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33
“방금 멘트는, 이 인터뷰를 보고 계신 관계자분들께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겠는데요. 배우가 고수하는 연기 스타일은 가수로 치면 창법이나 마찬가지인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신 이유가 있을까요?”
“음, 갑자기는 아닙니다. 다작에 대한 고민은 오래전부터 해왔었고, 특히 오스카 수상 이후에 관점이 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배우는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믿어왔는데, 정작 이 부분에서 저는 도전을 꺼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 제가 수상소감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을 했었는데,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아니겠습니까?”
– 하하하!
“뱉은 말을 지키려, 노력하고자 합니다. 아,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 복귀작은, tvKR 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국내 복귀를 하게 된다면, 반드시 로 복귀하겠다고 약속을 했었거든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수림, 서민경 작가님.”
– 오오오!
우진은 시종일관 여유와 유머가 넘치는 스탠스로, 기자 회견을 마쳤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우진은 상암동의 한 고급 룸식당에서,
“어서 와요!”
“오늘 기자 회견 잘 봤어요. 내 이름이 나오더라고?! 나 완전히 감동했잖아요!”
“어서 앉으시죠, 우진 배우. 정말 오랜만입니다. 늦었지만, 정말 축하드려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박민재 국장과 우승현 PD.
김수림 작가와 서민경 작가였다.
333화
오스카는 배우로서 이룰 수 있는 커리어의 ‘화룡점정’이다.
트로피를 손에 쥐고 돌아온 날.
우진은,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었다.
배우로서 연기를 계속하고 싶고, 더 잘해지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프고.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보고 싶어진 것인데, 그 말인즉슨.
‘내’ 연기에다가, ‘내’가 직접 쓴 시나리오와 ‘내’가 직접 구도를 짠 연출을 추가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은 거다.
배우가 연기와 삼위일체나 다름없는 극작과 연출 분야에 관심이 생기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지 않은가.
정상에 자리에 오른 이가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게끔 하는 좋은 동기부여가 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여기 계신 분들과 했었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만큼이나…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욕심도 컸습니다.”
는 포맷으로 보나 프로그램 제작 환경을 보나, 우진에게 최고의 선택지였다.
드라마 업계에서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는 김수림과 서민경이 우진처럼 연기할 수 없듯, 마찬가지로 우진이 당장 내일부터 그녀들만큼 필력을 구사할 수는 없다.
과거 tvKR의 최고 PD라 불렸던 박민재와 현 tvKR 최고의 PD라고 평가받는 우승현처럼 연출 분야에 능통할 수 없을 테고.
한 마디로, 현재 우진의 상태로 중·장편의 극본과 연출은 당연히 무리가 따르겠지만… 일회성 단막극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의 이미지가 처음부터 ‘실험성’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는 점도, 우진이 연기뿐만 아니라 연출과 극작에까지 참여한 일회성 작품을 선보이려는 계획과 딱 들어맞기도 했고.
벌써 2018년 말이다.
서로 인연을 이어온 지가 어느덧 8년이 ‘훌쩍-’ 넘었고, 이제 9년 차에 접어드는 중이다.
단순한 인연도 아니고, 시작과 끝을 함께 함으로써 맺어진 인연이란 얘기다.
조금도 숨기는 것 없이 말할 수 있는 사이고, 서로 공유하는 예전 기억들을 격 없이 꺼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진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복귀작에서, 배우로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의 말에, 박민재 국장은 곧장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진 배우의 기자 회견, 라이브로 봤습니다. 우리 로 국내에 복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말, 정말 감동이었어요.”
“tvKR은 제 고향과도 같은 곳이니까요. 오르던 산을 정복했으니, 더 높은 산에 올라야죠. 이번에도 제 여정의 시작이 tvKR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좋습니다. 우진 배우의 첫 도전 파트너가 우리 tvKR이란 얘긴데, 누가 거절을 하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국장님.”
“무슨 말씀을! 제가 오히려 우진 배우에게 할 말이죠. 출연 제의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망할 정도의 칭찬이 몰아쳤다.
우진과 박민재 국장은 서로에게 미소 지었다.
그러는 찰나,
“자, 일단 음식부터 들고 얘기합시다. 뱃가죽이 등에 붙었어요!”
“우진 씨! 국장님과 얘기하는 건 좋은데요. 우리도 좀 봐줍시다?!”
“하하, 죄송합니다. 작가님.”
“우진 씨가 오스카 받고 나니까, 갑자기 여기저기서 를 리메이크하고 싶다는 전화가 정신없이 막 쏟아지더라니까요?”
“정말이요?”
“아이고, 만 그런 게 아니에요. 도 상황이 똑같아요. 우진 씨 덕분에, 나랑 민경이가 요즘 일복이 터졌어!”
“그것 때문에 제가 플라잉PD로 나갔다가 왔어요. 관련해서 나갔다가, 귀국한 지 일주일 만에 관련해서 다시 나간 적도 있어요. 나 지금 한국에 들어온 지가 한 달도 안 됐어요. 하하하!”
타이밍 좋게 음식이 나왔다.
잠시 일 얘기는 접어두고, 그간 나누지 못했었던 서로의 일상과 근황을 곁들인 대화가 이어졌으나.
물론, 오래가지는 못했다.
워낙 일 욕심이 많은 이들끼리 모인 자리라 그런지, 대화 주제는 금세 세간의 이슈를 사로잡을 새 프로젝트 기획으로 넘어갔다.
연출과 극작에도 도전하고 싶은 배우, 그리고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최고의 작가들과 PD들.
“이왕 크게 할 거면, 틀 자체를 엎어보는 게 어떨까요?”
“틀을 엎다뇨?”
“사고를 제대로 쳐보자는 거예요.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형식으로요. 우진 씨 특집으로 가자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편성에는 무리가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요! 이왕 할 거면, 아예 타이틀에다 ‘오스카 수상자’ 특집이라고 박아버리자는 거예요. 판을 키우자는 거죠.”
“그거 좋네요. 우 PD는 어때?”
“저도 동감합니다.”
“자자, 툭 까놓고 다 얘기합시다. 우진 씨는 자기가 해보고 싶은 걸 해서 좋고, 방송국은 시청률 쓸어 담을 거니까 좋고! 나랑 민경이도 색다른 방법으로 작품을 해보는 경험을 좋아하고! 도전을 즐기는 사람들끼리 모여있잖아요?”
“음, 작가님께서 구체적으로 떠오르신 게 있나 보군요. 말씀이 길어지시는 걸 보니까.”
“언니, 그냥 시원하게 말해요.”
“알았어! 내 아이디어는, 바로….”
저녁 식사의 연장선이 된 기획 회의.
그들의 대화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 * *
[백우진 복귀작 선언으로 화제 모은 tvKR , 백우진 특집 편성 화제!] [일회성 단막극의 大변신… tvKR ‘드라마 스테이지’, 방송계 최초로 단막극 라이브 쇼 중계 예고] [‘최초 메이커’와 ‘최초의 시도’가 만난다… tvKR 측, “백우진 배우의 모든 역량이 발휘된 무대 선사할 것” 기대감 ↑]당사자들끼리 현장에서 발전시킨 아이디어는, 곧 구체적인 청사진이 되었다.
역사상 처음 시도되는 방법으로 우진의 국내 복귀작 방송을 선보이겠다는 tvKR의 발표가 기사를 통해 나가자 대중의 관심은 아주 뜨겁게 불타올랐고,
[tvKR 제작진입니다.]tvKR은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한 공지글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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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백우진 배우의 특별편으로 방영될 예정인 저희 프로그램을 향한 시청자 여러분의 관심이 매우 뜨겁습니다.
열화와 같은 성원에 늘 감사드리며, 이에 보답하고자 백우진 배우 방송분에 관해 간략하게나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정확한 방영 시기는 미정이나, 내년 3월 중으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2. 언론에 공개된 대로, 백우진 배우를 비롯해 김수림·서민경 작가와 우승현·박민재(현 tvKR 드라마국장) PD가 참여합니다. 자사 방송작이었던 와 를 지금까지도 사랑해주시는 분들께는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3. 작품은 백우진 배우가 직접 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합니다. 김수림·서민경 작가가 각색을 전담하고, 박민재 PD와 우승현 PD가 메가폰을 공동으로 잡을 것입니다. (국장님께서 일회성으로 필드에 복귀하실 줄은 저희도 몰랐습니다. 저희는 이 자리를 빌려, 국장님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최고의 배우가 최고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저희 제작진은 역량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서 하루빨리 백우진 배우의 복귀작을 시청하실 수 있도록, 신속하게 움직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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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계획 중인 프로젝트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날이 갈수록 증폭되는 사람들의 관심이 꺼지기는커녕,
└ 현재 대학로에서 활동 중인 연극배우인데, 엊그제 ‘배우 마당’ 극장 앞에서 백우진 배우님 봤음. 정재민 배우님하고 얘기 나누면서 같이 차에 타더라고. 질문받는다.
└ Re : 헐, 진짜야?!
└ Re : 대박! 혹시 관련한 건가?
└ Re : 이거… ‘배우 마당’까지 합류하는 프로젝트인 건가? 최고 중의 최고들이 전부 총출동하는 모양이네.
└ Re :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 한국 최초 오스카가 ㅈ으로 보임?
└ Re : 왜 화를 냄? ㅡㅡ 내가 뭐라 했음? 어이없네;;
└ Re : 내년 3월까지 어떻게 기다려 ㅠㅠㅠ
└ Re : 제발, 딜레이만 되지 않기를….
꺼질 줄 모르는 기세로, ‘활활-’ 더 세게 타오를 뿐이었다.
베일에 싸인 특집을 향한 무성한 소문들만이 연이어 나올 따름이었는데, 우진이 목격될 때마다 사람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어떤 방송이 나올지를 기다리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수많은 이들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들 속에서 보안 유지에 힘쓰는 와중에도 작품을 준비하느라 바쁜 사람들의 땀.
보이지 않는 창과 방패의 치열한 대결이 펼쳐지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드디어, 약속한 때가 되었다.
[(포토) 백우진, 출근길도 화보 같은 남자] [배우 백우진, ‘금일 저녁 7시 많이 기대해주세요’(HD포토)] [tvKR ‘드라마 스테이지’, 금일 저녁 7시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전파 동시 출격!] [tvKR 측, “120분 스페셜 방송 편성… 1부 60분은 본 공연, 2부 60분은 그동안의 준비 과정들을 담은 비하인드 스토리”(공식)]2019년 3월 2일, 토요일이었다.
* * *
「저는… 이런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습니다.」
적막이 가득한 무대.
무대 중앙을 비추는 하이라이트 핀 조명 하나만 켜둔 탓에, 주변이 굉장히 어둡다.
핀 조명 아래에서,
「무명 배우의 모노드라마요.」
우진은 조용히 앉아있었다.
최종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 겸 방송 시작까지 불과 1시간 남겨둔 시점이었으며.
장비 세팅과 테크니컬 리허설을 미리 마친 제작진과 관계자들이 우진의 부탁으로 잠시 공연장에서 퇴장한 상황이었다.
“…….”
홀로 사색에 잠긴 우진은 이내,
– 촤르륵.
천천히 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를 펼쳤다.
다이어리였다.
「오랜 시간 품어온 꿈을 포기하려고 마음먹은 보잘것없는 무명 배우의 한(恨). 제 작품의 주제입니다.」
마지막 열 번째 가상 세계에서, ‘나’는 과연 누구를 만나고 싶을까.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준 이 신비한 물건과 함께한 지난 9년.
그 ‘기적’이라는 연대기를, 어떤 식으로 마무리하면 좋을까.
오스카 트로피를 안고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거기서부터 뻗기 시작한 생각의 뿌리에 몰두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 이렇게 공연 시작을 목전에 둔 대공연장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된 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지금 최고의 배우가 되었잖아요? 그런데, 만약 내가 끝끝내 빛을 발하지 못한 배우… 끝없이 화려한 지금의 모습과 정반대에 서 있는, 한없이 어둡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배우로 남아있다면… 그런 나는 어떤 모습일까?」
「저는 무명 배우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에도 몇 번이나 참여했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참 부끄럽지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동안 제2의 백우진을 꿈꾸는 무명 배우님들의 인터뷰를 굉장히 많이 봤어요. 저만의 이야기를 제 마음대로 펼치는 기회에요. 그런 기회를, 저는 저의 모습을 꿈꾸는 이들이 되어보는 데에 쓰고 싶습니다.」
거창하게 설명했지만, 한 마디로 축약하면….
‘나’는 원생의 ‘백우진’을 만나고 싶다는 뜻이었다.
물론 남들에게는 하지 못하는, 혼자 평생 간직하고 갈 비밀.
마지막 가상 세계에서 만날 캐릭터는, ‘나’ 자신이었다.
– 위이잉.
다이어리는 우진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펼쳐지자마자 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녀석도 마지막을 직감한 것인지, 만날 허공에 떠올라서 빛을 뿜어내던 모습과 달리.
오늘은 우진의 손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가상의 세계를 구현합니다.】문구가 튀어나옴과 동시에,
– 위이잉!
다이어리에서 흘러나온 빛무리가 허공을 향해 치달았다.
이윽고,
【가상의 세계가 구현되었습니다.】문구가 바뀌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빛무리는 우진을 삼키지도, 그를 차원으로 이끌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구는 가상 세계의 구현이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 찰나,
– 스르륵.
거대한 빛무리가 서서히 무대로 모여들었다.
빛무리는 서서히 작아졌고, 점점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우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 툭.
그 미소 위를 지나간 한 방울의 액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녕?”
“어, 안녕….”
목이 잠긴 우진의 목소리에, 불빛이 형상화된 존재….
‘원생의 백우진’이 응답했다.
“왜 울고 그래?”
“나도 모르겠어… 그냥 너를 마주하고 있으니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막 흐르네.”
“너야, 나야?”
“너지. 나이기도 하고.”
‘원생의 백우진’의 짓궂은 말에, 눈시울이 붉어진 우진이 ‘피식-’ 웃었다.
9년 전, 500번째 오디션에서마저 고배를 마셨던 그 날.
한강공원에서 애꿎은 맥주캔을 붙잡고 배우를 포기하겠다고 다짐했었던 모습 그대로의 ‘나’.
그가 덤덤하게 말했다.
“마음의 짐으로 남았었니?”
“짐이라기보다는, 미안했었지.”
“그게 짐인 거야, 바보야.”
“늘 궁금했었어. 내가 이렇게 과거로 돌아왔으면, 원래의 나는 어떻게 됐을까 하고.”
“우진아. 너는 오직 너일 뿐이야. 네가 ‘원래의 나’라고 말하는 존재는, 내가 아니야. 너 자신이라고.”
“…….”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껏 웃어. 나는 괜찮아.”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캐릭터와 얘기를 나누는데, 그 캐릭터가 ‘나’ 자신이니까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원생의 백우진’은 환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마웠다. 우진아, 이제 웃는 날만 가득하길 바라.”
“그래, 너도 그러길 바랄게.”
우진과 ‘원생의 백우진’이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그렇게, 잠시 후.
– 스르륵.
하이라이트 핀 조명 아래에는, 다시 한 명만이 서 있었다.
“…….”
말로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몰아쳤다.
우진은 무대에 엎드려 흐느꼈다.
흐르는 감정대로 자신을 맡겼다.
긴 여정의 종착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오는….
‘감정의 배설.’
카타르시스였다.
* * *
공연을 마친 후.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한 tvKR은 축제의 분위기로 들끓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우진의 연기에는 호평이 따랐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였다.
여태껏 백우진이 선보인 연기 중에서 가장 최고였다.
일회성으로 끝내긴 아깝다.
더 길게 해달라, 등등.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 위이잉.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우진은 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남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 위이잉.
다시 한번 다이어리 불빛을 마주하는 일.
【미션 완료. (10/10)】
【미션 진행도 : 100프로】불빛은 망설임 없이 그를 ‘특별 가상 세계’로 이끌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백우진 씨.”
우진은 자신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한 여성과 마주했다.
정말 많이 쳐줘도,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당신 덕분에, ‘인과율의 대가’를 성실하게 치를 수 있었어요.”
“지금의 모습이, 당신의 본모습이었군요.”
“네, 참 오래 기다려왔네요. 이 순간이 오기를… 이제는 제 이야기를 우진 씨에게 할 수 있겠네요.”
그녀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은 진하율이에요. 아니, 진하율이었다고 말씀드리는 게 더 맞겠네요.”
“진하율….”
“저도 배우였었어요. 혹시, 저와 함께 과거로 돌아온 첫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그녀의 말에, 우진이 고개를 주억였다.
“네,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죠. 제가 안승준 대표에게 제대로 맥인 날인데, 잊을 수가 있나요.”
“그때,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우진 씨가 처음 했었던 행동은요?”
스무고개인가.
잠시 뜸을 들이며 생각을 되짚은 우진이 이내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설마… 신문?!”
“맞아요. ‘어느 무명 배우’ 죽음.”
‘한 무명 배우의 자살로 본 연예 산업의 진실’이라는 타이틀의 신문 기사.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었던 한 여배우의 사연….
“그게, 당신의 이야기였었군요.”
“네… 그랬었죠.”
진하율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천계의 절대적인 규율 아래, 나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어요.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누군가가 대신 이뤄주는 방향으로 가게 된 거죠.”
이내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우진 씨에게,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요.”
“하율 씨가 제게 고마워하는 정도의 딱 두 배만큼,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우진의 단호한 말투에, 진하율이 크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우진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네요. 우진 씨에게 항상 행운이 가득하기를.”
“하율 씨도요.”
“언젠가 다시 만날 거예요. 그때, 저를 꼭 기억해주세요.”
음?
진하율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가상 세계를 종료합니다.】우진은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현실로 돌아온 우진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2019년 3월 2일, 토요일.
현생의 시간은 그대로였고.
창밖으로 펼쳐진 거리의 야경은 언제나처럼, 밝았다.
에필로그
“아이고, 김 감독.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저희가 일정을 더 여유 있게 짰어야 했는데… 공항에서 바로 오셨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신경 쓸 것 없어요. 저 하나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의 일정을 전부 바꿀 수는 없지요. 제가 맞추는 게 맞아요.”
“그래도….”
“괜찮대도.”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죠, 선생님.”
“그럽시다.”
문경새재 세트장.
백발의 남자가 차에서 내리자, 감독이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남자는 안절부절못하는 감독의 등을 연신 부드럽게 토닥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고….”
감독이 안내한 대기실은 분장 버스 바로 앞에 있었는데, 문 앞에 선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백우진 선생님 전용 대기실]떡하니 표시해둔 것을 보자마자, 몰려오는 이 민망함.
어떡할 거야, 이거.
“이런 거 하지 말라니까, 참.”
“그래도 어떻게 저희가 선생님을 그냥 모실 수 있겠습니까….”
“정말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어요. 나도 남들과 똑같은 배우예요. 절대 특별대우는 안 됩니다.”
“…….”
우진의 말에, 김 감독의 표정에 서운함이 가득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엄청 신경 써서 준비했는데….
젊은 감독이 작게 읊조렸다.
결국,
“알았어요, 알았어! 오늘 하루만 딱 쓸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대신! 내일부터는 다른 배우들과 똑같이 대해줘요. 약속하는 겁니다, 김 감독?”
“네, 선생님.”
우진은 ‘피식-’ 웃으며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웬만한 건 다 있는 대기실.
의자에 앉은 우진은 곧바로 가방에서 대본을 꺼냈다.
그리고, 펼치려는 순간.
–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 선생님.”
김 감독이었다.
“네, 김 감독.”
“다름이 아니라, 오늘 첫 촬영이시잖아요? 아직 못 보셨을 텐데… 저희 영화의 홍일점 배우가 이번에 신인이거든요. 분장 끝났는데,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해서요.”
“아, 네. 잠시만요.”
우진이 대본을 내려놓고는, 일어섰다.
김 감독의 옆에, 분장과 의상 착용을 마친 여배우가 서 있는 듯했다.
사극 영화라서 그런지, 얼핏 봐도 눈에 확 띄는 외모.
우진이 밖으로 나오자 그녀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신인 배우 한지은이라고 합니다!”
본인을 한지은이라고 소개하는 여배우의 명랑한 목소리.
“반가워요, 백우진입니….”
우진도 화답하기 위해 손을 내밀며 입을 뗐다.
그러나,
“……!”
이윽고,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우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외모가 상당히 낯익….
아니,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
우진의 반응에, 한지은은 물론.
김 감독의 눈도 휘둥그레지긴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우진이 곧 능청스럽게 말했다.
“한지은… 예명인가요?”
“아닙니다, 선배님! 본명입니다.”
그 말에, 우진은 미소 지었다.
언젠가는 기억해달라는 얘기.
그 의미가 이거였나….
우진이 그녀와 악수를 나누었다.
“같이 잘해봅시다.”
“네, 선배님!”
화창한 햇살이 두 사람을 비추는 것은 덤이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