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77
77
第十六章 혈석(血石) (2)
천력파혈단은 사약(死藥)이다.
검왕이 그런 약을 그들에게 주었을 때는…… 사약을 복용할 만한 사건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이다.
천력파혈단은 검왕 자신에게도 독약이 될 수 있다.
만약 음악오귀가 마음을 삐끗하게 먹고 검왕을 향해 검을 들이댄다면…… 기왕 죽을 것, 천력파혈단을 복용하고 이판사판으로 싸운다면…… 검왕도 무사하지 못한다. 이 시대, 최강자라는 검성 성주도 무너트릴 수 있다.
천력파혈단이 마인의 손에 쥐어지면 무서운 흉기가 된다.
검왕이 그만한 독약을 내주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것이 진짜 천력파혈단이 맞는다면 이는 굉장한 일이다.
어쨌든 유화아가 천력파혈단을 복용했다.
음악오귀는 마지못해서 사약을 털어 넣었다.
천력파혈단은 입에서부터 역한 비린내를 풍긴다. 해파리를 만질 때처럼 미끈거린다.
이런 걸 목구멍 안으로 넘겨야 하나?
목구멍을 넘어간 진액은 곧 활화산이 되어서 폭발한다.
파아아아앗!
피가 뜨겁다는 것을 느낀다. 피의 순환이 생생하게 느낀다. 피가 이토록 빨리 움직였나? 피라는 것,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팔목에서는 힘줄이 불끈 치솟고, 근육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육체적으로 최상의 상태다.
진기는 굴강해진다.
이러다가 기도(氣道)가 터져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한 힘이 용솟음친다.
그들이 수련한 마신천강기는 굴강한 철벽이다.
지금은 더 강해졌다. 너무 강해서 그 무엇도 마신천강기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기가 막힌 것은…… 그들 스스로 서로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일귀가 이귀, 삼귀를 느낀다. 그들의 기운이 감지된다. 그들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여서 철벽이 더 강해질 수 있는지 스스로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유화아가 알려주어야 알 수 있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들 스스로 안다.
또 하나, 영통(靈通)하다는 느낌이 든다.
뭐라고 할까? 하늘과 인연이 닿았다고 할까? 천지간의 모든 기운이 읽힌다. 그들의 속삭임이 들린다.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천지자연 속에 일부가 된 느낌이다.
극상의 경지가 드러난다.
그들이 복용한 것, 천력파혈단이 맞다.
“이게 십성의 경지인가?”
일귀가 만족한 듯 웃었다.
“죽을 것 같지 않은데…….”
삼귀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지금 그들의 상태는 최상 중의 최상이다. 평생 이렇게 좋은 상태였던 적이 없었다.
이런 상태가 두 시진만 유지된다?
믿을 수 없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상태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허나 두 시진만 지나면 약효는 그친다.
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지금 상태가 너무 좋다. 천력파혈단을 복용한 것이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이렇게 딱 두 시진만 살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우리는 무공의 최정점에 선 것이다.
음악오귀가 스스로 움직였다.
삼귀가 반 보 물러서고, 오귀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만든 오방진(五方陣)은 워낙 견고해서 천신도 부술 수 없다.
지금 상태라면 유화아가 천중을 차지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들이 움직이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유화아 역시 천력파혈단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안다.
유화아의 상태도 그들 못지않다.
투살진기는 이미 극성에 올라섰다. 그녀 역시 오방진의 도움이 필요 없다.
그들은 각기 최상이다.
허나 여전히 오방진 속의 투살진기를 고집한다.
그들에게 닥치는 위험이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검왕이 천력파혈단까지 내줄 정도라면 상당하지 않겠나. 그러니 힘을 합친다. 강함을 두 배로 늘린다.
그러면…… 적은 어디에 있나?
음악오귀는 유화아에게 묻지 않는다.
이제는 그들도 느낀다. 스산하게 다가오는 차가운 바람을 감지한다. 발바닥을 통해서 따가운 느낌이 든다. 회색 물결이 핏빛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기세가 무척 흉흉하다.
유화아가 옳았다. 상대가 누구든 예전의 그들이라면 일초지적도 되지 않는다.
“호수 한복판에서 싸움이라…… 수공(水功)에 능한 자겠지?”
그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상대가 무엇을 수련했든 상관없다. 음악오귀는 수공을 수련했나? 아니다. 수공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수전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는다.
최강이 되면 장소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산이면 어떻고, 강이면 어떻고, 진흙뻘이면 어떤가.
그들은 무심히 호면을 쳐다봤다. 한참동안…… 그러다가 음악오귀가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아니, 사귀와 오귀가 조금 빠르게 움직였다.
쒜에에엑!
화살이 낮게 깔려서 호면을 스치듯 날아간다.
슈웃!
상대는 물속에서 나타났다.
그는 마치 강한 부력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솟구쳤다는 듯 불쑥 솟아났다.
푸와악!
그가 물 위로 오르면서 물방울이 튀었다.
그 속에…… 화살 두 대가 목표를 잃고 뚝 떨어진다.
사귀와 오귀가 쏘아낸 화살에는 천 근의 진력이 숨겨져 있다. 최강의 마신천강기를 담았다.
상대는 극강의 화살을 물방울로 밀어냈다.
“한 명이군.”
삼귀가 창으로 상대를 겨누며 말했다.
그들 전부를 위협할 정도라면 적어도 일개 문파 정도는 공격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강한 문파…….
그들 머릿속에는 적벽검문이 떠올랐다. 적어도 그만한 문파가 그들을 죽이려고 달려들어야 한다. 그래야 천력파혈단으로 최상의 상태에 이른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
헌데 상대는 한 명이다.
그 한 명…… 무시할 수 없다. 지상 최강의 고수 여섯 명이 한 명 앞에 주눅 들린다.
저 사람, 어디서 온 누구인가?
검왕은 군산에 도착할 즈음에 마군이 공격해 올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틀렸다. 마군은 진작 공격해 왔다.
검왕에게 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여섯 사람은 마군이라는 말에 긴장했다.
마군, 십마 중에 일인!
그가 공격해 오면 무슨 수로 막는다지? 어떻게 도망가지?
그들은 실제로 천력파혈단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무공을 단숨에 극강의 상태로 이끌어준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어떤 상태가 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 지금 같으면 마군 정도는 걱정도 하지 않는다.
마군을 상대하기 위해서 음악오귀가 모두 나설 필요도 없다. 한 명이 나서면 동수(同手)요, 두 명이 나서면 필승이다. 세 명이 나서면 마군은 손도 쓰지 못한다.
천력파혈단이 이것이다.
즉, 지금 그들은 마군 여섯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과 같다. 마군 여섯 명이 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 연수했다. 그러고도 주눅이 든다.
세상에 이만한 고수가 있었나?
검왕은 물론이고 검성 성주라고 해도 그들 앞에서는 힘주어 말하지 못하는데…….
“누구냐?”
일귀가 침중하게 물었다.
“후후후!”
상대는 웃기만 했다.
헌데…… 상대의 모습이 이상하다. 물속에서 솟구친 모습 그대로인데,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
사내는 분명한데, 치렁하게 기른 머리가 얼굴을 가리운다. 흑빛 머리카락 사이로 두 눈이 요상하게 희번덕거린다. 검은 동공은 없고, 흰자위만 가득한 눈이다.
입술은 검붉다.
붉은 기운보다 검은 기운이 더 많은…… 그래서 죽은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는 물 위에 둥실 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통나무를 밟고 있지만…… 마치 땅 위에 서 있는 듯 안정되어 있다.
“부운답수(浮雲踏水)?”
유화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그녀는 무공이 강하다. 음악오귀보다 더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공에 대한 지식까지 해박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무림에 대해서 잘 모른다.
“부운답수는 정종무공이고, 저건 마류파(魔流波)라는 거다.”
사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마류파? 그게 뭔데?”
유화아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그녀는 마공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다. 막수선자의 봉황검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처지에 무인들이나 여타 무공들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정종무공도 잘 모르는데 마공인들 알겠나.
“저게 마류파? 마류파 맞냐?”
일귀가 사귀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맞습니다. 위로 솟구친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고 부유하고 있잖아요. 진기로 끊임없이 파장을 일으키는 겁니다. 마류파가 아니면 저런 현상이…….”
“음. 맞군.”
일귀가 사귀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더 들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사귀가 말한 현상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목도하고 있다.
상대는 마류파라는 마도신법을 사용한다.
허면 마류파를 사용하는 문파, 혹은 무인이 누구인가?
이 부분에서 여섯 사람은 또 길을 잃었다.
마류파라는 무공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누가, 어느 문파에서 사용하는지 알지 못한다.
마류파는 그야말로 전설상의 무학이다.
천신이 봉황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는 말처럼 허황된 말로 전해져왔다.
발바닥을 통해서 진기를 방출한다.
발밑에 놓인 물체는 진기의 파장에 영향을 받고 움직임을 일으킨다. 땅에서 시전하면 땅이 흐름을 일으킨다. 물에서 시전하면 파도가 일어난다.
그 힘들이 신형을 움직인다.
마류파를 시전하는 사람은 진기를 쏟아내기만 하면 이 세상을 주유하듯이 떠돌아다닐 수 있다.
황당한 말이지 않나?
헌데 그런 무공이 정말로 나타났다. 그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시전되고 있다.
그가 웃었다.
“크크큭! 크크크큿! 크크크크큿!”
귀신의 호곡성이 이럴까? 두 손을 들어서 귀를 막고 싶다는 충동이 절로 일어난다. 순간,
쉬잇!
그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아니, 움직인다 싶었는데 어느새 코앞으로 바싹 달려들었다.
“위험!”
일귀가 말할 필요도 없다.
오귀는 동시에 오방진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자신들의 기운을 보태서, 마신천강기의 진기를 흘려내서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철벽을 만들어 냈다.
꽈앙!
지축을 흔드는 폭음이 터졌다.
동시에 음악오귀는 발밑이 푹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제길!’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상대와 음악오귀가 일으킨 충격은 매우 컸다.
단단함과 단단함, 강함과 강함이 정통으로 부딪쳤다. 그리고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 쪽도 깨지지 않았고, 어느 쪽도 손해 보지 않았다.
그들은 비등했다.
허나 그 충격의 여파는 컸다. 그들이 타고 있던 배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음악오귀는 뱃전을 박차고 위로 솟구쳤다.
허나…… 이제 어떻게 할까?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발밑은 호수고, 부운답수 같은 경곡을 시전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무공이 그 정도였다면 음악오귀라고 불리면서 이리저리 쫓겨 다녔겠는가.
음악오귀는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했다.
부운답수를 시전해 본다!
부운답수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물 위에 서본다. 다행히도 물에는 부서진 뱃조각들이 널려 있다. 조금 큰 판자를 잘 골라서 밟으면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읏!
“윽!”
이귀가 제일 먼저 내려섰고, 대부 무게 때문에 중심을 잃고 크게 휘청거렸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물에 빠지는 횡액은 면했다. 두 발로 물을 밟고 섰다.
천력파혈단이 안겨준 것은 내공뿐만이 아니다. 무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중심감각, 위험에 대한 반응 등등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다.
그들 여섯 명은 부서진 뱃조각을 밟고 섰다.
그동안 물속에서 나타난 자는 즐기기라도 하는 듯 그들을 한 바퀴 빙 맴돌았다. 미끄러지듯 물 위를 질주하면서. 그리고…… 또다시 달려든다.
쉬이이잇!
그의 권력(拳力)보다도 그가 일으킨 물보라가 먼저 덮쳐와 얼굴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