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47)
28. 홈그라운드 (2)
정기호가 경찰서로 끌려간 그때.
고창범은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일단 적절한 조치를 했습니다만, 이거 괜찮겠습니까? 상부에서 벌써 입질이 슬슬 오는 게 아무래도 뒤탈이 날 놈입니다.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건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은 반드시 피를 볼 겁니다.]“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혹시라도 이번 일과 관련해서 책임을 묻는 사람이 생긴다면, 명진건설에서 앞으로의 인생을 전부 책임진다고 전해 주십시오. 특히 서장님이야말로 이번 일로 부담이 많으실 텐데,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명진건설은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서장님이니까 하는 말인데, 타지 사람들이 대산까지 내려와서 행패를 부리는 꼴이 참 거슬리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렇긴 하죠. 여기가 어디라고 서울 잡것들이 행패를 부리는지 원.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회장님은 잘 지내십니까? 전에는 가끔 서에 찾아오셔서 막걸리도 한 잔씩 하고 그랬는데, 요새 들어 걸음이 뜸하십니다.]“회장님이야…….”
상대는 대산의 경찰서장이었다.
고창범이 ‘회장’ 자리를 확정할 때까지는 이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은 사람이었는데, 고창석과의 후계자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도 통화를 바로 끊지 않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덕분에 고창범으로서는, 개인적인 부탁을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10분이 더 지나고서야.
뚝.
통화를 끊었다.
결국에 잘 봐 달라는 내용의 마무리였고, 고창범은 복잡한 얼굴로 사무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참 X 같은 세상이네.”
몇 달 전.
김현성이 서울행을 준비하면서, 그는 자신의 부재를 대비해서 ‘가족의 안전’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김현성이 오바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무너트리려는 세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설마 가족까지 건드리는 그런 쓰레기들이겠는가.
그런데 현실이 되었다.
대놓고 미행하는 정기호뿐만 아니라, 인근을 돌아다니며 김현성에 대해 알아보는 사람들도 확인했다.
‘현성이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서 우르르 내려왔다는 의미겠지.’
입맛이 씁쓸했다.
자신도 올바르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대의 가족을 건드리는 그런 쓰레기 같은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학교 폭력과도 거리가 멀었다.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심리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고창범의 생활기록부를 장식한 수많은 폭력 사건은 똑같은 양아치들끼리의 서열 싸움이었다. 원정까지 다니면서 때려눕혔기에 양아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김현성을 노리는 이 집단은 같은 쓰레기가 보기에도 정도를 많이 넘어섰다.
서장에게도 말했듯.
이 이상의 조치는 불가능했다.
대산의 경찰 서장을 압박할 정도의 배경들이 존재하기에, 이번 조치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경고의 의미였다. 이것만으로도 상대는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산 전체가 대놓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민간인을 함부로 건드렸다간 그 불똥이 서울에까지 번질 테니 말이다.
일단은 여기까지.
이제는 다음 스텝이었다.
김현성은 가족들의 안위뿐만 아니라, 또 다른 위험도 경고했었다.
고창범이 비서에게 연락했다.
“직원들에게 전해. ‘그걸’ 준비하라고.”
[알겠습니다.]* * *
예상대로였다.
정기호는 결국 풀려났다.
골든 서클에서 보낸 변호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경찰들도 그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정기호는 곧바로 박형준에게 연락했다.
“……상황이 이렇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상대가 우리의 의도에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고?]“그렇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대응입니다. 경찰관들이 등하교를 지키고, 거주지 인근에는 청년자치회라는 핑계를 내세워 주변을 끊임없이 순찰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문제를 일으킨다면 김현성의 가족을 건드릴 수 있겠지만, 아시다시피 ‘노골적인 고의’가 입증된다면 문제를 수습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김현성이 이렇게 대비할 정도로 철저한 놈이라면 뒤탈이 날 확률도 매우 높습니다.”
“아무래도 명진건설 고창범이 후계자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 주요한 것 같습니다. 지방 사람들이야, 서로 똘똘 뭉쳐 외지인을 배척하지 않습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저희의 의도가 달갑지 않은 것이겠죠.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차라리 고창범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창범을 치워 버린다면, 김현성을 보호할 배경이 완전히 사라질 겁니다. 지금 가족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고창범의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 고창범은 계획대로 처리하도록 하지.]“알겠습니다.”
칙칙.
정기호가 담배를 물었다.
이번 일에 책임을 묻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뒤늦게 안도감이 들었다.
동시에 분노도 치밀었다.
얼굴 통증이 불쑥불쑥 느껴질 때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김현성에 대한 적의가 활활 불타올랐다.
“그리고 고창범과 동시에 김현진을 다시 한번 노리는 건 어떻습니까? 학교 외부에서 그렇게 철저하게 감시한다면, 늘 그렇듯 골든 서클의 방식으로. 노골적인 악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는 학교 폭력으로 김현진을 건드린다면, 김현성도 분명히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을 겁니다.”
[일을 맡을 애들은 있고?]“제가 지방 브로커들에게 연락을 돌리겠습니다.”
[그건 네게 맡기도록 하지.]“감사합니다!”
우렁차게 대답했다.
통화를 끊고는 담배를 힘껏 빨아들인 그가, 이빨이 환히 드러날 정도로 웃으며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현성아,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 * *
미성년자들은 어리석다.
정확히는 미숙하고, 철이 없다.
고창범이라는 배경이 있든 말든, 눈앞에서 현찰 다발을 흔들면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의뢰를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현진을 건드려 달라고요? 죄송한데, 이 학교에서 그게 가능한 애는 단 한 명도 없어요. 김현진의 형이 그 유명한 김현성이잖아요. 천일고 미친개. 예전에 멋모르고 김현진 건드렸다가 개X된 케이스도 있어서, 저희 학교에서는 그 누구도 그딴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거예요.]지방 브로커들에게 좀 논다는 학생들의 연락처를 받았다.
그중 일단 대산 과학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 연락했는데, 본론을 제대로 말하기도 전에 기겁하면서 대화를 끊어 버렸다. 시작부터 불길한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골든 서클의 의뢰는 웬만해서 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게 좋지만,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다른 학교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연락을 돌렸다.
대성 미래, 천일고와는 관련이 없는 학교들이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황당함을 넘어서 충격적이었다.
[아, 그쪽이구나. 대산 애들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사람이. 저기요. 왜 현진이를 건드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미 당신에 대한 경고가 떨어졌어요. 어디서 X 같은 의뢰를 주는데 그걸 받아들인 새끼는 천일고에서 무조건 죽여 버릴 거라고. 그러니까, 지랄하지 말고 그냥 꺼지세요.] [3천을 주겠다고요? 와 씨, 돈 많으신가 보네. 그런데 의뢰를 받아들였다가 팔 한쪽이 부러지면. 그렇게 불구가 되어 버리면. 3천으로는 너무 싸잖아요. 한 100억 줄 거 아니면 연락하지 마세요.] [……진짜 세상 물정 모르신다. 김현성에 대한 소문 못 들어 보셨어요? 걔, 진짜 미친 새끼예요. 걔 건드린 애들 지금 병원 신세는 기본이고 소년원에도 끌려가고 난리가 났는데, 어떤 미친 새끼가 돈 좀 벌어 보겠다고 그딴 미친 짓을 해요. 대산 바닥에서 김현성은 그냥 논외의 존재예요.]며칠 내내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단 한 통도.
호의적인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박형준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는데, 막막한 상황에 정기호는 굳은 얼굴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이 새끼 대체 학교를 어떻게 다닌 거야?”
아무래도.
학교 내부를 들쑤시겠다는 작전은, 시작도 못 해 보고 실패로 끝난 것 같았다.
* * *
그날 저녁.
박형준은 정기호의 보고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대산에서 의뢰를 받겠다는 애들이 없어서 주변 일대까지 연락을 돌려 봤는데, 김현성의 악명이 워낙 대단해서 선뜻 하겠다는 애들이 없습니다. 조금 무리한 의뢰비를 제안했는데도 고려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사실상 지방에서 처리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서울에서 애들을 불러와서…….]“아니야. 거기까지 해. 서울 애들을 우르르 몰고 가면 그것만큼 이상한 것도 없을 테니까. 일단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뚝.
전화를 끊었다.
따로 문책하지도, 크게 분노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예상했다.
김현성을 조사하면서 그가 보였던 업적은 정말 대단했고, 대산을 정벌한 스토리가 있기에 골든 서클의 방식으로 김현진을 건드리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새삼 더 대단한 놈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아무리 한 지역을 먹었다고 한들, 이 정도로 공포를 각인시키는 건 성인들도 힘들었다.
그렇다면 역시나.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김현성을 지탱하는 버팀목을 무너트리는 수밖에.’
이번 계획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일개 개인보다는 갖춘 자들에게 더 치명적인 방법.
회장 자리에 올라서야 하는 고창범이라면, 내일 벌어질 일에 더더욱 곤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현성을 손절하고 살아남을지.
아니면, 같이 몰락해 버릴지.
‘뭐든 명진건설에는 치명적인 악재가 되겠지. 골든 서클에 대행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내일이 기대되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유의미한 성과를 얻을 것이다.
* * *
다음 날.
명진건설은 오전부터 발칵 뒤집혔다.
“국세청에서 나왔습니다.”
“모두 하던 일을 멈춰 주십시오. 지금부터 의도적으로 자료를 폐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탈세의 정황이 명확하다고 판단하고 책임을 물을 겁니다. 모두 자료 챙겨.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우르르.
정말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명진건설 본사 앞에 수많은 차량이 정차하더니,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국세청 사람들이 본사를 전부 털어 가기 시작했다. 컴퓨터 본체부터 시작해서 수기로 작성한 자료들까지. 허망한 얼굴로 말리려는 직원들을 뿌리치며, 그들은 조금의 먼지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들은 고창범의 사무실에도 들이닥쳤다.
대놓고 본체의 연결선을 해체하는 모습에, 고창범은 생각보다 평온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대단하네. 이렇게 하루아침에 한 기업을 털어 버리기도 하고.”
“고창범 씨. 말은 똑바로 합시다. 우리가 대단해서 이렇게 터는 게 아니라, 명진건설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정황이 명확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애초에 세금 깨끗하게 내고 아무런 문제 없이 기업을 운영했다면, 저희가 이렇게 만날 일은 없었겠죠.”
“그렇다고 해 두죠.”
“하?”
국세청 소속.
이번 일을 담당한 정세훈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상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골든 서클의 청탁으로 국세청이 움직였고, 그로 인해 명진건설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세무 조사가 이루어졌다. 단언컨대 절대 피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기업을 정말 깨끗하게 운영했다고 한들, 수백 수천억이 오가는 회사에서 티끌의 오점도 남기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막말로 국세청이 털면 무조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건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었다.
게다가.
이미 명진건설의 비리 정황을 확보했다.
건설업 자체가 원래 구멍이 많은 업종이기도 했고, 실제로 명진건설이 목적이 불분명한 돈을 사방에 뿌린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들이 대산에 강력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정말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만 생각하는 깨끗한 기업이 아니라, 적당히 손익을 나누는 비리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체.
고창범의 반응은 뭐란 말인가.
‘고졸이라더니 현실 파악이 느린가. 뭐, 금방 현실을 깨닫겠지. 세무 조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피식, 웃었다.
사무실을 모두 털고서 정세훈이 말했다.
“가자.”
밀물처럼 들이닥쳤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창범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