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202)
에필로그, 새로운 삶 (1)
화창한 날이었다.
날이 풀리고 선선해지는 날씨에, 한국 대학교 정문에 무언가를 촬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구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희 ‘공부 만렙’ 채널에서 오늘 대한민국의 명문 한국 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공부 만렙.
유명 너튜브 채널이었다.
수험생들에게 필요한 정보, 그리고 대학의 현황 같은 것들을 알려 주는 채널인데 구독자 숫자가 무려 50만 명에 달했다.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채널이지만, 촬영에 동원되는 스태프는 의외로 소박했다.
너튜버와 촬영을 담당하는 스태프 둘.
너튜버는 카메라를 앞에 두고 익숙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한국 대학교를 방문한 이유는 바로 공부 만렙의 정기 콘텐츠, 대학 탐구를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이 한국 대학교 하면 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뭘까요?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전교 1등들이 득실거리는 세계. 예, 맞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한국 대학교는 지나가는 학생을 아무나 붙잡아도 전교 1등일 뿐만 아니라, 수능 만점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공부 만렙에서는 오늘 그 소문이 진실인지를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걸음을 옮겼다.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고, 너튜버는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붙잡고 물었다.
“혹시 학창 시절에 전교에서 몇 등이셨나요?”
“1등이요.”
“역시! 그럼 수능 성적은…….”
“……그건 한 문제 틀렸어요.”
“와씨. 지금 표정 보셨습니까? 한 문제 틀렸다는 말을, 마치 대역죄인처럼 말하고 있어요.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명문, 한국 대학교의 충격적인 현실입니다.”
너튜버는 산책을 나온 강아지처럼, 빨빨거리면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한 사람이 눈에 포착되었다.
고된 공부로 다크서클이 깊게 내려온 학생이었는데, 다행히도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주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의과 대학에 재학 중인 강민우입니다.”
“헐. 의과 대학. 드디어 끝판왕이 나왔군요! 실례지만, 전교 1등은 당연할 테고 수능 성적을 알 수 있을까요?”
시선이 집중되었다.
너튜버를 중심으로 몰려든 학생들의 시선에, 강민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그때가 불수능이었어서 문제 자체는 일곱 개 정도 틀렸어요. 다행히 그 해에 평균적으로 높은 성적이다 보니 의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요.”
“불수능이라면. 만점자가 한 명밖에 없었던 그때를 말하는 거죠?”
“예.”
“와, 대박. 그때 일곱 개면 진짜 잘 본 거일 텐데. 앞으로 수능을 준비하고 있을 수험생들에게, 수능 대박의 비결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의대생.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치였다.
하지만 강민우는 그 성적이 본인의 능력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과외 선생님이 하드캐리했습니다.”
그날.
강민우의 인터뷰는 난리가 났다.
대체 어떤 과외 선생님을 두었기에, 불수능에서 살아남는 의대생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는 의견이 폭발했다. 하지만 강민우는 DM이 밀려들어도 절대 선생님의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다. 강민우의 아버지, 그리고 김현성의 이름이 워낙 유명했기에,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건 평화로운 일상에서 지나가는, 작은 해프닝에 불과한 사건이었다.
* * *
강민우는 오랜만에 두근거림을 느꼈다.
정말 지옥 같다는 표현이 적합한 대학 생활 속, 젊은 혈기를 자극하는 미팅 자리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바로 인근 무용과!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데 주선자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 학과에 미팅 나갈 인원이 마땅치 않아서, 체육학과 애들도 섞어서 나갈 거야. 그건 괜찮지?”
동행자들의 정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린 나이에 피지컬을 뽐내는 체육학과는 만만치 않은 경쟁 상대지만, 강민우는 반반한 얼굴에 의대생이라는 학벌까지 자랑했다. 사실 최근 너튜브 영상이 나가고 DM으로 수많은 대시를 받았다. DM이라는 수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지, 폭발적인 관심에 본인에 대한 자신감이 충분하게 차올랐다.
히죽, 웃었다.
메마른 대학 생활에 무용과 학생을 만날 생각을 하니, 그는 벌써부터 미팅에 성공한 것만 같았다.
그런데.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이름이 뭐라고요?”
“진짜 잘생겼어요.”
“반칙이야. 몸도 좋아.”
무용과 학생들.
명불허전이었다.
기대한 만큼의 예쁜 외모였지만, 그녀들은 하나같이 ‘단 한 명의 학생’에게 시선이 고정된 상태였다.
문제는 그녀들의 마음을 강민우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말이 돼? 저 얼굴에 한국 대학교면 사기잖아.’
체육학과 학생.
잘생겨도 너무 잘생겼다.
기생오라비 같은 외모.
탄탄한 체격.
이름도 김시우란다.
뭔가 이름마저 잘생긴 것 같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생각에 강민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요.”
“예?”
무용과 학생들이 고개를 돌렸다.
살짝 불청객을 바라보는 듯한 그녀들의 눈빛이 심기를 건드렸다.
“요새 사회적인 이슈로 세상이 시끄럽던데. 혹시 강동철 검사라고 아세요?”
“……그래서요?”
“아하핫. 아니요, 그냥. 그분이 제 아버지라서, 혹시나 해서 아는지 물어본 거예요.”
스스로도 알았다.
본인이 매우 찌질하다는 것을.
하지만 김시우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강민우로서는 배경을 팔아먹는 방법밖에 없음을 알았다.
그런데 문득.
김시우와 마주친 시선에, 강민우는 상대를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 *
골든 게이트.
그 사건이 학생들의 손을 떠나간 이후, 김시우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복수는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고, 지금부터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곧바로 떠오르는 선택지는 운동이었다.
한때 태권도 유망주이기도 했고, 김현성과 같이 고된 훈련을 감당하면서 신체적으로 많이 발전한 상태였다. 하지만 고민 끝에 본인의 길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혐오감이 남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긋지긋했던 학교 폭력에 앞으로는 일반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때.
김현성이 말했다.
“조금만 더 공부해서 체육학과에 진학하는 건 어때? 내가 도와줄게. 너도 알잖아. 내가 한국대 한 명 입학시킨 거.”
귀가 솔깃했다.
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올바른 지도자가 있었다면, 자신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체육학과에 진학해 학생들의 진로, 그리고 부상을 방지하는 올바른 운동 방법. 그런 것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현성의 요구로 공부는 하고 있었지만, 그때부터는 김현성이 전담으로 붙어서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1년 뒤.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1년 뒤.
김시우는 한국 대학교에 입학했다.
가르침을 떠나, 생각보다 머리가 똑똑했기에 이룬 결과였다.
입학하고서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고, 2학년인데도 불구하고 미팅은 처음으로 나갔다.
사실 친구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나갈 생각이 없었다.
“……으흠.”
김시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친구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계속 연락이 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응?”
친구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김시우가 메시지를 주고받은 내용을 확인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눈에 보이는 것을 의심했다.
-뭐 해요?
-일어났어요?
-수업에 들어가셨나.
=예.
-수업 끝났어요?
-저기요?
=방금 끝났습니다.
황당한 대화였다.
상대방 여자는 아침부터 뭐 하냐는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김시우는 점심, 그리고 수업이 모두 마무리된 이후인 5시에 두 번째 메시지를 보냈다. 상대로서는 애가 탈만 했다. 분명히 관심이 있어서 연락을 보내온 것일 텐데, 상대가 이딴 식으로 메시지에 답하면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친구가 물었다.
“지금까지 이딴 식으로 연락한 거야?”
“어.”
“관심 없는 거야?”
“관심은 있는데?”
“응?”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딴 메시지가 관심이 있는 사람의 태도라니.
친구의 머릿속에 설마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너 지금까지 연애 몇 번 했냐?”
“연애?”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김시우의 학창 시절.
중학교 때는 운동부였고, 고등학교 때는 김현성과 같이 복수에 매몰되었다.
“몇 번 하긴 했는데. 대부분 고백받았다가 바로 헤어진 수준이라, 사귄 일수는 열흘도 안 될걸?”
“미친 새끼.”
체육학과 최고의 인기남.
그의 진실은 황당할 정도였다.
친구가 소리쳤다.
“이 새끼야. 얼굴 그렇게 쓸 거면, 그냥 나주면 안 되냐? 1억? 2억? 얼마면 되냐? 얼마든 그 얼굴만 가질 수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전부 토해 낼게. 제발, 나랑 얼굴만 바꾸자.”
* * *
세상은 평화로웠다.
지긋지긋했던 윤병호 회장의 항소도 결국에는 징역으로 확정이 났고, 윤현민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정신 병원의 비참한 현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골든 게이트는 정의를 구현한 사례로 남았으며, 사람들은 그 결과에 대한민국의 정의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렸다.
-요새 김현성은 뭐 하고 사냐? 어느 순간부터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 같은데.
골든 게이트의 시발점.
대한민국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는 존재기에, 김현성의 이름은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궁금하기는 하네.
-김현성 머리 똑똑하잖아. 그 성적이면 한국대도 씹어 먹을 텐데,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으려나.
-그럼 벌써 소문이 퍼졌을걸? 대학교 커뮤니티 같은 곳에 올라온 적 없잖아.
-혹시 프로 격투기 선수 준비하는 중이 아닐까. 아니 왜, 김현성 강남 오피스텔 사건만 보더라도 혼자서 그 많은 인원을 상대할 정도로 싸움 졸라 잘한다며. 머리가 똑똑한 건 알겠는데, 그런 재능을 썩히는 건 국가적인 손해 아니냐? 우리도 UFC 챔피언을 볼 기회라고.
-살짝 가능성 있는데? 최근에 김무열이라고 UFC 데뷔해서 연승하고 있는 걸 보면, 김현성도 절대 불가능하지만은 않음.
김현성.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존재였다.
복수를 위해서라지만 불수능 때 수능 만점의 성적, 그리고 골든 서클을 무력으로 때려눕힌 전적.
재능이 상식을 벗어났다.
뭘 해도 성공할 사람이다 보니, 김현성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팩트를 확인하지 않은 추측에 불과했다. 대학에 다닌다느니, 종합 격투기를 준비한다느니. 그동안 보여 주었던 행보의 연장선으로 추측할 만한 말을 떠들어 댔다.
그러다.
한 사람이 진짜 근황을 말했다.
-뭔 소리야. 김현성 지금 명진건설에 다니는데.
* * *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긴 복도를 지나서 한 사내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들어 올렸다.
“다들 커피 좀 마시고 해요.”
“꺅-!”
“역시 실장님밖에 없다니까.”
여직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던 일도 멈춰 두고 한달음에 달려온 그녀들은, 소소한 스몰토크를 나누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일련의 상황.
신입으로서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여직원들이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경우가 없기에, 신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시기에 다들 이렇게 좋아해요? 외형만 봐서는 엄청 젊어 보이시는데.”
“아, 신입이라 잘 모르겠구나.”
신입의 말처럼.
사내는 어려도 너무 어려 보였다.
아무리 높게 봐도 20대 초중반 정도?
회사의 중책을 맡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외모였다.
하지만 여직원을 비롯해, 이 회사에 몇 년 이상 몸담은 사람들은 절대 사내를 우습게 보지 않았다.
현재는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명진건설.
건설 업계 최고의 명진을 만든 일등 공신.
여직원이 싱긋 웃었다.
“2년 전에 명진건설이 어려움을 겪었었거든. 그때 회사를 하드 캐리했던 이 회사의 진정한 실세.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현성 비서실장님의 얼굴은 무조건 기억해 둬. 저분이 명진의 황금 동아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