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ish Rockstar RAW novel - Chapter 186
186
186화 피날레
장장 일주일에 걸쳐 이어졌던 리드 페스티벌.
첫 시작부터 세계 최대 규모라는 이유로 이목을 모았던 리드 페스티벌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국 수많은 화젯거리를 낳고 마지막 무대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 리드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장식할 피날레 공연에 리원과 원앤온리가 선다.
문화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오직 ‘락’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서 모인 25만 관객 모두가 이 순간만을 고대했다.
원앤온리의 등장 이전에 미리 메인 스테이지의 자리를 가득 채운 관객들. 관객들은 어깨동무한 채 원앤온리의 노래를 불렀다.
20만을 훌쩍 넘기는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한입으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 이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뒤, 메인 스테이지의 대기실.
리원과 원앤온리의 멤버들은 일찌감치 무대에 오를 준비를 마치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객석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이미 원앤온리 멤버들 한 명, 한 명의 귀를 웅웅 울리고 있었다.
“벌써 귀가 먹먹해질 정도라니. 26만이라나 7만이라나…….”
“그러게 여차하면 환호성에 날아갈지도 모르겠네.”
리원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에 태하가 대답했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한결과 하민은 어떠한 대답 대신 나란히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어찌 웃는 얼굴도 비슷해진 모양.
“뭐, 무대가 좀 커지고 관객 수가 좀 많아진다고 한들 별 차이 있겠어요? 그냥 우리가 우리 음악 보여 주고 내려오면 되죠.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 다 잘됐으니까요.”
“그럼, 그거 말고 우리가 뭐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도 아니잖냐. 무대 위에서 들려주는 음악에 최선을 다한다. 그게 전부지.”
태하의 말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주억였다. 한때 2만 명 앞에서도 덜덜 떨 때가 있었지만, 이제 제법 베테랑 티가 났다.
무대를 앞뒀을 때 침을 바싹바싹 마르게 하고 심장을 조이는 듯한 긴장이 없어졌냐면 거짓말. 하나, 이제는 그 긴장을 슬기롭게 대처할 수준은 됐다.
‘긴장이 클수록 무대에서 터트리는 첫 음과 환호성이 더 짜릿하게 느껴지는 법이지.’
적당한 긴장은 몸과 마음을 더 날카롭게 벼릴 좋은 도구였다.
이제는 리원뿐 아니라 원앤온리의 멤버 모두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25만이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감에 리원이 한 모금 물을 삼켜 긴장감을 달랬다. 긴장과 기대는 함께 뒤섞여 언제든 리원이 최고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다.
‘곧 시작이구나.’
무대에 오르기까지 초읽기. 멤버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무대를 준비했다.
꿈은 있지만, 희망은 없던 10년 차 연습생.
오랜 지기를 잃고서 스스로 세상을 등진 채 은거하던 천재 기타리스트.
꿈은 높은데 꿈 대신 악명만 높이던 베이시스트.
십 대 전부를 입시에 쏟아부었지만, 실패로 방황하던 입시 드러머.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진 것이라곤 쥐뿔도 없던 이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전 세계가 이들의 음악을 기다리고, 단 한 번의 무대에 20만을 넘기는 관객들이 객석을 채운 채 이들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밴드의 이름 그대로 원앤온리, 세상에 하나뿐이고 다시없을 밴드.
톡- 톡- 톡-
초마다 일정한 소리를 울리던 초침이 마침내 다시 한 번 12를 가리켰다.
정시, 초침과 분침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순간.
‘시간이 됐다.’나 ‘이제 가자.’는 말은 필요 없었다.
초침이 12를 때리기도 전에 이미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이제부턴 목을 아껴야 할 때 긴말은 필요 없었다.
“가자.”
*
“와아아아-!”
원앤온리가 무대에 오르자 땅이 흔들리는 게 아닐까 싶은 무서운 함성이 울렸다. 리원과 원앤온리 그리고 각 멤버들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마구 뒤섞여 리원의 고막을 때렸다.
그저 숫자 25만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만든 25만이란 숫자. 그들이 내뿜는 함성엔 묘한 마력이 있었다.
무대에 오른 리원은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은 느낌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거 까딱하면 잡아먹히겠군.’
25만이 내뿜는 환호성과 열기,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락스타로 불리는 리원조차 그 에너지와 기 싸움을 벌이기 급급했다.
오프닝 때 잠깐 오른 무대와는 그 무게감도 호응도 완전히 달랐다. 이건 본 게임이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에는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이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분명 처음이었다.
이제껏 리원을 긴장하게 했던 그 어떤 무대도 지금과 같지 않았다.
귀를 먹먹하게 채우는 환호성과 눈을 가득 채우고도 까마득하게 펼쳐진 인파는 높은 파도요. 곧 해일이었다.
사람들이 제 자리를 지킨 채 환호성을 내지르는 모습은 바다가 일렁이는 모습처럼 보였다.
마치 혈혈단신으로 바다와 맞서기라도 하는 기분.
‘짜릿하다.’
시각과 청각뿐이 아니다. 피부를 쭈뼛 서게 하는 공기와 코끝으로 전해지는 사람 냄새. 그리고 묘하게 긴장의 맛이 느껴지는 입안까지.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오늘의 무대는 그저 사람이 많은 것 그 이상이었다.
‘뭔가 다르군.’
리원이 시선을 돌려 그의 뒤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동료들을 살폈다.
‘다들 멀쩡하네. 나만 느끼는 건가……?’
뒤돌아본 리원과 눈이 마주친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거나 윙크를 하는 등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이 중압감을 느끼는 건 리원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됐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린 리원이 씩 웃음을 지었다. 25만의 관객을 향해 보란 듯 말이다. 그 미소 어디에도 긴장감은 비춰 보이지 않았다.
리원은 이 순간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이 새로운 자극과 저릿한 긴장감도 결국 새로운 자극일뿐.
이런 긴장감에 흔들릴 리원이 아니다. 그가 걱정한 것은 혹여나 원앤온리 멤버들이 흔들릴지도 모르는 점.
‘모두들 멀쩡하다면야……. 더 걱정할 필요 따위 없지.’
마이크 스탠드 앞에 선 리원이 마이크를 꺼내 손에 쥐었다.
파도도 해일도 좋다. 아니, 바다가 통째로 그 위로 쏟아부어진다 한들 상관없다.
‘그게 누구든 몇 명이든 상관없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른다.’
마음을 다잡은 리원이 손가락을 튕겼다. 리원의 수신호를 읽은 멤버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리원이 전주가 지나길 기다리며 음악에 깊이 집중하기 시작한 때.
띠리링-!
리원의 뇌리를 통해 ‘음악사의 별’들이 응원을 보내왔다.
[‘리빙 레전드’가 그의 인생에 역작을 응원합니다.] [‘팝의 황제’가 당신의 무대를 응원합니다.] [‘기타 귀신’이 당신의 무대에 기대감을 숨기지 못합니다.] [‘로큰롤의 왕’이 당신을 자랑스레 여깁니다.] [‘전설의 보컬리스트’가 당신의 목소리에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비운의 천재’가 당신과 원앤온리 밴드의 앞길을 축복합니다.] [‘로큰롤의 선구자’가······.] [‘퍼플 프린스’가······.] [‘열반에 든 전설’이······.] [‘오렌지 스타더스트’가······.] [‘음악의 성인(聖人)’이······.] [‘왈츠의 왕’이······.] [‘신이 가장 사랑한 천재’가······.] [‘백발의 제왕’이······.] [‘지중해의 거세가왕’이······.]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음악의 아버지’가······.] [음악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무대가 시작됩니다. ‘음악의 신’이 이 무대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음악의 신’이 함께합니다.]온리원. 그 이름이 다시 한 번 역사의 위에 올랐다.
*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 평생의 추억. 원앤온리는 전설적인 무대로 리드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했든 그렇지 않든 세상 모든 사람이 이 지난 무대를 칭송하는 데 입을 모았다.
[전설의 밴드, 전설의 무대… ‘원앤온리’ 27만 관객의 눈과 귀를 홀리고 마음을 훔치다] [락의 시대? …어쩌면 온리원의 시대, ‘온리원’ 전 세계서 모인 락스타들 위에 우뚝 서다] [‘마성의 락스타’ 온리원, 문화 대국 영국의 심장에 태극기를 꽂다] [‘락 음악’ 전 세계 각종 음악 차트서 당연 압도적인 기세 선보여… 전 세계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선두에 원앤온리가] [‘원앤온리’ 귀국… 화관문화훈장 수여, 한류·한글 확산 공로 인정]리원과 원앤온리는 리드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잘 장식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까지 눈에 띄진 않았을 텐데 위아원 엔터테인먼트 소속 뮤지션들까지 전부 함께라 말 그대로 무리 지어 움직이는 수준.
공항에서부터 꽤나 시끌벅적한 환영 인사를 받고 리원이 대표로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서야 가까스로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장님.”
“다녀왔어.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지?”
리원이 일찍이 준비돼 있던 차에 오르자 운전석에서 반가운 얼굴이 익살스레 인사를 건넸다. 리원의 최측근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이진형이었다.
“한국이야 별일 없었지. 별일은 다 영국에서 있었고. 굳이 별일이라면 너도 들었겠지만, 훈장 받기로 된 거?”
“그렇지. 훈장 수여가 있었지…….”
리원이 잠시 잊고 있었던 훈장 수여건을 생각해 냈다. 원래 오래전부터 말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번에 영국에서의 활약으로 일이 착착 진행되더니 확실시됐다.
“훈장 수여 건 빼면 그냥 익숙한 일들뿐이지. 네가 무대를 뒤집어 놓고, 회사엔 이래저래 러브콜들이 쏟아지고, 우리는 점잖게 생각을 해 보겠다며 고사할 뿐. 그래도 좋은 게 있어.”
“뭔데?”
“온리원과 원앤온리가 안 되면 아크엔젤과 그 외에 외국인 밴드들도 좋다는 쪽들이 제법 있더라고. 뭐 의논해 봐야 하겠지만 일단 그런 의사를 밝힌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래? 그거 형 말대로 좋은 일이네. 안 그래도 히로랑 해리네 밴드 앨범 내놓으면 음악 외 활동도 좀 풀어 주려고 했는데. 애들 주머니도 채우고 좋지.”
“그래, 다행이지. 그래서 두 밴드 다 앨범 제작 들어가는 거야? 영국에서 그 친구들도 선방했나 보네? 그 깐깐한 사장과 노네임 프로듀서를 구워삶다니. 큭큭.”
사장과 노네임을 입에 올린 진형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응, 그렇게 됐어. 다들 잘하더라고.”
블랙테러와 혈랑, 지난 리드 페스티벌에서 보여 준 이들의 활약은 리원, 아니 위아원 엔터 사장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시장에 내놓기에 합격점.
리원이 블랙테러와 블러드 울브스의 음악을 봐주고 일일이 작은 부분까지 조언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일. 하지만 물질적인 욕심은 또 별개였다.
‘나는 법을 가르쳤으니 한동안은 양껏 날 수 있게 풀어 둬야지. 훨훨 날다 지치면 그때 또 새로운 걸 가르치면 그만이다.’
이제까지는 두 밴드를 어린아이 대하듯 보살피고 가르친 리원이지만 앞으로는 조금 달라질 터.
“네가 회사 차린다고 곽 사장님 밑에서 일 좀 배우라고 할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거 같다. 이젠 진짜 사장님 같네. 하여간 정말 고생 많았다. 이제 돌아가거든 몇 주 좀 쉬어.”
“뭐 영국 갔다 온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몇 주씩이나 쉬어. 준비 기간은 좀 됐어도 정작 영국에 체류한 시간은 열흘도 안 되는데.”
두 눈으로 창밖의 도심을 살피는 리원의 대답에 진형이 슬쩍 눈치를 봤다.
“그러면……?”
“나야 사나흘 쉬면 그만인데 다들 좀 쉬게 내버려 둬야지. 일주일 뒤부터 다시 일해야지. 할 일이 산더민데.”
원앤온리의 보컬 온리원으로서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제 다시 위아원 엔터의 사장과 프로듀서 노네임으로 돌아갈 때.
리원은 욕심쟁이였다. 특히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더욱 확실했다.
‘녀석 이렇게 욕심도 많고 끼도 많은 놈이 연습생 시절은 어떻게 버텼는지…….’
리원의 욕심에 십 년도 더 전부터 리원을 알고 지낸 진형도 혀를 내둘렀다.
마성, ‘악마의 목소리’는 아무한테나 가는 게 아니니까. 악마와 욕심만큼 잘 어울리는 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