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12
211화 만만찮은 후폭풍
데노바 시장 필리프는 비서관으로부터 부유대륙으로 떠난 비행선과의 연락이 끊어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온 통신이 뭐였지?”
“정체불명의 몬스터를 만났다고 합니다.”
“마족이 아니라 몬스터라고?”
“근처에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는 보고가 있었으므로 몬스터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긴 마족은 대개 광산 근처에 나타나지. 무슨 몬스터일 것 같나? 어지간한 놈은 씨를 말려 버렸잖은가.”
아인종과 몬스터의 수백 년에 걸친 싸움은 골리앗이 개발되면서 완전히 종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골리앗은 이전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오우거 등의 대형 몬스터조차 손쉽게 사냥할 수 있었다.
현재 몬스터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미개발지역이나 특정 구역에 몰려 있었고 그마저도 개체수가 점차 줄어가는 형편이었다.
다만 바다에는 여전히 몬스터가 많았고 이는 섀도우 엘프 해적과 함께 아인종이 바다를 외면한 이유가 되었다.
배를 띄우기만 하면 침몰하거나 해적의 습격을 받는 형국이니 지레 포기한 것이다.
다만 부유대륙에 몬스터가 존재할 가능성은 있었다.
그간 가 본 사람이 없어서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반다스 남작이 함구령을 내렸는지 좀처럼 소문이 돌지 않았다.
“현재 그 건에 대해 선이 닿는 주둔부대에 연락하는 중입니다.”
“최대한 빨리 확인해.”
얼마 후 필리프 시장에게 절망적인 보고가 날아들었다.
“죄송합니다, 시장님. 메이븐호의 잔해가 발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부유대륙에 도착하기 직전 침몰한 것 같습니다.”
“…….”
필리프 시장은 우울한 얼굴로 창문 너머의 시계탑을 바라봤다.
비행선에 선원, 물자까지 도합 1만 골드를 털어 넣었건만 깔끔하게 증발했다.
거기에서 끝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비행선에 기대를 걸고 있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 주가 폭락의 우려까지 있었다.
수뇌부만 알고 있었다면 모를까 근처에 있던 엘브랑데군이 나섰기에 소문이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소문이란 건 희한한 속성이 있어서 퍼지길 원하지 않는 것일수록 확산이 빠르다.
그는 통신구를 통해 각 회사의 지분을 팔라는 지시를 내렸다.
“부유대륙에 관련된 회사 주식은 몽땅 빼. 최소한만 남겨두고 다 팔아. 그래! 내 것도!”
엄연히 내부자 거래였지만 그의 지시는 거리낌이 없었다.
비행선이 침몰했다는 게 알려지면 그에 관련된 회사의 주식은 분명히 폭락할 것이다.
물론 비행선은 고작 1척이었고 그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도 않았지만 워낙 관심도가 높아 별 관계도 없는 회사의 주식까지 오른 시점이었다.
오죽하면 부유대륙 주둔부대에 물자를 대는 상단까지 주가가 1.3배로 상승했겠는가.
데노바 상인들을 포함한 투자자들은 부유대륙이 큰 부를 가져다줄 거라는 기대감에 아낌없이 돈을 퍼부었다.
“이젠 폭락할 일만 남았군.”
“최소 30% 하락은 각오해야 할 것 같습니다.”
“투자자들이 손실을 많이 입겠는데…….”
일개 투자자라면 사건이 터지기 전에 돈을 회수한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필리프는 데노바 전체를 책임지는 시장이었다.
비행선의 폭발로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수가 없었다.
필리프는 문득 반다스 남작과의 거래를 무효로 돌린 것이 잘한 것인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최소 10만 골드는 녹아내릴 텐데 차라리 거래를 할 걸 그랬군.”
상인들을 보호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데노바 전체가 골고루 박살나게 생겼다.
“시장님께선 늘 회사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 이상 주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신규 투자자의 진입까지 막을 수 있으니까 하는 얘기지. 부유대륙은 새로운 시장인데 시작부터 이렇게 박살이 나서야 어느 투자자가 들어오겠나?”
“그렇군요…….”
“투자는 심리야. 말 한마디에 주가가 출렁이고 회사의 존폐가 결정되지.”
그런 의미에서 반다스 남작과 척을 진 것은 큰 실수임이 드러났다.
‘차라리 상인들을 내치는 한이 있어도 그와 손을 잡았어야 했는데.’
부유대륙에 상륙할 방법이 생겼다고 오판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이제 반다스 남작과 다시 손을 잡으려면 상상할 수도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3만 골드로는 어림도 없다고 그랬나? 그 10배는 갖다 바쳐야 될지도 모르겠군.’
여기서 큰 손해를 감수하고 그에게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전자는 반발이 장난이 아닐 것이고 후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때 거래를… 젠장, 그 빌어먹을 놈들이 피해를 입건 말건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반다스 남작령에 파견을 간 상인들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수수료로 만족할 것이지 너무 욕심을 내는 바람에 일을 망쳐 버렸다.
필리프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습이 더 어려워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럴싸한 대책을 꺼내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하락장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비서관에게 지시했다.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매수하되 다른 명의로 해야 하네. 회사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 그쪽에서 진행해.”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사서 의심까지 사진 말고. 본국에서도 비행선을 보냈으니 그 건으로 물타기를 할 거야. 투자 심리를 위축시켜선 안 돼.”
현재 부유대륙으로 원정대를 보낸 것은 데노바뿐만이 아니었다.
데노바만큼 빠르게 움직인 세력은 없었지만 엘브랑데의 주둔부대 일부가 비행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워낙 거리가 짧은 만큼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들려올 것이다.
‘그나저나 가문에서 한 소리 듣겠군.’
데노바엔 엘브랑데의 투자금까지 꽤 들어와 있었고 특히 그레고르 가문은 필리프 때문에 대량의 자금을 투자한 상태였다.
그게 녹아내리게 생겼으니 잔소리를 듣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의 입지까지 흔들릴 위험이 있었다.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대비는 해둬야겠어.’
필리프는 데노바의 개국공신이자 회사와 주식시장을 만든 선구자였다.
대부분의 시스템이 그의 손에서 나왔으며 수십 년에 이르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은 그의 입지에 타격을 주긴 하겠지만 결정적이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필리프믜 마음은 편치 못했다.
“안 되겠군. 반다스 남작령에 선물 하나 보내. 내 이름으로 보내는 거니까 신경 좀 쓰고.”
“그쪽이 받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쉽지 않을 거라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씨앗은 심어놔야지. 나중에 가서 해놓은 것이 없어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비서관은 그 뻔뻔함에 감탄했다.
역시 데노바를 이끄는 시장쯤 되면 철면은 기본 소양인가 보다.
비서관이 준비한 것은 실버드 노예였다.
아름다운 외모로 이름이 높은 실버드이니만큼 그도 만족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속 하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녀쯤이야 보통은 별 문제가 안 되지만 남작과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란다.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 걸로 봐서 꽤 깊은 관계인 모양입니다.”
“밤 시중은 물론이고 영지 내의 이런저런 일까지 맡았다는데 사실상 비서 아닐까요?”
“노예를 보냈다간 역효과만 나겠군.”
기껏 보낸 선물이 그의 심기를 상하게 해서는 곤란했다.
해서 비서관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금 조각상을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필리프 시장은 포장을 뜯지 않은 선물이 책상에 올라와 있는 걸 보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군.”
그리고 메이븐호가 부유대륙에 접근하기 직전에 침몰했다는 소문이 드디어 데노바에 알려졌다.
아침이 되자 수많은 상인과 투자자가 중앙거래소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15실버, 15실버에 전량 팔겠소!”
“매수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 가격엔 무립니다!”
거래소 대리인들은 몰려드는 주문에 진땀을 흘렸다.
수많은 직원이 벽면에 달라붙어 실시간으로 시세를 고쳐나갔고 거래소는 얼마 가지 않아 고성으로 소란스러워졌다.
“그렇게 호언장담을 해대더니 배 운용을 어떻게 한 거야!”
“10골드가 날아갔다고! 시장 나오라고 해!”
“거 마법 쓰지 마세요! 다 추적됩니다!”
그때 필리프 시장이 직원들을 대동하고 등장했다.
사람들의 입이 막 열리려는 찰나, 그가 손을 치켜들어 막았다.
“오늘도 중앙거래소를 찾아주신 투자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비행선 소식은 다들 들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보유한 주식을 팔기 전에 이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엘브랑데에선 우리 데노바에 이어 비행선을 급파한 상황입니다. 군부대의 소유이니만큼 군기는 엄정하고 임무도 정확하게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섣불리 난기류에 접근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지이요.”
“그러면 이번 사태의 원인이 난기류란 말입니까?”
누군가 그렇게 물었지만 필리프 시장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시점에서 원인을 말씀드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부유대륙은 마경 중의 마경입니다. 설사 200년 전의 드래곤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지요.”
덧붙여 말하면 필리프 시장은 200년 전 드래곤 전쟁을 직접 목격한 엘프 중 하나였다.
어릴 때였지만 신들과 격돌한 알테마의 위용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으음, 확실히…….”
“난기류가 심하다는 말은 나도 들었어. 상승기류뿐만 아니라 하강기류도 자주 분다더라고. 거기 배가 휘말리면 휘청거리는 선에서 안 끝나.”
“엘브랑데군에서 나섰다니 뭔가 판명되긴 하겠지. 일단 그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미리 심어놓은 선동꾼들이 한마디씩 던지자 다들 거기에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매도세가 수그러들었고 덕분에 필리프를 비롯한 주요 세력들은 큰 피해 없이 주식을 팔 수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엘브랑데의 비행선마저 추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이 조금 늦어졌기 때문이다.
엘브랑데는 워낙 폐쇄적인 사회이고 군부대는 더한 분위기여서 정보가 좀처럼 새어나오질 않았다.
온갖 소문과 정보가 떠돌아다니는 데노바마저 사건이 터지고 며칠 뒤에 알았을 정도니 오죽할까.
다만 소문이 일단 퍼지기 시작하면 전 대륙에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필리프 등 주요 세력이 정리를 끝낸 회사들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엘브랑데 비행선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침몰했다고?”
“엘브랑데는 좀 다르니까 기다려 보자며?”
“시장! 필리프 시장!”
“설마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주식 다 판 건 아니겠지?”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으나 그의 대답은 없었다.
신뢰도가 내려가긴 하겠지만 돈을 빼봐야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데노바는 아스테라 유일의 주식, 증권 거래소로서 대체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대가문이라는 뒷배를 가진 필리프조차 몸을 사려야 할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는 잠시 시장에서 손을 떼고 상황을 지켜봤다.
엘브랑데 대의회에서도 이번 사건에 조사관을 파견하는 등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후폭풍이 생각보다 거세질 것 같군.”
그는 반다스 남작이 거래소에 신규 진입할 것으로 판단했다.
지금이 10년 이래로 저점이니 진입하기에 딱 맞는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빌미로 증권과 채권을 홍보하는 등 분위기 전환에 나설 생각이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없었다.
“왜지? 이쪽으로 지식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지금이 저점이야. 떨어진 주식은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수밖에 없다고.”
물론 레오볼드는 언젠가 주식 등 금융시장도 활성화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이후여야 했다.
필리프 시장처럼 룰을 마음대로 바꾸는 자의 손에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편 데노바나 엘프랑데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에 대해 아는 세력이 늘어났다.
자이움에서도 부유대륙에 비행선을 포함한 조사단을 보냈고 신성교국 팔마와 드워프들의 이미르 공화국 등 다수 국가에서 인원을 파견했다.
바야흐로 아스테라 전체가 부유대륙과 반다스 남작령에 집중하고 있었다.
* * *
엘브랑데는 변화가 크지 않고 시류의 흐름에도 꽤 둔감하다.
하지만 그들의 이익이 걸렸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게 전인미답의 부유대륙이라면 더 그렇다.
제국 국방국에선 논의 없이 주둔부대를 움직여 비행선을 보냈다가 침몰하는 바람에 지휘관 몇 명이 청문회에 출석해야 했다.
대의회 본회장은 수백 명에 달하는 의원들이 다른 이들을 내려다보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대단히 권위적이라는 평이었다.
덕분에 군사 지휘관들은 인간과 싸울 때보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의논도 없이 비행선을 움직였나? 최종적으로 지시를 내린 건 누구인가?
―이번 사태의 원인은 무엇이고 경과는 어떤가? 부유대륙에 뭐가 있기에 이 사단이 일어났나?
―유일하게 비행선을 상륙시켰다는 반다스 남작령은 어떤 곳인가? 어디에 붙어 있으며 주인은 누구인가?
다양한 질문이 퍼부어졌고 군사 지휘관만으로는 부족해 제국의 다양한 관료들이 총출동해야 했다.
일정이 끝없이 늘어져 청문회가 시작된 지 2주가 지났는데 아직 질문 목록조차 정리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보다 못한 제국의 황녀 마르그레타가 나섰다.
나이는 120세로 엘프 중에선 젊은 편이었고 성은 관례에 따라 엘븐 판테온들 중 하나인 루스텔을 따랐다.
신의 챔피언을 배출한 가문에다 자그마치 제국 황가의 일원임에도 그녀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지금의 엘브랑데는 대의회에 대부분의 권한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권한은 큰데 워낙 비대한 몸집을 자랑해 대부분의 안건이 잘 통과가 되지 않았다.
거기에 엘프 특유의 시간 관념이 합쳐지면 안건 하나 통과되는 데 10년으로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다만 위대한 아버지 에일리드에 의해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진짜 문제는 에일리드에 신성성을 부여하고 새로운 엘븐 판테온으로 추대하려 한 원로원과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이었다.
에일리드는 현 제국의 시초가 된 위대한 선조임에 틀림없지만 엄연히 하이엘프였기 때문이다.
대의회는 필멸자가 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으로 뜨겁게 불타올랐고 그건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하여튼 마르그레타가 본회장에 등장하자 꼬장꼬장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던 원로 엘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 황가에 대단한 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엘드그라실을 수호하고 엘븐 판테온의 명맥을 잇는 정통성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마르그레타는 엘프 개혁론을 외치고 있어서 원로원과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
그녀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질문 목록을 대충 치워 버리고 증인들에게 직접 물었다.
“부유대륙 주둔군단장에게 묻겠다. 아군의 비행선은 정확히 어떤 원인으로 침몰했나?”
“마지막으로 온 통신은 푸른 날개를 가진 거대한 생명체의 공격을 받고 있다, 였습니다. 정보관들은 드래곤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발언이 튀어나오자 몇몇 의원들이 부정하고 나섰다.
“말도 안 됩니다.”
“드래곤은 우리가 직접 멸종시켰소. 증인이 한 둘이 아닌데 거짓말을 할 셈인가?”
엘프의 수명은 300년을 넘어가는지라 대전쟁을 겪은 세대도 꽤 많았다.
그들은 드래곤이 마침내 멸종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하긴 전쟁이 끝난 지 200년이 지났는데 여태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그런데 이제 부유대륙에서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마르그레타 황녀는 발작하려는 의원들에게 눈치를 주곤 다시 물었다.
“대전쟁 당시에도 블루 드래곤이 몇 있었지만 최종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군단장은 새로운 드래곤이 나타났다고 말할 셈인가?”
“죽은 자들은 제국의 충직한 군인이자 제 부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을 믿습니다.”
군단장의 꾹 다문 입술에서 부하들에 대한 신뢰가 새어나왔다.
블루 드래곤이 실제로 출현한 건 아니겠지만 그 비슷한 생명체가 나타난 건 확실한 것 같았다.
“좋다. 다음은 비행선의 항로에 관해서인데 증언이 모호하다. 비행선은 부유대륙에 상륙했는가, 상륙하지 못했는가?”
“이 자리에서 정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기술로 만든 비행선으로는 부유대륙에 상륙하지 못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반다스 영지의 비행선은 상륙했다고 되어 있는데?”
“상승기류를 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의 부유석을 이용한 고도 조절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유대륙의 위치는 비행선의 최대고도보다 1,2km 가량 더 높습니다.”
“그렇다면 반다스 영지의 비행선은 우연찮게 상륙한 게 되겠군. 하지만 이 자료에 의하면 바그란 왕가 소유의 비행선이 반다스 영지로 이동했다고 되어 있다. 상승기류를 계속해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봐도 되겠나?”
“장담할 순 없으나 가능성은 높습니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마르그레타의 단독 질의가 이어졌다.
질의는 상당히 직설적이었고 명료했던지라 의외로 답변하기가 편했다.
부유대륙 주둔군의 지휘관은 알테마호를 언급했다가 의원들에게 시달렸던지라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
그 드래곤의 이름을 싫어하는 건 당연하지만 단지 짧게 언급했을 뿐인데도 그걸 걸고 넘어졌던 것이다.
하기야 대의원들이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한번 대의원에 오르면 100년 이상 자리가 보장되는지라 다들 타성에 젖어 진짜 문제는 외면하는 실정이었다.
심지어 이름만 걸어놓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엘브랑데가 그럭저럭 돌아가는 것은 기본적인 시스템이 잘 되어있기도 하지만 아스테라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워낙 큰 국가인 만큼 자원도 많고 에테르로 대변되는 온갖 신기술과 개념이 엘브랑데에서 가장 먼저 선보이고 있었다.
골리앗의 코어를 제외한 구동계나 기차의 기관부 등은 이미르 공화국제가 더 뛰어나다는 평이 많지만.
마르그레타는 이런 제국에 과감한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엘프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상승기류이든 어쨌든 반다스 영지에 부유대륙에 상륙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의 기술력이면 따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테니 부대를 재편성하는 게 어떻겠는가? 그곳은 워낙 변화가 심한 지역이라 들었다.”
군단장은 황녀가 거기까지 알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지라 조금 놀랐다.
“말씀대로 부유대륙 주변은 쏟아지는 파편에 더해 매 시간마다 날씨가 급변하는 등 신속히 대응할 부대가 필요합니다.”
“다행이군. 그럼 부대의 편제에 관해서는 어떤 의견을…….”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원로원 의원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전하.”
마르그레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항의했다.
“그대들이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니 이러는 것 아닌가. 일개 비행선의 호칭이 그렇게 중요했던가.”
“그 또한 저희들의 불찰입니다. 반성하고 있으니 이 문제에선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일선부대의 재편성은 국방국과 대의회 군사위원회의 권한입니다. 전하께선 엘드그라실에 가셔서 상륙이 원활하게 진행되기를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의원들의 제지가 이어지자 마르그레타는 더 이상 자신의 의견을 이어가지 못했다.
하긴 황녀가 직접 본회장에 나와서 발언하는 것도 충분히 파격적이었다.
그녀가 말없이 퇴장하자 본회장엔 다시금 지루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에테르 캐논을 발사했다고 들었는데, 왜 사전에 보고를 하지 않았나?”
“워낙 급박한 순간이라 보고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의원님.”
“적과 싸우는 건 물론 위험하고 급박한 사태지. 하지만 보고 또한 중요한 절차네. 자네는 부유대륙 주둔군에 예산을 내려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잊은 게 아닌가?”
“…송구스럽습니다. 앞으로는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통신석을 함부로 쓴 것도 문제야. 예산이 무한인 줄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본대와의 이 교신은 나라면 세 문장으로 줄일 수 있었어.”
말꼬리 잡기와 심리적 고문에 가까운 질책이 이어지자 군단장은 거의 녹초가 되었다.
그가 실려 나가면 다음은 관료들의 차례가 될 것이다.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한 관료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특히 데노바와 연계하여 주식과 채권 등을 관리하는 관료들의 얼굴은 벌써부터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누구도 아닌 의원들의 재산을 날려버렸으니 질책이 최소 일주일은 이어질 것이다.
다른 국가에서도 정도는 약하지만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부유대륙에 비행선 한 척이 상륙한 이 사건이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몰고 온 것이다.
이 폭풍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져서 얼마 후에는 대부분의 국가가 퇴역한 비행선을 현역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했다.
그들의 생각은 이랬다.
―반다스 남작이 대단한 방법을 개발했을 리 없으니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따라하면 된다.
―어떻게든 부유대륙에 상륙만 하면 그 자원은 우리 것이다. 반다스 남작령의 병력은 보잘것없다.
그렇게 수십 척의 비행선이 줄줄이 부유대륙으로 향했다.
엘브랑데와 데노바의 전례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접근은 하지 않았고 근처에서 눈치만 살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블루 드래곤 지갈레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는 너희들에게 허락된 땅이 아니다!
충분히 위엄 있는 용언이었지만 비행선을 타고 있던 군인에겐 선전포고로 들렸을 뿐이었다.
수십 척의 비행선에서 에테르 캐논이 발사되었고 지갈레온은 방어막이 산산이 깨지는 걸 느꼈다.
―크어억!
그는 전신에 타박상을 입은 채 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