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힘을 숨긴 깡패
지난 몇 년간 UN 안보리 회의의 단골손님이라면 단연 유지하를 들 수 있다.
거의 30%를 혼자서 차지하는 바람에 그 악명을 국제사회에 드높였다.
―죽음의 상인.
―히틀러를 능가하는 최악의 독재자.
―인류의 40%을 적으로 돌린 자.
그 외에도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대부분 안 좋은 것뿐이었다.
그나마 나은 거라면 북한이라는 골칫덩이를 흡수해 동아시아에 잠시나마 평화를 가져온 것 정도일까.
북한이 국제정세에 가져다주는 리스크를 감안하면 상당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를 싫어하는 국가에선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 의심했다.
―본인이 의도한 바도 아니고 어쩌다가 떠맡은 것 아닌가? 업적이 될 순 없다고 본다.
―그런 것치고는 의외로 잘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교육되지 않고 폭력적인데다가 영양과 위생에서 최악인 난민 2천 만을 떠안았음에도 별다른 불협화음이 나지 않고 있다.
―진짜 문제가 없는지는 북한 지역에 들어가서 확인해야 하는데 10년 봉쇄를 선언하는 바람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
―위성으로 보면 테라섬과 비슷한 시설이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식료품과 의약품을 비롯한 생필품도 적절히 투입되고 있다.
―아무튼 북한이라는 리스크를 해소한 것만 해도 노벨 평화상을 타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는 노벨상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UN조차 회의적으로 보는 것 같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지난 몇 년 간 수없이 안보리 긴급회의가 열렸는데 제대로 된 의결안이 나온 적이 없다.
그게 최대의 문제였다.
현재의 안보리 의사결정 체제에선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통과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이번 동아시아 전쟁도 그런 양상이었다.
개전 초반부터 중국과 일본이 박살나자 영국과 프랑스가 소집을 선언했지만 미국은 중립을 선언했고 러시아는 언제나 그렇듯 반대 의견을 확실히 했다.
“이 자리에서 말해 두는데 전쟁의 원인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배후에서 컨트롤한 미국에 있습니다. 한국은 예방전쟁을 한 것뿐이란 말입니다.”
“예방전쟁이라… 잠깐 성립 요건을 찾아볼까요?”
“국제법상 성립 요건을 따져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주제를 논의해야 합니다.”
“전쟁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렇게 발언한 사람은 프랑스의 국방부장관이었다.
그는 이번 전쟁의 불공정성과 세계경제에 가져올 부정적인 파급력을 언급했다.
“중국 해안 10대 도시가 완전히 멈췄습니다. 보하이 만에 묶여 있는 물량만 100만 톤이 넘고요. 한국은 지금 세계경제를 죽이고 있습니다.”
“그게 왜 세계경제와 연결되는지 모르겠군요. 상당수의 국가는 이미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많이 낮췄습니다.”
2020년대부터 중국이 자국의 수출을 무기로 휘둘렀기 때문이다.
중국의 행패에 학을 뗀 미국에선 서구권 위주의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을 만들었다.
양안전쟁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따라서 현재의 중국은 예전만큼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진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권은 아직 중국에 많이 기대고 있었다.
특히 희토류가 그랬는데 동아시아 전쟁으로 인해 공급이 뚝 끊겼다.
공급처를 다변화하려 해도 인도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물량은 대부분 한국에 배정된 상태였다.
이번 전쟁으로 EU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자동차기업은 물론이고 제조업, 항공 분야까지 멈추게 생겼다.
―중국이 이렇게 맥없이 밀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게 최대의 문제였다.
EU의 경제부처와 각 기업들은 만에 하나 전쟁이 터지더라도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제압하는 그림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어스 플릿은 확실히 대단하지만 전체를 보면 한국의 체급이 몇 단계나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한국의 기습공격에 양국의 함대가 그야말로 박살이 났고 현재 중국은 수십 개의 원전이 스톱되어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이렇게 프랑스와 영국이 급한 데 비해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느긋했다.
“분명 전에는 중국과 일본의 압박을 환영했던 것 같은데, 마음이 바뀐 모양이지요?”
“전쟁까진 바라진 않았습니다.”
“그래요? 한 유력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반드시 악은 아니다란 어조로 말한 걸 본 것 같습니다만.”
설마 중국과 일본이 이렇게 밀릴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다들 레일건을 전력화하고 한국을 꽤 따라잡았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니까.
특히 프랑스는 어마어마한 돈을 레일건과 아이언 빔에 쏟아붓고 있어서 이번 전쟁에 충격이 컸을 것이다.
“크흠.”
피에르 장관의 헛기침에 흰머리를 가진 알렉세이 미하일로프 러시아 부총리가 싱긋 웃었다.
“가슴을 열어놓고 이야기합시다. 여기 모인 우리는 이번 회의에서 제대로 된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우리만 집중포화를 맞았던 것 같지만 오늘은 좀 다르군요.”
미국이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통령은 분명 민주당 출신인데 희한하게도 고립주의, 자국 중심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었다.
유지하가 미국에 이득을 가져다주니 선만 넘지 않으면 용납하겠다는 것이다.
영국과 EU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후보를 잘못 냈다는 분위기이고 여러모로 현 UN의 분위기와는 엇나가고 있었다.
램버트 미국 국방부장관은 다시금 동아시아에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피력했다.
“태평양함대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통상적인 정찰 활동은 하고 있습니다만 각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상태입니다.”
“그 협의에는 일본을 포기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까?”
영국 장관이 비아냥거리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하프늄2 탄두를 쓰진 않았으니까요.”
“대신 컴뱃 워커인가 하는 로봇을 동원해서 도쿄를 불바다로 만들었지요.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피난길에 올랐고 현재 일본 정부는 마비 상태입니다. 이 사태에 미국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애초에 미국이 중국과 일본을 부추겨 한국을 압박하게 한 결과가 이것이다.
열심히 압박을 준비한 것까진 좋았는데 미국이 빠져 버리는 바람에 양국의 입장이 붕 떠버렸다.
램버트 장관은 느글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전후 수습에 미국의 역할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책임은커녕 중재자로서 열심히 꿀이나 빨겠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미국이 의자를 뒤로 빼자 프랑스와 영국이 다급해졌다.
어떻게든 전쟁을 중단시켜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양국이 입은 피해도 크지만 특히 수뇌부가 혼란스러웠다.
중국은 근위사단이 출동해 로켓군 사령원을 구금했느니 하는 흉흉한 소식이 들렸고 일본은 총리가 행방불명이었다.
언론에 의하면 한국이 컴뱃 워커를 동원해 수상관저를 공격하는 와중에 사라져서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수뇌부에서 제대로 된 지시가 없다 보니 일선부대는 일방적으로 얻어맞고만 있는 형편이었다.
이래서야 전쟁을 끝내고 싶어도 협상에 응할 주체가 없다.
그리고 정작 중국 수뇌부도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러시아 부총리가 입을 열었을 무렵, 중국이 탄도탄을 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탄도탄이면 그것밖에 없군.”
“우리 인공위성이 최소 50발이 넘는 발사섬광을 포착했습니다.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 기세입니다.”
“글쎄, 누가 잿더미가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죠.”
형식적이던 안보리 긴급회의가 중단되고 장관들이 본국과 연락하기 위해 일어섰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런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채.
* * *
중국의 로켓군에서 쏜 105발의 둥펑 탄도탄이 한국에 날아들었다.
북한지역은 완전히 배제했고 서울을 포함한 경기권과 각 광역시, 그리고 창원 등만 철저히 노리고 있었다.
원래 한국엔 이를 탐지할 정찰자산이 없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정지궤도에 위치한 정찰위성들이 발사섬광을 탐지해 한국 수뇌부에 연락했고, 곧바로 4단계 방공망이 가동되었다.
미국이 알려 주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볼드윈 대통령은 둥펑 미사일들이 최고고도에 올랐을 때에야 전화를 걸었다.
“모두 100발입니다. 전후 미국을 중재자로 인정하면 위치좌표는 물론 요격에 전면적으로 협력하겠습니다.”
유지하의 대답은 간단했다.
“필요 없습니다.”
전화가 뚝 끊겼기에 볼드윈 대통령은 당황하는 한편 어떻게 하나 보자, 라는 입장이 되었다.
“최소한의 역할은 한 셈이군.”
“결국 한국은 전후에도 미국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을 셈이군요.”
게레로 안보보좌관이 그렇게 말하며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핵공격 차트를 쳐다봤다.
「3단계 부스터 연소 종료, 로켓 분리.」
추측에 불과하지만 탄도탄이란 게 개발이 끝난지라 오래라서 실제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양국은 거의 붙어있지만 탄도탄은 그 특성상 상승하는 데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응 시간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남은 시간은 366초.
대기권 재돌입체가 분리되자 볼드윈 대통령은 그냥 알려 줄 걸 그랬나, 하며 후회했다.
전 세계에서 중국의 탄도탄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곳은 거의 드물다.
기껏해야 미국과 러시아 정도인데 100발이 넘는 탄도탄 공격은 솔직히 장담할 수가 없었다.
온갖 기만책을 가진 채 마하 20이 넘는 속도로 지상에 낙하하는 탄두를 막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2차 한국전쟁 때 북한의 탄도탄을 막아 낸 적이 있다.
또한 인도양에서도 파키스탄의 핵 공격을 대부분 막아 냈다.
아이언 빔의 위력이지만 그게 중국의 탄도탄에도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탄도탄 방어가 완벽하진 않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군.”
“보나마나 보강했을 겁니다. 아니면 일부러 약점을 보였거나요.”
“자네는 한국이 모든 음모의 뒤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제가 아니라 당의 판단입니다. 300초 뒤엔 알게 되실 겁니다.”
“설사 한국이 모조리 막아 낸다 하더라도 내 행정부의 방침은 바뀌지 않아.”
중국 최후의 보루조차 박살 낸 한국에 압박이 소용 있을까?
그 패권을 인정해 주고 동아시아를 맡기는 게 나았다.
다만 민주당은 한국을 예전의 소련, 중국처럼 취급하길 원했다.
덩치가 작은 만큼 만만해 보일 수는 있으나 기술력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볼드윈 대통령은 판단했다.
게레로 보좌관은 고집을 내세우는 대통령의 뒤통수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말만 잘 들었다면 재선도 충분했을 것을.
‘안타깝게도 당신의 임기는 한 번으로 끝나겠군요.’
후임으로는 연일 한국에 대한 강경한 대책을 주문하고 있는 의원이 거론되었다.
그는 맹견론을 넘어서 한국을 미국에 대한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한국의 패권주의 행보를 내버려 두어선 안 됩니다. 한국은 깡패국가로 변모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의 평화에 매우 위협적입니다.”
이런 주전론에서 볼 수 있듯 민주당의 주류는 초강경파였다.
그러나 정작 볼드윈 대통령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고 마침내 돌입체에서 분리된 수백 발의 탄두가 대기권에 돌입했다.
한국의 고고도 방공망이 가동되었지만 둥펑의 탄두는 디코이는 물론이고 냉각 시스템을 가동시켜 탐지율을 크게 낮췄다.
덕분에 안트론 탄두의 탑재에도 불구하고 40% 이상의 탄두가 중고도까지 내려오는 데 성공했다.
이쯤에서 탄두의 속도는 초속 8.5km로 어지간한 방공망으로는 대응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국은 천궁3 미사일을 동원해 차근차근 탄두를 요격했다.
각 방공부대에서 점화된 대공미사일 수백 발이 수백 미터 밖에서 기폭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탄두가 고철이 되어 한반도 각지에 후두둑 떨어졌다.
탄두의 주요 목표인 서울에선 수십 발이 떨어지는 걸 봤다는 시민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공병대가 출동하는 와중에 드디어 남은 탄두 50여 발이 구름을 관통했다.
새벽녘 어스름한 가운데 탄두의 궤적이 서울 여기저기에 비춰졌다.
공중폭발임을 감안하면 이제 남은 시간은 2초도 되지 않았고 마침내 최후의 방공망인 아이언 빔이 황금빛 레이저를 뿜어냈다.
서울 상공에 탄두의 궤적과 아이언 빔의 색깔이 어우러져 화려한 그림을 만들어 냈다.
여기저기서 쿵쿵는 폭발음이 들렸다.
그러나 중국이 그토록 기다리던 버섯구름은 나타나지 않았다.
105발의 둥펑 탄도탄을 모조리 요격한 것이다.
“탄도탄 요격 성공.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숨을 죽이고 있던 사람들은 라디오에서 유지하의 목소리가 들리자 일제히 환호했다.
“이야아아아!”
“대통령 최고다아!”
한국이 환호성을 내지른 반면 실패를 접한 중국 수뇌부는 그야말로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발사명령을 내린 후중산 중장은 멍한 채로 실패보고를 되뇌었다.
“모조리 실패했다고……? 105발 전부……?”
“예. 최종적으로 기폭에 성공한 탄두는 한 발도 없습니다…….”
“…그럼 이젠 어떻게 하지?”
그걸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아나.
수뇌부 벙커가 침묵에 감싸인 가운데 누군가가 겨우 말을 꺼냈다.
“항복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겠습니다.”
“항복? 항복이라고?”
“절대 항복은 안 됩니다!”
“다른 의견이 있으면 듣겠습니다. 하지만 2환로 안까지 들어온 저 7군단을 처리할 방법을 내놔야 할 겁니다.”
한국의 7군단은 완전히 베이징 내부로 들어와 공안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공안의 무기로 전차부대에 맞서는 건 불가능했고, 전투는 길지 않았다.
한 장령은 장갑차에 탑재되었던 수백 대의 드론이 날아오르는 걸 보면서 신음했다.
“저 드론이 있는 이상 시가전은 완전히 틀려먹었군.”
근위사단이었다면 시간벌기가 가능했겠지만 후중산 중장의 명령에 베이징 인근의 로켓군 사령부를 점령하는 데 동원되었다.
결국 둥펑을 쐈지만 한국이 모조리 요격함으로서 중국의 마지막 카드가 날아갔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의 보복뿐이었다.
―핵탄두 수백 발에 상응하는 보복은 과연 무엇인가?
그걸 생각하면 벙커의 수뇌부가 바짝 긴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베이징은 거의 점령당한 상태이고 각지의 원전이 가동을 중지했다.
현재 중국 전역의 대도시는 암흑천지이고 함대마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후중산 중장은 거의 넋을 놓은 상태였다.
‘한국의 전력이 이렇게 강했단 말인가…….’
심지어 한국은 모든 힘을 쓰지도 않았다.
가장 위협적이던 어스 플릿은 일본 근해를 돌아다니며 함대를 두들겨 패는 중이었으며 컴뱃 워커가 도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과 싸운 것이니 할 말이 없는 게 당연했다.
처음 항복을 꺼낸 장령이 재차 건의했다.
“항복합시다. 미국을 끌어들이면 그나마 나은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습니다. 선양에서 출발한 주력이 격파당하면 그땐 정말 손 쓸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력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그 전력이 아무런 쓸모가 없잖습니까! 한국 함대가 무서워서 보하이 만으로 들어오지도 못하는데 수십 척의 배가 무슨 소용입니까! 전술기는 뭐 띄울 수나 있어요?”
중국이 자신 있게 내놓은 레일건 전투함이 박살 나고 7군단이 베이징 코앞에 도달한 시점에서 전쟁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후중산 중장을 비롯한 수뇌부의 고집에 여기까지 끌어온 것일 뿐.
여러 의견이 나왔으나 항복이 주류였다.
“전력을 보전해서 후일을 도모합시다. 중국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후일이란 게 있습니까? 거의 10년은 후퇴할 지경인데?”
“그러지 않으면 당장 죽습니다. 핵탄두 수백 발을 막아 낸 한국이 우릴 가만히 둘 것 같습니까? 최소 여러 개로 분할하려 들 겁니다.”
그게 최대의 공포였다.
중국은 한국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게 큰 나라였다.
이제 기회가 닥쳤으니 두 번 다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 분명했다.
왜, 한국엔 그런 농담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중국이 좋다. 그러니까 여러 개 있으면 더 좋겠다.
그 농담이 현실이 되어 코앞까지 닥쳤다.
후중산은 새삼 왕 상장을 떠올렸다.
‘차라리 만주를 떼어주는 게 더 나은 선택일지도…….’
그는 조심스럽게 왕 상장을 호출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장령들이 반대했다.
“왕 상장을 두 번 죽이지는 맙시다.”
“이번 계획은 전적으로 후 중장이 입안하고 추진한 겁니다. 책임도 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애초에 이런 모든 논의가 무의미합니다. 한국이 우리를 그냥 놔둘 것 같습니까?”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
만약 미국만 조기에 개입한다면, 한국도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그토록 탐내던 만주를 얹어준다면 의외로 일이 부드럽게 풀릴지도 모른다.
후 중장은 장령들과 긴 시간 의논한 끝에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기밀실의 수화기를 들었으나 상대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서관이 통신망을 점검해 보곤 허탈하게 말했다.
“선이 끊긴 것 같습니다.”
“위성통신은? 그것도 안 되나?”
“중계위성이 고장 났고 극심한 전파방해를 받고 있어서 어렵습니다.”
“하필 이 시기에 고장이라니!”
그 와중에 벙커 위에서 우르릉 소리가 들리더니 돌조각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장령들이 급해졌다.
“7군단 전차가 분명합니다!”
“여긴 어떻게 찾아낸 거지…….”
“드론을 날려서라도 우리 의향을 알려야 합니다! 이대로 있다간 다 죽는다고!”
전쟁사에 지시를 못 들었다는 핑계로 상대편 수뇌부를 몰살한 게 한두 번인가?
병사들이라면 이쪽의 중요성을 납득시켜서 생포하게끔 만들 수나 있지, 안드로이드와 드론에는 그런 것도 통하지 않는다.
간헐적으로 발생하던 진동이 갑자기 뚝 멈췄다.
그리고 벙커 어디에선가 폭발음이 들리며 경보가 울렸다.
비서관이 급히 장령들을 밀실로 안내하려 했지만 방폭문이 폭발하는 게 더 빨랐다.
콰쾅!
“크억!”
사람들이 폭발압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구는 가운데 한 장령이 벌떡 일어나 서투른 한국어로 외쳤다.
“하, 항복! 항복하겠다!”
이윽고 잔해를 헤치며 무언가가 들어왔다.
금속제 프레임에 시커먼 장갑으로 뒤덮인 로봇이었다.
장령들은 녀석의 주황색 렌즈에 극도의 공포심을 느꼈다.
아마 한국이 최근 발표한 컴뱃 워커란 녀석이 아닐까?
후 중장이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하겠다. 너희의 수장에게 전해다오.”
이 현장은 컴뱃 워커와 통신위성을 통해 그대로 유지하에게 전해졌다.
아르마가 그에게 보고했다.
“왕쉬안 상장이 구금된 장소를 찾았습니다.”
“협상 대상은 한 명이면 충분하지. 모두 죽여.”
컴뱃 워커의 렌즈가 붉은 빛으로 변했다.
후중산 중장은 번들거리는 포구를 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양산이 불가능하다던 전문가들부터 쫓아내야 했는데.
‘이런 힘을 여태껏 잘도 숨겼군. 괜히 건드렸어…….’
쾅!
그의 사망과 함께 중국의 운명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