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0
차원상인 010화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얼굴에 기다란 물줄기가 새겨진다.
곁으로 다가선 보영은 우는 그녀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그런 걱정 왜 했어? 우리 오빠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끅!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오빠 성격 몰라? 아마 우리 시집갈 때 보내기 싫어서 손 꼭 붙잡고 있을지도 몰라.”
“팽! 오빠가 좀 그렇긴 하지.”
어느새 품 안에 넣은 휴지를 들어 코를 풀며 끄덕인다.
“근데 이틀간 왜 안 들어온 건지 왜 말을 안 해주는 거야? 우린 가족이잖아!”
“일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일인지 왜 말을 안 해주냐고?”
보영은 물끄러미 서연을 바라보다 말을 건넸다.
“서연아! 그만하자. 이틀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넘어가자. 그게 가족이잖아. 그냥 믿고 넘어가 주는 것도…….”
“그래도…….”
꼭 답을 듣고 싶어 하는 듯한 눈치다.
잠시 한숨짓던 보영은 굳게 다물었던 말문을 열었다.
“어쩌면 말이야, 오빠가 좀 지쳐서 잠시 쉬러 갔을지도 몰라.”
“끅! 끅! 지쳐?”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물어온다.
“TV 드라마에서도 그렇잖아. 사람이 지치고 힘들면 가끔 돌발 행동 하고 막 그러잖아.”
“그거야…… 끄윽! 드라마니까 그렇지.”
“너도 가끔 힘들면 여행 가고 싶다 그러잖아.”
“끄윽! 팽! 하지만 오빠잖아. 오빠는 한 번도…….”
“오빠도 사람이야. 거기다 우릴 키우는 동안 제대로 한 번 쉬기라도 한 적 있어?”
그러고 보니 같이 살게 된 이후, 단 한 번도 쉬거나 한 적이 없었다. 너무 아파서 죽을상인데도 비틀대며 회사를 나갔다. 보는 사람이 다 걱정을 할 정도인데도 말이다. 거기다 서우의 말에 따르면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주유소에서 일할 때는 그보다 더했다고 한다. 그런 생활을 무려 9년이나 했다. 중간에 군대 간 기간을 뺀다 해도 7년이란 세월 동안 그야말로 미친 듯이 살았다. 그걸 생각하면 보영의 말대로 한 번쯤은 이대로 쉬게 내버려둬도 될 듯싶다.
“팽! 정말…… 그런 걸까?”
코 푼 휴지를 휴지통에 넣고 새것을 뽑아 건네주며 보영이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우리 오빠가 누구야? 우릴 키우기 위해 그 힘든 시간을 견뎠던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지금에 와서 바뀔 리 없잖아. 안 그래?”
“하긴 우리 오빠가 누군데!”
“그렇지? 그러니까 이번은 그냥 넘어가자. 이틀 동안 오빠가 뭘 했는지 묻지 말고 말이야.”
“알았어! 그렇게 할게!”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근데 한바탕 울었더니 배고프다.”
“그럴 줄 알고 식탁에 네 것도 같이 차려놨어. 어서 가서 먹어!”
“역시 보영이야.”
씨익 웃던 서연은 한달음에 뛰어가 우현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그걸 보며 고개를 내젓던 보영의 시선이 슬쩍 그에게로 향한다.
의연한 듯 보이기는 했지만 그녀 역시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오……빠! 괜찮지?”
걱정 어린 눈망울에 속내를 담으며 말이다.
다음 날, 뜨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우현은 대문을 나섰다.
차를 몰아 회사에 도착한 그는 정문 앞에 서서는 쉬이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는데 돌연 호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순간 상념에서 벗어난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야, 인마! 이틀 동안 전화도 안 받고 집에 안 들어오고 대체 무슨 일이야?”
“서우야, 사정이 좀 있었다.”
“그런 게 있었음 미리 얘기해야지. 연락도 없이 갑자기 안 온 데다가 전화도 안 돼서 아빠하고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안하다!”
“지금 미안하다는 말로 다 넘어갈 것 같아?”
“서우야, 지금 운전 중이거든……. 나중에 통화하자.”
“야…… 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휴대폰을 꺼버린다.
폰을 품에 넣던 그는 무의식중에 주위를 살피다 한숨을 뱉고 만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아쉬움이 남은 건가?”
그랬다.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문 앞에서 하염없이 서 있었던 이유.
혹시나 문을 열면 또다시 대륙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일장춘몽이라며 잊은 척해 보지만 내심 속으로는 금괴가 탐이 났던 모양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던 그는 두 손을 들어 사정없이 뺨을 쳤다.
“잡생각은 떨치고 돈 벌자! 그래야 집세도 낼 테니 말이야.”
새롭게 마음가짐을 한 듯 힘차게 발을 놀려 사무실로 향했다.
“굿모닝! 좋은 아침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에 박 선배가 말을 건넸다.
“우현아, 오늘 월급날인데 한잔 어때?”
“죄송하지만 오늘은 좀 피곤해서요. 다음에 제가 사겠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다음에 꼭 네가 사야 한다.”
“알겠습니다.”
애주가 박 선배가 술친구를 찾아 떠나고 우현은 자신의 자리에 가 앉았다.
새로운 상품 카탈로그를 살피며 나름 영업 계획을 세워 가던 그때 평소 친분이 있던 총무과 임미란 대리가 말을 걸어온다.
“우현아, 시간 괜찮아?”
“뭐, 팀장님 오시려면 좀 여유가 있는데…… 왜요?”
“그건 휴게실 가서 말해 줄 테니 일단 가자!”
“아…… 예에!”
다짜고짜 잡아끄는 그 거친 손길에 우현은 엉겁결에 일어나 끌려갔다. 비교적 한산한 8층 휴게실로 우현을 데려간 그녀는 의자에 앉히고는 굳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당황스러운데 대놓고 쏘아보는 그녀에 절로 부담이 치민다. 막 시선을 돌리려는데 임미란 대리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너 빚진 적 있니?”
“예에?”
황당해하는 우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말을 이어간다.
“은행에서 가져다 썼니, 아님 사채 빌렸니?”
“자, 잠깐만요! 돈을 빌려 쓰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세요?”
“그 말은 돈 빌린 적 없다는 말이니?”
“예! 지금 받는 월급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돈을 빌려다 쓸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
여전히 못 미더운 듯 보던 그녀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앞에 디밀었다.
“이게 뭔데요?”
“뭔지 봐봐!”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보던 그의 몸이 순간 멈칫했다. 붉은 글씨로 된 ‘차압’이란 단어 밑에 자신의 이름이 떡하니 자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보던 우현의 고개가 들렸다.
“누…… 누나! 이게 무슨…….”
“차압 시행서! 즉, 네 월급을 차압하라는 본사의 명령서야.”
“월급 차압이요? 왜요? 왜 차압을 해요?”
“나도 그건 모르지. 하지만 헤리엇 론이라는 회사에서 권고했다고 하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대출 쪽과 관련된 문제인 듯싶어.”
“헤리엇 론? 전 듣도 보도 못한 곳인데요.”
“다시 찬찬히 생각해봐!”
그녀의 말에 곰곰이 헤리엇 론을 되새겨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와 관련된 기억은 없는 듯하다.
“없어요. 거기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남에게 돈을 빌리거나 쓸 형편이 못 돼요. 일가친척도 없고요.”
“사정이야 어쨌든 차압 시행서가 내려온 이상 앞으로 네 월급은 지급되지 않을 거야.”
우현은 당혹스러운 낯빛을 한 채 그녀의 팔을 잡았다.
“마…… 말도 안 돼요. 저 월급 못 타면 애들 2학기 대학 등록금은커녕 생활비도 없어져요.”
“본사에서 그렇게 방침이 내려온 이상 어쩔 수 없어.”
“누나!”
애처롭게 부르는 그에 임미란 대리에게서 한숨이 피어난다.
그러곤 품에서 또 다른 봉투를 꺼내 건네주었다.
“사실 이 시행서가 내려올 당시 사원들 월급 지급 중이었어.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를 포함해 영업 사원 중 몇몇은 본사 결산 문제로 현금으로 직접 계좌에 입금하려던 상황이라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은 빼냈어.”
“예에? 그게 무슨…….”
“네가 사정이 생겨 가불을 한 것으로 해서 빼냈다 이거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네게 돈을 줄 수 없을 테니 말이야.”
우현은 자신의 손에 들린 봉투를 보았다.
지금 그녀가 한 일은 엄연히 본사 방침을 거스르는 일이다.
만약 들통 날 경우 일을 그만둬야 할지도 몰랐다.
즉, 자신의 자리를 걸고 도와준 것이었다.
“누나…….”
“일단,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도록 해. 차압된 월급봉투를 풀어야만 네가 사니 말이야. 내 말 알아들었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돈 봉투와 차압 시행서를 쥔 채 빈 휴게실에 홀로 남은 우현.
이제 조금 풀리나 싶었는데 또다시 꼬여 가는 삶에 하늘이 다 원망스러웠다.
허망한 듯 한숨만 내쉬던 그의 머릿속에 과거 두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릴 적 시설에서 데려올 때 어딘가 모르게 그늘이 드리워져 있던 둘을 보며 얼마나 아파했던가? 과거의 아픔을 재차 겪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안 돼! 두 번 다시 헤어질 수 없어!”
그 일만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차압 시행서에 적힌 연락처를 눌렀다.
일단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야 대책을 세우든 말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건너편에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리엇 론 박상철이오.”
“저…… 월급이 차압돼서 그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있을까 해서 전화했습니다.”
“이름과 주민번호가 어찌 되시오?”
“장우현입니다. 주민등록번호는 87××××-10×××××입니다.”
잠시 조용해지더니 담당자란 사람이 다시 말을 건넸다.
“혹시, 박유범 님이라는 분을 모르시오?”
“박유……범? 박 소장님?”
박유범 소장님 이름은 왜 들먹일까 싶던 그때 우현의 낯에 당황한 빛이 깃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릿속에 그가 커피숍에서 다정하게 말을 하는 광경이 그려지는가 싶더니 무슨 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저 도장만 찍는 거니 걱정 마라.”
자신을 안심시키던 그의 말까지 떠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것 같았다.
2년 전, 주유소 소장을 그만둔 박유범은 무슨 사업을 한다며 도장 한 번 찍어 달라 했는데 그것이 아마도 보증인 날인인 듯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담당자라는 분은 그의 예상을 확인이라도 시키듯 말을 한다.
“2년 전, 박유범 고객께서 돈을 빌릴 당시 빚보증을 섰는데 그게 좀 문제가 되었소.”
입술을 꽉 깨물던 우현은 빚에 대해 물었다.
“혹시 갚아야 할 빚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과거 대출 받으신 금액은 칠억 팔천만 원이오. 그중, 차압한 물건과 전세 보증금을 제하고 이자를 포함시키면 대충 육억 오백이십만 원 정도 되오.”
“육억…….”
들고 있던 휴대폰을 놓쳐버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멍하니 한참을 넋 놓고 있던 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일단 소장님을 만나야 해! 그분이라면 어떻게든 해결해 주실 거야! 분명히…….”
박유범이 돈을 갚지 않아 자신에게 차압이 들어온 것도 잊은 채 무조건 그를 만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분리된 배터리를 휴대폰에 끼워 넣고 전원을 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나,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건 결번이라는 목소리뿐이다. 직접 찾아 나서는 편이 낫겠다 싶은 그는 사무실로 가 김 팀장에게 조퇴서를 내고는 회사 문을 박차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