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
차원상인 001화
제1-1장
촤아아악!
잘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하얀 우유 빛깔의 원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 가운데 화룡정점(畵龍頂點)과 같은 노란 원이 더 붙는다.
자르르한 윤기가 흐르는 그 샛노란 빛이 절로 군침을 삼키게 하는 이것.
특히 아기의 뽀얀 속살 같은 흰자가 기름에 들썩대며 탐스러운 노른자가 익어 가는 이때가 바로 포인트인데 혹자는 노른자를 깨 흰자와 섞을 때 보이는 그 오묘한 빛깔과 날것, 익힌 것의 두 가지 맛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그 조화가 최고라고 하고, 다른 이는 완전히 익힌 것이 먹기 편하고, 위생상 좋다며 그것이 최고라고 한다. 한때 반숙이냐, 완숙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일 만큼 전 세계인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음식 중 하나인 바로 계란 프라이였다.
“르룰루루! 웃챠!”
콧노래와 함께 계란 프라이가 접시에 덜어진다.
그것을 식탁에 내려놓고는 만면에 웃음을 짓는다.
“오케바리! 준비 완료.”
만족스러운 빛이 가득한 이 사내. 올해 스물일곱 살로 중소기업 물품을 파는 경력 4년 차 영업맨이자, 두 동생을 부양하는 가장이기도 한 장우현이다. 얼핏 착하고 건실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가 이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9년이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그는 두 동생과 함께 보육 시설을 전전하며 살았다. 물론 삼촌과 할머니가 있긴 했지만, 삼촌은 거두길 거부를 했고, 할머니는 그들을 키울 만한 여력이 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있던 시설에서 벌어진 한 사고로 인해 두 동생과 그는 각각 다른 두 시설로 보내지게 되었다. 거칠게 반발하였으나 장우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눈물 속에 두 동생을 보낸 그는 멍하니 창밖만 보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혼이 나간 사람처럼 마음을 쇠사슬로 동여맨 채 살던 그때, 한 아이가 도망치다 붙들린 사건이 발생한다.
다른 곳으로 옮겨진 혈육을 찾아 나서다 그리된 것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우현은 자신 또한 동생을 찾아야겠다는 일념 아래 시설을 몰래 나왔다.
막상 빠져나오긴 했지만 열두 살의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생들의 소식은 고사하고, 하루 밥벌이하기도 어려웠다. 동네 양아치 형들을 따라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애들 돈이나 뺏고, 담배 심부름으로 밥을 얻어먹고, 때론 화풀이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만 죽이고 살아가던 그는 열다섯 살이 되던 생일날 한 주유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삼 년간 양아치들과 있으면서 성격이 매우 폭력적으로 변한 그는 툭하면 손님들과 싸워댔다. 그뿐인가? 어떤 때는 몰래 금고에서 돈을 훔쳐 달아나 경찰에 잡히기도 하였다. 다행히 맘 좋은 반장이 물어줘 넘어가기 했지만, 밤중에 숙소에서 자다 사장에게 죽도록 얻어터지는 것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여러 주유소를 전전하는 사이 동생들을 찾는다는 꿈은 소원해진 지 오래였다. 그저 맘속에 그 꿈만 간직한 채 그저 자포자기하며 살던 그에게 인생에 있어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열 번째 주유소인 청강 주유소 소장 박유범이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시 우현은 온라인 게임에 심하게 중독되어 있었는데 그 증세가 어느 정도냐 하면 졸면서 기름을 넣는 것은 기본이요, 주유기를 꽂아 놓고 게임방에 가는 등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게임방에서 붙들려오길 수십 차례.
쫓아낼 때도, 포기할 때도 됐건만 유독 박유범만은 곁에 꼭 붙들고 놓질 않았다.
그렇게 치열한 공방(?) 속에 2년이란 시간이 지날 때쯤, 갑자기 사무실로 불러 통장 하나를 디밀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살펴보다 우현은 자신의 이름으로 삼백오십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동생들을 데려오려면 돈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그래서 일전에 사고 친 것을 빌미 삼아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덜어 따로 통장을 만들어 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게임방 가는 데에 다 쓸 것 같아서 말이야.”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박유범에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고마움에 울먹이는 그를 토닥이며 이걸로 턱도 없다며 돈을 더 모으라고 하였다.
할머니까지 네 식구가 살 방을 구하려면 월세라도 족히 천만 원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마음 한편이 스르륵 녹아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피운 우현은 그날로 게임을 접었다.
그리고 다달이 탄 월급의 대부분을 통장에 넣었다.
힘들긴 했지만 조금씩 불어 가는 액수를 볼 때면 가슴이 든든해지고, 뿌듯해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렵게 천만 원을 만든 그는 제일 먼저 할머니를 모셔 왔다.
동생들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자신이 미성년자인 탓에 보호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네 식구는 헤어진 지 만 십 년의 재회에 서로를 얼싸안고 울고 또 울었다.
부양할 가족이 생긴 우현은 더욱더 일에 매진하였고 군 제대 후에는 중소기업 물품을 파는 영업 회사에 들어가 영업맨으로서 성실히 일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식탁을 보던 그의 얼굴에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육 년 전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특히 반숙 계란 프라이를 좋아했던 것이 떠오르니 마음 한편이 시려 온다.
“내가 조금만 일찍 정신을 차렸더라면…….”
눈가에 촉촉이 물기가 스민다.
미안함에, 죄송함에 절로 그런 것이었다.
이때 동생들 등교 시간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젖은 눈가를 훔치며 건넛방을 향해 소리쳤다.
“학교 늦겠다. 어서 밥 먹어라!”
방문이 열리고 두 소녀가 튀어나왔다. 집안 내력인지 큰 키의 그녀들은 이목구비가 확연한 것이 제법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법하였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면 거울을 보는 듯 똑같이 생겼다는 것이다. 마치 옷만 다른 것을 입었을 뿐 한 사람인 듯싶을 정도인 이들이 바로 우현의 동생이자, 쌍둥이 자매인 장보영, 장서연이다. 올해로 대학교 2학년인 그들은 장학금이란 장학금은 도맡아 탈 정도로 학업 성적이 매우 뛰어났다. 거기다 마음 씀씀이도 좋아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한마디로 우현에겐 보물과도 같은 존재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들이 나오자 활짝 웃음꽃을 피우며 식탁을 가리켰다.
“밥 먹어라!”
차분한 분위기의 보영은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았다.
반대로 생기발랄한 서연은 거울 앞에서 연신 옷만 만져댄다.
“오빠, 늦었어. 그냥 갈게!”
우현의 눈살이 꿈틀댄다.
“가훈!”
“오, 오빠!”
“가훈!”
한숨을 푹 쉬던 서연은 큰 소리로 외친다.
“밥은 나의 힘,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자!”
무슨 식순이, 식돌이 집도 아니고 뭔 가훈이 이러냐 할 것이다.
하지만 워낙 우현이 공복에(?) 민감한 데다 어렸을 적 밥 한 끼 제대로 먹여본 적이 없어 한이 된다는 할머니의 말에 결국 이 같은 가훈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녀의 외침을 들은 우현은 맘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제 밥 먹자!”
“늦었다니까!”
버티고 선 그녀에 우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이때 보영이 한마디 한다.
“오빠! 서연이 거 계란 프라이 먹어도 돼?”
순간 서연의 고개가 보영에게로 돌아갔다.
어느새 반이나 먹어치운 밥그릇에 이맛살이 구겨진다.
‘어쩐지 조용하더라! 지 혼자만 밥 빨리 먹고 가겠다 이거지. 이 얌체 같은 계집애!’
이때 우현이 접시를 보영 앞에 놓았다.
“그래, 너라도 많이 먹어라!”
보영은 젓가락을 들어 접시로 향한다.
순간 서연의 눈매가 매서워지더니 막아 갔다.
“먹지 마! 내가 먹을 거야!”
그녀의 외침에 순순히 젓가락을 치운다.
마치 처음부터 이리될 줄 알았다는 듯 말이다.
자리에 앉은 서연은 숟가락을 들어 김치찌개에 푹 담갔다.
그리고 국물 한 숟갈을 떠 입에 넣은 순간 미소가 피어났다.
“찌개 제대로 됐는데…… 우물우물!”
감탄을 마지않던 서연은 밥 위에 계란 프라이를 얹고 노른자를 툭 깬 다음 김치찌개를 소스 삼아 뿌렸다. 그러고는 손에 든 숟가락으로 비비기 시작하였다. 무자비하다 싶을 정도로 헤집던 그녀는 밥 한술 떠서는 입에 넣었다.
“으음! 이 맛이야!”
잠시 맛을 음미하는 그녀의 낯 위로 행복감이 깃든다.
그것도 잠시, 이내 텅 비어버린 입안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재차 숟가락을 놀리던 그녀는 어느새 미친 듯이 떠먹고 있었다.
“오웅! 마시떠! 쩝쩝!”
빙그레 웃던 우현은 그제야 숟가락을 들었다.
잠시 후, 정겨운(?) 식사 시간이 끝나고, 여동생들을 학교로 보낸 그는 남은 음식을 말끔히 정리하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벌써 7시 반이야? 어서 출근해야겠는데…….”
화들짝 놀라 서둘러 옷을 입는데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린다.
“여보세요?”
“야, 우현아! 서우다.”
똥고집 대마왕인 최서우는 박유범 소장님이 있던 주유소에서 만난 친구로 지금은 아버지가 하는 금은방에서 일을 돕고 있다. 우현이도 가끔 돕기도 하는데 이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힘겨워하는 세 남매를 친자식처럼 보살펴준 서우 부모님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우현과 두 동생들 역시 그들을 친부모처럼 여기며 지내고 있었다.
“서우?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다름이 아니라 A4 용지 다섯 묶음만 갖다 줘!”
“하아! 내가 무슨 온라인 쇼핑몰도 아니고 매번 이러는 건 좀 그렇지 않냐? 그냥 오피스 물품 파는 가게에서 사!”
“아빠가 꼭 너한테 사서 쓰라는데 어떻게 하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서우 아버님은 나름 날 도와준다는 생각에서 그런 건데 그것도 자주 그러면 골치가 아프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는 터라 결국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으악! 늦었다. 서우, 이 자식!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애꿎은 서우만 탓하며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막 대문을 잠그려는데 웬 할머니가 손수레를 끌고 가는 것이 보인다.
항상 이 시간쯤 지나가시는데 볼 때마다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생각나 돕곤 했는데 오늘따라 실린 폐휴지가 왜 그리 많은지 조금은 위험해 보인다.
“할머니, 이렇게 많이 싣고 가시면 제게 말하라고 했잖아요.”
“그것도 한두 번이지. 염치없이 매번 그럴 수 있나?”
“그래도 돼요. 저 아직 새파란 이십 대예요.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손수레 앞에 선 그는 팔을 들어 알통을 보인다.
그 모습이 우스운지 할머니가 웃는다. 우현 역시 미소를 짓다 손수레를 밀고 나아간다.
“자아, 그럼! 우현발 특급 손수레가 지금 출발합니다.”
자기가 무슨 총알택시인 것처럼 미친 듯이 달려간다.
그것도 비탈진 경사가 있는 길을 말이다.
“총각, 조심혀!”
“걱정 마시고요. 할머니는 쉬시면서 천천히 올라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