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25
224화 에테르를 연구하려면
전쟁이 일단락되고 레오볼드는 바그란 3세를 배알함으로서 영지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이젠 바그란 내에선 누구도 그의 영지에 대해 간섭할 수 없었다.
반다스 자작령은 인구 2만 1천 명의 규모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유민들로 인하여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상단의 방문도 잦았는데, 마법사 스테피나도 거기에 끼여 슬그머니 영지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남작님… 아, 이제는 자작님이시죠? 아무튼 축하드려요. 스테피나랍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스테피나는 이름으로 들리는데.”
“아… 사정이 조금 있어서요.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는 자이움 출신으로 용병으로 전전하며 정착할 곳을 찾고 있었단다.
전쟁이 끝나고 레오볼드가 지배권을 확립한 뒤에 온 걸 보면 눈치를 본 것 같지만 그게 탓할 일은 아니었다.
외부인 입장에서 분위기를 살피는 건 당연하니까.
괜히 전쟁에 말려들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골치가 아팠을 거고 레오볼드도 거기까진 원하지 않았다.
영주가 자신을 환영하는 듯하자 스테피나는 밖에다 대고 마차에서 짐을 내리라고 외쳤다.
“조심조심! 깨지기 쉬운 것도 있으니까 조심해서 내리세요! 꺄악! 그 유리병이 얼마인 줄은 알아요?”
기겁해서 로브자락을 휘날리며 달려가는 걸 보면 꽤 활발한 성격인 것 같다.
아무튼 그녀는 아르마가 따라주는 차를 마시며 영지에 대한 소감을 늘어놓았다.
“흐음… 소문보다는 꽤 괜찮은 곳이네요. 그렇게 어수선하지도 않고 질서가 있어요.”
“잠깐 왕도에 있었죠? 거기에선 어떤 소문을 들었습니까?”
“영주님 앞에서 말해도 되려나 모르겠어요.”
“보나 마나 나에 관련된 소문이겠군. 괜찮으니까 기탄없이 말해도 됩니다.”
레오볼드는 지구에서 온갖 모욕을 들었던 사람이다.
그게 정당한가를 떠나서 워낙 자주 들었고 강도도 높았기에 어지간한 욕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스테피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반다스 자작이라는 사람은 영지민을 개처럼 대우하는 데다 처형도 자주 한다고…….”
“그리고?”
“애들은 굶기고 초야권을 행사해서 영지의 처녀들을 불러들여 강제로 안는다고…….”
절로 웃음이 나오는 소문이다.
이 소문을 퍼트린 주인공은 보나 마나 이올린 공주와 란티스 백작일 것이다.
왕궁에서 그에 대해 악감정을 가질 만한 사람은 그 둘밖에 없으니까.
‘정치적으로 돌파하지 못하니 유언비어를 퍼트려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쌓으려는 거겠지.’
그걸로 끝이 아니라 2중 3중의 계책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식량 견제를 병행한다면 애들을 굶긴다는 소문을 현실화할 수 있다.
마침 란티스 백작은 바그란 동부에서 꽤 큰 곡창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나오는 밀이며 각종 곡물을 규제하기 시작하면 반다스 자작령 입장에선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왕도나 다른 곳에서 수입하면 되겠지만 교통상황이 좋지 않은 동부 특성상 비용은 상상 이상으로 늘어난다.
물론 아르마가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놓았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레오볼드가 염려하는 건 그로 인해 인재가 영지에 오지 않으려 하는 것이었다.
눈앞의 스테피나조차 그런 헛소문을 반쯤 믿지 않았는가.
“아직도 그렇게 믿습니까?”
그렇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 표정을 봐서는 그렇게 느껴지진 않아요. 조금 더 봐야겠지만요. 아참 그리고 여기에 에테르 연구소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얼마 전 이사를 끝냈죠.”
기존 영지는 암염이 나고 생선을 포함한 해산물을 채집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거의 없었다.
교통도 불편해서 앞으로 발전해가려면 이 영지를 주축으로 하는 게 나았다.
행정구역 개편도 해야 했고 할 일이 많았다.
아무튼 스테피나는 에테르 연구소의 존재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영지의 규모가 크지 않은데 에테르 연구소를 설립하다니 특이하네요. 보통 재정으로 되는 게 아닌데.”
“부유대륙이 있으니까요. 아직 알릴 단계는 아니지만, 부유대륙에는 금 외에도 많은 자원이 있습니다.”
“그걸 조금만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여기에 사인하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드리죠.”
계약서가 테이블 위에 내려앉자 그녀는 어깨를 늘어뜨리곤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뭐 여기에 정착하기로 하고 온 거니까… 이제 됐죠? 빨리 말해 주세요.”
“부유대륙엔…….”
레오볼드가 입을 열었을 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지온이 루시아를 어깨에 얹고 등장했다.
“이봐, 영주. 내 제자가 왔다고 들었는데?”
“노크는 기본적인 예절이라는 말도 못 들었나?”
“그건 인간들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말이지. 흐음, 자네가 스테피나인가?”
“네? 일단은 그런데요…….”
“흐흐, 드디어 내 제자가 될 녀석이 나타났군. 잘 들어라. 오늘부터는 너도 야근이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스테피나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지온을 올려다봤다.
인간 어쩌고 하는 걸로 봐선 다른 종족인가 싶었는데 어딜 봐도 훌륭한 인간이었다.
로브를 이상하게 개조해서 입은 것도 그렇고 긴 파란색의 머리카락을 모자에 욱여넣은 것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지온은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인지 소파에 발을 턱 얹었다가 레오볼드에게 정강이를 차이고 말았다.
“젠장, 말도 없이 때리는 게 어딨어?”
“그 전에 함부로 발을 올리는 네놈의 못돼먹은 습관부터 고치지 그래?”
“매일 야근하다 보니 머리가 어떻게 좀 됐나 봐. 이걸 누가 시킨 거였지?”
“에테르에 관한 논문 좀 쓰라는 게 그렇게 무리한 주문이었나? 어쨌든 스테피나, 소개하겠소. 이쪽은 에테르 연구소 소장인 지온이고 어깨에 앉은 요정은 루시아라고 하오.”
말투가 갑자기 달라졌음에도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루시아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요즘 세상에도 요정이 있다니 특이하네요. 멸종된 줄 알았는데.”
―그런 말 자주 들어요. 그나저나 스테피나는 꽤 강력한 마법사군요? 봉인마법진으로 힘을 숨겨도 알 수 있어요.
루시아가 허공에 글자를 쓰자 스테피나는 그걸 지우려 했다가 그냥 앉고 말았다.
레오볼드가 말했다.
“무슨 사정이 있나 보군. 뭐 차차 알게 되겠지. 아무튼 스테피나는 당분간 에테르 연구소에서 일하게 될 거요. 논문 쓰던 게 있을 거니 협의해서 같이 쓰면 되오.”
“알겠어요. 제 숙소는 어떻게 되죠?”
“내가 안내해 주지, 따라와라 인간.”
“자꾸 인간이라고 하는데 그쪽은 뭐예요?”
“후후, 내 정체를 알게 되면 깜짝 놀랄걸.”
“뭐 데노바를 박살 낸 드래곤이라도 돼요?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이 파란색이네… 이거 가짜 아니죠?”
“잡아당기지 말라고!”
셋은 시끄럽게 떠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레오볼드는 그제야 스케줄에서 에테르 연구소를 지웠다.
세 명이면 에테르에 대한 기초연구는 충분히 진행할 수 있었다.
아르마가 조사한 정보와 조합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에테르를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아마 지구에서 에테르를 이용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겠지.’
허공에서 불을 만들어 내고 지진을 일으키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플레이그와 선지자의 기원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 * *
오하멜 자작령에는 본격적인 제련소는 없지만 규모가 꽤 큰 대장간과 공방 등 기본적인 시설이 존재했다.
석재와 석탄, 철광석 등 자원이 꽤 풍부한 곳이니만큼 활발하게 운영되었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아니라고 한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전대 영주 그놈은 완전 꼴통이었어. 자원을 내다 팔기만 하고 전혀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지.”
“란티스 백작의 가신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그게 가치가 있느냐는 둘째 치더라도요.”
불토른은 그 대목에서 레오볼드를 올려다봤다.
“자네는 어떤가? 계약서에 사인한 입장에서 이런 소리를 하긴 좀 그렇지만 물어봐야겠네. 자네도 자원만 팔아먹을 생각인가?”
“그건 영감님이 뭘 할 수 있느냐에 달렸겠죠.”
“하! 우리 드워프가 뭘 할 수 있냐고?”
그는 크게 웃더니 레오볼드의 허리춤에 달린 망원경을 잡았다.
“내 장담하는데 자네들의 국가에서 드워프의 기술을 빼면 제대로 돌아가는 건 하나도 없어! 이 망원경만 봐도 알지 않나?”
“그렇죠. 하지만 나는 이미르 공화국과 영감님을 분리해서 보려고 합니다. 드워프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으니까요. 20년 넘는 세월 동안 오하멜이 자원을 파는 걸 구경만 하고 있진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뭘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뭘 했는지 보여 달라는 말이다.
“정 그렇게 말한다면 내 보여 주지.”
불토른은 방치된 지 오래인 공방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게 우리가 연구하던 에테르 기관이네.”
두툼한 손이 먼지투성이인 덮개를 벗기자 낡아빠진 엔진 비슷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일러에 피스톤을 보면 증기기관이 확실한데 연료는 석탄이 아니라 에테르석이었다.
레오볼드는 대충 눈치를 챘음에도 물었다.
“이건 뭡니까?”
“방금 말하지 않았나? 에테르 기관이라고.”
“그러니까 뭐에 쓰냐는 겁니다.”
“내 참. 눈이 좀 트인 인물인 줄 알았는데 영 아니었군. 좋아. 내 인심 써서 자네에게 설명해 주지.”
이후로 불토른은 수염에 침을 튀기며 에테르 기관이란 게 뭔지 알려 주었다.
그러니까 에테르석으로 물을 끓여서 피스톤을 왕복 운동시키는 증기기관이다.
연료가 석탄에서 에테르석으로 바뀌었을 뿐 구조는 거의 같았다.
아르마가 레오볼드의 눈을 통해 기관을 살펴본 후 보고했다.
「초기형 증기기관입니다. 피스톤 냉각 문제로 열효율이 떨어져 실용화는 어렵습니다.」
그 비싼 에테르석으로 실험했으니 더더욱 비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알겠나? 이게 귀쟁이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기차에 탑재되는 거야! 그동안은 화력 조절이 어려웠는데 우리도 가능하게 된 거지!”
“이걸로 기차를 끈다고요? 어마어마한 낭비겠군요.”
“자네 뭘 좀 아는군. 비행선은 부유석이 받쳐주잖나? 사람이 밀어도 밀릴걸? 그런데 기차는 엄청나게 무겁지. 최소 수십 톤을 밀어야 하는데 효율이 안 나와.”
“그렇다면 엘브랑데에서 쓰는 기차는 어떻게 된 겁니까?”
불토른은 콧수염이 휘날리도록 콧방귀를 꼈다.
“흥! 그거 귀쟁이들이 과시욕에서 유지하는 거야. 우리는 이렇게 비효율적인 기차를 끌 재력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거지.”
“그래서 영감님은 그걸 개량하고 싶었는데 성과가 안 나왔고요.”
“휴… 솔직히 말하면 돈이 없었네. 뭘 하려고 해도 오하멜 그놈이 돈을 줘야 말이지. 다 때려치우고 장갑판이나 만들라는데.”
최근 들어 가장 잘 팔리는 품목이 있다면 바로 골리앗의 장갑판이다.
워낙 소모율이 높아서 수요는 많은 데 비해 숙련공이 모자라 공급이 밀리는 실정이었다.
장갑판 자체도 무겁고 덩치가 커서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수차나 인력차가 있는 곳에서만 가능했다.
마침 오하멜 자작령엔 유량이 풍부한 오브강이 있어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숙련공인데, 불토른은 이것만큼은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임금이 워낙 낮아야 말이지. 일은 힘든데 주는 돈은 쥐꼬리만 하니 하겠다는 놈이 있겠나? 20년간 공방을 유지시키려 노력했으나 남은 건 이놈들뿐일세.”
레오볼드는 불토른의 제자인 듯한 대장장이 십여 명을 바라봤다.
2만 명에 달하는 영지의 대장간을 책임지는 숫자로는 퍽 부족한 편이었다.
이 인력으로 골리앗 장갑판까지 만들어야 했으니 고생이 더 심했을 것이다.
‘그렇게 번 돈을 영지에 투자하지 않고 기름칠하는 데 썼단 말이지.’
란티스 백작과 무슨 관계라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레오볼드는 불토른을 포함한 대장장이들을 둘러봤다.
“좋습니다. 오늘부터 이 공방은 새로 출발합니다. 더 이상 골리앗 장갑판은 만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건 연구입니다. 바로 이 기관 말이죠.”
“에테르 기관 말인가? 현 상황에선 아무리 해도 효율이 안 나올 것 같네만…….”
“지금 문제가 실린더 내부에 냉각수를 분사하는 바람에 피스톤이 냉각되는 게 문제잖습니까?”
이 대목에서 불토른의 눈이 빛났다.
제자 중에서도 자신이 한 설명을 알아들은 녀석은 한 명도 없었는데 오늘 처음 이 기관을 본 영주가 문제점을 집어낸 것이다.
“그렇지. 그래서 피스톤이 잘 깨지고 효율이 엉망이지. 해결책은 있겠나?”
“응축기를 따로 설치하면 어떻겠습니까? 배관으로 뺀 증기를 냉각수로 식히면 피스톤 문제가 전부 해결될 겁니다. 효율도 높아지고요.”
“응축기?”
“냉각실을 말하는 겁니다. 핵심은 피스톤이 냉각되지 않도록 증기를 따로 빼서 냉각시킨다는 거죠.”
“증기를 빼면 실린더 안의 압력이 유지되겠나?”
“그건 지금부터 불토른이 연구해야겠죠. 드워프 아닙니까?”
개폐구를 만들어서 연동하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였지만 레오볼드는 거기까진 말하지 않았다.
“방금 전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굴더니 신기한 노릇이군. 안 그런가?”
“평소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안 할 겁니까?”
불토른은 혼자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제자들을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뭐 하나! 빨리 이거 뜯을 준비해! 공구 가져오고 수차 돌리라고 연락해!”
레오볼드는 그에게 강조했다.
“앞으로 재정과 자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걸 최대한 빨리 완성하십시오. 그리고 임금은 지금까지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두 배나! 자네 주머니가 텅 비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는구만.”
“있는 거라고는 돈뿐인데 이런 연구를 밀어주지 않으면 어디에 돈을 쓰겠습니까?”
“허허허. 사람들은 자네를 졸부라고 생각하던데 사실은 조금 다른 모양이야.”
불토른은 자기의 연구를 알아주는 영주가 와서 기뻤는지 연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크랭크를 돌리는 대장장이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새로운 주인을 만난 공방에 활기가 돌았다.
* * *
레오볼드는 자신의 영지에 대한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반다스 남작령은 반다스 마을, 그리고 오하멜 자작령은 오하멜 시로 바뀌었다.
굳이 사망한 귀족의 성을 쓴 것은 주민들이 오래 써와서 익숙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아스테라 전체를 정복해야 하는데 단어 하나에 구애받아선 안 될 일이었다.
란티스 백작에게 몸을 의탁한 오하멜 자작의 식솔들이 반발하겠지만 그 정도는 예상되어 있었고 별문제도 아니었다.
“주, 그리고 핵심시와 보통시, 특별시, 자유시, 지구, 마을 정도로 행정구역을 정리하면 되겠군.”
아르마의 연산유닛 속에는 그런 개편을 위한 로드맵이 짜여 있지만 지금 당장 꺼낼 필요는 없었다.
그것보다는 바그란 동부의 열악한 교통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다.
“밀의 수확 시기에 맞춰서 시작될 란티스 백작의 견제를 이겨내는 것도 필요하고요. 여러 상단에 압력을 넣어서 우리 쪽에 밀을 비롯한 곡물을 공급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다른 곳에서 수입을 하면 되겠지만 비용이 폭증하겠군.”
“최소 3배 이상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게 상승해도 지불할 여력이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이면 곤란했다.
당장 란티스 백작을 칠 수는 없으니 어떤 식으로든 식량과 교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레오볼드는 오하멜 시와 반다스 마을을 잇는 선을 그었다.
“여기에 도로가 있긴 있지?”
“네. 포장도로는 아니지만요.”
“지반을 다지고 간단한 선로를 깔려면 시간이 얼마가 들 것 같아?”
“골렘을 동원하고 인부를 대거 보강한다면 세 달 안에 완료될 겁니다.”
여기에서 반다스 마을까지는 약 150km에 달하는데 도로라곤 하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흙길이었다.
지반이 연약해 톤 단위 중량물을 옮기는 것은 어려웠고 시간도 많이 소모되었다.
그래서 두 곳을 잇는 교통수단이라곤 뿔새를 이용한 마차밖에 없었다.
뿔새는 말에 비해 이점이 많은 동물이지만 그래도 기차를 이길 수는 없었다.
아르마가 홀로그램으로 표시된 도로에 기차를 놓았다.
엘브랑데나 자이움에서 귀족들이 애용하는 기차보다는 원시적인 것으로, 거의 마차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기존의 마차에 비해 월등한 수송량을 자랑했다.
“두 곳에서 필요한 물량을 감당하려면 편성을 어느 정도 해야 될까?”
“기관차 1대에 화차 3대를 연결해서 하루에 10편성이면 될 겁니다. 속도는 시속 15km 정도겠고요.”
초공동열차에 비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속도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 기반도 없는데 그런 물건을 덜렁 내놓을 순 없으니까.
그리고 레오볼드는 아스테라를 지구의 21세기처럼 발전시킬 생각도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19세기, 그러니까 엘브랑데의 수도 메데아 정도였다.
그 이상은?
아스테라인들이 알아서 해야지.
아르마가 고개를 숙이고 제의했다.
“증기기관의 연료로는 에테르석을 쓸 생각이신가요? 오하멜 시 부근에 석탄이 많이 납니다만…….”
“석탄이 확실히 매력적이긴 하지. 하지만 이 아스테라에 굳이 시커먼 매연을 뿜어낼 필요는 없어.”
아스테라는 에테르를 기반으로 발전을 해 왔다.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뛰어난 드워프들도 전기는 쓰지 않았고 에테르에만 신경을 썼는데 워낙 효율이 뛰어나서였다.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적어 값이 비싸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현재 에테르를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은 딱 둘뿐으로, 에테르석과 지적 생명체의 몸, 에테르 하트였다.
후자엔 에테르를 쌓아봐야 금방 어디론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 기간을 늘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흔히 말하는 에테르를 심장 주위에 쌓는 체인 트레이닝이 거기에서 나왔다.
하여튼 에테르석이 너무 비싼 탓에 에테르 에너지의 높은 효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쓰려면 비효율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불토른이 개발하고 있는 에테르 기관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면 에테르석을 대량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군요.”
“지금 에테르석은 어떻게 만들고 있지? 아니, 에테르는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저 에테르 태양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아스테라인들은 엘드그라실에서 에테르가 뿜어진다고 생각하더군요.”
너무 커서 수천 km 밖에서도 그 위용을 확인할 수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엘드그라실은 엘프뿐만이 아니라 여러 종족도 공통으로 신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걸 엘프가 독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겠지만 에테르가 태양에서 오는 것은 거의 확실했는데, 그것은 아르마가 분석한 바 있다.
“50년에 걸쳐서 에테르 태양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융합로의 출력이 상승했습니다. 아스테라에 정착한 후에는 조금 떨어졌고요.”
“태양에서 나온다고 봐도 되겠군. 만드는 방법은?”
“우선 수정이 필요합니다. 투명도가 높고 크기가 클수록 에테르를 많이 저장할 수 있다고 추측되고 있죠. 그 수정에 집진 마법을 응용해 에테르를 장기간에 걸쳐 모으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법사가 만드는 거였군.”
“최근에는 마법사는 집진 스크롤만 제공하고 다른 사람이 에테르석을 만드는 게 관례화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평민은 손을 댈 수 없고요.”
“과정만 들어서는 평민이 손을 대도 괜찮을 것 같은데? 혹시 에테르 혈통 때문인가?”
“네. 아스테라의 귀족들은 평민이 에테르에 관여하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자기들의 전유물이라는 거겠지.
엘프들은 대부분 에테르를 다룰 수 있지만 에테르석을 만들 수 있는 것은 하이엘프를 포함한 귀족층이었다.
생산수단을 독점해서 가치를 올리는 것은 지구의 역사에서도 숱하게 나타난 바 있다.
그리고 레오볼드는 그 가치를 아주 많이 떨어트릴 생각이었다.
“누구나 에테르를 쓸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지.”
단, 그게 모든 이를 마법사로 육성한다는 건 아니었다.
지구에서 전기를 쓰듯, 누구나 에테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위험한 마법 등은 취급 자격에 제한을 두는 식으로 통제하면 될 것이다.
아르마의 손가락이 홀로그램의 부유대륙을 짚었다.
“에테르석은 자연적으로 생성되기도 하므로 부유대륙에서 캐왔다고 하면 되겠네요.”
“역시 부유대륙밖에 없군. 우리 외엔 아무도 상륙 못 하는 건 확실하지?”
“당분간은 그렇습니다. 자이움은 물론이고 엘브랑데조차도 감을 못 잡고 있네요. 어쩌면 에테르 회로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유대륙 자체에 뭔가 비밀이 있다는 말인데…….”
겨우 200년 전에 떠올랐음에도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게 수상했다.
레오볼드는 지갈레온을 떠올렸으나 잊어버렸다.
200년이나 부유대륙에 숨어 지냈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드래곤이니 기대할 게 못 되었다.
“걔는 지금처럼 연구에 협조하는 정도면 충분해.”
역시 에테르를 연구해서 엘브랑데에 있는 무한의 도서관을 뚫는 것이 최선이다.
“참, 자이움의 프로잔 후작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원을 포함한 비행선을 두 척 보낼 테니 잘 써달라는군요. 기한은 5년이랍니다.”
“얕은꾀를 쓰기는. 나중에 돌려받을 때 선원들이 경험을 쌓았길 바라는 거겠지.”
“나중에 상륙할 때 동행을 요구할 수도 있겠죠. 거절할까요?”
“우리 처지에 두 척을 거절할 순 없지. 기한도 5년이니 알뜰하게 써먹으면 될 거야.”
돌려줄 때쯤이면 이쪽은 프로잔 후작 따위가 요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식량의 개혁이 최우선이었다.
사실 철도를 깔고 부유대륙에서 자원을 가져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식량이었다.
레오볼드의 영지는 워낙 척박한 곳이라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
란티스 후작은 그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고 본격적인 제재를 준비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를 기해 비행선 3척으로 이루어진 선단이 부유대륙을 향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