림에 합류했을 때, 그때에서야 정마 세력은 팽팽해진다.
서로가 공멸할 것이다.
혈천성과 검성은 이런 점을 염려했다. 두 세력이 부딪치면 무림이 피폐해질 것이기에…… 그래서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싸우지 않고 견제해왔다.
검왕은 이런 싸움에 불만 지펴놓고 빠지겠다는 것인가?
검왕은 십마가 다그쳐도 침묵했다.
“하오문주는 오고 있습니까?”
“소식이 없네.”
“제일령주는?”
“마찬가지네.”
“흠!”
“그 두 사람,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번 싸움…… 내일이나 모레쯤 벌인다면 승산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거야 자네 하기 나름이겠지.”
“제가 싸운다면?”
“그럼 말할 것도 없지. 무당파는 살아남기 힘들 거네.”
“그럼 무림 패권은 누가 쥐게 될까요?”
“그거야 자네…… 흠! 그게 아닌가?”
“하오문이나 제일령은 얻는 게 없습니다.”
검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흔히들 이 싸움의 주인공으로 검왕을 떠올린다. 검왕이 무당파를 몰락시키면 그가 차기 무림패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데 아니다. 그렇지 않다.
지금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 양상을 보면 마와 정의 싸움이지 검왕의 싸움이 아니다.
이 싸움의 끝에는 검왕이 없다. 오직 마인만 존재한다.
즉, 검왕이 무림 패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혈천성이 무림 패주가 된다.
결국 하오문과 검성 제일령이 얻는 것은 없다.
헌데도 그들은 왜 이 싸움을 지지하는 것인가? 검왕이 친구라서? 조력자라서?
혈천성이 무림 패주가 되면 검성은 해체 수순을 밟아야 한다. 하오문 역시 세력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린…… 자네가 하오문에 준 것이 많다고 생각했네만…….”
하오문은 결코 대가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검왕을 도왔다. 누강 일행이 증평에게 쫓길 때도 하오문은 전력을 다해서 도왔다.
누가 생각하더라고 하오문과 검왕은 밀착 관계에 있다.
비형은잠은 그런 점을 묻고 있다.
“…….”
그 질문에서 검왕은 또 침묵했다.
검왕이 말했다.
“내일 저녁까지 하오문주를 만나야겠습니다. 만날 수 있을까요?”
“무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놈을 무슨 수로 만나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자네, 지금 말은?”
“하오문주는 근방에 와있을 겁니다.”
“흠! 그래!”
“내일까지 만날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납치를 해야겠군.”
“…….”
검왕은 그 말에 부인도 수긍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하오문주를 제 발로 걸어오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를 만나려면 검왕이 직접 움직이거나, 그를 사로잡아서 그물에 넣어와야 될 게다.
“그런데…… 자네 말을 빌리자면 검성 제일령주도 근방에 와있어야 하지 않나?”
“와 있습니다.”
“……!”
비형은잠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검왕은 침묵만 지켰다. 앉은 자리에서 움직인 적도 없다. 하지만 그는 비형은잠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다.
비형은잠은 잠시 검왕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알았네. 하오문주가 근방에 있다면 내 쥐구멍까지 샅샅이 뒤져보지. 내일 저녁 무렵까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만날 수 있도록 조처하겠네.”
“부탁드립니다.”
대답은 없었다.
비형은잠은 어느새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말을 하다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하늘도 알지 못했다. 오직 어둠 속에서만 중얼거린 음성이었으니까.
검왕이 일어섰다.
화천을 꺾은 후, 하루 만에 일어났다.
그가 걷기 시작한다. 무당산을 향해서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는다.
“검왕이 움직인다!”
“드디어 싸움이다!”
사방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소리를 발하는 자는 혈천성 마인임이 틀림없다.
그들은 검왕을 읽지 못했다. 검왕이 무당산을 향해 걷기 시작하자 드디어 싸움을 하는 줄 안다.
제일령 수하들과 하오문도들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그들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검왕을 지켜본다.
도무지 검왕의 의중을 모르겠다.
검왕은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들을 내쳤다. 십마조차도 멀리했다. 그들이 가까지 다가와서 한 편이 되어 싸워줄 것을 요구했을 때, 검왕은 침묵했다.
검왕은 이 싸움에서 손을 뗄 것처럼 보였다.
헌데 다시 무당산을 향해서 걷는다.
푸득! 푸드드득!
사방에서 전서구가 분분히 날아올랐다.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후후!’
검왕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제이령이 검성 성주를 은거시켰다. 검성 성주를 허름한 초옥으로 밀어 넣고, 끝내는 자진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그 일은 제이령이 한 것이 아니다. 제이령의 뒤에는 혈루마옥 촌장이 버티고 있었다. 검성 성주는 제이령의 압박 때문에 자진한 것이 아니라 혈루마옥 촌장의 압박을 받아서 자진한 게다.
혈루마옥 촌장의 압박!
혈루마옥에 갇혀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수로 검성 성주를 압박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제이령에게는 검성 성주를 압박할 만한 세력도 무공도 없었다는 점이다.
제일령, 그가 있었다.
제일령과 제이령은 숙적이 아니다. 제일령과 제이령이 손을 잡았다면 모든 의문이 한 번에 풀린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검성은 이미 제일령의 손아귀에 흘러 들어간 후일 것이고…… 검성 성주는 빈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
더욱이 기가 막힌 것은 검성 성주가 후사를 제일령에게 부탁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성주는 제일령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 듯하다.
하기는…… 자신 역시 제일령을 세상에서 가장 친한 벗으로 여기고 있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할 부분도 제일령과는 상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는 무당산을 향해 걸었다. 그러면서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이 단순한 기우이기를,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기를 간절히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