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00
차원상인 100화
잔을 내려놓은 우현은 맞는다는 듯 끄덕였다.
“금방 말한 대로 앞으로 치안대가 할 일은 영지 치안뿐만 아니라, 물품 수송도 같이 할 것입니다. 그 일에 대한 수당은 치안대 봉급 외에 따로 지불을 할 것이고 말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출발하는 만큼 제법 많은 횟수의 수송일이 될 겁니다.”
“그 정도라면 혹할 만도 하군요.”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주억대간다.
하지만 자신들의 밥벌이가 없어진다는 것에 이내 한숨을 짓고 만다.
속이야 열불이 나지만 상대는 영주, 그것도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 출신자를 곁에 두는 백작위의 사람이다. 대들거나 함부로 나설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우현이 제안 하나를 건넨다.
“새로 치안대를 그곳을 총괄할 대장과 곁에서 보좌할 부대장 그리고 용병들의 계약을 채결할 총무가 필요합니다. 물론 영지의 일을 하는 관리로써 봉급 또한 두둑이 챙겨드릴 것이고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 자리에 세 분이 딱인 듯싶은데 의향이 어떠십니까?”
순간 세 사람의 고개가 홱 쳐들려진다.
“저희더러 그곳을 관리하란 말입니까?”
“예! 세 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여겨지는데 말입니다.”
서로 시선을 맞대던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손을 쳐든다.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후작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한바탕 소동이 이는 그들에 우현은 조용히 시켰다.
모두 제자리 앉자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제 맘대로 길드를 빼앗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이리 또 치안대를 맡아 주시겠다고 하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때 뒷머리를 긁적이던 사이먼이 말을 건넸다.
“사실 저희도 돈 벌 목적으로 길드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여기가 좋고, 이곳 사람들이 좋다보니 조금이라도 몬스터에게 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저 역시 맨 처음 이곳에 몬스터 토벌을 하러 왔다가 이곳이 좋아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용병 길드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한 것이고 말입니다. 다만, 밥벌이 없어져서 고민했었는데 이리 또 치안대를 맡겨주시니 처음에 그리 거세게 반대를 왜 했나 싶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영주님!”
헤센과 안톤 또한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긴, 그 무엇 하나 풍족한 것이 없는 이 땅에서 굳이 용병 길드를 운영할 생각은 없겠지. 돈 좀 벌었다 싶으면 타 영지로 가 배 두들기며 편안히 살면 되니까 말이야.’
그들의 맘을 십분 이해한다는 듯 우현 역시 끄덕였다.
“아까 말씀드린 자리 분배는 굳이 제가 하기보다 여러분이 정했으면 합니다. 그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다만, 치안대는 기사단 하부조직으로써 저와, 앞으로 단장을 맡게 될 레이젠 단장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영주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셋은 넙죽 고개를 숙인다.
그걸 보며 우현은 미소를 자아냈다.
“그럼, 치안대의 세부적인 일은 레이젠 단장과 상의 하시고, 바뀐 상황에 대해서 모든 용병들이 알 수 있게 전달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어서 나가보라는 손짓에 셋은 한 차례 주억대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나서는 것을 방 한쪽에서 보고 있던 티아가 놀라운 빛을 띠며 다가왔다.
“영주님! 놀랐어요.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치안대를 꾸미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다 티아 덕분입니다. 아까 세 곳을 하나로 묶으란 말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보기엔 영주님이 더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 말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런가요?”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잔에 든 커피향이 이렇게 좋을 수 없다.
제4-9장
타타탁!
채 몇 걸음 가기도 전에 어느새 발이 멈춰 섰다.
한순간 눈을 멀게 했던 게이트 안 빛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시력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머릿속에 맴돌던 현기증이 바람에 날리는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것이다. 우현은 잠시 손을 들어 눈두덩이 위를 매만지고 있는데 발소리와 함께 뭔가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서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오는가?”
자신도 모르게 잔뜩 찡그린 낯을 쳐든 우현은 희뿌연 시야 사이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는 한 중년 사내가 보였다. 처음엔 다섯 쌍둥이가 겹쳐선 듯 모습 때문에 알아보기 싶지 않았지만 점차 또렷해지는 시야로 인해 상대가 바딘 후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후작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온 모양이군.”
“처음엔 좀 그랬는데 지금은 또렷이 다 보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일세.”
슬쩍 미소를 그리던 그때 뒤이어 레이젠, 티아 그리고 호위대 세 명이 허공에 뜬 반원의 빛무리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근데 그들 역시 눈두덩이와 머리를 연신 만져대는 것이 극심한 현기증과 눈부심으로 인해 좀 힘든 듯싶었다.
그걸 본 바딘 후작의 시선이 옆으로 돌려지자 한 마법사가 앞으로 나와 일련의 마법을 영창했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일종의 정신계 마법으로 게이트 통과 시 따라오는 현기증, 구토, 메스꺼움 등 일련의 부작용을 없애는데 탁원한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축 늘어져 있던 얼굴에 생기가 돈다.
그들을 데리고 게이트 탑을 나선 바딘 백작은 마차에 올랐다.
의자에 기대 창밖을 보던 우현에게서 나지막이 탄성이 인다. 한적하던 하임이트 영지와는 달리 시야 가득한 가옥들과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이 역시 왕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서울과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북적거리고 있었다.
조선의 한양 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던 그때 수많은 가옥 위로 높다란 장벽과 커다란 성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곳이 국왕이 사는 왕성인가 보군.’
그 모양새로나, 그 큰 규모로 보나 틀림없는 듯싶었다.
“뭘 그리 보는 건가?”
바딘 후작의 물음에 우현은 창에서 시선을 떼었다.
“북적북적한 것이 영지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사람 수만 해도 영지와는 거의 열배 정도 차이가 나는데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하긴 그도 그렇겠군요.”
이해가 간다는 듯 끄덕이던 우현이 물어갔다.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일단, 왕성으로 가 국왕 폐하를 알현 할 예정이네. 오늘 있을 즉위식 전에 국왕 폐하께서 자네 얼굴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셔서 말이네.”
“저를 보겠다고 했다는 말입니까?”
“상단 밖으로 나서질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현 왕국에서 제일 화제가 많은 이가 있다면 바로 자네라네. 그런 그가 왕성에 왔는데 어찌 보고 싶지 않겠는가?”
‘하긴 남의 집에 왔는데 집주인에게 인사를 하는 건 예의지.’
말로는 수긍을 하면서도 왠지 미덥지 않은 모양이다. 딱 봐도 드라마에서 보던 정치색이 가득한 만남 같아 보이는 것이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출발 직전 알카인 왕이 자신을 앞세워 친왕파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자신을 포섭하려 들 것이라는 레이젠의 말도 있었고 말이다.
선뜻 내키질 않지만 그래도 왕이 부른다는데 안 간다는 것도 좀 문제가 있을 듯싶어 이내 고개를 숙인다.
“잘됐습니다. 어차피 드릴 것도 있는데 백작님을 따라 왕성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말 머리를 돌려야 하나 걱정을 했는데 잘 생각했네.”
바딘 백작이 빙그레 웃어가던 그때 흔들대던 마차가 돌연히 멈추어진다.
뭔가 싶던 그때 마부석 쪽에서 낯선 목소리 하나가 들리기 시작했다.
“왕성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나가야 싶어 일어서려는데 바딘 백작이 손을 들어 막아선다.
“더 앉아있게. 여름 별궁까지 가려면 좀 더 있어야 하니 말이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워졌던 마차가 다시 요동을 친다.
떼었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이던 우현이 물어갔다.
“여름 별궁이 뭡니까?”
“왕실의 손님이 머무는 곳으로, 대부분 왕족들이 머무는 곳이네. 이번만 특별히 자네를 즉위식이 끝날 때까지 머물도록 허락을 하셨네.”
한 마디로 국빈 대접을 해주겠다는 건데 실상은 가두려하는 듯싶다.
왕실의 별궁인 만큼 오가기도 힘들뿐더라 왕의 시야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왠지 잘못 왔다는 생각에 잠시 후회에 물들던 그때 또다시 마차가 멈춰 섰다.
“도착했네. 내리도록 하세!”
티아에게 레조스 왕에게 진상할 물건을 챙기라 이른 우현은 바딘 백작의 안내에 따라 밖으로 나서니 십여 명의 왕실 경비대가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것도 예기를 뿌리고 있는 긴 창날을 내세운 채로 말이다. 주위 공기가 싸늘히 식어가는 가운데 바딘 백작이 말을 건네 왔다.
“미안하네만 지금 자네들이 있는 이곳이 왕성인지라 무장 해제를 해주었으면 하네. 받은 무기는 돌아갈 때 주도록 함세.”
살포시 눈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다들 별말 없이 무기를 내놓는다.
어차피 과거 왕실 기사단을 했던 레이젠이나, 티아의 경우 이 절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호위대 사람들의 무기까지 모두 건네받자 바딘 백작은 다물고 있던 입을 다시 한 번 열어갔다.
“그럼, 이제 국왕 폐하를 알현하게 가도록 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딘 백작과 그들은 왕실 경비대의 호위를 받으며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기둥을 지나, 왕실 기사단이 지키는 높이 10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대문을 세 개쯤 들어가서야 겨우 왕이 있는 대전 앞에 당도하였다.
“미안하지만 캐슬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기다려 주게!”
“잠깐만요! 저만 알현하는 겁니까?”
“자네만 알현하라 했으니 어쩔 수가 없네.”
“하지만…….”
난감해하는 그에게 레이젠이 말을 건넨다.
“원래 왕실의 법도가 그러하니 혼자 갔다 오게!”
“형 말이 맞아! 그리고 왕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 너라며? 그럼, 네가 가야지. 누가 들어가? 어서 갔다 와! 우린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야.”
왕실에 대해선 잘 아는 이들의 말이라 수긍은 가지만 그래도 혼자 간다는 것은 좀 그랬다.
그렇다고 같이 들어가겠다고 고집 피우는 건 왕에게 안 좋은 인상만 남길 수 있었던 터라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다녀올 테니 말이에요.”
알았다며 끄덕이는 둘과 일별한 우현은 진상할 물품들을 챙겨 바딘 백작을 따라갔다.
왕실 경비대가 열어젖히는 거대한 문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황금빛 천으로 둘러진 커다란 란 위에 왕관을 쓴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어서 오시오! 릭 캐슬, 아니 릭 캐슬 후작!”
“처음 뵙겠습니다. 국왕 폐하!”
환한 미소로 맞이하는 레조스 왕을 향해 우현은 숙여갔다.
“그만 고개를 들고 다가오시오! 경의 얼굴 좀 자세히 보고 싶으니 말이오.”
오라는 손짓에 숙였던 고개를 들고 차츰 그에게로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