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ish Rockstar RAW novel - Chapter 199
199
199화 마지막 곡
그사이 사상자는 수만이 아니라 십수만으로 늘어나 있었고, 이미 천문학적이던 금전 피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피해 금액을 갱신 중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 상처받고 고통받은 이재민들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시작된 일.
사천 대지진 구호 성금 마련을 위해 기획된 자선 콘서트는 한번 불이 오르자 뜨겁게 타올랐다.
그저 단순히 뜨겁게 타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를 다 뒤엎어 활활 태울 정도. 그 콘서트의 특성상 1985년 라이브 에이드의 재림이란 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사천 대지진 자선 콘서트, 전 세계 100여 개 국가 동시 생중계. 1985 라이브 에이드의 전설 잇는다.] [세계 최고의 록 스타 온리원의 지휘 아래 헤쳐 모인 전 세계 유명 가수들… 기획 단계부터 세계적 관심 모아.] [전 세계의 별들이 모이는 전설적 무대, 한국과 미국, 영국서 30여만 관객 앞에 두고 생중계. 전 세계 동시 생중계 장장 24시간 이어진다.]전 세계 각지의 내로라하는 유명 가수들이 한날한시, 한자리에 모이는 역대급 무대. 이미 출연을 확정 지은 가수들만 30여 개 팀.
그런 중에도 계속해서 숱한 가수들이 참가 의지를 전해 왔고, 이제는 초기 기획에서 무대로 꼽힌 올림픽주경기장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공연장을 해외에 두 개 더 두게 됐다.
“이건 이미 내 손을 떠났군.”
진행 상황을 지켜보던 리원도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을 지경. 이 자선 콘서트는 이미 리원의 손을 떠난 상태였다.
물론 최초로 이번 자선 콘서트의 기획을 낸 것으로 여전히 전 세계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이젠 리원의 통제를 벗어난 일.
리원에게 남은 몫은 그저 한 명의 뮤지션으로서 무대에 올라 무대에 충실할 것뿐.
“재밌을 거 같지?”
[기대가 되긴 하네요.]자선 콘서트 건이 제 손을 떠난 덕에 한결 짐을 던 리원이 기꺼운 마음으로 역대 최대의 무대를 기다렸다.
*
공연 당일, 거짓말처럼 막힘없이 진행된 자선 콘서트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못지않은, 아니 그 둘은 합친 것보다 더한 세계적 관심 속에 화려한 막을 올렸다.
서울의 올림픽주경기장은 빈자리 하나 찾아볼 수 없게 좌석이 꽉 찼고, 미국의 루이지애나 슈퍼돔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도 같은 수순을 밟고 있었다.
한국과 미국, 영국서 있을 콘서트를 쭉 이으면 만으로 하루를 꼬박 채울 대장정.
이미 콘서트 기획 초기에 목표했던 성금액을 채운 지 오래.
이제는 전 세계 기아와 난민 문제 해결, 그리고 세계인의 봉사 활동 및 기부 행위 고취를 위한 세계적 의식으로 콘서트의 존재 의의가 바뀐 지 오래였다.
그런 변화 속에 확실해진 건 1985 라이브 에이드가 가진 전설의 아성을 무너뜨렸다는 것.
최소 20억의 동시 시청자, 동시 시청 예상치 25억의 전무후무한 세계 최대 공연이 시작됐다.
기획을 처음 낸 장본인 리원의 회사 위아원 엔터. 위아원 엔터의 소속 밴드이자 이전 세대의 전설적 밴드, 메이비 클라우디가 그 시작을 알렸다.
무대 위 가면을 쓴 객원 보컬과 무대 아래를 꽉 채운 가면 쓴 관객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
메이비 클라우디를 시작으로 블랙테러와 블러드 울브스, 노아 왓슨, 아크엔젤을 비롯해 자처해서 오늘 무대에 함께하기로 한 팝스타들이 무대를 화려한 별 무리로 수놓았다.
국내 최고의 발라더가 관객을 울게 했고,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최고의 아이돌 밴드가 칼군무를 선보이며 흥을 돋우기도 했다.
속사포 같은 래핑의 래퍼도 등장했고, 듣는 것만으로 춤을 유발하는 멋진 EDM 무대도 이어졌다.
무대 위에서 모든 걸 쏟아 내기라도 하듯 열정적인 무대가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 이어졌고, 그 끝에 마침내 리원과 원앤온리가 무대에 올랐다.
국내 자선 공연의 마지막 게스트로서 책임이 막중한 자리였지만, 무대에 오르는 리원과 멤버들의 얼굴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자신 있죠, 다들?”
“두말하면 입 아프다. 목 아끼고 무대 가서나 잘해, 인마.”
“당연히 잘해야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문제없죠!”
리원의 질문에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런 동료들의 모습이 리원에게 더욱 힘을 불어넣었다.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가죠. 나가서 다 찢어 놓읍시다.”
“좋아, 오늘 무대에서 죽자!”
“오케이. 가자고.”
“오빠들 가즈아!”
이젠 정말 눈빛만 마주쳐도 통하는 사이.
무대로 향하며 리원과 보폭을 맞춰 걷는 세 멤버의 눈빛은 형형했고, 기세는 태산 같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밴드가 세계 최대의 무대에 올랐다.
*
리원 특유의 맑고 곧은 고음이 시원하게 솟아 대기를 찢어발겼다. 하늘 높이 솟은 리원의 목소리는 벼락처럼 내리쳐 그대로 십만 관중의 마음을 훔쳤다.
리원이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내뱉은 첫 소절. 그 첫 소절은 이전까지 같은 무대에 섰던 수많은 가수들의 존재감을 지웠다.
한때 전설로 추앙받던 메이비 클라우디도 원앤온리의 뒤를 잇는다는 아크엔젤도 오늘 공연 중 최고의 호응을 받았던 노아 왓슨도 누구 하나 남기지 않고 싹.
그저 리원이 내뱉은 첫 소절에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국내외서 내로라하는 유명 발라더나 래퍼, 해외의 유명 팝 밴드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단박에 존재감이 사라졌다. 불이 꺼지고 옅은 연기라도 남기는 촛불 쪽이 되레 상황이 나을 정도.
압도적이다 못해 잔인할 정도의 무대 장악력이었다. 이건 그냥 지워 낸 정도가 아니라 마치 이 무대에 섰던 적도 없었던 것처럼 완전한 소멸.
원앤온리가 아닌 다른 가수의 무대를 기대해서 이 자리에 오게 된 관객들도 악마의 목소리가 머금은 마성을 견뎌 낼 재간이 없었다.
마성의 록 스타가, 원앤온리가 무대를 휘어잡았다. 비단 이 무대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전 세계서 TV로, 인터넷으로, 라디오로 이 무대를 지켜보는 모두가 같은 증상을 겪고 있었다.
유난히 라이브에 강하던 원앤온리. 매체를 통해 전해지면 다소 희석되는 듯하던 그 감동이 오늘은 거짓말처럼 있는 그대로 전해졌다.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보컬리스트들에게 잔인할 만치 압도적인 온리원의 보컬.
리원의 다재다능함에 가려져 있지만, 기타 단일로 봤을 때 이미 전설적인 반열에 오른, 애처가이자 유부남인 용태하의 기타.
악마적 재능의 소유자인 리원의 곁에서 천재성이 빛바랬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밴드에서 묵묵히 그에 걸맞은 연주를 보여 주는 한결의 베이스.
마지막으로 인외와 인중 천재인 세 남자의 곁에서 노력의 가치를 보인 박하민까지.
세계 어디에 내놓든 흉포한 재능으로 여러 밴드를 파투 내 놓을 세 남자가 하나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밴드의 사령탑 하민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원이 용맹하게 앞에 나서 직접 군을 지휘하는 영웅이라면 태하와 한결은 일선에서 날뛰며 리원의 좌우를 맡은 가장 강력한 무장들. 하민은 그 뒤를 든든히 받치는 참모였다.
리원의 마성이 듣는 이의 귀를 후벼 파고 고막을 찢고 들어가 그들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세계 최고, 세계 최대의 무대를 함께한 이들은 그들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이 무대를 잊을 수 없을 테다.
악마의 목소리가 이 무대, 이 순간을 잊는 걸 허락지 않았다. 리원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음악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쓰이고 있었다.
*
직접 지진을 겪은 중국의 십수억 인민과 전 세계의 수억 시청자들이 시선을 집중한 사상 최대의 무대. 그 무대의 마지막 곡을 앞둔 순간.
눈앞의 십만 관객이 내뿜는 열기가 대단했다. 그리고 그런 중에도 카메라 너머 이 무대를 생중계로 함께하는 사람들이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온리원-!”
“원앤온리-!”
원앤온리는 십여 곡을 쉬지도 않고 연거푸 소화해 냈다.
무대에서 온 힘을 쏟아 낸 탓에 리원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그런 리원이 마지막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눈앞의 관객들은 그 이름을 연호했다.
여기저기 뒤섞인 환호성 속에 리원의 이름과 밴드의 이름만이 유독 뚜렷하게 들려왔다.
‘아……!’
십만 대군, 대군이란 말과 어울릴 십만이란 숫자.
마지막 피날레를 앞두고 숨을 고르던 리원은 이 순간을 잊지 않으려는 듯 좌석을 빼곡하게 채운 관객들의 면면을 눈에 담았다.
남녀노소, 리원은 모르지만 리원을 알고 있는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십만 중 못해도 절반을 넘게 차지한 듯 보이는 검은 가면들까지.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십만의 관객이 리원의 이름을 연호하고 환호하는 광경. 올림픽주경기장이 떠나가도록 소리치는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에 리원은 심장이 저릿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 이보다도 더 많은 관객들 앞에서 수차례 노래해 봤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어떤 노래를 부르건 리원만큼, 아니 리원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함께 노래하는 십만 관중.
한 음절, 한 음절에 열광하는 관객 앞에서 리원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제는 이 감동을 이어 가야 할 때. 잠시 쉬면서 목을 축인 리원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뚝-
리원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을 때 세상이 멈췄다. 어떠한 예고도 기별도 없이 세상이 멈췄다.
리원의 노래에 환호하며 따라 부르던 10만 관객도 리원의 뒤를 든든히 지키던 동료들도 모두 그림 속의 인물처럼 멈춰 서 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쥐 죽은 듯 조용해진 세상. 리원이 아는 한 이런 걸 가능하게 할 녀석은 오직 하나였다.
“왔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생일대의 경험에 당황할 법도 한데, 리원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눈치였다.
또각-
곧 리원의 뒤에서 한 걸음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라는 것이 사라진 듯 무서울 정도로 완벽한 적막 속에서 유난히 그 발소리가 크게 무대를 울렸다.
곧 발소리의 주인공이 리원의 앞에 나타났다. 그저 발소리의 주인공일 뿐 아니라 이 기현상을 벌인 장본인, 음악의 신이었다.
“이젠 이 정도론 놀라지도 않는군.”
웃는 얼굴을 한 음악의 신은 그대로 리원을 스쳐 지나 무대 끝 쪽에 섰다. 이제 보니 그림 속의 인물들이라기보단 정지된 영화 속 인물에 더 가까워 보이는 모습들.
음악의 신은 자신이 벌여 놓은 결과물이 제법 만족스러웠는지 싱긋 미소를 짓곤 리원쪽을 돌아봤다.
“어때, 볼만하지?”
돌아오는 리원의 대답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한창 좋을 때였는데 이게 다 뭔지… 명색이 음악의 신인데 이거 분위기 망치는 거 아닌가? 지금 무대가 어떤 무댄지 잘 아실 만한 분이…….”
리원의 뻔뻔한 대답에 신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후… 겁 없기는 여전하군. 이 정도면 존대해 줄 때도 되지 않았나?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존잰데 말이야. 응? 응? 대단하지 않아?”
신이 고갯짓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광경을 가리켰다. 물론, 돌아오는 리원의 대답은 여전했지만.
“와, 역시 신님은 대단해. 근데… 저는 저 많은 관객을 환하게 웃게 하고 감동에 울게 할 수 있는데, 그런 잡기(雜技)는 역시 신님이 보여 준 능력엔 안 되겠죠?”
장난기가 가득해진 리원의 목소리는 명백히 신이 보여 준 능력을 비꼬고 있었다. ‘나는 당장 저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할 수 있는데, 시간을 멈추는 게 뭐 별거야?’라는 식의 대답. 신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신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것도 그렇군. 됐다. 이런 말장난은 그만하자. 너랑 싸우려고 온 게 아니니까.”
이제는 신도 딱히 리원이 그를 대하는 태도에 신경 쓰지 않는 눈치. 두 사람. 아니, 신과 리원이 직접 만날 때면 으레 벌어지곤 하던 신경전에 둘은 지금까지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는지?”
“섭섭하게 왜 그러시나? 우리 사이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얼굴 볼 수 있는 그런 삭막한 사이는 아니지 않았나?”
신이 리원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편이긴 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신의 친한 척에 리원이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대답도 없다니… 이거 섭섭한데? 내 최대 역작에게 대접은커녕 무시당하는 수준이라니. 흠…….”
“진짜 겨우 그런 말이나 하려고 이 난리를 친 거면 좀 그런데… 그건 아닐 테고…….”
음악의 신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인생 최고의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던 리원.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온 거라면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왜 좋은 날에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지금 이 순간 이 무대는 전설로 남을 거라고. 흘러가서 전설이 돼 버리기 전에 이 순간을 조금 더 즐길 수도 있는 거잖아. 뭘 그리 깐깐하게 구시나. 재미없게.”
말은 알았다고 하지만 그 대답에 알맹이가 없기는 매한가지.
“알겠으니 이만하고 들어가는 게 어때? 알다시피 내가 지금 좀 바쁜데.”
여태껏 우스갯소리나 하는가 싶던 신이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가볍지 않았다.
“아직 분위기 파악이 안 됐나 보군… 널 데리러 왔다. 죽어라, 온리원. 육신의 굴레를 벗고 전설이 돼라.”
*
분위기를 잔뜩 잡고 한다는 소리가 죽으라는 소리라니. 리원이 표정을 구긴 채 답했다.
“하. 아직도 그 이야기라니… 신 양반, 나는 천수를 누리고 갈 테니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후회 안 하겠어? 네가 이 무대서 내려가면서 심장마비로 죽기라도 하면 인류 역사상 영영 네 아성에 도전할 만한 록 스타는 등장하지 않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일이긴 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음악사의 별’로 다시 살아가게 될 것을 잘 아는 리원에게는 더욱 그랬다.
알 듯 모를 표정에 대답이 없는 리원. 신은 제 말이 먹혀들었나 싶어 신이 나 설명을 이었다.
“고통 없이 거둬 줄 테니 진지하게 생각해 봐. 당장은 네가 최고지만 사람 일이란 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잖아? 썩어서 없어질 육신 따위는 썩게 내버려 두고, 조금 일찍 별이 되는 거야. 작은 실수도 없이 모두 이룬 지금 생을 마감하는 거지. 내가 장담하건대 그렇게 하면 넌 전설 중의 전설로 남을 테다.”
신의 말이 틀렸냐면 그건 아니다. 녀석은 옳은 말만 하고 있었다. 리원이 지금은 세계 최고로 칭송받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
“으음…….”
“어때, 이제야 좀 구미가 당겨? 무대에서 선 채로 죽을래? 아니면 무대에서 내려가던 중에 심장마비도 있고… 원하는 거 말만 해 봐. 그대로 해 줄게. 물론 특별히 고통은 빼 줄게. 골라잡아.”
신은 어지간히도 몸이 달았는지 어떻게든 리원을 꾀어내려 안달이었다.
그 모습이 리원이 보기에 꽤 귀여웠다. 이제야 신한테 정이 좀 가는 듯해 리원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풉. 하하.”
“왜? 뭐가 그렇게 웃겨?”
갑작스레 웃음이 터진 리원의 모습에 이번엔 신이 표정을 구겼다.
“시도는 좋았는데,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은데.”
“마지막 제안이니까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 너 진짜 후회할 수 있다.”
아마도 이번에 신이 언급한 ‘마지막’은 정말 마지막일 테다. 하지만, 그럼에도 리원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원래 사람은 후회도 하고 실패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 일어서고 사는 거야. 25살 전에 내가 실패나 후회를 두려워했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음악만 보고 살 수 있었겠어? 그렇게 했기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고. 안 그래?”
돌아오는 리원의 대답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잔잔한 호수 같으면서도 단호한 리원의 눈빛에 신이 그제야 포기한 듯 두 손을 들었다.
“역시 안 넘어오나… 뭐 이렇게까지 했는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고집부리다가 미끄러져서 꼬꾸라지는 걸 보는 것도 재밌겠군. 나는 할 만큼 했어. 됐다. 앞으로도 재밌는 볼거리 기대하지.”
신은 말해 봐야 리원의 결정이 바뀌지 않을 거란 걸 깨달은 듯 돌아갈 채비를 했다. 볼일을 다 봤으니 더 이상 세상을 멈추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음악의 신으로서도 이건 다소 무리가 되는 권능이었다.
“간다. 진짜 너 후회할 거야.”
신은 리원이 제 청을 거절한 것에 삐치기라도 한 듯 뒤도 안 돌아보고 가려 했다. 리원이 그런 신을 불러 세웠다.
“가면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하, 그거 때문에 그런 거였냐? 마음을 바꿔 먹었나 했더니… 네가 그럴 리 없지. 자세 잡을 시간 정도는 주지. 그럼 간다.”
신의 인간적인 모습에 리원이 웃음을 지은 채 그를 배웅해 보냈다.
“고마웠어.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퍽이나.”
그 말을 끝으로 음악의 신은 자취를 감췄다.
신의 약속대로 그가 사라지자마자 멈췄던 시간이 돌아오진 않았다. 신과 대화하는 동안 잠시 마이크에서 멀어져 있었던 리원이 다시 마이크 앞에 가 섰다.
잠시 손을 떼고 있었다고 차가워진 마이크 스탠드의 서늘한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그 감각이 리원을 다시 날카롭게 벼렸다.
“자, 그럼 다시 가 볼까?”
그런 리원의 말이 신호라도 된 듯 리원의 뇌리로 익숙한 메시지들이 별처럼 쏟아졌다.
[‘리빙 레전드’가······.] [‘검게 물들이는 마물’이······.] [‘기타 귀신’이······.] [‘로큰롤의 왕’이······.] [‘전설의 보컬리스트’가······.] [‘비운의 천재’가······.] [‘로큰롤의 선구자’가······.] [‘퍼플 프린스’가······.] [‘열반에 든 전설’이······.] [‘오렌지 스타더스트’가······.] [‘신이 가장 사랑한 천재’가······.] [‘지중해의 거세가왕’이······.]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가······.]이제는 리원의 인생에서 없으면 허전할 이들. 피식 웃음을 터트린 리원이 한 차례 머리를 흔들어 찾아온 손님들을 잠시 물렸다.
“다음에 합시다, 다음에. 아직 시간 많으니까.”
리원의 대처로 음악사의 별들은 잠시 조용해졌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별들의 수다에 밀려 있던 소식이 뒤를 따랐다.
[‘음악의 신’과 ‘음악사의 별들’이 만장일치로 새로운 이명을 허락합니다.] [이명 ‘세상의 빛이 되는 록 스타’를 얻었습니다. 음악과 관련된 모든 스킬의 숙련도가······.] [‘음악의 신’이 이 무대를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합니다.]신의 마지막 메시지가 신호라도 된 듯 멈췄던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리원 빼고는 완전히 멈춰 있던 세상이 거짓말처럼 본래 색을 되찾았다.
마이크를 잡은 리원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 곡입니다. 손에 그 핸드폰 내려놓고 즐기세요. 그딴 거 없어도 평생 기억에 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