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70
269화 누구 마음대로?
아스테라에서 전쟁은 대개 골리앗의 전투로 시작되고 끝난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상대방의 수도로 진격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고 협상을 통해 전쟁을 마무리 짓는 게 보통이었다.
이는 전쟁 당사자들이 에테르 혈통이라는 동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국가가 과거 그람 제국에서 갈라져 나왔기에 뿌리를 찾아 올라가다 보면 선조가 같은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어지간한 전쟁이 벌어져도 보상금을 지급하는 선에서 끝나곤 했다.
인간 왕국끼리 하는 전쟁이라면 그렇다는 얘기다.
엘브랑데는 진심으로 인간을 말려 죽이려 들었고 야금야금 땅을 흡수해 왔다.
최근에야 다소 주춤하지만 그것은 정책 변화와 내부의 혼란 때문이지 인간 경멸의 기조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
하여튼 그런 면에서 이번 전쟁을 지켜보던 각국의 수뇌부들은 바그란이 이쯤에서 멈출 것이라 예상했다.
―아무리 막 나가는 반다스 왕이라도 자이움의 눈치를 보지 않을 리 없지. 갈리스토를 먹지는 못할 거야.
―군사력은 그렇다 쳐도 덩치가 너무 차이가 난다. 인구 300만 짜리가 700만을 지배하는 건 불가능하다.
―당장 수도가 전쟁에 휩쓸리면 식량은 어떻게 유통할지 의문이다. 갈리스토의 경우 대부분의 식량이 수도를 경유하는데 시민들을 다 굶어 죽일 작정이 아니고서야…….
―갈리스토는 자이움 외에 유일하게 비행선 요격용 에테르 캐논을 설치한 국가다. 명중률은 낮지만 덩치가 큰 비행선을 맞히지 못할 리는 없다.
이런 식으로 바그란이 갈리스토의 수도를 점령하지 못하는 이유가 수십 개나 나열되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었기 때문에 호사가들의 주장에 찬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상식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었고 레오볼드는 그 분야에서 전문가였다.
바그란의 직할령에 위치한 계류장에서 선원들이 바삐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출항! 출항 준비해!”
“화물 다 채웠으면 선창 닫고 보고해!”
“계류삭 해제 준비 끝!”
이곳의 선원들은 다른 국가의 선원들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을 자랑했다.
밥만 먹고 운항 연습만 하니 느릴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실전에 들어갔을 때의 함선의 기동이나 피격 시 대처에 관해서도 전문가 수준이었다.
레오볼드는 임금은 넉넉하게 지급하는 대신 열심히 굴리라고 지시했고 햄튼 제독은 그대로 따랐다.
덕분에 갈리스토 원정함대는 출항 지시가 내려진 지 30분도 되지 않아 계류삭을 완전히 풀 수 있었다.
다른 국가 같았으면 최소 몇 시간은 걸리는데 말이다.
“출항!”
햄튼 제독의 지시가 내려지자 20여 척에 달하는 비행선이 상공으로 떠올랐다.
선원들 모두가 항해에는 이력이 나 있었기에 속도를 맞추고 대열을 형성하는 것도 상당히 빨랐다.
“항로 고정! 에테르 추진기 50%로 가동! 이대로 프레스토까지 직진한다!”
공격함대의 목적은 갈리스토의 수도에 진입해 골리앗과 병력을 내려놓는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닌 수도인 만큼 쉽지는 않을 테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척탄병들은 이미 승리를 겪어 본 터라 자신만만한 얼굴이었고 무엇보다 발가드가 타고 있었다.
갈리스토의 정예기사 100명을 도륙한 알테마의 챔피언.
그가 있는 이상 지는 건 불가능했다.
함대가 국경선을 넘자 근처에서 배회하던 갈리스토의 비행선들이 일제히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원래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동태를 관찰하려 했던 모양이지만 전위대가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에테르 추진기의 출력을 높이더니 순식간에 정찰 비행선 두 척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그 엄청난 속도에 갈리스토의 선원들은 깜짝 놀랐다.
“뭐, 뭐가 저렇게 빠른 거야?”
“도망쳐도 소용없어! 속도를 늦춥시다!”
하지만 갈리스토의 함장은 뭘 생각했는지 불행한 선택지를 고르고 말았다.
정선하라는 발광석 신호를 무시하고 슬금슬금 추진기의 출력을 올리더니 부리나케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햄튼 제독은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곳은 갈리스토의 영토지만 우리가 약하게 나갈 필요는 없다! 에테르 캐논 발사 준비! 도망치는 비행선을 조준하라!”
“조준 끝! 사격 준비 끝!”
“발사!”
갈리스토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빛줄기가 도주하는 비행선을 향해 뻗어 나갔다.
후미에 충돌한 에테르 덩어리는 단숨에 추진기를 박살 내고 선체 균형을 무너뜨렸다.
비행선이 기우뚱하더니 갑판의 선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그 모습을 본 다른 정찰선들은 냉큼 항복했다.
바다 위라면 모를까 하늘에선 에테르 캐논에 맞는 순간 살아날 희망은 버려야 한다.
적이 구조할 가능성도 없어서 기회를 줄 때 최대한 빨리 손을 드는 게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한 척의 함장은 항복을 거부했다.
“여기는 갈리스토의 하늘이다! 바그란 놈들에게 항복할 이유가 없어! 우리는 이대로 후퇴해서 프레스토로 간다!”
도망을 후퇴로 포장하는 솜씨는 상당했지만 선원들은 거기엔 관심이 없었다.
수십 명이 칼을 빼들고 함장 휘하 사관들을 포위했다.
“네, 네놈들 반역이냐?”
“반역도 살아 있어야 가능한 거 아니겠어? 선택해! 저기 땅으로 떨어질지 항복할지!”
선원들이 종용했음에도 함장은 꼿꼿이 고개를 들었다.
남작이라는 작위를 가졌기에 평민들의 협박을 수용하기가 괴로웠을 것이다.
“거부한다! 네놈들은 수도로 복귀하는 즉시 사형감이야!”
이 무슨 만용이란 말인가.
덩치 큰 선원 두 명이 나서서 힘 있게 붙잡자 비로소 함장의 얼굴에 공포가 어렸다.
“서, 설마, 나를 던지려는 게냐? 후환은 생각지도 않고?”
“이대로 죽는 것보단 던지고 항복하는 게 낫지 않겠소?”
“후환은 무슨, 어차피 바그란이 점령할 텐데. 어이, 땅으로 모셔라!”
“이거 놔라! 놓으란 말이다!”
그는 버둥거리면서도 귀족으로서의 긍지 때문인지 항복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덕분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갑판 너머로 내던져졌다.
“으아아악!”
당연하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방해꾼이 치워지자 사관들은 대부분 팔을 들었고 비행선이 속도를 늦추며 백기를 게양했다.
전위대가 에테르 캐논을 쏘기 직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투항한 비행선을 끌고 수도로 진격할 수는 없었으므로 후위대에 속한 한 척이 그들을 후방으로 이송시켰다.
갈리스토 공격함대는 그런 식으로 5척의 비행선을 나포해 본국으로 옮겼다.
이제 남은 것은 방어함대와의 결전과 수도 점령이었다.
그리고 그때를 기해 팔커스 2세의 특사가 로제론을 방문했다.
* * *
“이쯤에서 끝내자고?”
레오볼드는 특사 앞에서 흰 편지를 흔들었다.
내용에서 미사여구를 다 빼고 나면 결국 팔커스 2세가 원하는 바는 하나였다.
휴전.
자존심 때문에 항복하지는 못하겠고 협상도 안 통할 것 같으니 잠시 전투를 중단하자는 것이다.
특사의 앞에 편지가 내던져졌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야. 곧 수도를 점령할 수 있는데 누구 마음대로 휴전을 해주나?”
“대전쟁 이후 200여 년간 한 왕국을 점령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전하.”
“그럼 이번이 첫 사례가 되겠군.”
“전하, 갈리스토는 큰 나라이고 이번 전쟁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들도 계십니다. 감당이 되시겠습니까?”
원래라면 뒷배를 생각하지도 않고 일을 키웠다간 후회할 거다 정도의 발언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관 한 명의 팔이 잘려 돌아간 뒤엔 말투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레오볼드는 웃으며 그에게 밀지 하나를 던졌다.
내용을 훑어본 특사의 얼굴이 하얘졌다.
“너희들이 믿는 황제는 이번 전쟁에서 손을 떼기로 했어. 아마 갈리스토까진 인정해 줄 거야.”
“대, 대공 전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뭐 미티어 스트라이크라도 발동해서 날 공격하려고? 그럼 나도 발가드와 지갈레온을 보내면 되겠군.”
갈리스토 따위에 공멸을 바라지는 않을 테니 이쯤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특사는 이번 전쟁에서 더는 도움을 바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레오볼드가 바라는 건 완전한 항복이라는 걸 그에게 알렸다.
“협상, 조건부 휴전, 다 필요 없어. 팔커스 2세에게 백기 들고 있으라고 해.”
“그런 식으로 모멸감을 주면 전투만 길어질 뿐입니다!”
“철저하게 밟아 버리면 되지. 어차피 점령하고 나면 귀족들과 한판 해야 될 테니 잘 됐어. 이번 기회에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진 않아.”
아무래도 반다스 왕은 갈리스토를 항복시키는 것도 모자라 병합하기로 한 모양이다.
제국이 멀쩡하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만 현재의 제국은 어찌된 일인지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특사는 레오볼드의 허락을 얻어 본국에 연락했다.
무조건 항복하라는 의사가 전해지자 팔커스 2세는 집무실의 집기를 다 부수며 길길이 날뛰었다.
“근본도 없는 왕위 강탈자 놈이 감히 누구에게! 좋다! 나도 더 이상은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함대 결전에 나서겠다!”
갈리스토의 비행선 함대는 수적인 측면에선 바그란과 비등했는데 막대한 빚을 지고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결과물이었다.
거금을 주고 자이움에서 몇 척, 데노바에서 몇 척 빌린 식이다 보니 제대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고 무장도 중구난방이었다.
하지만 팔커스 2세는 수도에 설치된 방어시스템을 믿었다.
“그 덩치로 수많은 포대의 집중사격을 버텨 내는 건 불가능하지! 놈들은 수도에 한 발짝도 들어오지 못해!”
위력과 규모면에선 자이움의 포대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한 대라도 맞으면 치명적이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었다.
팔커스 2세는 수도 방어에 집중해 자이움의 구원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황제든 판그랄 대공이든 버티고만 있으면 구해 줄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바그란의 공격함대가 프레스토 상공에 나타날 때까지 자이움에서의 연락은 전혀 없었다.
시민들은 20척의 비행선 함대가 외곽에서 진입하는 것을 두려운 얼굴로 지켜봤다.
“바그란의 비행선은 뭔가 덕지덕지 붙어 있네…….”
“전체적으로 덩치도 크고 육중해 보여… 이길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한테는 에테르 캐논이 있다고!”
프레스토의 에테르 캐논 방어시스템은 바야흐로 갈리스토 전체의 희망으로 떠올렸다.
하지만 그걸 책임지고 있는 그람 후작은 바그란의 함대와 갈리스토의 함대가 조우하는 걸 창문을 통해 지켜보고만 있었다.
“각하, 전하께서 빨리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함대 간의 거리가 더 좁아지면 일제사격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사격해야 합니다.”
가신들의 독촉이 이어졌지만 그는 지시를 내리는 대신 뜬금없는 것을 물었다.
“우리 함대가 이길 것이라 보나?”
“비행선만으로 따지면 힘들지도 모르겠으나 방어시스템이 있지 않습니까?”
“지상의 에테르 캐논은 화력도 강하고 사거리도 깁니다. 최근에 명중률도 보정했으니 저 함대를 저지할 수 있을 겁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각하.”
거듭 촉구가 이어졌지만 그는 포기한 듯했다.
“바그란의 비행선에 대해선 조금 들은 바가 있네. 리빙메탈 장갑판을 채용해서 매우 튼튼하다지. 일제사격에도 어느 정도 버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네.”
갈리스토의 에테르 공학자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바그란의 비행선이 리빙메탈을 전폭적으로 채용했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이 희한한 금속은 무지하게 단단할 뿐만 아니라 가볍기까지 해서 방어용으로 최적이었다.
어떤 공학자는 동수로 바그란의 함대와 붙었을 때 이길 수 있는 함대는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자이움이나 엘브랑데 비행선의 체급이 더 크지만 방어력의 차이가 현격합니다. 실제 붙어 보면 일방적으로 깨질 겁니다.”
거기에 바그란의 비행선들은 묘하게 빨라 보였다.
단지 착각일 뿐인가?
그람 후작은 진형을 형성하는 양 함대를 보며 중얼거렸다.
“방어력과 기동력을 보강한 바그란이 화력에 손대지 않았을 리가 없지. 잠시 후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걸세.”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걸까?
가신들은 이제 더는 시스템 가동을 요구하지 못하고 지켜만 봤다.
양 함대가 거의 동시에 포문을 열면서 사격을 시작했다.
프레스토 상공에 빛줄기가 교차하면서 어지러운 폭발을 만들어 냈다.
“아아악!”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나 밑에서 구경하고 있던 시민들이 머리를 감싸고 도망가기 바빴다.
말로만 듣던 비행선 함대 간의 사격전은 확실히 대단하긴 했지만 그 여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일부 갈리스토 소속의 비행선은 훈련 부족 때문인지 애꿎은 건물에 사격을 가해 부숴 놓았다.
기동 간 사격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하여튼 양 함대의 일제사격은 프레스토 시민들의 눈을 사로잡는 바가 있었다.
제 3자의 시선에서 구경했더라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그들의 전쟁이었다.
방어함대가 패하면 골리앗 부대가 나서긴 하겠지만 승산은 희박했다.
단기로 100대의 골리앗을 박살 낸 괴물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시민들은 손에 땀을 쥐고 전투를 지켜봤다.
양 함대는 단 한 번의 일제사격을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금방 승패가 드러났다.
바그란의 비행선이 멀쩡한데 비해 갈리스토의 비행선에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던 것이다.
심지어 부유석과 적재 화물을 쏟아내며 추락하는 비행선도 다수 있었다.
수백 톤이 넘어가는 비행선이 온갖 파편을 쏟아내며 떨어지자 시민들이 공포에 질렸다.
“비행선이 추락한다!”
“파편이 튄다! 도망가!”
마치 수도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져든 것 같았다.
한편 팔커스 2세는 갈리스토의 비행선이 하나하나 격침되는 것을 보고 격앙했다.
“이럴 수는 없다! 대체 지상의 에테르 캐논은 뭘 하고 있는 건가! 그람 후작에게 연락은 되나?”
“통신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전하!”
“이건 반역이야!”
그는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잘근 깨물었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바그란의 함대는 단 한 척의 피해도 입지 않은 채 동수인 갈리스토 함대를 격멸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것은 골리앗으로 요격전을 벌이는 것뿐인데 가능성이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기껏해야 오세급으로 블랙 나이트를 막을 수 있을까?
골드 드래곤의 챔피언이라는 그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까?
‘역시 미티어 스트라이크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갈리스토에 희망은 없었다.
팔커스 2세는 휘청거리며 밀실로 들어가 타소스 공국으로 통하는 통신구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통신은 이어지지 않았다.
“대공 전하! 전하! 판그랄 대공! 야 이 새끼야!”
실시간으로 호칭이 상스러워졌지만 그럼에도 통신구에선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으아아!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팔커스 2세는 잔뜩 흥분한 채로 통신구를 집어 던지다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저 멀리 바그란의 함대에서 드래곤 형상의 골리앗 1기가 뛰어내리고 있었다.
* * *
갈리스토의 운명이 경각에 달하자 자이움의 행동이 부산스러워졌다.
바라크 황제는 바그란의 골리앗 부대가 프레스토를 휘젓는 것을 보고받고는 결심을 굳혔다.
“여기에서 물러나라는 건 모욕하는 것밖에 안 되겠지. 역시 갈리스토까진 인정해 줘야겠군.”
다시 말하면 나머지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의 입장에선 두 왕국이 하나로 합쳐져도 큰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오볼드가 거기에서 만족할 것인가는 의문이었다.
바라크 황제는 결코 바보가 아니었고 이번 전쟁을 통해 드러난 바그란의 전력을 우려스럽게 바라봤다.
“블랙 나이트 수십 기에 지갈레온과 20척의 함대, 알테마의 챔피언까지 보유했는데 과연 갈리스토로 만족할 것인가?”
이쯤 되면 미티어 스트라이크로 그를 억제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아무튼 바라크 황제는 특사가 가져간 통신구를 통해 의향을 전달했다.
“갈리스토는 잘 씹어 드셨소?”
“소화시키는 중입니다. 반발이 만만치 않더군요.”
“반발은 무슨… 하여튼 잘 들으시오. 갈리스토로 만족하시오. 나머지는 허락하지 않겠소.”
달리 말하자면 갈리스토는 허락한다는 말이고 신하답게 이쯤에서 고개를 숙이란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바라크 황제가 모르는 게 있었다.
“혹시 폐하께선 판그랄 대공이 어디를 공격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뭐요? 그 사람이 어디를 공격해? 설마 로제론을……?”
“아닙니다. 제 아내의 영지를 공격했습니다.”
“크로이츠 백작의……? 갑자기 거기는 왜?”
“이유는 모릅니다. 갈리스토를 지원하다 깡그리 털리게 생겼으니 본전 생각이 난 걸까요? 지금 제 아내의 영지는 타소스 공국에서 온 골리앗 부대에 의해 유린되고 있습니다. 저택을 마구 때려 부수는군요.”
바라크 황제는 충격적이었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두 왕국의 싸움에서 튄 불똥이 국내로 옮겨 붙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저는 카밀라 크로이츠 백작의 반려 된 입장에서 그 만행을 지켜볼 수는 없습니다. 판그랄 대공은 그녀의 영지를 공격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건 안 되오. 내전은 허락할 수 없어.”
“대공이 제 아내의 영지를 공격한 건 내전이 아니란 말입니까? 벌써 수십 명이 사망했고 막대한 재산 피해가 났습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일단 병력을 물리면 프로잔 후작을 보내 중재하겠소. 다시 말하건대 판그랄 대공에 대한 공격은 절대 허락할 수 없소.”
“대공에겐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요.”
설마……?
바라크 황제는 레오볼드가 모든 것을 배후 조종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에 사로잡혔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도 침착하며 자세하게 현지의 상황을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걸 추궁할 여유는 없었다.
“가만히 있으시오. 괜히 대공과 한판 붙어서 타소스 공국까지 침략할 생각 따위는 꿈도 꾸지 말란 말이오, 아시겠소?”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대공이 이렇게 나오니 저도 판단을 달리해야겠습니다.”
“더 이상 허튼 수를 쓰려 한다면 반역죄로 다스리겠소!”
극언까지 튀어나왔지만 레오볼드는 여유로웠다.
“허락받는 것보다는 용서받는 게 더 쉽다는 말이 있죠.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통신이 끊겼고 바라크 황제는 자신이 내준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 사면장…….”
설마 대공을 죽이고 그걸 내밀 생각은 아니겠지?
그는 급히 친위기사단을 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