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7
인류의 적인 플레이그는 단거리 워프게이트를 열어 강습하는 전술을 즐겨 썼다.
메가시티에서 살다 보면 이런 공습경보를 꽤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 회의나 의전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
한가하게 떠들 시간이 있으면 움직입시다!
이것이 인류연합의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래도 이런 시대에 왔으니까···’
“자자 파이팅 포즈 취하시고, 시선 카메라를 향해주세요···사진 찍습니다~ 하나, 둘~”
찰칵.
지겨운 시간이 겨우 지나갔는데 또 지겨운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유 사장님은 못 보던 사이에 신수가 훤해졌군요.”
“몸에 좋은 걸 얼마나 많이 드셨기에···어디, 저도 맛 좀 봅시다.”
유지하는 고위공무원들의 환영 멘트와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덕담을 들으며 긴 시간을 버텨냈다.
실질적인 이야기가 나온 것은 오찬이 시작되고 거의 두 시간이나 흘러서였다.
박현구 총리가 포문을 열었다.
“대통령님, 우리는 조율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동해에 위치한 블랙메탈의 정확한 매장량 산출 같은 것들 말이죠.”
“매장량은 너무 들쭉날쭉해서 추산이 어렵다고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시선을 받은 비서실장이 보고했다.
“울릉분지의 경우, 측량을 시도할 때마다 면적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한 워낙 깊은 곳이다 보니 정확한 측량은 어렵습니다.”
블랙메탈은 플레이그 코어에 의해 주변의 금속원소가 침식되어 만들어진다.
실시간으로 광범위한 침식이 일어나기에 정확한 매장량을 산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박현구 총리의 목적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 해도 정부에서 채광량을 산출할 필요는 있습니다. 영해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정부가 정확한 수치를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어서 이현성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경제인들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았지만 총리가 워낙 밀어붙이는 통에 어쩔 수가 없었다.
“3년의 개발권을 얻은 것이니 숫자를 들을 권리쯤은 있겠지요. 따로 조사관을 파견하면 될 겁니다.”
“대통령님, 저는 위원회의 설치를 건의 드리고 싶습니다. 전반적으로 채광을 관리하고 위법행위를 감시할 관리위원회 말입니다.”
이건 채광 활동을 손바닥 위에 놓고 낱낱이 살펴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자그마한 꼬투리라도 잡으면 중단 지시를 내려서 영업을 방해하는 건 덤이겠지.
해양자원 관련된 법령을 뒤져도 자원을 관리, 보전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여야 한다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쓰여 있다.
따라서 총리가 관리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유지하는 그런 귀찮음을 감수할 의향이 전혀 없었다.
“그 숫자는 국내에서만 도는 겁니까, 아니면 중국에도 가는 겁니까?”
도발적인 말투에 참석자들이 일제히 숨을 멈췄다.
“···무슨 말인가?”
“시연회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서 말이죠. 레이오인가 하는 회사와 협업하라는.”
“연구소끼리 협업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일세.”
“비슷한 실적일 때야 그렇겠죠. 아, 그쪽의 R/D비용이 훨씬 우위라는 말은 안 하셨으면 합니다. 하도 들어서 귀가 아프거든요.”
박현구 총리는 시선을 시건방진 젊은 놈에게 고정시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위원회 설치를 철회해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않을 경우?”
“저와 신라에너지는 국내의 블랙메탈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순간 상춘재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박현구 총리는 험악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경고하는데, 생각을 하고 말하는 게 좋을 걸세.”
“지금 생각해봤는데 바뀌진 않더군요.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조사관 파견까지입니다. 중국의 간섭을 받기는 싫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야.”
“저는 총리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한 상황을 믿지 않는 것뿐이죠.”
“말 돌리지 말게! 대통령님, 유 사장은 정부를 상대로 협박을 했습니다. 즉각 개발권의 회수를···”
하지만 이현성 대통령은 흥미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야기를 더 들어봅시다. 그래서 유 사장, 정확히 어떻게 손을 뗀다는 겁니까? 이미 전 세계에 블랙메탈 생태계를 공표하지 않았습니까?”
“배터리셀을 만들 수 있을 규격은 공급합니다. 정부가 개발권을 회수할 경우, 전기차와 스마트폰 배터리까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진짜는 영원히 모르겠죠.”
“진짜···?”
“귀담아 들으실 필요 없습니다, 대통령님. 잘해봐야 드론에 적용하는 정도일 겁니다.”
그러나 이현성 대통령의 시선은 정확히 유지하를 향해 있었다.
“그 진짜란 대단한 물건인 것 같군요.”
“마음에 드실 겁니다.”
“대통령님!”
박현구 총리가 목소리를 높이자 대통령이 웃으며 일어섰다.
“휴식하지요. 기업인들끼리 할 얘기가 있을 테니 우리는 빠져줍시다.”
대통령을 비롯한 총리와 비서실장이 상춘재를 빠져나갔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기업인들은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유 사장, 괜찮겠습니까? 총리는 여당 중진들의 강력한 비호를 받고 있습니다. 절대 가만히 있진 않을 겁니다.”
“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명분이 충분한데 유 사장이 너무 강하게 나갔어요. 이래서야 출구전략을 쓰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중재에 나서야···”
중재를 하는 대가는 아마도 배터리겠지.
유지하는 기업인들의 말에 웃음만 지을 뿐 별 대응은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상춘재의 문이 열렸고 대통령과 비서관이 들어왔다.
거기에 총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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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미안합니다. 일정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잠깐 사랑채에 들러서 관람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배터리 관련 조율을 하는 게 아니라 일반인도 가능한 사랑채 관람이라고?
기업인들은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웃는 낯의 대통령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상춘재를 빠져나갔지만 유지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대통령이 착잡한 얼굴로 착석했다.
“나는 유 사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총리를 내보냈습니다. 부디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를 빕니다.”
“제가 제안드릴 것은 잠수함에 블랙메탈 배터리를 적용하는 겁니다.”
“잠수함이라···비서실장, 지금 안창호급 잠수함이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현재 Batch-III 버전 탐색개발이 종료된 상태입니다. 전투적합 판정을 내리고 방추위에서 의결하면 건조에 들어갑니다.”
“거기에 아마 GC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들어가지 않습니까?”
“일단 계획은 그렇게 잡혀 있습니다.”
“그걸 몽땅 블랙메탈 배터리로 바꿔드리겠습니다. 물론 적당한 비용이 산정되어야 하겠습니다만.”
이현성 대통령의 눈이 살짝 빛났다.
“잠수함에 블랙메탈 배터리라···잠항시간이 얼마나 늘어날지 궁금하군요.”
뭐든지 숫자로 봐야 체감이 되는 법이다.
유지하는 아르마가 가르쳐준 숫자를 즉석에서 쪽지에 적어나갔다.
“제가 알기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안창호급이 20노트 작전시 약 3시간 정도 잠항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잠수함의 잠항시간은 속도에 크게 좌우되는데 20노트라면 최대속도에 가깝다.
물론 속도를 낮추면 수십 시간 이상 잠항이 가능하지만 적 수상함에 발각되어 도망가는 경우를 가정하는 것이다.
“으음···”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잠수함의 제원에 대한 것은 당연히 기밀이지만 이 정도는 국내의 밀리터리 매니아들도 충분히 추산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정확하진 않으나 비슷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군요. 그래서 블랙메탈 배터리를 탑재하면 그 숫자가 얼마만큼 늘어나는 겁니까?”
“에너지밀도와 잠수함의 호텔 부하를 고려해보면, 약 3.5배 정도 늘어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10시간 이상?”
그 정도면 원자력 잠수함에 비교할 순 없지만 디젤 잠수함 중에서는 단연 최고였다.
일본의 타이게이급 잠수함도 잠항시간은 4시간 정도로 그리 길진 않다.
“블랙메탈 배터리의 특성상 고전압에 유리하기 때문에, 실제 속도는 더 나올 겁니다. 그리고 무게가 훨씬 가볍기 때문에 그만큼 더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고요.”
대통령이 급히 물었다.
“시연회 때 충전시간도 매우 짧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리튬이온 체계에서 스노클링을 하려면 1시간 정도는 걸립니다만 블랙메탈을 적용하면 1/5으로 줄어듭니다. 워낙 안정적이기 때문에 각종 안전장비를 생략해도 되는 이점도 있죠.”
태연하게 장점을 줄줄이 늘어놓는 유지하 사장에게 이현성 대통령은 충격 비슷한 무엇을 느꼈다.
이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의 차세대 잠수함을 아득히 능가하는 그 성능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양국 해군력의 밸런스를 흔들 수도 있었다.
또한 최근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호주의 어택급 잠수함 도입사업에서 의외의 변수를 창출할 수도 있었다.
현재 한국은 안창호급 Batch-III를 제안한 상태이나 호주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하지만 만약 블랙메탈 배터리를 적용하고 그에 맞춘 신형 설계를 제안한다면···
물론 원자력추진 잠수함이 최고지만 여러 문제로 채용하지 못하는 국가가 분명 있다.
호주가 그 중 하나로, 그들은 어택급 잠수함 사업에 최대 5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었다.
만약 거기에 숟가락을 들이밀 수 있다면···
“이게 정말로 가능하겠습니까?”
“대통령님의 결심에 달렸습니다. 조사관 한 명으로 만족하신다면, 제가 성심껏 돕겠습니다.”
국내에 중국의 영향력이 알음알음 퍼져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현성은 대통령이고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위원회 하나 설치하고 말고의 여부는 최종적으로 그의 결심을 따른다.
문제는 총리와 그를 비호하는 자들의 압력을 버텨낼 수 있느냐.
그들의 의사는 곧 여론이라는 창으로 변해 공격해 들어올 것이다.
“···”
짧은 시간에 수많은 고뇌가 대통령의 얼굴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해봅시다. 그런데···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하기가 만만치 않겠군요.”
“나중에 제 부탁 하나를 들어주시면 그걸로 만족하겠습니다.”
“잠수함에 블랙메탈 배터리를 탑재하는 데 대한 부탁이라···이거 겁나는데요?”
“이 나라가 손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물론 대통령께도 치적이 되겠고요.”
“대충 어떤 분야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우주개발에 관한 겁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 우주에 관심이 많았지.
어렸을 적 저명한 천문학 박사와 함께 9번째 행성의 존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던 기억이 났다.
그런 거라면 나쁘지 않을 뿐 아니라 권장할 만하다.
한국의 우주산업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나중에 이야기를 해보지요. 이번 잠수함 건도 포함해서···”
그땐 아마 각 군의 실무진이 모여 열띤 토론을 하게 될 것이다.
“준비가 되면 알려주십시오.”
“참, 배터리 조율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군도 나름 기대를 하는 눈치던데.”
“뒷말 안 나오게 알아서 배분하겠습니다.”
대통령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어차피 정부가 기업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최소한의 조율을 통해 이전투구를 방지할 필요성은 있었다.
이제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에 쏟아질 텐데 시궁창 싸움을 벌이고 있으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까.
“그럼 천천히 이야기들 나누시고···”
대통령이 떠나자 비서관 중 한 명이 유지하에게 다가와 쪽지를 건넸다.
“읽고 세절기에 넣으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뭔가 해서 슬쩍 보니 각국의 동향에 대한 내용이었다.
일본의 제6 호위대가 후쿠오카 근해에 정박했고 러시아와 인도 등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했다.
다만 진짜 위험한 것은 익히 알려진 바 있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였다.
아직 언론을 타진 않았지만 중국과 동남아의 군함이 모여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괌에서 출항한 미 해군 함대는 거기에 불을 싸지르러 가는 걸까?
‘조만간 무슨 일이 터져도 터지겠군.’
「기록했습니다」
유지하는 종이를 잘게 찢었다.
이제 기업가들과 재미없는 회의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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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회의를 하게 될 거라는 유지하의 예상은 빗나갔다.
별도의 공간에 모인 기업가들은 배터리를 공급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비율을 논의하고 있던 차였다.
심지어 어떤 사장은 이런 발언을 했다.
“아무래도 신라에너지의 규모론 이런 초국가적인 사업에 대응하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해서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런 거라면 저희도 자금을 댈 용의가 있습니다. 대신 지분은 확실해야겠죠.”
유지하는 그 말을 듣곤 어처구니가 없어서 물었다.
“누가 컨소시엄을 한다고 했습니까?”
사람들은 겸연쩍어하며 이렇게 답했다.
“현재 여론이 그렇습니다.”
“정계와 언론 등지에선 이 배터리 사업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한국의 부흥을 이끌 초석이 될 겁니다.”
헛소리를 하고 있군.
유지하는 의자에 앉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론은 무슨···어차피 언론사에 연락해서 기사 써달라고 하면 그게 여론이 되는 거 아닙니까? 컨소시엄할 생각 없으니까 제대로 된 제안서 들고 오세요.”
“유 사장, 대한민국에서 혼자 사업하는 거 아닙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너무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면 곤란할 겁니다.”
“방금 말씀하신 두 분 회사의 제안서는 가장 마지막에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럼.”
“유, 유 사장!”
“우리 얘기 안 끝났습니다?”
둘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유지하는 신영준 사장에게 눈길을 주어 안심시켰다.
그의 아버지와 한 약속은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그대로 퇴장해 차에 타니 비서관이 왔다.
“잘 안 되신 모양이군요. 대통령께선 너무 궁지로 몰지만 말아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고려해보죠.”
차가 청와대를 빠져나와 도로를 달렸다.
유지하는 문득 아르마에게 물었다.
“이현성 대통령, 어떤 것 같아?”
「현재로선 마스터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됩니다」
“잠수함 건을 던져놨으니 어떻게 반응하나 봐야겠어.”
진짜는 따로 있지만 그걸 처음부터 거래의 대상에 올릴 필요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슬슬 움직일 때가 됐는데···
대놓고 총리에게 반기를 들었는데 그를 지원하는 세력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유지하는 박현구 총리가 누구와 연결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미끼를 풀었다.
아니나 다를까 차량이 한강을 건너기 전에 시커먼 세단이 두 대 나타났다.
“미행하는 놈들 차는 왜 다 검은색이지?”
「글쎄요···국정원 요원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우리를 놓쳤습니다」
“진짜 해보겠다 이거군. 조용한 곳으로 차 몰아.”
윈드러너가 노량진의 복잡한 구역으로 접어들었다.
“지금.”
유지하의 신호에 따라 광학위장망이 가동되었다.
차량 전체가 거울처럼 반짝이더니 곧 주위와 완벽하게 동화되었다.
이 상태의 윈드러너는 만질 수는 있지만 눈으로 봐서는 절대 눈치 챌 수 없다.
미행하던 차량 두 대는 이쪽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EMP.”
차량 하부에 설치된 지향성 EMP 충격기가 빛을 발하자 앞서 가던 검은색 세단이 그 자리에 멈췄다.
ECU 회로 일부가 타버린 것이다.
“음성 증폭.”
이제 유지하는 앉은 자리에서 저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왜 이래?”
“시동이 꺼졌습니다. 계속 걸고 있는데 안 됩니다.”
“똑바로 다시 해봐! 넌 앞차에 연락하고.”
리더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남자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된 순간 아르마가 보고했다.
「찾았습니다. NCC그룹의 쟈오저룬 이사입니다. 중국의 자금지원을 받은 헐리우드에서 캐스팅한 여배우처럼 생겼네요」
뭐 어떻게 생겨먹었다는 거야?
유지하는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박현구 그 사람···죽여야겠어.”
좋은 친구는 없다
유지하는 인류연합의 재건과 플레이그의 말살이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게 꼭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미국으로 간 신하윤처럼 비교적 부드러운 방법을 쓸 때도 있다.
다만 박현구 총리의 경우 대부분의 방법이 막혀 있었다.
그는 유지하의 힘으로 어떻게 해보기엔 너무 높은 지위를 가졌고, 영향력도 대단했다.
무엇보다 실각시킬 명분이 없었다.
아르마는 그의 행적과 신상을 철저히 뒤졌으나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정치에 오래 몸을 담았음에도 비교적 깨끗합니다. NCC그룹과도 조언을 주고받을 뿐, 금전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자관계도 깔끔하고요」
그렇다면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신념이라는 얘기가 된다.
중국이 장차 한국을 영향권 안에 둘 것이니 그에 적응해야 한다는 신념 말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애국자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국의 부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곧 동아시아를 넘어서 태평양으로 진출할 텐데 뭐가 문제냐는 발언을 자주 해왔습니다」
미국 대신 중국을 택한 사람이 바로 박현구 총리다.
물론 유지하는 그의 사상을 옳다 그르다 판단하고 싶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