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305
304화 변화의 바람
레오볼드는 아스테라를 통일했지만 그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가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면적은 아스테라 전체의 약 1/5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완전한 행정력을 행사하진 못했다.
남은 땅은 황무지나 늪지대, 혹한지 등 지형적으로 개척이 어려운 곳과 구 엘브랑데의 영토가 대부분이었다.
인류제국은 우선적으로 엘프의 땅이었던 곳에 진출을 선언했다.
레오볼드는 개척도시 전담기관을 구성해 인력과 물자를 투입했다.
“중요한 것은 개척도시의 기반이 되는 전진기지를 빠르게 세우는 것이다. 남은 엘프의 숫자가 만만치 않다는 걸 결코 잊지 말고 가급적 그들과의 충돌은 삼가도록.”
비록 엘브랑데가 멸망했지만 그 인구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전성기 때 5천만에 달했던 인구 대부분이 남았고 그들은 깊은 숲으로 숨어들었다.
엘드그라실이 사라졌음에도 엘프들이 숲에 가지는 특유의 향수는 여전했던 것이다.
사실 갈 곳도 없었다.
일부 엘프는 마르그레타의 홍보에 인류제국으로 이주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인간을 증오하고 두려워했다.
그들의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자국이 멸망한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갑자기 거대한 배가 오더니 엘드그라실이 불타오르고 수도가 증발했다… 그 누가 그런 만행을 허락했단 말인가?
―우리는 레오볼드를 용서할 수 없다. 그자는 수많은 엘프를 학살하고 엘브랑데를 파멸로 이끌었다.
―에일리드시여, 부디 레오볼드가 곱게 죽지 못하도록 해주시옵소서!
다만 이런 저주는 언제나 그렇듯 큰 의미가 없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그걸 엘프들이 누려오다가 지금은 인간 쪽으로 바뀐 것뿐이었다.
엘프는 인구는 많지만 수천 개의 소규모 부족으로 쪼개져 있었고 단합은 요원했다.
그래서 인류제국에 대한 증오가 하늘을 뚫을 지경임에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그 틈을 여러 개의 개척도시가 끼어들었다.
아르마의 재상부 산하에 속한 이 개척도시 전담기구는 신속하게 구 엘브랑데의 영토 동쪽 지역에 전진기지를 세웠다.
리빙메탈의 장점이 바로 여기에서 빛을 발했다.
코어와 분해기를 동원하면 최소 몇 주는 걸릴 전진기지를 불과 며칠 만에 세울 수 있었다.
근처를 살던 엘프들은 인류제국의 영토 침범에 치를 떨었으나 어찌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쪽은 골리앗도 있고 골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경계병이 폭탄 발사기를 소지했고 비행선이 초계 중입니다… 접근조차 쉽지 않아요.”
“야간을 이용해 기습하고 숲에 숨는 건 어떤가? 골리앗이 거기까지 들어오진 못할 텐데.”
“무리입니다. 알람 마법과 발광석이 도처에 깔려 있어서 야간에도 대응이 신속합니다. 외곽에서 마법을 동원해 공격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그렇게 대규모로 공격하게 되면 그쪽에 빌미를 주게 될 텐데…….”
엘프들은 메데아 종말의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만 명의 엘프가 그 재난으로 사망했고 엘드그라실에 대한 신앙도 같이 사라졌다.
그 대재난에서 엘프들의 힘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인류제국을 증오, 또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니 함부로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가끔 대책 없이 용감한 엘프가 나서서 개척도시를 공격했지만 결말은 언제나 숲이 불타오르는 것이었다.
개척도시의 방어력은 부족 단위로 전락한 엘프들이 손댈 수 없는 수준이었고 보복 또한 신속하고 단호했다.
심지어 인류제국은 비행선을 동원해 엘프들의 본거지에 에테르폭탄을 무차별로 투하하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마을이 불타오르는 것을 본 엘프들은 피눈물을 삼키며 깊은 숲으로 후퇴했다.
그렇게 개척도시의 기반이 세워지는 동안 수십 번의 전투가 있었지만 최근에 이르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엘프들은 숱한 사상자를 내고 더 깊은 곳으로 숨었고 인류제국은 그들을 뒤쫓지 않았다.
중요한 건 개척도시였지 엘프들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개척도시 중 한 곳에 마르그레타가 부임했다.
그녀는 원래 아르마 밑에서 행정관의 직위를 받아 일하고 있었으나 인류제국이 자이움까지 점령하자 구 엘브랑데 지역에 전출되었다.
지금은 개척도시의 수석행정관에 불과하지만 엘브랑데 주의 주지사로 내정되어 있어서 상당히 높은 직위라고 할 수 있었다.
정작 그녀는 주지사로 부임된다는 걸 부정했지만 전직 황녀가 아니면 누가 맡는단 말인가?
호위와 집무관 역할을 맡은 것은 티렌델이었는데 그 또한 장차 엘브랑데 주의 군사령관을 맡을 예정이었다.
꼭 필요하고 당연한 인선이었지만 정작 둘이 개척도시에 등장하자 주변의 엘프들이 이를 갈았다.
둘이 엘프를 배신하고 인간의 편에 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은 드리즈덴의 탐욕으로 인한 테러에서 벌어진 것임에도 대부분의 엘프들은 그걸 몰랐다.
그런 무지의 소치가 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엘브랑데가 멸망했지만 엘프들은 그 책임을 레오볼드의 것으로 돌렸다.
그들은 슬픔을 안고 일어서려는 피해자이고 레오볼드를 비롯한 인간들은 잔혹한 학살을 저지른 가해자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오해의 시선이 개척도시에 도착한 마르그레타를 향했다.
극렬분자에 의한 테러가 벌어졌지만 티렌델과 병력에 의해 저지되었고 엘프 몇 명이 묶여 마르그레타와 대면했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마법밧줄에 묶여 있는 동족을 바라봤다.
“왜 이러는 거죠? 이렇게 폭력적으로 공격해 봐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뭔가 바뀌길 바라고 이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다…….”
“그럼……?”
다음 순간, 과격행동파 단체인 분노의 주먹 행동대장인 탈리스만은 고개를 쳐들었다.
흉터와 얼룩진 피로 가득한 그의 얼굴에선 광기마저 엿보였다.
마르그레타가 흠칫하고 뒤로 물러나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새겨졌다.
“후대에 알려 주기 위해서다… 가만히 있으면 후대는 인간들이 우리 엘프를 잔인하게 탄압하고 박해했다는 걸 잊어버릴 테니까 말이지…….”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군요. 정작 인간은 우리 엘프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대하진 않았는데.”
“우리? 너는 더 이상 엘프라고 주장할 수 없어. 뒤의 눈먼 반쪽짜리 잡종은 말할 것도 없고.”
티렌델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행정관님, 이런 과격한 자와 더 이야기를 나누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국법대로 처리하면 그만입니다.”
그것은 사형을 뜻한다.
제국법은 바그란의 코덱스에서 발전해온 체계적인 법률이었다.
가벼운 범죄에 대해선 의외로 관대하지만 사회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중범죄는 매우 혹독하게 관리한다.
그리고 가벼운 범죄라 하더라도 뉘우치는 기색 없이 계속 저지르면 중범죄에 준하는 형량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런 식의 법체계에선 범죄자가 양산되기 쉬운데 인류제국에선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 주고 치안이 엄정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역에 도시가 들어섰기에 치안을 확보하기가 쉬웠고 이는 범죄율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레오볼드는 범죄가 일어날 만한 환경을 차단하는 것에 신경을 썼고 그랜든 휘하 치안 병력이 노력한 덕분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었다.
하여튼 그 제국법은 황제 이하 전체 신민에게 적용되었고 테러리스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르그레타는 탈리스만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제발… 현실을 자각하세요. 엘브랑데는 무너졌고 제국은 연일 확장을 거듭하고 있어요. 이렇게 방해해 봐야 아무 의미도 없어요.”
“의미가 없지는 않지. 너희들의 만행을 후대에 전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기록 자체를 없앨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참고 있던 티렌델이 나섰다.
“아까부터 만행 어쩌고 하는데, 정작 다른 아인종을 혹독하게 대한 건 엘프였다. 자치령만 봐도 알 수 있지.”
“자치령에 대한 대우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 굶어죽지 말라고 식량을 공급한 게 그렇게 잘못이었나? 씹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원수인데!”
“어디서 헛소리만 들었군. 진짜 식량을 공급해 줬다면 자치령이 굶주리진 않았을 거다. 나는 행정관님과 함께 자치령을 수없이 드나들었어. 갈 때마다 길거리에 굶어죽은 시체가 널려 있었지. 그뿐인가? 희대의 살인마 카이로스가 하룻밤 사이에 수백 명을 죽였을 때에도 징계하는 시늉만 했어. 그게 정당한 대우인가?”
“그놈들은 죽어도 싸!”
악에 받친 외침에 티렌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역시 폐하의 말씀이 맞았군… 너희들은 반성을 몰라.”
“반성해야 하는 것은 너희들이지! 인간, 그리고 그 인간에게 붙은 잡종!”
“무슨 욕을 해도 상관없다. 이로서 개척도시의 방침이 정해졌으니까. 이제 너희는 서서히 몰락할 거다. 영역은 계속해서 좁아질 거고 식량 구하기도 팍팍해질 거야. 그 책임은 오로지 너희의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넌 감옥에 갇혀서 썩을 테고 말이지. 데려가. 중앙재판소에서 판결을 내릴 거다.”
탈리스만을 포함한 테러리스트가 끌려간 후 마르그레타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우울해졌다.
어떻게든 레오볼드와 엘프 사이의 악감정을 해소하는 중간자가 되려고 노력했으나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
궁지에 몰린 엘프들은 테러리스트로 변하고 있었고 결말은 방금처럼 감옥에 갇히는 것이었다.
그 증오의 고리를 끊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티렌델이 그녀를 위로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행정관님. 멀쩡한 엘프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하지만 남은 인구가 많지 않나요? 거의 4천 만을 넘어가는데 그들을 버린다는 건…….”
“우리가 버리는 게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도태를 선택한 거죠.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그 그릇된 신념을 버리지 못하는 한, 그들은 영원한 패배자일 겁니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레오볼드는 단지 아스테라를 통일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문명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아스테라 전체를 구 엘브랑데의 번화가 이상으로 끌어올리려 하는 것이다.
단지 도시를 확장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부유대륙은 물론이고 그 너머의 세계까지 넘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르그레타는 얼핏 그 계획에 대해 본 적이 있었는데 순간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아스테라를 벗어난다고? 그게 가능할까?’
거대한 배가 있으니 가능은 하겠지만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한 계획이라는 건 확실했다.
저 하늘 너머엔 무엇이, 그리고 누가 있을까?
마르그레타는 그게 밝혀지는 날이 두려웠다.
지금까지 그녀가 알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뒤쳐지지 않으려면 뛰어야 돼.’
변화의 바람은 너무 거세서 걷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개척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행정관님, 재상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곧 우주선 탑승식을 한답니다. 명단에 올랐으니 가급적 참석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세틀러호를 말하는 거죠?”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연락해보시죠.”
그간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세틀러호를 공개함과 동시에 측근 다수를 우주로 데리고 가는 행사였다.
레오볼드는 세틀러호를 포함한 우주함대를 가급적 보여주지 않으려 했지만 드워프들이 하도 졸라댄 덕분에 가까스로 성사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호기심이 넘치는 드워프와 달리 마르그레타는 두려웠다.
하지만 언제까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르그레타는 마음을 굳게 먹고 하늘을 바라봤다.
저 하늘 너머에 미지의 세계가 있었다.
* * *
1042년 봄.
인류제국의 수도 제롬에 새로이 세워진 공항에 세틀러호가 천천히 진입했다.
이 우주선은 너무도 거대해서 최대규격이라고 자랑했던 기존의 비행선들을 골리앗 옆에 선 고블린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여태까지 꽤 많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평화적인 목적은 처음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목이 빠져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크다… 도시가 둥둥 떠 있는 것 같아…….”
“저런 게 하늘에 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폐하의 고향에는 저런 게 수백 척이나 있다는 말이죠? 대체 어떤 곳이기에…….”
“자자, 이러고 있지 말고 올라갑시다. 편안한 마음으로 있으면 된답니다.”
“뭘 어떻게…….”
그 말이 나온 직후 세틀러호에서 중력 크레인이 내려왔다.
원래는 행성을 채굴하기 위한 기능이지만 이런 식으로 섬세하게 조절해서 사람이나 물자도 나를 수 있었다.
사람들과 한 마리의 드래곤은 마법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아 했다.
사실 레비테이션 마법과 중력 크레인은 개미와 드래곤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큰데…….”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크군요. 저런 걸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사람들이 웅성대는 사이 격납고가 열리며 그들을 받아들였다.
거기엔 레오볼드와 아르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틀러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선은 잠시 후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나갈 계획입니다. 함교로 안내할 테니 착석하셔서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했고 지갈레온은 레오볼드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툭툭 쳤다.
그는 황제에게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였다.
“이봐, 이런 우주선이 지구엔 수백 척이나 있다는 게 진짜야?”
“얼마 전까진 그랬지. 지금은 아니야.”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구만. 하여튼 이제 우린 우주로 나가게 된다 이거지? 과연 어떤 곳인지 궁금한데.”
“대단한 건 없어. 텅 비다시피 한 공간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니까. 내가 50년 동안 항해하면서 발견한 건 이 행성계가 전부야.”
“상상이 안 가는데… 그나저나 세틀러호는 보여 주기 싫어하더니 갑자기 이러는 이유는 뭐야?”
“진짜 싸움이 머지않았기 때문이지.”
“진짜 싸움? 아, 그 오메가 퀸과의?”
이 대목에서 레오볼드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스테라의 싸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질 정도의 거대한 게 다가올 거야. 자칫 잘못하면 멸망하는 건 우리가 될지도 모르지.”
“…싸우지 않고 적당히 잘 지내는 건 안 되겠지?”
“지구를 멸망시켰던 오메가 퀸인데 그런 게 통하겠어?”
“역시 안 되나…….”
레오볼드는 낙담한 그의 등을 툭툭 쳤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 싸움을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군단타격함대도 열심히 건조 중이지만 최후의 보루도 준비해 놓았다.
만약 오메가 퀸이 루시아의 육체를 차지하더라도 승리할 일은 없을 것이다.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메인 브릿지로 향했다.
레오볼드가 제독석에 앉자 지갈레온이 옆에 섰다.
“난 네 최측근이니까 여기 있어도 되는 거지?”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나중엔 자리를 찾게 될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잠시 후 선체가 나직하게 진동하더니 아르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독님, 출항이 준비되었습니다.」
“세틀러호, 발진.”
「엔진 점화, 세틀러호 발진합니다.」
직경 7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우주선이 중력을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대기권을 벗어났다.
메인 스크린의 풍경이 순식간에 어두컴컴하게 변해갔다.
제독석 앞에 앉아 있던 카밀라는 무서웠는지 뒤를 쳐다봤고 남편의 의연한 표정에 안심했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틀러호는 정지궤도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고도는 34,500km지점입니다. 우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스크린에 쌍둥이 행성 테라와 마레가 등장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섰다.
“아스테라가 저런 구체였어?”
“난 그냥 평평한 땅인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아. 아스테라는 구체라고 우리가 누누이 말해왔는데 그건 다 잊은 건가?”
호기롭게 외친 사람은 불토른이었다.
사실 그를 포함한 드워프들은 마법이 아닌 물리학과 천체학 등에 관심이 많았다.
망원경으로 마레를 발견한 것도 그들이고 수백 년 전에 아스테라가 구체란 것도 계산한 바 있었다.
엘프들이 그걸 억눌러오다 보니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뿐.
“드워프들은 선구적인 종족이죠. 앞으로도 나를 도울 일이 많을 겁니다.”
레오볼드가 인정해 주자 불토른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콧김을 뿜어냈다.
한편 스카디는 드넓게 펼쳐진 우주공간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부유대륙은 더 이상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테라와 마레, 그리고 두 개의 달만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정말… 대단해…….”
그녀는 외교관으로서 일해 왔고 인류제국에서도 비슷한 직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우주와 이 행성계를 본 순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저 시커먼 공간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 가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외교관으로서의 그녀는 사라지고 공학자의 자아가 눈을 떴다.
스카디는 조심조심 레오볼드 옆에 가서 물었다.
“폐하. 언젠가 저희도 자력으로 우주에 올라올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드워프들의 열정과 탐구력이라면 50년 이내에 독자적으로 로켓을 발사할 수 있을 거야.”
스카디는 50년에 살짝 실망했지만 곧 마음을 바꾸었다.
그녀는 아직 젊고 사고도 유연했기 때문이다.
“저 수석참사관 그만두고 대학에 들어가겠습니다.”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레오볼드는 그녀의 결정을 지지해 주었다.
“얼마든지. 하지만 후임자를 정하고 업무 메뉴얼을 작성한 후에 사직서를 받아들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보니 아스테라는 참 예쁜 곳이네요.”
“우리가 지켜야 하는 곳이야.”
그는 22세기의 지구는 지키지 못했다.
21세기의 지구는 가까스로 지켜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증오를 떠안았다.
하지만 아스테라에선 좀 다를 것이다.
사람들이 2억 톤이 넘어가는 우주 플랜트를 발견하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이 배보다 훨씬 큰 게 있어요!”
“세상에…….”
아르마는 거기에 대해선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다들 넘쳐나는 식량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쳐다보는 이 순간에도 구조물에서 뭔가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간에선 진지하게 레오볼드가 신이라서 식량이며 생필품을 창조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실은 아니었다.
거대한 우주선이며 구조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사람들은 아스테라를 포함한 행성계와 우주를 눈으로 관측한 뒤 상당한 마음의 변화를 겪은 것 같았다.
드워프들은 자기 일을 때려치우고 대학에 들어가 천문학부터 다시 공부할 거라고 난리를 쳐댔고 마르그레타를 포함한 엘프들은 그 압도적인 스케일에 멍하니 구경하기만 했다.
지갈레온은 의외로 충격을 받지 않았는데, 원래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기 마레에 악마 놈들이 있다 이거지? 빨리 쳐들어가서 족치자고.”
“아직은 때가 아니야.”
“언제 때가 오는데?”
“오메가 퀸의 본체와 영혼까지 완전히 박살낼 방법이 갖춰졌을 때.”
“흐음… 뭐 알아서 하겠지.”
정말 아르마는 알아서 하고 있었다.
생명체를 플레이그로 바꾸는 질병에 대해선 이미 분석이 끝났고 치료제까지 마련했다.
또한 플레이그 퀸의 영혼을 옮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가 완료되었다.
이제 오메가 퀸에게 완벽한 일격을 날리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만 남았다.
아르마는 본체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고 레오볼드도 거기에 동감을 표시했다.
문제는 그녀의 본체가 이 에테르 우주에 강림하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본체는 곧 기존의 군단까지 불러들일 것이고 현재의 군단타격함대로는 거기에 대항할 수 없었다.
에테르 오리진의 완성을 서둘러야 하는데 현재 아르마는 텔레포트 게이트 등 마법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엄청난 에테르를 쏟아붓고 있었다.
그 결과가 몇 개월 뒤면 나온다.
레오볼드는 마레의 지저세계에 도사리고 있을 오메가 퀸을 바라봤다.
‘기다려라. 이번에는 완벽하게 이겨줄 테니까.’
그는 처음엔 완벽하게 졌고, 두 번째엔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
이번에는 완벽하게 이길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