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3.25 테러
유지하는 오랜만에 파티마와 만났다.
장소는 신라그룹 본사 근처 중앙아시아 음식점이었는데 아예 전세를 냈다.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려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이 편하니까.
파티마는 처음 봤을 때보다는 키가 훨씬 커져 소녀 같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성인이 되지 않았음에도 사이커 능력이 개화해 눈이 선명한 황금색을 발하고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은 눈이 참 예쁘다며 칭찬하기 쉽다.
“요즘 어떻게 지내?”
오랜만에 보는 친척이나 할 것 같은 말투라 파티마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런 말은 편지로 많이 했잖아요.”
“아… 미안.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그 서준이란 애요, 나름 착하고 괜찮았어요. 특히 마음이.”
“마음이 어떤 면에서?”
“음… 일단 음흉하지 않아서 좋아요. 다른 애들은 막 이상한 생각 하거든요.”
멘탈리스트로서의 능력이 완전히 무르익었는지 요즘 그녀는 접촉만으로도 상대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양산형 사이커와는 차원이 다른 능력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원치 않아도 상대방의 기억과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건 파티마와 같은 소녀에겐 매우 힘든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르마가 옆에서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어 인간 자체를 불신하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따로 붙여 준 박서준이라는 남학생이 워낙 순진하고 잘생겨서 그녀의 마음에 쏙 든 것도 있겠지.
현재 둘은 같은 학교를 다니며 소중한 기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유지하는 서준이에 대해 조잘대는 파티마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루시아가 딸을 낳았다면 파티마와 비슷했겠군.’
그는 어지간하면 이 시대의 인간에게 정을 주려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용할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준이가 다른 여자애와 만나는 것에 질투하는 파티마를 보면 입가에 미소를 띨 수밖에 없게 된다.
이젠 한국어도 완전히 입에 붙었고 음식을 좀 가리는 걸 빼면 거의 한국인 다 됐다.
“…아저씨.”
“응? 아, 미안. 뭐라고 했었지?”
“이상하다구요. 서준이 마음도 읽을 수 있는데 아저씨 마음은 모르겠으니까.”
“한 명 더 있지 않아?”
“아, 아르마 언니도 그렇긴 해요. 전혀 마음을 못 읽겠어.”
오메가급 사이커이기 때문이다.
유지하는 레비아탄급 플레이그가 내뿜는 사념조차 무시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런 그에게 파티마의 본의 아닌 공격에 대한 정신방어는 손쉬운 편이다.
처음 만났을 때야 기억을 약간 읽혔지만.
한참 대화가 이어지다 파티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근데 아저씨 괜찮으신지 모르겠어요. 요즘 워낙 위험한 얘기가 많아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문을 들은 모양이다.
하긴 테러리스트들이 SNS 등지에서 공개적으로 전사를 모집한 지가 꽤 되었다.
정부기관이 철저히 마크하고 있지만 테러는 시간문제라는 게 세간의 평이었다.
원래 누르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 있다.
유지하가 이란을 박살 내면서 무슬림들에게 얻은 증오는 장난이 아니었다.
시아파니 수니파니 교리에 대한 해석이 달라 평소엔 으르렁댈지 몰라도 외부에 적이 나타나면 귀신같이 단결한다.
그 적이 유지하 같은 불신자라면 훨씬 단결이 쉽겠지.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을 테니 얼마든지 과격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그는 냅킨으로 입가의 기름을 닦았다.
“테러? 걱정할 필요 없어.”
“그래도…….”
“지금 이 식당 주위에도 나를 보호하는 사람들이 많거든. 눈에 띄진 않겠지만.”
파티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아저씨가 대통령이고 주변에 경호원들이 많다는 거. 그래도 전에 위험에 처한 적이 있었잖아요.”
죽음을 위장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아르마에 의하면 파티마는 그때 펑펑 울었다고 한다.
유지하 한 명만 믿고 전혀 연고도 없는 한국에 왔는데 얼마나 상심했을까.
평소에 자주 편지를 교환하고 용돈도 줘서 나름 정을 쌓았던 것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파티마에게 유지하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믿음직한 아저씨 이상의 존재였다.
어쩌면 말은 안 해도 아빠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젠 주의할 거니까 괜찮아. 그리고 파티마가 해줘야 하는 일이 있는데…….”
“어떤 거요?”
은근히 상체를 기울이며 기대하는 파티마.
항상 받기만 했기에 부담스러웠는데 해 줄 일이 있다니 오히려 반가웠다.
유지하는 저항군의 마사드와 타지크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그쪽 사정이 좀 힘들지?”
“저는 잘 모르지만 힘들다고 들었어요. 아저씨가 보내 준 드론이 있는데도…….”
저항군은 카불을 점령까진 했지만 유지를 제대로 못 해서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예전에 탈레반의 주력을 박살 내고 지도자까지 암살했는데도 그렇다.
외국에서의 지원도 상당한 격차가 있는데, 탈레반이 이란 등지에서 지원을 받는 반면 저항군은 타지키스탄이 거의 전부였다.
가망이 없어 보이니 지원이 줄어들 수밖에.
“만약에, 이건 정말 만약의 일이야. 그 땅에 한국군이 들어간다면 어떨 것 같아?”
“어… 한국군이요?”
그녀는 뜻밖이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한국에 있으면서 전쟁도 간접적으로 겪었고 한국군이 탈레반 같은 테러리스트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특히 7군단의 위용은 정말로 멋졌다!
아시아 최강의 전차부대라는 위용은 허튼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블랙메탈이니 레일건이니 뭐니 해서 세계 최강이라고 하는데 하여튼 그녀가 보기엔 멋짐에 멋짐을 더하는 수준이었다.
다만 그런 한국군이라도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들인다면 승리를 보장할 수 없었다.
내륙국이라 수송에 제한이 있고 지형이 워낙 엉망이기 때문이다.
괜히 아프가니스탄이 제국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파티마는 접시에 놓인 난을 만지작거렸다.
“한국군이 강하다는 거 알고 아저씨도 대단하다는 거 알아요. 근데 모르겠어요. 거긴 진짜 지옥이라서…….”
“아니, 난 성공률을 묻는 게 아니야. 한국군이 들어갔을 때 타지크족이 그걸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인 거지.”
마이크로드론을 뿌렸지만 생존에 급급해서 그런지 제대로 된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음…….”
16살의 파티마가 생각하기엔 굉장히 어려운 주제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에 온 이후 마사드 등의 수뇌부와 많은 교류를 나눴다.
또래의 학생에 비하면 들은 것도 많고 상당히 어른스럽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사드 아저씨가 평소에 말씀하신 게 있어요.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아프가니스탄의 자력 독립만 외치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고…….”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구나.”
“아주 간절히요. 독립도 물론 중요하지만 생존이 더 중요한 거잖아요. 지금 판지시르엔 의약품 보급도 끊겼어요…….”
“만약 자치권을 보장한다고 하면 어때? 미군 대신 한국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는 거지. 성공률 말고, 판지시르의 민심을 생각해 봐.”
“…괜찮은 것 같아요. 마사드 아저씨의 마음도 많이 바뀌었거든요. 아프가니스탄의 완전한 독립은 후세에 이뤄도 된댔어요. 당장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죠.”
유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 나중에 판지시르에 갈 일이 있을 테니 준비 좀 해 둬. 아르마한테 말하면 짐을 챙겨 줄 거야.”
“진짜요?”
파티마는 걱정하면서도 크게 기뻐했다.
하긴 오랜만에 고향에 가는 것이니까…….
한국에 꽤 익숙해진 그녀지만 아무래도 고향에 비할 수는 없겠지.
식사가 끝났고 아르마가 들어왔다.
여자들에게는 여자들만의 이야기가 있는 법.
유지하는 본사에서 가져올 서류가 있다는 핑계를 대며 밖으로 나왔다.
저녁노을이 본사 빌딩의 유리에 살짝 비쳤다.
* * *
원래 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열 가지 징조가 있다고 한다.
한국의 정보기관들은 최근 북한지역이나 중맹, 일본 대신 중동에 많은 신경을 쏟고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테러가 빈발하게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한 SNS에선 유지하를 죽이자는 발언이 튀어나와 무슬림들 사이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으나 혐오 발언을 이유로 삭제되었다.
이란은 공개적으로 한국을 적대시했고 한국인의 방문까지 불허하기 시작했다.
뉴스에선 연일 반 드론, 반 안드로이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나왔다.
―정부는 우리의 목소리를 새겨들어야 합니다. 저 빌어먹을 인형은 결코 인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직접적인 살인만이 살인이 아니다. 한국의 유지하란 작자는 고약한 기계를 발명해 수만에 달하는 무슬림을 죽였다. 그는 무슬림 전체의 적이다.
―유지하를 죽여라! 죽여라!
시위는 유지하의 사진과 한국 국기를 불태우는 과격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드론과 안드로이드가 차곡차곡 쌓은 혐오의 감정을 이란 사태가 촉발시킨 것이다.
세계 여론은 대체로 유지하를 탓하는 분위기였다.
―죽음의 상인 흉내는 아무나 내는 게 아니다. 철저히 음지에 있어야 할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있으니 표적이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사우디나 UAE야 파트너쉽을 생각해 참는다지만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왕가에서도 이미지를 생각해 유지하와의 관계를 재고할 것이다.
―중국의 15억을 적으로 돌리더니 이제 무슬림 15억을 적으로 돌렸다. 다음엔 지구 전체인가?
다양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유지하와 한국에 실질적인 타격은 없었다.
2030년 3월 수출은 예년에 비해 폭증했고 외국의 투자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동시베리아의 자원 탐사에 많은 외국기업이 침을 흘리며 달려들었던 것이다.
또한 본격적으로 핵융합 플랜트를 수주하면서 엄청난 양의 자금이 흘러들어왔다.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달 기지가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음은 물론이다.
한국의 어떤 기자는 직접 달에 가서 취재를 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왜 여기가 고요의 바다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지구를 보고 있는데요… 굉장히, 정말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지구인이라면 평생에 한 번은 이 광경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달 여행을 다녀온 소수의 사람들도 인증샷을 올리며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비용이야 얼마 안 되지만 예약이 100만 단위까지 밀려서 죽기 전에 가볼 수 있을까 하는 푸념이 나오는 실정이었다.
이에 스타필드에서는 단발궤도선의 양산일정을 앞당기기로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의 관심을 끈 것은 달에서 캐는 헬륨3와 언옵테늄이었다.
과학 전문지와 인터뷰를 한 학자들은 우리 세대에 헬륨3 채굴이 현실화 될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아시다시피 이온빔 핵융합로엔 헬륨3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현재로선 채산성 있게 캘 수 있는 것은 스타필드뿐이죠. 그 말은, 앞으로는 환경도 유지하씨에게 달렸다는 뜻입니다.”
핵융합 플랜트는 대표적인 친환경 에너지로 손꼽힌다.
유지하라고 하면 개발독재의 선두주자이며 환경의 파괴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북태평양의 쓰레기 섬은 몇 개월에 걸친 정화 작업으로 인해 거의 치워진 상태였다.
다만 환경운동가들은 필사적으로 그 주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유지하 같은 독재자가 환경에도 관심을 가진다는 게 불편했던 것이다.
“쓰레기 섬은 원래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움직입니다. 몇 개월 치운 걸로 완전히 없어졌다고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에선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냈는데요.”
“공무원들이 뭘 압니까? 환경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우리입니다.”
“그러시군요. 다음에 쓰레기 섬을 발견하게 되면 연락 주세요.”
당연하지만 그 운동가가 다시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유지하가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보니 진지하게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로 그와 관련이 깊은 러시아나 독일의 언론에선 나온 주장이었다.
―현재 유지하 대통령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위협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가 죽으면 간신히 이뤄낸 성과가 모두 물거품이 된다.
―국가가 나설 필요까진 없고 정보기관에서 가공한 데이터를 교류하는 정보면 충분할 것이다. 한국의 정보기관은 동아시아가 주력이라 중동에는 거의 영향력이 없다.
다행히도 이스라엘 모사드에서 요원 몇 명이 방문해 요주의 인물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전해주었다.
정작 이스라엘은 그런 일이 없다고 발뺌했지만 첩보세계에선 흔한 일이라 국정원 등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몰랐다.
모사드에선 진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모든 게 아르마의 공작이며 체크리스트에 두 명이 빠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제외된 두 명이 이란의 파일럿 출신으로 이라크 화물기의 기장과 부기장을 맡아 한국으로 갈 예정이라는 것까지.
한국 항공사에 파견된 국정원 요원은 그들의 정보를 입수했으나 국적이 이라크이며 체크리스트에 없는 걸 보고는 감시 대상에서 제외했다.
살펴야 할 인물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댄 건 덤이다.
그렇게 이라크발 화물기가 한국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유지하는 대한민국 대통령과 신라그룹의 회장 자리를 겸한다.
등기상으로 신라그룹의 주인은 아르마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유지하가 본사에 볼일이 있으니 경호원들은 내려가 있으라고 말했을 때 경호팀에서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본사를 이전한다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보면 안 될 서류가 많겠죠.”
“빌딩 주변에 드론도 많으니 테러의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겠습니다.”
덕분에 유지하는 직원이 대부분 나간 본사 빌딩에서 업무에 열중할 수 있었다.
아르마의 보고가 들어왔다.
「마스터, 더미가 조종하는 화물기가 영공에 진입했습니다.」
곧 관제소의 지시를 무시하기 시작하겠군.
유지하는 어느새 내려앉는 저녁노을을 바라보기 위해 창가에 섰다.
플라즈마 실드가 몸을 보호할 것이기에 화물기가 들이박아도 부상 하나 입지 않는다.
다만 향후의 스케줄을 위해선 적당한 부상을 입는 게 좋다.
사지 중 하나를 날려 버리는 건 눈에 뜨이니 안 되겠고, 상체에 화상이면 되겠지.
이미 아르마는 화상 부위를 정해 놓고 플라즈마 실드를 어느 선까지 열 것인가를 계산해 놓고 있었다.
“대통령을 향한 테러… 이 정도면 명분으로는 충분하지.”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직원으로 위장한 더미 몇 개체도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죽고 유지하는 부상을 입으면 베스트다.
「화물기가 관제소의 지시를 무시하고 곧장 본사 빌딩으로 직진합니다. 각지의 방공부대에 비상사태가 발령되었습니다.」
그간 장성들을 숙청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 반응이 무척이나 빨랐다.
인천에서 서울까지는 금방이라 유지하는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작은 점을 발견했다.
“드디어 왔군.”
「정전시키겠습니다.」
이 또한 시나리오에 포함된 것이다.
아이언 빔이 멀쩡한데 비행기가 빌딩을 들이박았다고 하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한국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선 온갖 공작과 무리수가 동원되어야 한다.
일대가 정전되자 밑에서 경호원들이 연락을 받고 즉시 뛰기 시작했다.
“대통령님을 모시고 내려와!”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안 합니다!”
“이전한다고 비상발전기까지 뺐나? 계단으로 뛰어!”
유지하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참 죽기도 힘들군.”
한편 서울 한복판에 제트기가 날아들자 시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원래 저렇게 낮게 나나?”
“어어어! 이쪽으로 온다!”
“엄마야!”
웅성거림은 곧 절규로 변했다.
시민들이 이리저리 뛰는 사이 차량들이 멈췄고 운전자들이 밖으로 나와 계속 커지는 비행기를 바라봤다.
이건 테러였다.
“저거 어디로 가는 거야?”
“몰라! 뛰어!”
강남에 빌딩이 한 두 개가 아닌데 어디에 박아도 대참사였다.
곳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교통은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비행기의 최종 목표로 확인된 곳은 신라그룹 본사 빌딩이었다.
휘하 방공부대에서 정보를 받아 본 합참본부의 장성들이 급히 비서실에 연락했다.
“지금 대통령님이 어디 계십니까? 뭐요? 본사 빌딩에?”
“안 돼.”
그리고 화물기가 본사 빌딩과 충돌했다.
육중한 충격파와 무수한 파편이 주변을 휩쓸었다.
연약한 빌딩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허리가 뚝 부러져 무너져 내렸고 항공유가 유폭되었는지 거대한 화염이 일었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지켜봤다.
29년 전 9월 11일 테러가 발생한 이후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날 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한편 경호원들은 지진이 일어난 듯한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위층이 박살 나면서 건물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지만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대통령의 경호에 실패한 전적이 있고 실수는 한 번이면 충분했다.
지금 한국은 그를 잃어선 안 되었다.
대화재가 일어나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와중에 경호원들이 그를 찾아냈다.
충격에 나가떨어졌는지 팔다리가 이상하게 꺾여 있고 상체가 붉었다.
중증화상을 입었다는 증거.
경호팀장은 황급히 호흡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됐어! 살아 계시다! 헬기… 아니, 됐고 구급차 호출해! 최대한 빨리!”
강남이라서 병원까지는 헬기보단 구급차가 훨씬 빠르다.
응급조치가 시작되었고 강남 전역의 신호등이 일제히 빨간불로 바뀌었다.
그리고 경찰버스가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을 밀어냈고 그 뒤를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급차가 따라 달렸다.
사람들은 이런 광경은 난생처음 본다며 황당해했다.
“아니, 경찰버스가 저래도 되는 거야?”
“뭐 구급차에 중요한 사람이라도 타고 있나 보죠.”
“설마… 대통령?”
그러는 사이에도 구급차는 동승한 경호원들에 의해 난폭운전을 강요받고 있었다.
“브레이크에 발 올리지 마!”
“비켜! 내가 운전할 테니까!”
“어어어! 안 됩니다!”
실신한 척을 하고 있던 유지하는 조용히 잠을 청했다.
일어나면 할 일이 태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