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목줄과 입마개는 필요 없다
박람회가 끝난 후 신라그룹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단순 계산으로도 80조 원 이상의 공급계약 체결이었는데 이는 일부 기사에서 지적하는 MOU가 아닌 실질적인 계약이었다.
일이 이렇게 급하게 추진된 까닭은 아르마가 바이어와 면담하면서 미국의 압력을 슬쩍 언급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미국 측에서 이걸 좋게 보고 있지 않고 있답니다.”
“그, 그렇겠죠?”
“그래서 반도체 공급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물량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요.”
“…우리가 제때 공급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현재로선 빠르게 본 계약을 체결하고, 순번을 지키는 수밖에요. 프로그램이 변경되면 순번이 뒤로 밀리거든요.”
“아…….”
미국을 들먹이면 어지간하면 해결되니 참 편하다.
의문이 든다고 미국에다 물어볼 수도 없고 말이다.
그 외에 박람회에서 특이한 일이 있다면 슈트를 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없다는 점이다.
보통 이런 무기 도입 계약에는 에이전트, 브로커라는 존재들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비교적 투명한 미국 같은 국가도 이들을 완전히 배제하진 못했고 무기의 단가와 기술 수준이 높을수록, 그리고 구매처의 정치가 혼란스러울수록 많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무기 수출은 오로지 아르마에 의해 진행되므로 중개상이 끼어들 일이 없었다.
로비를 하려 해도 한국에선 불법인 데다가 최종 결정권자가 유지하 대통령이다 보니 테라섬에 끌려가기 싫어 영업을 접은 경우가 많았다.
다만 구매처가 혼란스럽고 배후 실력자가 존재하는 경우 아르마도 대충 넘어가곤 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딱 그런 경우였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번 박람회의 VIP이자 최대 고객이었다.
그가 무엇을 구입할지는 몰랐지만 가장 많은 지출을 할 거라는 점은 분명했다.
실제 박람회가 끝나고 그는 200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주로 무인함이었지만 그는 카탈로그에만 존재하는 K-3A2 전차에도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유지하가 직접 그와 면담에 나섰다.
“레일건 전차라. 기동과 사격 둘 다 배터리로 합니까?”
“기동은 이온 추진기로, 사격은 배터리로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레일건이 전력을 많이 잡아먹는 관계로, 탄자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휴행탄은 많지가 않습니다. 대략…….”
“대략…….?”
“40발 정도입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형편없는 숫자가 나올 줄 알았는지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 정도면 다른 전차와 비교해도 적당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전력이 소모된 후입니다. 충전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 배터리를 교체해야 합니다. 전장에서 후퇴해야 하는 거죠.”
“그건 전술에 따라서 고려해 볼 여지가 있겠군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고려한다 치더라도 스펙이 너무 화려했다.
엔진 환산 2,000마력에 최고 속도는 시속 120km을 넘었고 항속거리는 무려 1,000km에 달했다.
각 단차가 정찰 드론을 탑재해 실시간으로 전장을 3D로 구성해 적을 포착할 수 있었으며 데이터도 넘겨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막힌 것은 화력이었다.
60구경의 레일건을 탑재했는데 이는 현존하는 그 어떤 장갑도 뚫어 버리는 위력을 자랑한다.
순수한 운동에너지로 뚫어 버리는 체계라 같은 블랙메탈이 아니면 막기가 힘들었다.
요즘에는 여러 국가에서도 블랙메탈 장갑을 채용하려는 시도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1선에 채택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100억을 넘는 가격이 걸림돌이 될 수 있겠지만 무함마드 왕세자에겐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친구여. 나는 드론으로 많은 이득을 봤습니다. 예멘을 안정화시켰고 돈만 축내던 용병들을 축출했지요. 이 전차도 비슷할 테니 우선적으로 5개 대대분을 구입하기로 하지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차부대 편제에 의하면 1개 대대에 약 70대의 전차가 소속되며 이는 구난전차 등을 뺀 숫자다.
그러니까 무함마드 왕세자는 카탈로그만 보고서 3조 5천억 원을 지급한 것이다.
유지하는 다른 카탈로그도 슬쩍 밀었다.
“이 무인기는 어떻습니까? 많은 관심을 가지시던데.”
“캘리버 드론의 기동성과 연료 효율은 확실히 인상 깊었습니다. 하나 내가 걱정하는 것은…….”
“사우디군이 캘리버 드론으로 무장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곳이 있군요?”
“언급하지 않아도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사우디가 세계 4위의 국방 예산을 어디다 쓰겠는가.
유럽의 무기 체계도 일부 도입했지만 대부분은 미국제를 구입했다.
그런데 미국은 자기네 고객을 한국에 빼앗기기 싫은 모양인지 온갖 압력을 가했다.
변명이라고 댄 것이 완전한 무인기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군과 많은 훈련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상 지원 임무도 있고 근접항공지원 임무도 있지요. 무인기를 믿을 수 없으니 배제하라는 겁니다.”
“파일럿이 탈 수 있다면 괜찮겠군요?”
이어 유지하가 내민 카탈로그는 곧 출시 행사가 잡혀 있는 KF-31이었다.
이 전투기는 러시아와 합작으로 제작한 기종으로 원래 무인기였으나 파일럿이 탈 수도 있게끔 설계되었다.
캘리버 드론은 이 무인기의 파생 개량형이라고 볼 수 있었다.
순간 무함마드 왕세자의 얼굴이 환해졌지만 곧 굳어졌다.
“유감입니다.”
한국 항공기는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은 모양이니 이쯤에서 접는 수밖에.
미국의 포위망이 촘촘하게 그를 죄어 오고 있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라서 절대 강 대 강으로 맞붙으려 하지 않는다.
미국이 가진 힘이 뭐겠는가?
세계의 시장이 되어 주는 경제와 금융에다 뛰어난 소프트파워, 그리고 각지에 깔아 놓은 미군이 그들의 힘이 된다.
이 결속력은 대단히 단단해서 소련과 중국 등 많은 국가들이 패권에 도전했지만 제풀에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유지하는 그 결속을 뿌리부터 해체해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지만…….’
치졸하게 나오니 이쪽도 치졸한 방법을 동원하는 수밖에.
그는 면담이 끝나고 아르마를 호출했다.
“한 명을 죽여야겠는데.”
살인은 간단하면서도 효과가 좋다.
물론 정치인 좀 죽는다 해서 미국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흔들리진 않는다.
민주주의가 가지는 강점이 뭐겠는가?
하지만 후반부에 진입한 대선 레이스에 찬물을 끼얹는 정도는 충분할 것이다.
유지하는 덤덤하게 미국인 한 명의 죽음을 지시했다.
「테트로도톡신H를 주입할까요?」
“이번에는 다른 걸 썼으면 좋겠는데. 그 후보가 평소 심장 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지?”
「스텐트 시술을 받았죠. 그 점 때문에 공화당 후보에게서 공격도 많이 받았습니다. 본인이야 괜찮다고 주장하지만요.」
“나이도 나이고 수술 경력도 있어서 심장이 갑자기 멈춰도 이상하게 여기진 않을 거야.”
「심장만 멈추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절대 들키지 않게 해. 요즘 미국이 내 뒷조사를 하느라 바쁘더라고.”
어찌나 샅샅이 훑는지 미국으로 보내 버린 한성그룹의 손녀 신하윤까지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나오는 건 없겠지만 조심해야 한다.
유지하는 계획을 점검하고 승인했다.
* * *
로건 브라이언트는 현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서 거의 당선 확정이란 말을 듣고 있었다.
어느 여론조사를 봐도 지지도가 60%에 육박했고 유세 현장마다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는 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나쁘지 않음에도 일어난 희한한 현상이었다.
여러 조사 기관에서는 한국에 대한 강경책을 선점한 게 인기의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맹견에는 목줄과 입마개. 이것보다 간결한 선거운동 표어는 없다.
―최근 들어 다수의 미국인은 한국을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은 갖가지 하이테크를 쏟아 내고 있는데, 원리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그러므로 한국의 팽창을 저지해야 한다. 부드러운 방법이 안 된다면 다소 강압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그리고 이런 위협은 대중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유지하가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는 선에서 만족했다면 통제할 것까진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지하는 몇 번이고 선을 넘었다.
기어코 쓰시마 섬을 공격하더니 이번에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공격해 미국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켰다.
그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별게 아니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공화당은 전황이 아라비아 반도로 확대되지 않은 것을 은근히 기뻐하는 눈치였지만 민주당 상원 의원들은 격렬히 반발했다.
―중동에서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전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당장 유지하 대통령을 소환하십시오!
―3억을 중세시대로 몰아넣고 태연하게 메가시티? 거기 민중의 삶이 어떤지 그 사람이 알긴 합니까?
―이쯤 되면 하나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군요. 매킨리 대통령은 한국, 러시아의 들러리입니까? 왜 개입을 하지 않고 어물거리기만 하는 겁니까.
매킨리 대통령이 소모적인 정치 공세라고 반박했지만 임기 말이고 해서 별 의미는 없었다.
미국 정계에서는 유지하가 딱 하나만 받아들인다면 모든 게 순조롭게 될 거라고 주장했다.
―주한미군을 다시 들여보내자. 3만 명을 주둔시키는 것으로 양국은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주한미군의 재주둔을 거부했다.
“누가 쫓아낸 것도 아니고 자의로 나가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립니까.”
당시 유지하 대통령이 미국의 특사에게 한 발언의 일부다.
예전이라면 한국의 대통령이라 한들 절대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었을 텐데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매킨리 대통령은 어차피 자신의 실수가 아니니 그냥 넘어가려고 했고 민주당은 또 뒤집어졌다.
하여튼 그 발언은 민주당이 직접적으로 제재를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
당장은 공화당이 반대하니 어쩔 수 없지만, 정권이 바뀌면 반드시 손을 봐주리라.
그렇다고 군사적인 옵션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한국과 인류연합의 군사력은 물론 미국에 못 미치겠지만, 미지의 영역이 상당히 많았다.
또한 전쟁 좀 그만하자는 국내의 여론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안전쟁에 한국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독도와 쓰시마 전투, 중동 전쟁까지… 최근에 일어난 것만 몇 개냐?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
―유지하가 관련된 것만 3개다. 이게 우연이라고 할 수 있나?
단 이는 주요 여론이 되지 못했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음모론을 당론으로 채택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중동 3국을 공격한 것도 최소한의 명분은 있었다.
해서 민주당은 조심스럽게 한국과 유지하를 포위하기로 했다.
그들의 장기인 경제 분야에서 말이다.
과거 프라자 합의 등으로 일본을 무너뜨린 적이 있었기에 그보다 약한 한국쯤이야 손쉬운 상대였다.
온갖 하이테크로 무장했다 하더라도 한국의 기초 체력은 아직 멀었다는 평가였다.
―군사력 대결은 중국과 일본에 맡기고 우리는 한국 경제를 하나씩 해체하자.
―우선 메모리 반도체부터 손대는 게 좋겠다. 신라그룹에 직접적인 타격은 가지 않겠지만 연구 인력 고용이 많은 분야라서 한국 전체에 타격이 있을 것이다.
이런 목줄과 입마개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이 바로 로건 브라이언트였다.
그는 텍사스에서의 성공적인 유세를 끝내고 한숨을 돌렸다.
공화당 텃밭인 텍사스이다 보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는데, 다행히도 유세 버스를 위협하지는 않았다.
“이것도 다 그 친구에 대한 분노 때문이지.”
선거 캠프 직원이 그의 말을 거들었다.
“그 누구보다 텍사스 사람들이 더 잘 느끼고 있을 겁니다. 산업 전반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으니까요.”
그간 텍사스는 저렴한 세금을 무기로 많은 기업을 유치해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그 기업들이 빠져나가거나 파산하기 시작했는데, 모두 유지하와 한국의 영향이었다.
NASA의 예산이 쪼그라들면서 각종 계획이 취소되었고 핵융합 관련 기업들이 모조리 기술을 포기한 것이다.
그 직격탄을 맞은 곳이 바로 휴스턴이었다.
물론 석유산업 등 경제는 아직 튼튼하지만 텍사스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더 이상 휴스턴을 호출하는 우주 비행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게 슬프구만.
―모든 것이 유지하인가 하는 그 한국인 잘못이야. 혹시 그놈이 우리 기업들의 핵융합 연구를 훔쳐간 건 아닐까?
단지 소문일 뿐이지만 유지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브라이언트 후보는 이 점을 노려 자신이 민주당원임을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맹견에는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만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썼다.
“슬픈 가정입니다만, 개가 사람을 향해 사납게 짖고, 물기까지 한다면 통제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같은 미국인입니다. 그리고 맹견을 통제할 힘이 있습니다.”
통제를 싫어하는 미국인, 그중에서도 텍사스인들은 더하지만 그게 자기 입장이 아니다 보니 크게 반발하진 않았다.
브라이언트 후보는 그렇게 유세를 마치고 호텔에 들러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선거 캠프의 직원들은 알지 못했다.
아주 작은 곤충형 드론이 객실에 숨어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드론이 교묘한 독극물을 그의 심장근육에 주사했고 곧 그가 편안하게 사망했다는 것까지.
소동이 일어난 것은 아침이었다.
대선 후보를 깨우러 들어온 선거 캠프 직원들은 그가 일어나지 않자 몸을 흔들었고, 곧 호흡을 확인했다.
“호, 호흡이 없습니다…….”
“후보께서 사망하셨다! 어서 당과 경찰에 알려!”
* * *
유력한 대선 후보가 사망하자 경찰들이 우르르 출동하는가 하면 텍사스 주 전체가 뒤집어졌다.
민주당도 난리가 났고 곧장 의회에서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선거가 얼마 안 남았는데 후보가 사망하다니! 이건 암살이다!
―호텔의 출입 기록을 뒤진 결과 의심 가는 정황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슬픈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냉정해야 한다.
―슬픈 게 맞나?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게 되어 기분 좋은 날이 아니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의회에서 양당 의원들이 입씨름을 벌였고 미국 정계는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라이언트 후보는 공화당에서도 꽤 동조자가 있는 중립적인 인사였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도 꽤 오른쪽에 있다는 평이어서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통상 정책이 중립적이면 박쥐라는 평을 얻기 쉬운데 그는 유지하라는 샌드백을 얻은 덕분에 언론의 질문 공세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어떻게 미국을 발전시킬 건가요?
―좋았던 시절이 있었죠. 미국과 한국은 확고한 동맹이었으며 끈끈한 신뢰를 가졌습니다. 그때로 돌아가는 겁니다.
―달콤한 말 같지만 한국에는 족쇄가 되지 않을까요? 유지하 대통령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진 않을 텐데요.
―최근 들어 한국이 급격한 성장을 이뤄 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기초적인 체력이 부족합니다. 새로 얻은 영토는 안정화되지 않았고 경제는 개인에 의지하고 있으며 물가가 상승세에 있습니다. 우리는 특히 그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의 물가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중국의 수출을 통제할 생각인가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여러 수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당신도 동의할 거라 생각합니다. 상대는 맹견이니까요.
―목줄과 입마개가 필요하단 주장이군요. 잘 들었습니다.
대놓고 입마개론을 내세우는 데도 뭐라고 지적하는 이가 없는 게 미국이 가진 자신감이었다.
7,500조 원을 넘는 1년 예산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며 이는 한국의 10배를 넘는다.
유지하만 아니었으면 도저히 상대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브라이언트 후보가 사망했다.
사인은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장소가 텍사스의 호텔이라는 게 큰 이슈가 되었다.
일부는 암살을 주장했고 심지어 유지하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맹견 입마개론을 주장하던 후보가 사망하면 누가 제일 이득인가? 물론 공화당이겠지만 유지하도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의심하기 전에 증거부터 대라. 한국에 있는 유지하가 무슨 수로 브라이언트 후보를 암살했다는 건가? 군사용 드론을 동원해서?
당연하지만 증거는 없었고 암살론 자체도 일부의 주장에 불과할 뿐이었다.
브라이언트 후보가 평소 심장이 안 좋았던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
그리고 얼마 후 부검 결과가 나오자 암살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로 추정. 이외의 의학적 소견 없음.」
이제 공은 의회로 돌아갔다.
유력한 대선 후보가 사망했으니 이대로 선거를 치를지 연기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공화당이 쉽사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공화당위원회에서는 대체 후보를 내라고 했지만 교체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미 일부 주에선 조기 투표가 실시되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 대통령의 임기를 몇 개월 늘리고 경선부터 다시 치르자는 말까지 나왔다.
어느 방안이건 전례가 없었던 터라 의원들은 골치를 썩게 되었다.
한편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유지하는 유유히 국내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을 호출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생산을 맡기기 위함이다.
신라그룹이 할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한성전자 등에는 폐쇄된 파운더리 설비가 꽤 남아 있기에 그걸 이용할 계획이었다.
설비는 구형이지만 인력은 한국 여기저기에 퍼져 있다.
설계도를 넘겨주고 제대로 컨트롤만 해 준다면 한국 반도체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오랜만에 부름을 받은 신주호 회장이 전문가들을 데리고 상춘채로 들어왔다.
유지하는 그들을 맞으며 자리를 권했다.
“허허, 이런 힘 빠진 노인네도 신경을 써 주시는군요.”
“노인네라뇨. 아직 할 일이 한참 많으신데.”
신주호 회장은 참으로 복잡한 시선을 유지하에게 던졌다.
한때는 똘똘한 어린 녀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발톱을 숨기고 있던 맹수였다.
‘비서는 남자가 해야 한다며 진지하게 조언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대체 언제 이렇게 권력을 잡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더 놀라운 건 저 대통령 자리가 참으로 어울려 보인다는 것이다.
하긴, 그가 아니면 누가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신 회장이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는데 유지하가 태블릿을 그에게 건넸다.
“이건 반도체인데… 저야 별 소양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요. 한번 보시죠.”
“내가 뭘 알겠습니까. 어디, 자네가 한번 보게.”
이런 식으로 몇 명이 태블릿 화면을 돌려 봤고 거의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 대통령님, 이건…….”
“생산할 수 있겠습니까?”
“공정이 그리 복잡하지는 않으니까 가능은 하겠지만 이건…….”
“대체 뭔데 그러나?”
듣다 못한 신 회장이 목소리를 높이자 임원 한 명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입니다……. 전자 연구소에서 몇 년 전 포기한 그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