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02
차원상인 102화
한 차례 한숨을 내쉬던 레조스 왕은 시선을 돌려 우현을 보았다.
“캐슬 경! 지금 당장 선택하는 것이 아니니 좀 더 생각해 보시오.”
“국왕 폐하!”
“본 왕의 부탁이오!”
부탁을 들먹이는 그에 우현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침묵으로 빠져가는 주위를 둘러보던 레조스 왕은 슬쩍 손을 쳐들었다.
“내일 즉위식도 있는데 그만하고 쉬도록 하시오. 그 일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니 말이오.”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그에 우현은 한 차례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있어봤자 골치만 아파 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돌아나가는 우현을 보던 레조스 왕은 슬며시 눈매를 좁혀간다.
“바딘 경!”
“예, 국왕 폐하!”
“경의 생각은 어떻소? 캐슬 경이 우리 측에 오겠소?”
“오는 것이 아니라 오게끔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순간 레조스 왕의 시선이 돌려진다.
“오게끔 만든다 하셨소?”
“그렇습니다. 내일 즉위식이 끝나면 조바오니 공작이 나설 것입니다. 아마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고 결국은 상단과 영지에 위협이 가해질 것입니다. 그걸 국왕 폐하께서 막아준다면 그도 어쩔 수 없이 우리 측에 가담할 것입니다.”
확신을 가득 찬 얼굴로 답을 해간다.
콧등을 긁적이던 그가 되물었다.
“만약 조바오니 공작이 나서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건 걱정 마십시오. 그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나선 것인 양 만들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레조스 왕 또한 웃음으로 그를 마주해간다.
마치 속내를 다 읽고 있다는 듯 말이다.
“경만 믿겠소!”
“걱정 마십시오. 국왕 폐하!”
숙여지는 고개 밑으로 입꼬리가 뒤틀려진다.
‘캐슬, 네 이놈! 언제까지고 네 맘대로 행할 수는 없을 것이야. 절대로!’
차디찬 한기 어린 눈빛 밑으로 살기가 내비쳐진다.
이렇듯 우현에 대한 위협은 밖뿐이 아니라 안에서도 커지고 있었다.
제5-1장
다음 날 아침. 알카인 왕국의 왕도 미리아노에는 그야말로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왕도의 모든 이들이 다 나온 듯 사람으로 새까맣게 꽉 찬 지혜의 여신인 테라이리아 대신전 앞.
줄지어 선 하늘을 찌를 듯 기다란 창에는 알카인 왕국의 깃발이 나부끼고, 천지를 진동케 하는 듯한 나팔수들의 우렁찬 나팔 소리가 왕도 가득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새하얀 은백색 플레이트 메일을 몸에 두른 기사들과 함께 나타난 우현은 그야말로 신화 속에 나오는 영웅 같아 보였다.
높다란 계단을 걸어 올라 우현이 레조스 왕 앞에 무릎을 꿇자 검과 책을 양손에 들고 귀족의 서약 의식이 행해졌는데, 수십 명의 사제들 앞에서 하는 것이라 엄숙하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하다.
한바탕 연설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끝나자 천지가 들끓는 듯한 커다란 함성이 주위 백성들에게서 터져 나온다.
그걸 보고 있는 우현의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말이다.
이렇게 우현의 즉위식은 단순히 귀족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커다란 잔치와 같았다.
‡ ‡ ‡
“죽겠다!”
벌컥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온 우현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휘청대더니 이내 침상 위에 몸을 던진다.
오늘 아침나절 한 거라곤 그저 무릎 꿇고 몇 마디 답한 것뿐인데 온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힘들다.
아마도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 극도의 긴장을 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일까? 그저 누운 것뿐인데 절로 눈이 감긴다.
노곤하다싶던 그때 레이젠이 안으로 들어왔다.
“힘든가?”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좀 피곤하긴 합니다만 아픈 것은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아프지는 않다니 다행이네.”
탁자 앞 의자에 앉은 그는 컵에 물을 따라 시원하게 한잔한다.
그 틈에 우현은 안 떠지는 눈을 애써 부릅뜨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앓는 소리를 내는 그를 보며 레이젠은 웃었다.
“근데 소네스는 통 보이질 않던데 어디 있는 건가?”
“아마 아침부터 왕성을 이 잡듯이 돌아다니느라 보시질 못했을 겁니다.”
“왕성을? 난데없이 왜 돌아다닌단 말이냐?”
“저녁 축하 연회 때 양초 시연회 때문에 이것저것 준비 할 것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랬다.
소네스는 연회 때 보일 시연을 위해 가로등과 샹드리에 설치를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뿐만 아니라 시연회 양초를 켤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용을 가르쳐 주다보니 시간이 배로 걸려 아직까지도 오지 못한 것이었다.
“형님! 근데 전 왜 찾아오신 겁니까?”
마시고 있던 잔을 내려놓은 레이젠이 말을 건넸다.
“어제 자네가 말한 것에 대해 어찌 결정을 했는지 궁금해서 왔네.”
“친왕파에 들라는 권유 말입니까?”
“그렇다네.”
순간 우현의 낯이 시름에 잠긴다.
어제 왕과의 면담 후, 거처로 돌아온 그는 왕과 했던 대화의 내용을 알려줬었다.
그걸 들은 소네스와 레이젠은 올 것이 왔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친왕파에 가입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상단의 운명이 판이하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았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결국 별다른 소득 없이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미뤄두었는데 레이젠은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즉위식이 끝나기 무섭게 그를 찾아온 것이다.
잠시 침묵을 하던 우현은 슬쩍 시선을 들었다.
“여전히 친왕파에 드는 건 무리인 겁니까?”
“물론 친왕파에 끼면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 하지만 친왕파를 선전하는 도구로 쓰일 가능성이 매우 크고, 자칫 조바오니 공작과 우리의 싸움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어.”
“대리전 양상으로 몰고 갈 거란 말이야?”
“대리전보다는 공작 측의 전력 소비에 초점을 맞추겠지. 그동안 레조스 왕을 중심으로 한 진짜 친왕파의 전력은 손실 없이 보전할 것이고, 우리의 싸움이 끝나기 무섭게 몰아쳐 이기겠지. 그 후엔 쓸모가 없어진 우린 버려질 것이고 말이야.”
“한 마디로 사냥개 취급할 거란 말이군.”
소네스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하나, 귀족들의 습성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차피 그들이 우현을 이곳에 끌어들인 것도 다 그의 재력을 통해 조바오니 공작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굳이 바딘보다 높은 후작을 준 것도 그 때문에서 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다 쓸모가 있을 때 이야기이다.
조바오니 공작이 무너지고 친왕파가 득세를 하면 자신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천덕꾸러기가 된다.
특히나 그 엄청난 재력은 더없이 매력적일 테니 어떻게든 가지려 애를 쓸 것이다.
그 결과 자신들은 뭐 하나 손에 쥔 것 없이 버려지게 될 것이 자명했다.
‘토사구팽이라는 건가?’
사냥이 끝나면 사냥에 쓰였던 개를 잡아먹는 다는 누구나 하는 흔한 사자성어.
하지만 남의 이야기처럼 그다지 체감이 되지 않던 그 말이 지금은 가슴 한편에 새겨져 진한 울림을 토해낸다.
“결국 답은 하나뿐이군요. 일단,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 살피고 난 뒤 결정할 것! 이것 말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겠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정을 해야 할 거야. 조바오니 공작이든, 친왕파이든 말이야.”
“상황이야 어떻게 흘러가든 그래야겠죠.”
맞는 말이라는 듯 우현은 끄덕거린다.
“참!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할 것이 있네. 현재 위성지부 설립하는 것 말일세. 알카인 왕국에서는 지금 개설키로 한 것 외에는 더는 안 했으면 하네.”
갑작스러운 제지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것이 지금껏 레이젠은 자신이 기사단 출신임을 들어 상단에 관련된 일에는 그다지 관여를 하지 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렇듯 반대 의사를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우현이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네만 이번에 위성지부가 설치될 두 영지가 각각 친왕파와 조바오니 공작과 관련이 있는 곳일세. 한마디로 두 곳에서 하나씩 나눠가진 셈이지.”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주억대는 고갯짓을 보는 우현의 낯에 당황함이 깃든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 곳에서 손을 뻗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빛이 역력한 가운데 그는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혹시 외부와의 단절이 생길까 두려우십니까?”
레이젠은 끄덕거림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제야 왜 알카인 왕국 위성지부 설치를 반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몬스터 출몰로 인해 외부로 나섰건만 친왕파와 조바오니 공작의 권력 싸움으로 인해 다시 안에 갇히게 될 것을 염려해 그런 것이었다.
문제는 어느 쪽 손을 들어주든 극심한 피해를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제대로 외통수에 걸렸군!’
머릿속이 들쑤시듯 아파온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드는데 정작 답안은 없으니 그런 것이다.
점점 깊어지는 고심만큼이나 짙은 정적이 그들 사이를 맴돌기 시작한다.
고요하다 싶던 그때 굳게 다물고 있던 레이젠이 해결책을 내밀었다.
“영지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위성지부 설립은 꼭 해야 할 일임에는 분명하네.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 왕국 내에 설치해 두 곳에 뺏기느니 차라리 왕국 밖에다 설치하는 것이 어떻겠나?”
“왕국 밖이요? 다른 왕국에 위성지부를 설치하자는 말입니까?”
“이번 즉위식으로 인해 타국에서 입을 닫고 있네만 알카인 왕국만 이득을 얻는 것에 크나큰 불만을 표하는 이들이 많네. 그 갈등이 지속될수록 훗날 역풍이 되어 상단에 대한 압박으로 돌아올 것이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타국에 위성지부를 설치함으로써 불만을 잠재우고, 그들을 통해 친왕파와 조바오니 공작을 견제케 해 우리에게 향하는 압박감을 해소시키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싶네. 거기다 일전에 그러지 않았는가? 체인인가 뭔가 하는 걸로 대륙을 다 뒤덮어버리겠다고 말일세. 그걸 앞당겨 시행하자는 말일세. 두 곳을 견제함과 동시에 말이야.”
우현의 눈이 번뜩였다.
그의 말대로 타국을 빌어 견제한다면 친왕파와 조바오니 공작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
거기다 위성지부를 설치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도 있어 더욱더 좋았다.
턱을 만지작대던 우현은 시선을 들어 보았다.
“설치를 한다 해도 물건을 어찌 운송을 합니까?”
“그거야 이번처럼 게이트를 통해 하면 되지 않는가? 많지는 않지만 게이트는 이 왕국만이 아니라 대륙 곳곳에 있으니 말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친왕파나 조바오니 공작이 가만히 있을까요?”
“물품만 옮긴다면 그다지 큰 말은 없을 것일세. 물론 타국의 적극적인 구애도 있어야겠지만 말이야.”
묵묵히 생각에 잠기던 우현의 고개가 끄덕거린다.
그의 말대로 자신의 계획에 타국이 적극적으로 응해준다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저녁에 축하 연회에서 시연회를 보기 위해 타국 상인들이 참석한다 했으니 한 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