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71
270화 피할 수 없는 함정
카밀라는 함교에 서서 자신의 영지가 불타는 광경을 무표정하게 구경했다.
주요 가신과 재산은 이미 빼돌렸지만 영지의 근간인 시민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침략군은 시간이 없었는지 그들을 짓밟진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영지민들이 공포에 떠는 모습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증거를 인멸하려는 모양인지 저택 어딘가에서 불길이 화르륵 솟아올랐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들었고 미리 대비도 했지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공이란 작자가 얼마나 판단력이 부족하면 자신이 지원하던 왕이 전쟁에서 졌다고 다른 영지를 공격한단 말인가.
‘차마 로제론을 치지는 못하겠으니 나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거지.’
누가 봐도 무리수지만 지금의 판그랄 대공은 그런 무리수에 기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레오볼드가 갈리스토를 집어삼키면 그동안 투자한 골리앗이며 비행선이 싹 날아가니까.
그 돈은 물경 수십만 골드에 육박했고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돈보다 중요한 영향력이 처참하게 쪼그라들 예정이었다.
권력자에게 있어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건 견디기 힘든 무엇임에 분명했다.
‘그래도 나를 건드리면 안 됐어, 당신.’
레오볼드가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꿈에도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녀도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바라크 황제였다.
아무리 황제가 판그랄 대공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해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레오볼드보다는 더 대우할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고 대공과 그의 영지인 타소스 공국은 제국과 200년 가까이 군신 관계였다.
최근 제국 내에 영지를 갖게 된 신흥 귀족과는 차원이 다르단 뜻이다.
즉, 황제는 어떤 식으로든 판그랄 대공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레오가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대체 뭘 준비했을까?’
그녀는 하이페리온호의 함교에 서서 추억에 어린 저택이 불타는 걸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타소스의 기사들을 족치고 싶었지만 레오볼드가 올 때까진 참아야 했다.
그리고 함교의 문이 열리며 그가 들어왔다.
“썩 유쾌한 풍경이 아닐 텐데 용케 그걸 보고 있네.”
“그래야 대공을 밟을 때 쾌감이 느껴질 것 같아서요. 그나저나 당신이 준비한 건 뭐예요?”
레오볼드는 그녀의 손에 사면장을 쥐어주었다.
황제의 직인이 찍힌 양피지를 본 그녀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건… 일정 기간 내에 저지른 건 모조리 사면되는 건가요? 황제가 이런 걸 내주려 하진 않았을 텐데.”
“블랙 나이트를 좀 줬지. 덕분에 타소스 공국을 흡수할 수 있게 됐으니 남는 장사 아니겠어?”
그녀는 애매한 표정이 되었다.
이 남자는 언제나 효율을 따진다.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인간 관계에서도 그런 면이 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그렇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레오볼드가 그녀의 뒤로 와서 허리를 껴안았다.
“표정을 보니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데?”
“…전 당신에게 어떤 의미죠? 아르마를 내세울 수 없으니 대외적으로 드러낼 만한 아내일 뿐인가요?”
그는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묻는 대신 그녀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제국 내에 연결점을 만들어 두면 장차 편할 것 같았거든.”
“지금은요?”
“지금은 아니야. 당신은 나와 같이 가야 돼. 어디든 말이지.”
카밀라는 그의 팔뚝을 쓰다듬다가 문득 말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당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요.”
“그거 위험한 말인 거 알아?”
“아스테라에도 그런 속담이 있죠. 전쟁 전에 무언가를 약속하지 마라… 하지만 당신은 다르잖아요.”
레오볼드가 방관하지 않는 이상 카밀라는 죽을 일이 없다.
단지 그는 조금 다른 부분에서 곤혹스러웠다.
“아르마가 먼저 말했는데 큰일이네.”
“아인종조차 아니라면서요. 아이를 가지는 게 가능하긴 해요?”
“뭐 가능하긴 한데…….”
아르마는 인공지능이고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대신 보관하고 있던 루시아의 유전자와 레오볼드의 것을 받아들여 아이를 가지길 원했다.
영혼을 제외한 더미를 만드는 기술력이 있으니 어떻게든 된다.
카밀라도 지금 레오볼드의 육체라면 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힘에 걸맞은 새로운 육체를 만들고 있어서 난관이 예상되었다.
그 육체는 원래 유지하, 그러니까 지구인의 유전자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지구인과 아스테라인의 혼혈은 밝혀지지 않는 문제로 아직은 어려웠다.
이런 점을 설명해 주자 카밀라는 실망하는 대신 새로운 육체에 대한 호기심을 나타냈다.
“이 얼굴을 많이 봐서 새로운 육체에는 정이 안 갈 것 같은데. 사진 같은 거 있어요?”
“대충 이렇게 될 거야.”
유지하였을 때의 사진을 보여 주자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밝아졌다.
“말도 안 되게 잘생겼잖아요. 왜 이 몸으로 갈아탄 거예요?”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몸이 에테르에 적응을 못했거든.”
에테르가 없던 세상에서 와서 그렇다.
융합로를 통해 에테르에 각성하고 수십 년이나 버텼지만 에테르 태양에 가까워지자 거부 반응을 일으킨 게 분명했다.
지금은 그걸 넘어서서 완전히 에테르에 특화된 새로운 육체를 만들고 있었다.
거기에 다다르면 레오볼드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르기엔 힘든 존재가 될 것이다.
그는 신임을 극구 부정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면 영락없는 신이었다.
카밀라는 돌아서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럼 아이는 좀 미루죠. 이렇게 말하는 건 당신한테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무슨 소문?”
로제론에 도는 소문 대부분은 아르마가 관리 중인데 그중에서 부정적인 건 거의 없다.
그녀가 그의 귀에 대고 속닥속닥했다.
“젊은 아내가 둘이나 있는데 아이가 없으니까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나 봐요. 사실 아이가 최소 서넛은 있어야 할 위치고 연령이거든요.”
“아…….”
아낙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인 모양이었다.
사실 아스테라에선 레오볼드의 나이면 중년에 속한다.
또 아직까지 존재하는 그랑베르의 영향력 덕분에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곧 미덕이었다.
바그란의 국왕이자 그랑베르의 신도인 그라면 후사를 서넛 이상은 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어쩌지? 당분간은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데.”
더미를 동원하면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카밀라는 그에게 살짝 키스했다.
“소문이야 돌겠지만 워낙 바쁘니까 다들 이해는 할 거예요. 하지만 당신의 의무가 끝나면… 알죠?”
레오볼드는 가급적이면 조용한 곳에 은둔하길 원했지만 세상이 그렇게 놔두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선지자가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서, 그리고 차원이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군.’
어쩌면 아르마조차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거기에 대한 대책을 지금 세우는 것은 무리고 그때그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지.’
바로 판그랄 대공과 한판 붙는 것이다.
갈리스토엔 발가드와 기사들이 많이 갔으므로 큰 문제는 없을 테고 대공의 병력도 그리 위협적인 건 아니었다.
심지어 미티어 스트라이크조차 레오볼드에겐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이젠 그 힘으로 대공을 밟아 버리고 영토를 흡수하기만 하면 된다.
황제가 뒤늦게 달려오겠지만 사면장을 무시할 순 없으므로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잡담은 끝이군. 이제 싸울 때야.”
“제가 나갈게요. 이곳을 짓밟은 놈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까.”
피해자는 많지 않지만 암사자를 건드렸으면 책임을 져야지.
카밀라는 레오볼드가 이곳에 오기 전에도 백작이었고 제국 내에서 손꼽히는 강한 기사였다.
대공도 아닌 휘하 병력쯤은 눈 감고도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조심해.”
그녀는 레오볼드의 말을 뒤로 하고 격납고로 향했다.
잠시 후 하이페리온의 고도가 낮아지더니 10대의 블랙 나이트가 대지에 내려섰다.
* * *
현 시점에서 판그랄 대공이 동원한 병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비행선에 골리앗을 탑재하는 게 불가능한 마당에 들키지 않고 카밀라의 영지에 진입하기 위해선 소수여야 했던 것이다.
총 20기가 그녀의 영지를 밟았고 최종적으로 저택을 불태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휘관인 클로버 자작은 불길한 느낌을 감추지 못했다.
‘뭔가 이상해. 병력이 이렇게 없을 리가 없는데.’
저항이 약하다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크로이츠 백작의 영지는 제국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한 곳이었다.
그 병력이 다 어디로 갔을까?
또 저택 내에 남은 인원과 재산이 없다는 것도 의심을 부추겼다.
마치 습격이 있을 걸 알고 미리 빼돌린 것 같았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저택을 보며 대공에게 연락을 취하려 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검은 기사들이 그를 저지했다.
클로버 자작은 신음을 삼켰다.
“블랙 나이트… 그게 10대나 등장했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판그랄 대공은 바그란이 갈리스토와 전쟁을 하고 있어서 비행선을 동원하지 못할 거라 호언장담을 했었는데.
그리고 대응이 너무 빨랐다.
저택을 불태우자마자 기다렸다는 건 이 모든 게 함정이라는 의심을 하기 충분했다.
선두에 선 블랙 나이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카밀라 크로이츠 백작이다. 감히 나의 영지를 짓밟은 네놈들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뭔가 꼬여도 심하게 꼬였다.
클로버 자작은 긴장했지만 수적으로 우위라는 걸 믿었다.
‘크로이츠 백작은 확실히 강하지만 나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내게도 블랙 나이트가 몇 기 있어…….’
처음 자이움이 수입했을 때 판그랄 대공이 억지를 부린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셋 있다.
카밀라가 탄 블랙 나이트는 양산기가 아니라 출력을 250E까지 올리고 반응성과 장갑을 개선한 전용기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발가드나 티렌델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에테르 하트 시술을 받았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에테르 하트와 골리앗의 코어가 동기화되어 출력이 상승했다는 것까지 합치면 그녀의 힘은 제국 최고의 기사로 꼽히는 판그랄 대공을 압도할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에테르 하트가 가동되자 그녀가 탄 블랙 나이트에서 무시무시한 에테르가 뿜어져 나왔다.
대공의 기사들은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에테르에 당황해 주춤했다.
클로버 자작은 경악하면서도 기세를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소리를 내질렀다.
“물러나지 마라! 이건 허세에 불과하다!”
“허세인지 아닌지는 네놈을 죽인 뒤에 이름과 함께 물어보겠다!”
카밀라와 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당초 우세하지는 못해도 팽팽할 거라 예상되었던 전투였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카밀라와 기사들은 리빙메탈 무기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적들을 몰아붙였다.
전원 에테르 하트 시술을 받은 덕분에 출력이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클로버 자작은 크로이츠의 공격에 리빙메탈 장갑이 싹둑 잘려 나가는 걸 보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반다스 백작처럼 거대한 에테르 블레이드를 쓴 건 아니지만 리빙메탈을 가르기에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휘하 기사들도 전혀 밀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숫자가 거의 2배나 차이 나는데도 이 정도라는 건…….
‘젠장, 젠장!’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후퇴는 글렀다.
클로버 자작은 이를 악물고 크로이츠 백작에게 달려들었다.
죽이진 못해도 치명상이라도 입힐 생각이었지만 그녀의 대응은 더 빨랐다.
순간 리빙메탈제 무기가 방패로 변하더니 그가 탄 골리앗을 후려쳤다.
쾅!
골리앗과 자작은 두부에 큰 충격을 받고 뒤로 나자빠졌다.
금방 일어나긴 했지만 방패를 검으로 바꾼 블랙 나이트가 허공에 떠 있었다.
“이걸로 끝이다!”
카카칵!
거친 마찰음이 나며 검이 골리앗의 복부를 꿰뚫었다.
클로버 자작은 즉사하진 않았지만 코어가 다운되었으므로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되었다.
20대에 달하는 대공 측의 병력이 차례차례 제압당했고 카밀라는 복부 장갑판을 뜯어 그를 끄집어 냈다.
“누구신가 했더니 클로버 자작이시군. 연회에서 내 눈도 쳐다보지 못한 주제에 영지는 짓밟았다 이거지…….”
그는 골리앗의 손에 매달린 채 바들바들 떨었다.
“나, 나를 죽이면 대공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바로 그걸 원해.”
골리앗이 손을 쥐자 비명과 두두둑 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잠시 후 피떡이 된 시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모두 죽여라. 내 영지를 침범한 놈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라!”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고 카밀라는 복부를 헤집어 통신구를 찾아냈다.
잠시 후 하이페리온호의 함교에 있던 레오볼드는 아르마가 가져온 통신구에 손을 얹었다.
“레오볼드 반다스다. 기다리고 있는 거 알고 있으니 나와라. 판그랄 대공.”
“…클로버 그놈이 실패한 모양이군. 대체 어떻게 공격할 것을 안 거냐?”
“시간이 없으니 쓸데없는 소리는 서로 삼가기로 하지. 내가 원하는 건 네놈의 땅이다.”
“네 흉심을 미리 파악했어야 했는데… 제국의 작위를 얻은 것도 오늘을 위해서였나?”
“글쎄? 확실한 건 너는 오늘 안으로 죽는다는 거야. 정치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항복하겠다.”
“갑작스런 선언이군. 심경에 변화라도 있었나?”
“죽느니 여기서 많은 것을 내주더라도 후일을 기약하는 게 귀족으로서의 자세가 아니겠나? 제국의 백작으로서 항복하겠다는 자에게 잔인하게 굴진 않겠지.”
레오볼드는 이미 판그랄 대공의 계획을 보고받은 상태였다.
대공은 그와 로제론을 한꺼번에 날려 버릴 생각이었다.
항복 선언으로 그의 방심을 유도한 다음 로제론에서 협상을 치르는 사이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꽂아 버리는 것이다.
수습이 힘들어지겠지만 일단 레오볼드만 죽이면 된다고 생각한 듯했고 그건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좋아. 협상은 어디에서 하지?”
“승자의 권리로, 로제론에서 하기로 하지.”
“덕분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지게 되었군. 다행스러운 일이야.”
판그랄 대공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웃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네놈과 로제론을 한꺼번에 날려 버리겠다.’
지갈레온이라는 드래곤 또한 공격 대상이었다.
아쉬운 것은 발가드라는 자가 갈리스토를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알테마의 챔피언인 그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머물 곳을 잃은 놈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아. 잘하면 내가 그를 가지게 될 수도 있지.’
발가드와 레오볼드의 관계를 모르니 망상이 안 좋은 쪽으로 폭주했다.
하여튼 판그랄 대공은 자신의 계획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이걸 위해 관료와 마법사 다수를 숙청하는 무리수까지 뒀으니 실패하면 끝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보다 레오볼드가 판 함정이 더 지독하다는걸.
얼마 후 타소스 공국에 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로제론에 비행선 한 척이 복귀했다는 소식이었다.
“선수상을 보면 알테마호가 확실합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반다스 왕을 육안으로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래? 내 말을 믿고 로제론에 복귀했다 이거군.”
판그랄 대공은 당장이라도 마법을 날리고 싶었지만 지갈레온의 위치가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로제론에서 블루 드래곤의 목격담이 넘쳐났다.
대공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마법의 탑에 지시를 내리게. 미티어 스트라이크 마법진을 발동하라고.”
부관들이 그 위치를 확인하곤 벌벌 떨었다.
“저, 전하… 괜찮으시겠습니까? 로제론을 날려 버리면 감당하지 못할 후폭풍이 몰려올 겁니다…….”
“나도 로제론은 아쉽다네. 하지만 그놈은 너무 위험해.”
가지지 못할 바에야 부숴 버리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영지 내엔 이미 한바탕 숙청의 폭풍이 휘몰아친 상태였기에 그의 지시에 반대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마법진이 가동되더니 마법의 탑에서 눈부신 빛줄기가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그 빛줄기는 대기권을 돌파해 테라 행성을 공전하고 있던 수많은 소행성들 중 하나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소행성의 크기는 작았지만 도시 하나쯤 날리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마법의 탑과 연락하던 부관이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성공이라고 합니다. 35분 후 로제론에 낙하할 예정이랍니다.”
“드디어 그 징그러운 놈을 날려 버릴 때가 왔군.”
대공은 눈을 감고 로제론 대파 소식이 들려오기를 즐겁게 기다렸다.
갈리스토의 함대가 패퇴하고 수도가 공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만 해도 가슴에 답답한 뭔가가 응어리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레오볼드가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했다.
“그놈이 죽으면 부하들도 대부분 와해될 테니 내가 들어갈 수 있겠지. 일부 도시는 황제와 갈리스토 몫으로 남겨둬야겠지만. 잠깐, 어디가 더 번화했지? 지도 가져와.”
“아무래도 직할령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 골리앗 생산 시설이 있다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이 반다스 마을도 조선소 때문에 무시할 순 없단 말이지.”
레오볼드는 증오스런 적이지만 그래도 배울 것이 하나 있다면 바그란을 멋지게 변화시켰다는 점이었다.
그가 출현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아 동부는 높은 이윤을 창출하는 꿀 같은 땅으로 탈바꿈했고 직할령도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등 많은 것들이 시도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놀라운 변화임에 분명했다.
“아쉬운 건 그걸 내 손으로 끝장내야 한다는 거야. 로제론이 파괴되면 주변 직할령도 그리 성치는 않을 테니.”
바그란 전체가 와해되는 거나 다름이 없었고 이는 판그랄 대공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러나 미래를 향한 전진에는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반다스 그놈만 죽으면 돼. 그다음엔 엘브랑데와의 강화 조약을 체결하면…….”
대공이 즐거운 마음으로 파멸을 기다리고 있을 때, 대기권 밖에 대기하고 있던 세틀러호가 소행성의 진입각을 살짝 틀었다.
거리가 워낙 멀었던 만큼 각도가 약간 틀어지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오차가 발생했다.
마탑과 연락하던 부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하. 미티어 스트라이크 마법진이 약간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어, 방금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에테르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그가 호통을 치려 했을 때였다.
공기가 불길하게 진동하더니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황급히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뭔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 저게 뭐지?”
“뭔가 이쪽으로 낙하하는데?”
시민들은 몰랐지만 판그랄 대공은 저 자그마한 점이 운석이라는 걸 바로 눈치챘다.
로제론에 가야 할 녀석이 왜 이곳을 향해 떨어지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가까우면 이제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건 함정이다!’
그는 생각을 끊고 움직였다.
부관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밖으로 뛰쳐나와 골리앗 격납고를 향해 달렸다.
“대, 대공 전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잠시 후 굉음이 폭발하며 건물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져 나갔다.
“꺄아악!”
사람들은 그제야 화염에 휩싸인 운석을 목격했다.
그것은 타소스 공국의 수도, 그중에서도 대공의 성을 향해 곧장 낙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