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인류연합의 군대
유지하는 화를 잘 내지 않는다.
화를 낼 일이 없도록 상황을 조성한 거지만 대중은 그것을 냉정하고 침착한 성격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권력을 잡은 뒤에도 대통령 격노라는 표현은 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치적인 숙청을 할 때에도 다그치고 일갈을 가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지 진지하게 화를 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가 격노했다.
비록 얼굴이 붕대로 가려졌지만 기자들은 그것을 분위기와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어제 우리는 몇 명의 국민을 곁에서 떠나보냈습니다. 그들은 퇴근 후 가족 혹은 친구를 만날 예정이었습니다. 혹은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사람도 있었겠죠. 테러는 그들의 목숨을 앗아 간 겁니다.”
기자들이 당황해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봤다.
감히 자신을 노린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할 줄 알았는데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신라그룹 직원들에 대한 격노를 토해 내고 있었다.
“나는 테러범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라크 화물기를 조종해 빌딩에 충돌하게 한 조종사 두 명과, 변전소에 사제 폭탄을 던져 정전을 일으킨 일당들, 그리고 그들을 배후에서 지원한 세력과 한국의 불행을 안주 삼아 술잔을 쳐든 자들까지.”
“그 모두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과 인류연합의 역량을 총동원해 지구에서 그들의 흔적을 지워 버릴 것임을 이 자리에서 천명하는 바입니다.”
“그들을 죽여 버릴 겁니다.”
충격적인 발언에 기자들이 멍한 얼굴로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일국의 정치인이, 그것도 유지하 정도 되는 수장이 이런 거친 발언을 했다는 건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발언을 수정할 수도 없었다.
유지하는 언론을 통제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발언을 각색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했기 때문이다.
평소 그가 언론사에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당신들이 날 싫어하는 건 압니다. 좋아하라고 하진 않을 테니 왜곡만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건드리진 않을 겁니다.”
실제로 그는 언론에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
일각에선 언론사에 들어가는 보조금과 광고를 끊는 게 곧 압력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튼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어 애도를 표한 각국에 대한 감사 인사가 나열되었지만 분위기를 바꾸진 못했다.
세계의 주요 언론은 발언이 과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자국민 여러 명이 사망했고 본인까지 부상을 입은 상태이다 보니 감정이 격앙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그렇다고 이번 사태와 관련된 모든 세력과 인물을 죽인다는 것은 글쎄, 가능성만 따지면 미국조차 불가능하다.
―유지하는 미치광이 전략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거칠게 질러 놓고 차분히 협상을 시도할 것.
이렇게 판단하는 데에는 용의자가 너무 퍼져 있다는 점에 있었다.
테러를 우리가 저질렀노라 주장하는 단체는 한둘이 아니었고 중동 전체에 각각 퍼져 있었다.
평소 그런 테러단체를 예의 주시 해 온 미국이라면 모를까, 한국이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란 어렵다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었다.
주로 러시아나 독일, 인도 등에서는 한국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평을 내렸다.
―우리는 아직 한국의 잠재력을 모른다. 그리고 잊고 있는 것 같지만 인류연합도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다.
―유지하는 대마도급 한 척만으로 이란 해군을 무력화시켰다. 그가 진심으로 분노하면 테러리스트들도 어쩔 수 없을 것.
아무튼 세계에 전운이 드리워졌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감했다.
무슬림 사회와 유지하는 더 이상 공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립하는 중이었고 직접적으로 목숨을 노리기까지에 이르렀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렀다면 좋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누구 하나가 죽어야 산다.
다만 현재의 한국이 그런 거대한 전쟁을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회의적인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미국조차 후세인이 거슬리는 발언을 했다고 대량 학살 무기 핑계를 대고 침공했다가 수렁에 빠지지 않았는가.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은 승리했다고 자평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만 1조 5천억 달러를 쓰고 전사자는 4,000명을 넘는다. 그리고 탈레반은 여전히 그 땅에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죽이긴 했지만 달라진 건 전혀 없다. 만약 한국이 미국 흉내를 낸다면 깊은 늪에 빠질 것.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미국 정계에선 유지하가 일단 강하게 나가되 협상을 할 거라 판단했다.
상식적으로 그가 한 발언을 지키기 위해선 너무 많은 무리수를 둬야 한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각지에 흩어져 있는 테러리스트 집단과 싸우는 것도 모자라 파키스탄에 협박까지 해야 한다.
군사력은 몰라도 한국의 경제력으로 어떻게 해 볼 만한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에 특사로 파견된 마틴 부보좌관은 유지하와의 접견에서 어이없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결심이… 바뀌지 않았다고요?”
“마틴 부보좌관은 나를 꽤 오래 봐 왔지요. 그래서 내가 입 밖에 꺼낸 말을 바꾼 적이 있습니까?”
분노로 타오르는 눈을 보며 마틴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유지하 대통령은 진심으로 그런 말을 꺼낸 것이다.
이대로는 최소한 3개국은 전쟁에 말려들어 가야 한다고 봐야 한다.
아니 어쩌면 중동 전체가 휘말릴 수도…….
한국의 경제력을 떠나서 이 사람은 진지하게 그런 짓을 태연히 벌일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 온 흔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다만 마틴 부보좌관은 유지하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기에 그의 말에 반대하진 않았다.
“매킨리 대통령께선 가능하면 일이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9.11도 마찬가지였겠죠. 미국은 어땠습니까?”
“…….”
파키스탄이 영공을 열지 않으면 석기시대로 돌려 버리겠다고 협박했었지…….
하지만 그건 초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이라 가능한 발언이었다.
또한 파키스탄의 30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하는 등 최소한의 자존심을 위한 여러 조건을 붙였다.
그런 입장이 되지 못하는 한국이 미국 흉내를 낼 시 어떻게 반응할지는 뻔했다.
‘그래서 더 위험해.’
이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도저히 예측이 되지 않았다.
여러 정보기관에서도 의견이 나뉠 정도였으니.
하여튼 현재로선 유지하 대통령의 결심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마틴 부보좌관은 곧장 백악관에 연락했다.
미국 정부는 민주당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에 개입하지 않기로 천명했다.
이제는 유지하의 행동만 남았다.
* * *
테러범의 신원을 특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라크의 파일럿으로 위장한 두 명이 이란 공군 출신이었으며, 심지어는 탈레반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루시아가 모든 연산력을 동원해 인터넷을 뒤진 결과였다.
또한 변전소를 공격한 테러범들에 대한 정보도 드러났다.
이들은 별다른 위장 신분도 가지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로서 입국했는지라 전직 IS 대원이라는 게 바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실수도 여럿 발견되었는데, 특히 모사드가 준 체크리스트가 문제였다.
정부에서 직접 확인한 결과 모사드는 이 체크리스트에 대해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국정원에서 난감해하고 있을 때 유지하가 지시를 내렸다.
“못 본 것으로 할 테니 서류 파기하세요. 방기보다는 무능이 나을 겁니다.”
정보를 입수하고 가공하는 집단으로선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상대가 중동이다 보니 참작하겠다는 발언이 이어졌다.
국정원은 서둘러 서류를 파기했고 모든 역량을 배후 특정에 쏟았다.
그리하여 사태 발생 후 열흘도 되지 않아 직접적으로 테러에 가담한 다섯 명과 지원 세력이 추려졌다.
보복이 이어져야 하는데 정작 합참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한 장성은 지도를 펼치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도 분노에 눈이 뒤집혔습니다. 하지만 이건 우리 역량을 명백히 벗어나는 겁니다. 이 넓은 땅을 보십시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영토를 더하면 한국의 22배가 넘는다.
이 땅을 뒤져서 테러 지원 세력을 찾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군사력을 투입하는 것도 엄청난 난관이 예상되었다.
파키스탄이 기적적으로 영공을 열어 준다 가정하더라도 수송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한국군은 레일건 전투함 등 몇 개의 플랫폼을 제외한다면 특별한 구석이 없었던 것이다.
병력도 징집병이라서 테러리스트와의 비정규전에 투입했다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합참에선 이렇게 보고했다.
“작전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어떻게든 투입할 순 있겠지만… 피해가 어마어마할 겁니다.”
운송 수단부터 시작해서 정보 수집과 전투병의 역량 부족, 보급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솔직하게 말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유지하는 합참의장을 다독였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의 작전이 가능한 건 전 세계에서 두 곳밖에 없으니까요.”
하나는 미국이겠고 다른 하나는…….
“설마, 대통령님.”
“인류연합의 군대를 동원할 겁니다. 합참에는 일단 통보는 가겠지만 대단한 정보는 기대하지 마십시오.”
유지하의 국가이고 사병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대체 어떤 병력이 준비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지금껏 공개된 인류연합의 군대라고 해봐야 레일건과 아이언 빔을 장착한 전투함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드론과 안드로이드도 나름 충실하게 갖췄겠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국제 정세는 매우 급하고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테러 관련자를 전부 죽이겠다는 유지하의 선언에 대해 EU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유지하 대통령이 테러의 피해자가 된 것에 대해선 진심으로 유감을 표한다. 하지만 증오를 증오로 갚아서는 안 된다. 우리 인류는 화해와 용서로써 보다 진보할 수 있다.
―정황을 봤을 때 테러의 직접적인 지원자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으로 보인다. 보복의 대상을 그들만으로 한정한다면 MI6의 정보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
어떻게든 그를 달래려는 의지가 확고했으나 프랑스와 같은 국가는 무시하기 바빴다.
―유지하는 아프간의 지형도를 한 번도 보지 않은 게 분명하다.
―만약 하프늄2 미사일을 쓰겠다면 미리 축하한다. 히틀러와 스탈린을 능가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학살자로 기록될 것이다.
―아프간 테러리스트 관련해서는 이런 말이 있다. 서방세계가 시계를 볼 때 테러리스트는 달력을 본다고. 결국 버티는 것은 언제나 그들이었다.
다양한 조롱이 쏟아지는 가운데 유지하는 경제 회복에 힘썼다.
아프간 침공의 명분을 위한 쇼치고는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가 건재함을 알리자 주가는 회복되었고 영공 봉쇄도 곧 풀릴 예정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이란에서 사태가 급변했다.
여태껏 정권을 잡았다 주장했던 대통령이 암습을 당해 사망한 것이다.
새로이 종교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성직자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된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바스파르였다.
그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신정체제를 구축하겠다 선언했다.
또한 서구식의 법정을 폐지할 것이며 모든 재판은 샤리아에 의거하여 이뤄진다고 언급해 시민들을 환호케 했다.
“우리를 핍박하는 한국의 출산율은 어떤가? 그들은 명백히 죽어 가고 있다. 당장 우리는 한국의 군사력에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10년, 20년… 50년 후는 어떤가? 우리는 어쨌든 아이를 낳을 것이고 너희는 멸망할 것이다.”
굉장히 섬뜩한 발언이었다.
수십 년 뒤 무슬림이 지구의 주류가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수의 무슬림이 동조하는 사상이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을 포함한 서구의 출산율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가고 있는 반면 중동은 오히려 상승세였다.
서구의 문화와 기술에 대한 반동으로 근본주의가 강화되며 여성의 인권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 여성의 운전을 허락했던 나라들도 일제히 단속을 실시해 면허를 빼앗을 정도였다.
거기에 유지하가 드론과 안드로이드를 공급해서 쇼크를 불러오고 이란을 공격해 공분을 일으킨 데다 이제는 다 죽이겠다 선언하니 민중이 격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흥분한 이란 국민들이 테헤란에서 대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우리는 15억이다! 너희의 인구는 얼마냐?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항전할 것이다! 지하드를 위하여!
다만 모두가 이렇게 격분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란에도 지식인층이 존재했고 그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 UN에 중재를 요청하는 등 필사적이었다.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합니다. 우선 테러범 두 명의 행방이 석연치 않습니다. 그들은 테러 발생 며칠 전에 행방불명되었다가 갑자기 나타나…….”
“항공기의 잔해 조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블랙박스가 유실되었다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미국의 연방 교통안전 위원회의 개입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요약하면 이번 테러가 굉장히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이 분석하기에도 그러했으나 매킨리 대통령은 개입을 불허했다.
“안 그래도 최근 민주당이 유지하 대통령의 화를 돋우고 있는데 우리까지 나설 필요는 없지. 미국은 개입하지 않겠소.”
미국 정보기관 내에선 자작극 얘기까지 나왔으나 정부는 이를 공식 입장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을 유지하가 계획했다고 치면 그 정보력과 힘으로 왜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을까?
그는 막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했다.
미국과 틀어지면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매킨리 대통령은 유지하가 매스 드라이버를 쓰레기 처리 이외의 용도로 쓰지는 않는지 우려했고, 다양한 정찰 수단을 활용해 감시에 나섰다.
그리고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테라섬에 군대가 모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보기관에서 사진과 영상을 제출했고 매킨리 대통령은 신음을 흘렸다.
“…이게 사실이오?”
“전혀 가공이 없는 데이터 그대로입니다. 인류연합은 대규모의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사진에는 절벽의 조선소에서 줄줄이 나오는 군함과 지상에 차곡차곡 집결하는 안드로이드 보병이 보였다.
그리고 테라섬 곳곳에서 정체불명의 컨테이너가 수백 개나 이동하고 있었다.
컨테이너에 뭐가 들었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매킨리 대통령이 중얼거렸다.
“중동 전체와 전쟁이라도 할 생각인가……?”
* * *
2030년 들어 인류연합의 존재감은 상당히 희박했다.
메가시티에 사람들을 초대하고만 있을 뿐 국제사회에서 도통 발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UN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으니 발언할 이유도 없었다.
일각에선 한국과 인류연합이 과연 다른 나라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지도자는 유지하다. 인류연합의 지도자도 유지하다. 그렇다면 두 국가를 분리할 필요가 있나?
―심지어 인류연합의 행정기관인 관리국조차 아르마의 손이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지역 중 하나라고 해도 놀랍지 않다.
사실 현재 한국의 영토라는 개념은 상당히 애매모호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는 확실히 한국의 영토가 맞지만 쓰시마섬과 러시아에게서 양도받은 땅, 거기에 테라섬까지 합하면 대체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유지하가 딱 부러지게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여러 의미에서 인류연합은 조용하게 지냈고 대중의 관심 속에서 잊혔다.
그러나 3.25 테러 이후 유지하가 복수를 천명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인류연합의 군대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간 병력이라고 해봐야 무인전투함과 드론, 소규모의 안드로이드가 전부였던 테라섬에 대규모의 군대가 조직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각국은 모든 정찰 수단을 동원해 정보를 확인하려 애썼지만 알아낸 것은 별로 없었다.
최초로 등장한 대마도급 전투함조차 아는 게 거의 없는 판국에.
그러나 두 가지는 확실했다.
첫 번째로는 인류연합의 군대에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수송기로 보이는 거대한 항공기에도 창문이 없었다.
인간이 타지 않을 것이니 창문을 설계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게 과연 2030년에 가능한 것인가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언제나 그렇듯 유지하니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두 번째는 무기의 형상이 굉장히 낯설다는 것이다.
현대의 무기 체계는 적을 섬멸한다는 동일한 목적 외에 수준까지 비슷해서 외형이 닮아 가는 현상이 존재한다.
전투기 분야에서 그런 현상이 잘 드러나는데, 어떻게든 RCS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려다 보니 여러 국가에서 전투기를 만들었는데 형상이 비슷한 경우가 자주 나온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수렴진화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류연합의 무기는 외형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그 어디의 무기 체계와도 닮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무인기를 다수 수납하는 플랫폼은 공중항모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현 상태로는 거대한 표적일 뿐인데 어떻게 운용하려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 배는 아스널십을 닮았다. 다량의 미사일을 탑재한다는 개념은 미국도 포기했다.
―특히 이 컨테이너에 수납된 미사일은 상당히 대형이다. 이온 추진기의 효율과 하프늄2 탄두를 생각하면 이렇게까지 클 이유가 없는데… 사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인류연합의 군대는 여러모로 군사 전문가들을 골치 아프게 만드는 존재였다.
전력이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였다.
대마도급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상당한 수준이겠지만 그게 육상에서도 발휘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여튼 외형만 놓고 보면 하이테크 군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어서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외국 커뮤니티의 음모론자들은 드디어 유지하가 본색을 드러냈다며 기뻐했다.
―그래! 이제 그 군대로 미국을 공격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를 지배해 줘!
―우주선 어딨어? 우주선!
인류연합의 함대는 마침내 테라섬을 떠나 감시를 피해 일제히 잠수했다.
그리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 인도양에 부상해 매킨리 대통령이 입에서 커피를 뿜게 만들었다.
“대체 저놈의 배는 얼마나 빠른 거야?”
같은 시각, 인도양의 차고스 제도에 위치한 미 해군기지에선 비상경보가 울렸다.
인류연합의 함대가 군사행동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