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다이아몬드 반도체
청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먹고 살며 노인은 과거에 대한 추억을 먹고 산다.
유지하가 20년대 한국 반도체 상황을 꺼냈을 때, 신 회장이 할 말이 많다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미국은 우리가 중국 측에 기우는 게 영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기어코 파운더리 사업을 가져간 걸 보면.”
“아무래도 불안했겠죠. 자국의 일자리를 위해 제조업을 가져와야 했던 것도 있겠고.”
유지하의 첨언에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미국이 자국의 일자리를 챙기기 시작했던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자동차 제조업부터 시작하더니 전통적인 우방국들이 담당해 왔던 반도체까지 손을 대었다.
또한 미국은 중국에 많이 기대는 한국을 불안하게 바라봤다.
만약 한국이 중국에 완전히 넘어간다면 동아시아의 반도체 벨트가 휘청거릴 수도 있는 것이다.
신 회장은 당시가 생각나는지 눈에 힘을 주었다.
“그때 나하고 다른 회장들하고 단체로 미국에 불려가 온갖 수모를 다 당했지요. 당신네들 손에서 파운더리 산업을 빼앗을 거란 소리도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대놓고 그런 소리를 했다는 말씀이시군요.”
노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미국이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습니까… 아무튼 우리가 수주한 물량이 딸렸던 건 비단 공정이 부족했던 것만은 아니었을 겝니다. TSMC 그놈들이 반 발짝 앞서나갔던 건 사실이지만, 우리도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폐업한 지 오래지만 자존심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유지하가 넌지시 물었다.
“그때 미 정부가 자국기업에 압력을 가했습니까? 물량 빼라고?”
“증거야 없지만, 다들 아는 사실이지요. 우리가 단가 면에서 조금 불리하기도 했고.”
TSMC가 워낙 여유가 없었던 만큼 그 틈을 파고들었던 게 한성 파운데이션을 비롯한 국내의 몇몇 기업이었다.
하지만 하나둘씩 물량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몇 개월 뒤에는 구 공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주가 끊어져 버렸다.
“다음은 메모리였지요. 미국은 우리가 메모리를 틀어쥐고 있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자국기업과 일본을 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마이크론과 엘피다지요.”
“그래도 치킨게임으로 꽤 버티셨을 텐데.”
“다 한때지 미국이 대놓고 밀어주는데 우리 같은 기업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자국에 반도체 팹을 지으면 인센티브를 지급해 주기까지 했지요… 갑자기 설비 구하러 미국을 돌아다닌 게 기억나는구만. 아들놈을 보내놨더니 빈손으로 돌아와서 내가 갔는데도 똑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대부분의 물량이 이미 배정되었다고요?”
“그렇지요… 미 정부가 압력을 넣어서 설비 대부분을 자국과 일본에 밀어준 겁니다.”
답답하겠지만 미 정부가 나섰는데 일개 기업으로선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것이다.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어려운 게, 그쪽은 미국보다 더한 자국중심주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
중간에 끼인 한국 기업들은 중국 눈치를 보며 미국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썼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는 파운더리를 접고 말았지요. 메모리 점유율도 10% 이하로 내려갔고…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낯부끄럽습니다만, 한성은 한국 반도체의 대장이었습니다. 그 대장이 무너진 거지요.”
당시 한국 경제가 암울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반도체 불황이다.
전성기에는 수출물량의 18%까지 차지하던 게 2025년에는 3.5%까지 내려앉았으니 얼마나 타격을 입었는지 알 수 있다.
여하튼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악화일로를 걸었고 현재는 메모리 분야에서 명맥만 겨우 잇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만 있다면…….
신 회장은 다이아몬드 반도체에 대한 보고를 받았기에 그 존재는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다이아몬드는 절연체지만 여러 불순물, 질소나 붕소를 섞는 것으로 전도체로 바꿀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600도 이상에서도 작동하며 전자속도가 매우 빨라 고속 연산에 적합하다.
또한 구조를 깬 후 입자를 넣어 양자컴퓨터의 연산자로 활용하는 대안도 존재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실험실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제작에 필요한 높은 비용과 각종 난점 등으로 사장되고 말았다.
미국이나 일본 등도 논문은 계속 내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보이지 못했다.
그런데 눈앞의 대통령이 갑자기 그에 대한 것을 언급했다는 것은…….
“혹시 어디에서 개발했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루시아의 연구 결과입니다. 루시아는 지금도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연산, 분석하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그중의 하나라고 봐도 될 겁니다.”
“안트론과 같은 것이겠군요. 우리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루시아의 연산능력은 이미 우리를 초월했습니다. 특이점이 온 거죠. 나도 그녀가 뭘 연구하는지 모릅니다.”
참 변명하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루시아가 강인공지능이라는 건 이미 여러 학자들에게 검증받은 바 있다.
지금도 세계 어디의 연구실에선 신라그룹에 허락을 얻어 루시아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을 것이다.
신 회장은 이쯤에서 공을 전문가들에게 넘기기로 했다.
“노인네의 호기심은 이쯤 해두고 제작할 순 있겠는가?”
전문가들이 눈치를 살폈고 결국 한 사람이 총대를 메고 답했다.
“현 설비를 그대로 쓸 수 있다고 하니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팹을 다시 가동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얼마나 걸리겠나?”
“원재료 가공을 생각하면 최소 5년 이상은…….”
순간 신 회장은 유지하의 눈치를 봤고 그가 입을 열었다.
“원재료 가공은 이쪽에서 처리할 테니 생산만 하면 됩니다.”
반도체 경험이 전혀 없는데 웨이퍼 직전까지 제작하겠다고?
돈에 앞서서 노하우가 전혀 없는데 그거 감당이 되겠냐고 묻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이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비용이 문제였다.
인공 다이아몬드로 시드를 만들기 위해선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 상태로 웨이퍼를 제작하면 실리콘의 몇 배 이상이 될 것이다.
아무리 루시아가 뛰어난 연산력을 자랑해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유지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단가가 문제입니다만 러시아 알로사에서 저렴하게 공급해 주기로 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러시아에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기업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드를 만들 정도의 수량과 단가를 맞춰 주진 못한다.
국영기업이라 푸틴 대통령이 허락하면 되겠지만 수급이 불안정할 확률이 높았다.
여기에선 세틀러호의 에테르 융합로를 이용한다.
융합로가 일정 이상 출력을 내게 되면 내부의 압력과 온도가 엄청나게 올라가는데, 거의 목성 내부와 맞먹는다.
그러니까 상온 초전도체와 인공 다이아몬드를 우주선 내에서 만들 수 있단 뜻이다.
장기적으로는 생산 설비를 국내에 들여야겠지만 당장은 시장에 충격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중에 아르마가 정식으로 로드맵을 통보할 겁니다. 맞춰서 생산 준비하면 됩니다. 질문 있습니까?”
그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받은 한 전문가가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대통령님, 혹시 그렇게 만들어진 반도체의 성능이…….”
“이해하기 쉽게 개인용 PC에 들어가는 CPU를 예로 들어 보지요. 구세대 공정으로도 현존하는 1nm짜리를 가볍게 능가합니다. 클럭은 양산에 문제만 없다면 7GHz 정도는 가볍게 찍겠군요.”
“그, 그렇게나…….”
사람들이 그 숫자에 경악했지만 유지하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건 구세대 공정에 불과할 뿐입니다. 180nm 설비로도 찍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공정이 미세화되고 여러 기술이 쌓이면 성능은 훨씬 더 올라가지요.”
“이 부장, 180nm 공정으로 찍어낸 CPU가 뭐였지?”
“코퍼마인 세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2000년대 이전의…….”
“그런 구 공정으로 현세대 CPU를 압도하는 클럭이라…….”
“참고로 말하는 거지만 구조와 명령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현 CPU와는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습니다. 다만 성능을 쉽게 높일 수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가변클럭에 가변코어까지 사용할 수 있죠.”
아까는 분명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고 했었는데?
유지하는 사람들의 의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원재료인 다이아몬드의 특성상 회로 내에서 전자의 이동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간섭을 받지 않습니다. 고온에도 매우 강하기 때문에 클럭을 높이기가 쉽죠. 수십GHz 정도까진 쉽게 올라갈 겁니다.”
“말하자면 원재료만 바꾸어 2000년대 이전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구만.”
신 회장이 그렇게 말하자 유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에서도 한때 서버용 CPU에 손을 댄 경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근무했던 직원들은 없지만 다시 불러오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요. 이걸 만들 수 있다는데 뭐 어렵겠습니까.”
“이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유지하가 목소리에 힘을 주자 사람들은 바짝 긴장했다.
“단언컨대 현존하는 반도체를 압도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특성상 양자컴퓨터를 구현하기가 굉장히 쉽고 또 양자통신에도 사용할 수 있지요. 그러니 나만 믿고 양산 준비하세요. 모든 것은 이쪽에서 통제합니다.”
순간 신 회장은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평범한 을이 되겠지만 미국과 일본, 중국에 치이는 지금의 처지로선 감지덕지였다.
한성전자는 블랙메탈 배터리를 채용한 스마트폰 외의 미래의 먹거리가 필요했다.
다만 마음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이렇게 잘 키운 뒤 잡아먹는 것이 유지하의 패턴이었기 때문.
‘이미 신라그룹에 편입된 기업이 한 둘이 아니지…….’
예전 같았으면 정부 차원에서의 철퇴를 맞았을 것이나 실질적인 주인이 유지하이다 보니 어마어마한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개인기업이라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상장기업이었다면 시가총액 등에서 세계 유수의 초기업들을 압도했을 것이다.
다소 이례적인 것이 있다면 경쟁력 있는 소기업들을 흡수한다는 점이었다.
하청을 썼으면 썼지 부담을 늘리기 싫은 것은 최고경영자의 공통된 특성 아닌가?
‘목표가 무언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성전자, 아니, 그룹 전체에 미래는 없다는 것.
어차피 독재자라서 기업의 의향 따윈 씹어버리고 지시할 수도 있긴 했다.
신 회장으로서는 이 결정이 자신의 마지막이 되었으면 싶었다.
“그럼 신경 써서 준비하겠습니다.”
“앞으로 미국의 압박이 심해질 텐데, 발언 하나하나를 비서실에 보고하세요.”
그 발언을 기록해 두었다가 한꺼번에 되갚아 주겠다는 생각은 아니겠지?
자존심 강한 미국이 참고만 있진 않을 테니 더 가혹한 조치가 나올 것이다.
각종 보이콧은 물론이고 군사적 압박에 최악은 전쟁까지…….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미국과의 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유지하가 막나간다 하더라도 최후의 선은 넘지 않았으면 싶었다.
* * *
미국은 대통령 후보가 사망하는 바람에 정치적 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향한 경제적 압박은 차근차근 계속되었다.
먼저 차세대 GDDR7 메모리 생산을 위한 설비 물량을 대폭 줄였다.
대당 1,500억을 넘는 반도체 노광장비를 제작하는 ASML에서는 한성 등의 국내기업에 물량을 댈 수 없겠다고 통보해 왔다.
또한 중국에서 제작하는 자동차용 와이어링 하네스와 자율주행용 칩셋 공급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신라오토는 와이어링 하네스와 칩셋 대부분을 중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중국의 대혼란기에 1차 벤더의 중국 공장이 대부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미래자동차를 흡수한 신라오토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은 재고분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몇 개월 지나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것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신라오토는 윈드러너 출시 이후 대부분의 전기차에 각국의 실정에 맞는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탑재해 큰 호평을 얻었다.
그렇게 라인업을 늘려나간 결과 전성기의 미래자동차에 버금가는 탄탄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비록 규모 면에서는 세계 8, 9위권에 불과하지만 전량 전기차이고 알고리즘이 워낙 뛰어난지라 실제 순위는 그 이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위상도 부품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의미가 퇴색된다.
신라오토의 임원진이 직접 중국에 날아가고 아르마가 연락을 취했으나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정말로 재고가 없습니다.”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재고가 없다는 건 누군가의 압력을 받았다는 걸로 해석해도 되겠죠?”
“억측입니다.”
임원의 말투는 딱딱 끊어져서 나왔다.
정말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이쪽을 안심시키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할 말만 단답형으로 한다는 건 윗선에서 압력을 받았다는 뜻.
“윗선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각오해야 할 겁니다. 우리 윗선이 누구인지 모르지는 않겠죠?”
중국 임원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았다.
유지하야 워낙 유명하지만 혼자서 중국과 미국을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쟁이야 이골이 났을지 몰라도 이런 식의 신경을 갉아 먹는 제재는 처음일 것이다.
중국 쪽 임원은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통화를 끊었다.
아르마가 수집한 데이터에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만 이런 일이 생긴다는 건 누군가가 막았다는 뜻이고, 그 최상층에 미국 정부가 위치할 것이다.
세간에서는 미국의 압력이 시작되었다는 관측이 파다했다.
―맹견에 목줄과 입마개를 채우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오히려 그동안 미국이 너무 풀어줬던 측면이 있다.
―이제 러시아의 남하도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고 관세도 높일 예정이다. 유지하는 이 정도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미국의 제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만 미국도 유지하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은밀하게 진행될 듯하다. 의도를 눈치채지 못할 사람이 아니겠지만.
―비록 브라이언트 후보가 사망했지만 민주당의 당론은 바뀌지 않는다.
그 은밀한 압력이 한국 경제 여기저기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품목은 주로 반도체였고 지금의 한국은 이를 극복할 힘이 없었다.
한성전자야 주도권을 뺏긴 지 오래고 신라그룹은 그쪽에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반이 없다는 거지 기술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르마는 그룹 내에 또 다른 법인을 세워 공장부지를 확보했다.
“이번에 설립한 법인은 신라그룹의 반도체를 맡게 됩니다. 재료 가공부터 웨이퍼 생산, 메모리와 파운더리 사업, 그리고 연산용 칩셋에 이르기까지 토탈 패키지를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름은 퀀텀솔루션.
대놓고 양자기술을 지향한 이름이어서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했다.
―유지하한테 양자기술이 있나? 전혀 없었던 걸로 아는데.
―강인공지능 있으니까 뭔가 개발했을지도 모르지. 우린 메타버스 서버실에서 무슨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름.
―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반도체 관련해서 사업을 하려면 기초적인 인프라가 있어야 할 텐데.
―한성그룹에 있지 않음? 예전에 쓰던 설비가 많이 남았을걸.
―그 구형 설비로 뭘 생산한다고. 요즘은 1nm의 시대야.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새로 설계에 들어간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구 공정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인류연합에서 흔히 쓰는 3차원 패터닝이 아니라 2차원 패터닝을 쓰기에 포토 공정도 간단했다.
여기에 쓰이는 일부 재료는 유지하의 지시로 한국 내에서 생산이 이뤄지고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일본과 단교하면서 대부분의 원자재를 그렇게 수급하고 있었고 일부 일본 기업들은 해외에 별도의 회사를 세우면서까지 한국에 공급해 주려 노력했다.
유지하는 그런 노력은 봐주었다.
다만 반도체를 출하하려면 그 외에도 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고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므로 함부로 진입할 수 없는 분야였다.
하지만 설계를 맡은 루시아의 진면목은 인류연합의 인공지능 아르마였다.
그녀는 순식간에 설계를 끝내고 로드맵까지 조정했다.
원래는 2030년에 만주를 공략할 생각이었으나 중국의 입장이 저렇다면 굳이 건드릴 필요까진 없었다.
로드맵을 본 유지하가 물었다.
“만주에도 메가시티가 들어서야 하는데 지장은 없겠어?”
“그래 봐야 1년이니까요. 전체 로드맵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됐어. 내년 초까진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기로 하지.”
그 내실 다지기란 전 세계의 반도체 산업을 뿌리부터 새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등장하더라도 모든 기업이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현재 반도체로도 충분한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첨단산업, 예를 들면 천문학이나 의학, 화학, 슈퍼컴퓨팅, 클라우드 시스템 등지에서는 연산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구 공정으로도 연산력이 10배 이상 차이가 날 텐데 이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바보지.
하여튼 퀀텀솔루션을 위한 스마트 팩토리는 순식간에 모든 행정적인 절차를 끝마치고 건설에 들어갔다.
건설에는 인류연합이 플레이그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낸 엄청난 공기 단축의 노하우가 들어가 있었다.
언제 플레이그가 공습할지 모르는데 느긋하게 공장을 세울 순 없었다.
그래서 인류연합은 플레이그의 체내 구조를 모방해 블랙메탈을 분해하고 결합시키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 시스템이 메가시티와 세틀러호를 위시한 우주선 건조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이제 숨길 필요도 없어서 순식간에 스마트 팩토리가 들어섰다.
다른 기업 같으면 겨우 부지 선정을 위한 위원회 구성에 착수할 시기에 이쪽은 설비를 배치하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미친 속도였다.
다만 각국의 정보기관과 수뇌부는 이미 메가시티 등을 겪어서 이런 진척도에 크게 놀라진 않았다.
―많이 봐서 익숙해졌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런 속도는 절대 정상이 아니다.
―저렇게 공기를 단축하다 보면 부작용이 속출할 텐데 그런 것도 없는 모양이다.
―다만 협업할 한성전자는 여느 기업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생산 설비 재가동에 연 단위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유지하에게 워낙 익숙해져서 그렇지 한성전자가 정상이다.
신라그룹은 그 속도에 성이 차지 않았는지 직접 안드로이드를 파견해 설비를 조정해 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미국은 유지하가 상황을 뒤집을 뭔가를 획책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최근 유지하 대통령이 직접 러시아에 날아갔는데… 알로사인 것 같다.
―다이아몬드 기업에 무슨 볼일이 있을까? 설마 반도체?
―그럴 리가 없다.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시드를 키우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초고압에서 초고온을 가해 천천히 키워야 하는데 내압용기 제작이 어려워서 단가가 안 맞는다.
―잠깐, 블랙메탈이면 간단하게 내압용기를 만들 수 있지 않나?
현 시점에서 블랙메탈은 다양한 도구로 쓰이고 있었다.
블랙메탈 자체가 신라그룹이 출원한 하나의 상표로서 내마모도가 중요한 각종 공구에 빠짐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젠 시중에서 블랙메탈제 드라이버, 드릴 등은 최고 명품으로 취급받고 있는 단계다.
내압용기 시장에서도 상당한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기업은 그렇다 쳐도 초고압 초고온이 필요한 연구실 등은 사실상 대체품이 없었다.
그 내압용기를 이용해서 다이아몬드 시드를 키운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전기가 문제지만 한국은 핵융합 플랜트를 이미 운용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몇 개의 플랜트가 건설되는 중이었고 기존의 원전도 용도를 바꾸고 있었다.
IAEA의 감사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최대 5년 안에 모든 전력을 핵융합으로 공급할 예정이었다.
그 경우 전기의 단가는 엄청나게 저렴해진다.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출간되자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자 했다.
그러나 유지하는 거절했다.
“반도체 공급부터 제대로 하십시오. 설마 압력을 가한 게 우리가 아니라는 헛소리는 안 하리라 믿습니다.”
미국 민주당에선 이 날선 발언에 대해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암묵의 인정이라는 증거.
그리고 아르마의 설계가 끝났다.
“130nm 공정을 사용해 TDP, 열설계전력은 25W 수준입니다. 가변클럭이라 최대 7.6GHz까지 올라가고 코어는 최대 16개로 분할될 수 있습니다. IPC는 현존하는 최고급 개인용 프로세서의 11배를 상회합니다.”
성능이 11배라고 실제 속도까지 11배가 나오지는 않는다.
하드웨어엔 프로세서 외에도 연산에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디바이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르마의 연산유닛처럼 원칩에 때려 박는다면 편하겠지만 그런 기술을 지금 선보일 수는 없었다.
최소한 계단은 밟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유지하는 프로세서의 작동 시뮬레이션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첫 출시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샘플 생산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