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03
차원상인 103화
“잘 생각했네. 우리 생각대로만 행해진다면 그들의 압박은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될 것이네. 물론 그전에 우리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하네. 어느 쪽이든 감당할 수 있게 말이네. 그래야 더는 이리저리 쫓겨다니지 않고 상단도 피해를 안 입을 수 있으니 말이야.”
맞는 말이라며 동의를 표하면서도 그게 가능하냐며 반문을 했다.
용병들이 좀 많기는 하지만 일개 상인이 친왕파나, 조바오니 공작을 상대하기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레이젠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지 고개를 끄덕여 가능하다 말을 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자네가 사는 세상의 경호업체 사람들과 용병들로 이루어져 있는 대륙의 상단 호위대만 놓고 본다면 많이 힘드네. 하지만 일전에 중원 세력을 포섭을 하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네.”
사실 왕성으로 오기 전날, 아침 수련을 하는 우현을 찾아온 제갈운혜와 티아 간에 비무를 벌인 적이 있었다.
체내에 있는 마나의 양으로 보아 어렵긴 하겠지만 그래도 티아가 제압하리라 예상을 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제갈운혜의 일방적인 공세 속에 비무가 끝이 났다.
그럴 것이 수준 높은 검법과 자신 못지않은 섬세한 마나 운용 덕에 엇비슷한 마나를 가지고도 그리 차이가 났던 것이다.
근데 더 놀라운 것은 중원에 있는 세가 사람들 대부분이 그녀에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주인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더 강하고 말이다.
이는 레이젠보다 더 실력이 좋다는 말과도 같았다.
이런 이들과 같이 싸운다면 친왕파나, 조바오니 공작이라고 한들 쉬이 넘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강하게 주장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진짜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 우현은 세차게 주억댔다.
“좋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그에 대해 중원 사람들과 의논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이렇게 두 사람은 하나둘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서서히 풀어나가기 시작하였다.
‡ ‡ ‡
환하던 하늘빛도 어느새 시커멓게 변해 버리고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낼 때쯤.
왕실 연회장에서는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저마다 화려한 복장을 뽐내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도 단연 화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아침에 거행된 즉위식의 주인공, 바로 우현이었다.
특히나 귀족 부인이나, 자제들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는데 이는 아직 혼자인 그를 어떻게든 가문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혼기가 찼거나, 아직 혼기가 차지 않았음에도 여자라면 누구나 그의 눈에 들기 위해 갖은 치장을 다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너무나 과도해 미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녀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능히 짐작케 했다.
은은하게 귓가에 울려 퍼지던 음악이 멈추고, 징소리와 함께 시종장이 앞으로 나섰다.
“알카인 왕국의 귀족이자, 후작인 세실리안가의 마지막 후손, 릭 캐슬 후작께서 입장하십니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긴 인사말과 함께 우현과 소네스, 레이젠이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이에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딱 회식자리에 부장님이 들어온 것 같네!’
영업사원 당시 회식 자리에서 봤던 광경과 흡사한 풍경에 난감해하면서도 일단 고개부터 숙였다.
후작인 만큼 뻣뻣할 줄 알았던 그가 인사를 건네자 주위 사람들은 당황해하면서도 재차 허리를 숙였다.
이렇게 대충 인사를 했다 싶었지만, 이번엔 귀족들이 그를 에워싼다.
하나같이 축하한다는 말로 시작한 그들은 어떻게든 연줄을 엮어 볼까하는 생각 때문인지 온갖 아부를 다 떨어댄다.
무슨 꼭 회식 자리에 온 사장님에게 달라붙은 부장님처럼 말이다.
겨우겨우 그들에게서 벗어났나 했더니 이번엔 귀족 부인들과 자제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와 에워싼다.
축하보다는 혼인에 목적이 있는 듯 추파란 추파는 다 던져댄다.
도저히 못 있겠다 싶어 술을 핑계로 빠져 나오기 무섭게 낯익은 한 사람이 곁으로 다가왔다.
“아카다 남작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캐슬 후작님!”
삼십 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다가와 예를 표한다.
하나, 이미 한바탕 인사 전쟁을 치룬 터라 우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예, 캐슬입니다.”
대충 인사만 하고 가려는데 아카다 남작이 발목을 잡아끈다.
“괜찮으시다면 저와 좀 어디 좀 가시겠습니까?”
“어디를 말입니까?”
난데없는 그의 행동에 우현은 의문을 표했다.
하나, 그 의문은 곧이어 들려온 말에 해소가 되고 만다.
“조바오니 공작님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합니다.”
순간 우현의 눈살이 와락 좁혀 들었다.
현 왕국 귀족의 수장이자, 권력의 실세인 그가 자신을 만나려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물론 왕도에 온 이상 한 번쯤은 보게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하니 연회장에서 그럴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외통수에 빠트린 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말이야.’
이제 막 후작이 된 자가, 그것도 연회장에서 공작의 부름을 거절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나 그간 쌓아둔 귀족들 간의 신용 문제도 있어 더욱 그러하였다.
상대가 어떤 속셈인지 대충 알겠다는 듯 뇌까리던 우현은 어찌하면 좋을지 의향을 물으러 소네스를 보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네스는 물론이고 레이젠까지 딱딱하게 굳은 낯을 한 채 이맛살을 좁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 문제가 있나?’
왠지 사연이 있는 듯한 모습에 쉬이 말을 걸지 못하겠던 우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만나죠! 어디 계십니까?”
“저를 따라 오십시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왼편으로 내민다.
그를 따라 창가 근처로 가자 동글동글한 얼굴의 한 노인이 의자에 앉아 있이 보인다.
동네 할아버지처럼 더없이 친숙한 외모를 가졌지만 정작 처진 눈살 밑으로 새어나오는 사이한 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하였다.
다가오는 아카다 남작을 본 그는 마시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말을 건넸다.
“아카다 남작! 이 사람이 이번에 즉위한 캐슬 후작인가?”
“그렇습니다.”
좁디좁은 눈매를 굴려 옆으로 향한다.
그걸 본 우현은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굽혀갔다.
“캐슬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든다는 듯 노인, 아니 조바오니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조바오니 공작이라고 하네. 이번에 후작이 되었다면서. 축하하네.”
“축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보다 자네 아버지가 이걸 봤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
순간 우현의 몸이 멈칫한다.
설마하니 이렇듯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대놓고 물어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후작위를 수락했을 때 받은 신상명세기록을 외워두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조바오니 공작과 뭔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쉬이 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조바오니 공작은 좀 전에 놓아두었던 술잔을 들어 한 모금하며 여유작작하니 바라본다.
이에 맞대응을 하듯 우현 또한 편한 신색을 하며 마주하였다.
“제 아버님을 아십니까?”
“제법 기백이 좋았던 이로 기억을 하네. 힘든 상황에서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 보겠다고 무던히 애를 썼는데 하던 일이 잘못되어 그만 왕도를 떠나게 되었지. 그 뒤로는 연락 한 번 제대로 듣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아들인 자네를 보고 있노니 마음히 흐뭇해지는 것이 아주 좋네.”
“아버님께서도 같은 생각이실 겁니다.”
동의를 표하듯 끄덕이던 그는 돌연 물었다.
“참! 내 들을 말로는 자네 아버님이 중병에 걸려 죽었다 들었는데 맞는가?”
“아닙니다. 제가 여섯 살 때쯤 내란이 발발했고 가족을 데리고 피난을 가시다 그만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아~아! 그랬는가? 거, 안타깝구먼! 안타까워!”
한숨을 푹 내쉬며 쳐들려진 그의 노안에서 왠지 회한이 느껴진다.
마치 진심으로 캐슬의 아버지가 죽은 것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를 우현은 쏘아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 것이 바딘 백작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내란의 수장인 페도르 남작에게 대항하다 죽은 이가 바로 캐슬의 아버지로 이 일은 일반 사람들도 잘 알만큼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한데 병사를 들먹이다니 이건 우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보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늙은이가 능구렁이보다 더 속이 시커멓군.’
듣던 대로라는 듯 우현은 내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 놓았던 술잔을 들어 한 모금하던 조바오니 공작은 옆에 서 있는 소네스와 레이젠을 가리켰다.
“이들은 누구인가? 자네 사람인가?”
“예! 이쪽은 페릴 소네스라고 상단의 총관을 맡고 있고, 이쪽은 도베르만 기사단 출신으로 상단의 치안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냐며 주억대던 조바오니 공작은 턱 밑 수염을 매만졌다.
모양새가 꼭 뭔가를 생각하는 듯해 사람들은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하나, 쉬이 떠오르지 않는 지 이내 고개를 내젓는다.
“왠지 낯이 익은데 생각이 나지 않는 군. 혹시 본 공작과 대면한 적이 있던가?”
“아닙니다. 아버님께서는 태생이 농부셨고, 저희 어릴 때 잠깐 용병으로 나섰다 전장에서 돌아가신 탓에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이런……. 가족들이 많이 힘들었겠군. 괜한 상처 건든 듯 싶어 미안하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지난 일이라는 듯 내뱉는 레이젠을 보는 우현의 낯에 의아함이 깃든다.
그럴 것이 소네스는 한껏 눈살을 찌푸린 채 부르르 손을 떨고 있고, 레이젠은 특별한 내색은 하진 않지만 눈빛 가득 적개심에 불타고 있는 것이 마치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들…… 조바오니 공작과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사연이 있는 듯 보인다.
둘의 그런 모습 때문인지 점차 주위 공기가 무거워진다.
다행이 아직까지 조바오니 공작이 눈치채지 못한 듯 싶지만 이후 험악해질 분위기를 대비해 나서려는데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공작 각하! 여기 계셨습니까?”
돌려지는 시선 위로 열일곱 정도 되는 소년 하나가 보인다.
노란 머리칼에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아이는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조바오니 공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갔던 일은 잘되었느냐?”
“쉽게 잘 풀려서 금방 끝났습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그거 참 다행이구나!”
잘됐다는 듯 끄덕이던 조바오니 공작은 시선을 들어 우현을 보았다.
“캐슬 후작! 이쪽은 내 밑에서 일을 하는 아이일세. 매우 총명한 아이지. 인사들 나누게!”
“처음 뵙겠습니다. 캐슬 후작님! 전 테온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캐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