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89
188화 슬픔의 밤은 없다
인류연합 12억의 시민들이 메가시티에 살면서 결코 바라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1급 경보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이 경보는 소규모 플레이그의 출현으로는 결코 발령되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기밀이지만, 플레이그와의 전면전이 시작되려 할 때 발동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1급 경보가 절대 울리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인공지능이 인류연합 전체에 경보를 울렸다.
「경보. 플레이그 공습경보입니다. 통합우주군 전 기지와 함대는 즉각 1급 경계태세에 들어가세요. 반복합니다…….」
거의 동시에 메가시티가 닫히기 시작했다.
외벽이 굳건하게 세워지고 천장이 형성되어 완벽하게 폐쇄되었다.
그러나 내부가 어두운 것은 아니었는데, 햇빛을 광섬유로 끌어들여 환하게 밝히기 때문이다.
막대한 규모의 광섬유와 반사판이 빛을 비추자 메가시티 내부가 낮이나 다름없이 밝아졌다.
그러나 시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거리를 돌아다니던 드론과 안드로이드, 워커들이 적색 렌즈를 반짝이며 경고했기 때문이다.
「1급 경계태세가 발령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즉각 등록된 거주지로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어길시 CP가 차감됩니다.」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돌아다니는 통에 다들 서둘러 거주지로 복귀해야 했다.
워낙 인구가 많은 만큼 불만도 폭주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전면전이라 그러는가 본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한테 적색 렌즈를 들이댈 것까진 없잖아?”
“CP를 차감한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사람들이 놀란 건 경보가 울렸다는 게 아니라 드론이나 안드로이드들이 범죄자를 제압할 때나 드러냈던 적색 렌즈를 번뜩였다는 점이었다.
시민들이 범죄자는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CP를 차감한다는 것까지 많은 이의 불만을 샀다.
여태까진 이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CP가 차감되긴 싫었기에 다들 통제에 따랐다.
메가시티 통신망인 메가넷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옹호론이 올라왔다.
―1급 경보가 울렸다는 건 전면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야.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지.
―나중에 경보가 해제되면 풀어주겠지. 오죽하면 그러겠어?
―유지하 대통령이 알아서 할 거야. 지금까지 메가시티가 뚫린 적 없잖아.
메가시티를 포함한 인류연합 전체는 유지하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12억의 인구가 한 것이라곤 그가 만든 쉘터에 들어온 것뿐이었다.
일부 능력자가 그를 돕긴 했지만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
사실 10년 넘게 살다 보면 주인의식이 생기는 법이지만 유지하의 영향력이 막대한 나머지 큰 불만을 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외에도 1급 경보가 발령되자 밖에서 활동하던 정치인들이 우르르 메가시티에 들어온 것이 참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시민들은 그들을 잘근잘근 씹기 바빴다.
―뭐 하러 들어오나 몰라, 밖에서 군벌들하고 노닥거리고 있지.
―군벌이라고 하지만 워커 한 대에 몰살당하는 놈들 아냐? 그런 놈들한테 무슨 가치가 있는 거야?
―머릿수. 그리고 자원. 전쟁이 끝나면 어떻게든 활용 가치가 생기는 법이니까.
―저런 놈들을 다 쫓아내야 될 텐데 뭐 하는지 모르겠어.
―오히려 대통령 측근 아니야?
화려한 궁전을 짓는 것도 그렇고 최근 대통령의 엇박자 행보가 시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었다.
경계태세는 과하게 해서 시민들에게 불편을 안겨주는 반면 정작 불순분자들에겐 큰 터치를 하지 않으니 말이다.
옹호론자들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우겼고 시민들도 크게 걸고 넘어가진 않았다.
하지만 일부는 메가시티의 감시 시스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쁘지 않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는데 독재자가 다른 마음을 먹으면… 모르겠다.
―어쩌면 이건 권력을 이양하기 싫은 그의 몸부림일 수도 있어.
―그래도 아직은 대통령을 믿고 싶다.
유지하에 대한 신뢰는 워낙 확고해서 겨우 이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가 왔으니 단결해야 한다는 시민의식이 그에 대한 신뢰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자그마한 불씨가 생긴 것은 분명했다.
그것은 독재자가 원하면 언제든 시민들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달콤한 독재에 취해 잊고 있다가 지금이야 깨달았다.
자신들의 도우미였던 드론과 안드로이드가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인류는 플레이그가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잘 몰랐다.
그저 이론상으로만 알려진 에테르 폭풍이란 현상을 이용해 태양계 내부에 불쑥 출현한다고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길면 꼬리가 밟힌다고, 지난 10년 동안 유물해석기관과 통합우주군의 연구소 등 많은 곳에서 플레이그의 출현에 대해 어느 정도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에테르 연구 관련 권위자인 황선영은 플레이그가 나타나려면 에테르 폭풍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테르 폭풍에선 강력한 중력파가 검출됐어요. 즉 중력자 레이더로 알 수 있다는 뜻이죠. 규모에 따라 1급부터 5급까지 나뉘는데 숫자가 작을수록 커요.”
“플레이그는 반드시 에테르 폭풍과 함께 나타나요. 그러니까 태양계 외부에서 오는 건 아니라는 뜻이죠.”
그것은 아마도 다른 우주일 것이다.
아무튼 이번 플레이그의 규모는 약 2천 마리로 조사되었다.
“현재는 목성 주역에서 에테르 폭풍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전과 규모는 거의 같아요.”
“거의 같다는 말은 지금까지 플레이그를 보낸 게 선지자였단 말이군.”
“그렇죠. 퀸이었다면 둥지와 함께 쳐들어왔을 테니까요.”
루시아는 평소에는 농담도 하고 유진을 유혹하기도 하지만 플레이그에 관련해서는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를 취한다.
유진으로서도 그게 편했다.
“결국 선지자가 미리 경고해 준 것이나 다름없단 말이지. 한 번 더 감사해야겠어.”
선지자의 고향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하지만 거기에 가는 것은 플레이그를 완전히 박멸한 후다.
최소 플레이그 퀸과 둥지를 박살내야 비로소 승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인류연합에 비스트급 2천 마리 정도는 대단한 적수가 아니었다.
다만 녀석들의 규모도 플레이그 전체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진 않았다.
“예전 플레이그와의 전쟁을 분석한 결과, 이 2천 마리는 선발대에 불과합니다.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본대의 대응이 달라질 겁니다.”
“차단기를 동원하는 건 의미가 없겠고 퀸의 의향이 중요하겠군.”
플레이그가 왜 인류를 공격하는지는 끝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자원을 예로 들었지만 그걸 위해 인류와 싸우는 것은 비효율적이란 결론이 내려졌다.
인류가 망하긴 했지만 플레이그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찾는 것 같은데 아마 선지자의 유물일 확률이 높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흡수한 유물.’
유진이 화성에서 흡수한 유물은 당시 전투상황이었기에 제대로 파악조차 못했다.
하지만 워프게이트를 열 수 있는 열쇠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플레이그는 선지자의 고향으로 향하는 열쇠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유진을 지나쳤던 이유는 콕핏에 숨어서 모든 사이필드를 차단했기 때문일까?
‘콕핏의 성능이 그렇게 뛰어나진 않을 테고…….’
행성을 완전히 부숴서 포식하는 놈들이 그걸 포착하지 못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아마 그것은 열쇠 자체의 은폐 기능일 것이다.
‘사이필드를 차단할 수 있었던 내 능력과 관련이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유진이 플레이그를 불러오는 원흉이라고 주장한 음모론자들이 아주 틀렸다곤 할 수 없었다.
그가 어디론가 사라지더라도 플레이그가 공격을 멈출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루시아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듯 오른쪽 가슴이 얼굴을 묻으려다가 안경이 방해되자 휙 집어 던지고 그대로 볼을 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스터. 선지자의 고향에 갈 수 있도록 제가 도울게요. 대신 우리는 같이 가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루시아 없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껏 같이 일했으니 앞으로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안드로이드이긴 하지만 뭐 어떤가.
유진도 필요에 의해 태어난 도구인데.
그는 루시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래, 같이 가야지.”
일단 슬픔의 밤의 원흉이었던 플레이그 무리부터 박살낸 다음에.
“일단은 플랜 A부터 가보자고. 녀석들이 지구를 발견하기 전에 박살내.”
“알겠습니다.”
루시아의 명령이 인류연합의 전 우주기지와 함대에 전달되었다.
* * *
갓 태양계에 진입한 플레이그 코쿤 2,000개는 개별의지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희미한 통일의사는 존재한다.
그것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왕의 사이필드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간단했다.
―어딘가에 있을 우리를 신의 땅으로 안내할 이정표를 찾아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방해물을 제거하라.
간단한 명령이었지만 자아가 희미한 비스트급엔 충분했다.
코쿤 군단은 먼 곳의 사이필드를 감지하고 생체이온 추진기를 가동했다.
2천 마리나 되는 플레이그가 6억 킬로미터의 대장정에 올랐다.
하지만 지구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플레이그의 공습에 대비해 각지에 메가시티를 건설했고 우주함대와 기동병기를 닥치는 대로 뽑아냈다.
그리하여 코쿤 군단이 화성의 L3 포인트에 도착할 때쯤에는 50척이 넘는 함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깜짝 놀란 코쿤이 일제히 비스트급을 쏟아냈고 루시아가 각 함선을 통제했다.
「플레이그를 빠르게 격멸하기 위해 대부분의 무장을 봉인합니다. 반응탄만을 사용해 녀석들을 요격합니다.」
조우하자마자 반응탄을 쓰는 것은 본대에 쓸데없는 정보를 주지 않기 위함이다.
사이필드로 전달되는 정보 전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쪽의 무기체계를 들키지 않을 수는 있었다.
지금껏 등장한 플레이그들은 선지자가 보낸 것이기에 퀸의 부하들은 인류를 잘 모른다는 가정이었다.
따라서 녀석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입수하기 전에 격멸해야 했다.
「각 함, 반응탄 발사.」
루시아의 지시에 따라 각 함선들이 일제히 반응탄을 발사했다.
중력자 레이더에 의해 통제되는 시커가 정확하게 플레이그 군단의 가운데를 노렸다.
비스트들은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위협으로 판단하고 산개에 들어갔다.
그러나 반응탄의 위력은 엄청났다.
도합 11개의 반응탄이 폭발하며 플레이그 군단을 짓뭉갰다.
우주에 하얀 빛 덩어리가 생겨나며 블랙메탈 외피를 찢어발겼다.
화성주역사령부의 1기동함대와 2기동함대 지휘부 인원들은 자동으로 차단된 스크린을 먹먹히 지켜봤다.
스크린이 회복되기도 전에 레이더 콘솔이 광점을 표시했다.
2,000개나 존재했던 광점이 거의 1%로 줄어 있었다.
루시아가 빠르게 지시를 토해냈다.
「남은 개체는 15마리입니다. 반응탄 발사.」
딱 한 발의 반응탄을 끝으로 태양계에 진입한 플레이그 군단이 깔끔하게 소멸되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슬픔의 밤 사건을 일으킨 주역을 박살낸 것이다.
화성 주역에 모인 함대의 군인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이야아아!”
“우리가 해냈어!”
「플레이그 군단 격멸, 통합우주군의 피해는 전무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시민들까지 환호했지만 통제가 내려져 있어서 함부로 거리로 뛰쳐나갈 수가 없었다.
대신 탐사정이 함대에서 나와 플레이그 코어를 수집하러 돌아다녔다.
인류연합 수뇌부도 환호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서로 악수하고 얼싸안고 난리가 난데 비해 메가시티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관리본부만큼은 조용했다.
주인인 유지하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성민이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인공지능의 목소리만 들어야 했다.
그는 용기를 내어 다시 말했다.
“대통령님. 대통령님의 시간대에 슬픔의 밤 사건을 일으킨 주역이 사라졌습니다. 작은 승리지만, 우리에게는 값진 것입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그냥 이야기나 하자는 건데도 집무실의 문은 굳건히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배성민은 울적해하며 돌아섰다.
언젠가부터 대통령이 달라졌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대화까지 거부할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대체 왜?
‘요즘 아내와도 별거 중이시지…….’
유지하의 영혼의 단짝이었던 아르마.
둘은 언젠가부터 떨어져 지냈으며 왕래도 하지 않는 듯했다.
메가시티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지만 인류연합의 최고 수뇌부가 사실상 파업 상태인 것이다.
주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이유 중 하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고평의회의 몇몇 기생충들.
의원 자격을 간신히 잃지 않을 정도로 출석만 하면서 전쟁 후의 세력 확장에만 신경 쓰는 저능한 무리들.
배성민은 그들을 증오했지만 대통령이 감싸는 데에야 도리가 없었다.
자신의 목적에 방해가 되는 자들은 전부 감옥으로 보내버리던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는 울적한 마음에 저 멀리 지어지고 있는 황금궁전을 바라봤다.
궁전이라고 하지만 관리본부보다 더 높은 호화로운 빌딩이었다.
외판이 온통 금으로 치장되어 있어 번쩍번쩍 빛났지만 배성민의 눈에는 한없이 천박한 과시욕의 상징으로만 보였다.
‘플레이그와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만든 메가시티에 저런 흉물을 들이다니…….’
그 원흉이 유지하 대통령이다 보니 함부로 비판할 수도 없었다.
그는 어깨가 축 늘어져선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왔다.
슬픔의 밤은 사라졌지만 그의 대통령도 함께 사라진 것 같았다.
* * *
인류연합은 플레이그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게 플레이그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일반 시민도 알고 있었다.
조만간 본대가 나타나 진짜 전쟁이 터지리라는 것도.
하지만 승리의 순간만큼은 통제를 풀어줘도 되지 않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단한 거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반란을 꿈꾸는 것도 아니다. 대체 왜 외출을 원천 금지하는지 모르겠다.
―원래 안 이랬지 않나? 대통령은 적에게는 냉혹해도 시민에게는 따뜻했다. 메가뉴스에 직접 나와 사정을 설명했으면 좋겠다.
수많은 시민들이 요청했음에도 그는 관리본부에서 두문분출하며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최고평의회의 일부 의원들이 막나가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시도했다.
외부인을 메가시티에 들여오려 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입법위원회의 후원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들은 자유의지로 메가시티에 들어오기를 거부했다. 이제 와서 데려오려 하는 이유는 뭐냐?
―의원들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을 만들려는 게 분명하다. 이건 막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법안은 인공지능에 의해 부적합 판정이 나 부결되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시민들에게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대통령은 있는지도 모르겠고 일부 의원들이 막나가고 있다. 누군가 나서서 막아줬으면 좋겠다.
―젠장, 뭘 하고 싶어도 밖에 나갈 수가 있어야 말이지.
시민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자유가 독재자 한 명에게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독재자가 드디어 변심했다는 사실도.
―내 이럴 줄 알았다.
―애초에 독재자 따위 믿는 게 아니었다.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준다고? 그럴 마음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다 필요 없고 대통령 얼굴이나 좀 보자는 글이 메가넷에 당당하게 올라왔다.
그러나 불만의 목소리는 어느 순간 사그라졌다.
인공지능이 모든 글을 삭제하고 메가넷을 동결한 것이다.
그 누구도 글을 올릴 수가 없었고 접근조차 금지되었다.
시민들은 다시금 큰 충격을 받았다.
사회를 어지럽히는 행동 외에 어지간한 것들은 모두 용납했던 대통령이 이런 짓을 하다니.
유지하에 대한 신뢰에 와장창 금이 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큰 움직임은 없었다.
모든 힘을 그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나서기가 두려웠던 탓이다.
통합우주군마저 분위기에 휩쓸려 어수선한 가운데 유진이 배성민에게 먼저 연락했다.
“삼촌 잘 지내십니까?”
“그랬으면 좋겠다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하다.”
“아버지 때문에 애가 많이 타는 모양이네요. 그렇죠?”
“…아니, 아니다. 아들 앞에서 아버지 욕을 할 수는 없지.”
충성심 강한 그가 이럴 정도면 어지간히 실망한 모양이다.
하기야 메가시티 퍼시픽에 모두가 황당해할 만한 거대한 궁전이 들어서고 있으니 오죽할까.
대통령은 만나주지도 않고, 시민들은 불만에 폭주하고 답답해 죽을 지경일 것이다.
배성민은 한숨을 푹 내쉰 뒤 이런저런 억울함을 토로했다.
유지하에 대한 욕은 최대한 피하면서 그 주변에 있는 모리배들에 대한 증오를 쏟아냈다.
“그 새끼들을 튀겨 죽여야 메가시티가 안전해. 내 말 알겠지? 태생부터 얌전하게 지낼 생각이란 없는 놈들이란 말이다. 어떻게든 권력을 자기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놈들이야.”
“제가 봐도 맞는 말 같습니다.”
“애초부터 그놈들을 의원으로 받아주면 안 됐어! 그런데… 그런데…….”
실로 듣는 사람이 먹먹해질 정도로 애절한 목소리였다.
만약 그의 앞에 유지하가 있었다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다 늙은 나이에 말이다.
배성민은 조카와 통화하며 울분을 토한 것이 부끄러운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추태를 보였구나. 삼촌이 술에 취해서 헛소리한 것으로 생각해라. 아버지한테는 이르지 말고.”
“벌써 말했습니다, 비서실장.”
배성민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서 그를 이 직위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청년은 분명히 유진이었다.
부모와 전혀 닮지 않은, 22살치고는 지나치게 건장하고 어른스러운 청년.
“서, 설마…….”
“납니다. 조형근 전 대통령을 죽이고 권한대행에 올라 나라를 집어삼킨 비열한 독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형근 같은 역사책에나 나올 법한 구시대의 인물을 유진이 알 리는 없다.
그리고 유지하가 그를 죽였다는 건 배성민을 비롯한 극소수의 인원이 품은 의혹이라 겉으로 드러낸 적이 없었다.
유진이 그걸 말했다는 건…….
“대통령님이셨군요…….”
배성민은 맥이 탁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화면에서 쐐기를 박는 발언이 흘러나왔다.
“은퇴하겠다는 사람 의원으로 박아놓고 마음 고생시켜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해 줄 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