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04
차원상인 104화
고개를 숙이는 테온을 보며 우현 또한 인사를 건넨다.
그런 그들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던 조바오니 공작이 말을 건네왔다.
“내 일전에 들으니 무슨 몰핀인가 하는 자가 자네의 상단을 귀찮게 들었다 들었는데 혹시나 지금도 힘들게 하는 이는 있는 가? 만약 있다면 테온에게 말하게. 내 옛정도 있고 하니 적극 도와주라 할 테니 말이야.”
“말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공작님!”
괜찮다는 말로 거절을 하는 그에 조바오니 공작은 정색을 한다.
“진심으로 하는 말일세. 그러니 혹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도록 하게! 내 말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우현이 수긍하는 것을 보고나서야 마음이 풀린 듯 미소를 짓는다.
그런 그가 더욱 마음에 안 들었던 우현은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자신을 찾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아! 이번에 자네가 위성지부인가 뭔가 하는 걸 만든다기에 자네 아버지 생각도 나고 해서 아는 사람보고 맡으라 했네. 일단 하라고는 했는데 왠지 떠넘긴 듯한 것이 괜히 미안해져서 말이야.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인사나 나누라고 불렀네.”
“그렇습니까? 죄송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자네 옆에 서 있는 아카다 남작일세. 본 공작의 쓸데없는 부탁을 들어준 이이지.”
아카다 남자는 슬쩍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인다.
‘어쩐지 왜 이 사람을 앞세워 불렀나 싶더니만 다 이런 이유가 있었군.’
알만하다는 듯 내뱉으며 막 인사를 건네려는데 낯익은 목소리 하나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일국의 공작님과 후작님이 여기 다 모이셨습니다.”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히 넘긴 반백의 머리와 실눈처럼 좁은 눈매 밑에 자리한 좌우로 비수처럼 날카롭게 뻗은 수염을 매만지며 다가오는 한 중년 사내, 바로 테베코 백작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갈 차에 딱 막힌 탓에 심기가 매우 불편한데도 조바오니 공작은 일절 내색을 하지 않은 채 말을 건넨다.
“명색이 세투란 제국 내 정보기관 국장인 자네가 이곳까진 무슨 일로 온 것인가?”
“한 왕국의 후작이 새로 탄생하는데 어찌 제가 참석을 하지 않겠습니까? 황제 폐하 또한 같은 말을 하셨고 말입니다.”
“제국에서 이 나라를 그리 높이 평가해주고 있다니 고맙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알카인 왕국은 저희 제국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곳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요.”
축 늘어진 눈살 밑으로 매섭게 빛을 내던 조바오니 공작은 슬쩍 우현에게 시선을 두었다.
“오늘은 자네의 축하 연회이기도 하고, 장소도 그러하니 인사를 나눈 것으로 만족하고 이쯤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대화를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세!”
한 차례 고개를 숙인 우현과 함께 소네스와 레이젠이 발길을 돌린다.
그런 그들의 뒤로 쪼르륵 달려온 테베코는 미소를 지으며 슬쩍 말을 건네 왔다.
“어째 좀 불편하신 것 같아 끼어들었는데…… 잘한 것 같습니까?”
“예, 그러지 않아도 좀 그랬었는데 고맙습니다.”
테베코의 수염 끝이 슬쩍 치솟는다.
고맙다는 말이 제법 기분을 좋게 만들었나 보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테베코 백작님!”
“어이쿠! 후작께서 웬일로 존대를 하십니까?”
“테베코 백작님!”
정색을 하는 그에 우현은 난감한 빛을 비춘다.
자신의 지위가 높기는 하나 상대는 대제국이라는 세투란의 백작이다.
즉,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데 이리도 정색을 하니 어찌 당혹스럽지 않겠는가?
잘못을 했나 싶어 조심스러워하는 그를 보며 테베코는 피식 웃고 만다.
“이제 후작인데 존칭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상대 나름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이젠 평범한 상인이 아닌 후작님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좀 불편하더라도 익숙해지십시오. 그래야 아랫사람도 편해지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끄덕이는 우현을 보던 테베코가 눈살을 찌푸린다.
입술까지 삐죽대는 것이 제법 뭔가에 삐친 것 같다.
“그나저나 조금 섭섭합니다.”
“섭섭해요? 뭐가 말입니까?”
우현은 자신을 두고 섭섭하다는 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테베코는 제법 마음이 상했던지 한껏 눈매를 좁힌 채 바라본다.
“어째서 즉위식 같은 그 중요한 것을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왕실에서 연락을 주지 않았다면 오늘 이 자리에 참석도 못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즉위식에 초대를 안 해줘서 삐쳤다는 소리다.
예상 밖의 말에 당황한 우현은 일단 핑계를 대본다.
“바쁠 것 같아 일부러 부르지 않았습니다만…….”
나름 배려를 해서 그렇다는 말이 더 기분 나쁜지 테베코의 눈살을 찌푸린다.
“그래도 그렇지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중대사입니다. 그런 일에 어찌 안 부른단 말입니까? 그간 빚진 것도 있고 해서 내심 기다렸는데 좀 실망했습니다.”
“그러셨다면 미안합니다.”
은근슬쩍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는 그에 테베코는 됐다는 듯 손을 내젓는다.
“다음번에 이런 일 없도록 해주십시오. 제 말 알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단락 지어졌다 싶은 생각에 우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때 사람들 사이로 시종장이 다시 한 번 나섰다.
“알카인 왕국 왕실인 알바세네스 티안가의 직계 자손이자, 13대 국왕이신 알바세네스 티안 레조스 국왕 폐하와 왕비이신 제리아 조언 세리나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왕의 입장을 알리는 말에 테베코는 시선을 우현에게로 돌렸다.
“아무래도 우리 대화는 나중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있다가 연회가 끝나면 찾아오십시오.”
“내일 아침이 아니고 말입니까?”
“긴히 논의할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갸웃대던 테베코는 이내 알겠다는 듯 주억댔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자네 말대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화를 마치기 무섭게 멈추었던 음악이 주위에 울려 퍼지며 백색의 옷을 입은 젊은 부부 한 쌍이 안으로 들어온다.
그들이 들어오기 무섭게 연회장에 있는 모든 남성들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건넸고, 귀족 부인이나, 자제들은 한쪽 치마를 잡고 허리를 굽힌다.
인사를 건네는 그들을 본 레조스 왕은 됐다는 듯 손짓을 해댄다.
“그만하고 모두들 일어나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모두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왕비인 세리나를 연회장 중심에 위치한 단상 옆 의자에 앉힌 그는 슬며시 앞으로 나서서 사람들을 보았다.
“오늘 알카인 왕국은 그야말로 크나큰 축복이 있었소. 그건 다름 아닌 세실리안가의 후손인 릭 캐슬 경이 후작에 즉위한 것이오.”
들려지는 손을 따라 주위의 모든 시선이 움직였다.
돌연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우현은 당황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숙여 보인다.
그런 그를 보며 웃던 레조스 왕은 잠시 멈추었던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의 상재는 메마른 땅에 내린 단비와도 같은 것. 이에 본 왕은 그와 더불어 오랜 내란으로 황폐해진 이곳에 싹이 틔워 부흥을 이루어 왕국에 황금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니 모든 경들은 나를 도와 다시 한 번 만천하에 아국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도록 해주시오!”
나직이 뱉어진 그의 말은 파문이 일듯 연회장 곳곳을 울린다.
이에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다시 허리를 숙이니 존경심을 표하니 그 엄숙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부흥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으로 인해 흥분과 기대감이 뒤섞여 연회장을 물들였다.
모두들 들뜬 기색이 역력한데 딱 세 사람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우현 일행이었다.
설마하니 이렇듯 레조스 왕이 그를 앞에 내세워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하는데…….”
소네스는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한 채 바라본다.
우현 또한 그건 마찬가지인지라 심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레조스 왕은 향후 왕국의 발전 계획과 함께 우현의 위성지부 건설, 몇 명의 관리 임명식을 간단히 입에 올리고는 한바탕 연설을 끝냈다.
단상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귀족들이 몰려든다.
명목은 인사이지만 모양새는 꼭 백화점 세일 때 달려드는 아줌마와 같은 것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우현의 즉위식을 기념하는 연회이건만 어째 주객이 전도 된 듯한 기분마저 든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자리인 만큼 이참에 나가볼까도 했지만 시연회라든지 신상품 소개건도 있어 꾹 눌러 앉아만 했다.
이때 바다를 쫙 가르듯 그들을 사이로 레조스 왕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는 방향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아무래도 우현에게 오는 것 같았다.
“왜 또 오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데…….”
그렇지 않아도 다들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에 몸서리가 쳐지는데 레조스 왕이 그 배는 더 몰고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라고 소리 치고 싶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꾹 참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런 그들의 불편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조스는 밝게 웃으며 다가와 우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캐슬 경! 연회의 주인공은 자네인데 어째 본 왕이 된 듯하여 미안하오.”
“아닙니다. 국왕 폐하!”
괜찮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건 그렇고 듣자니 내 누이에게 선물을 줄 게 있다고 하던데 그게 뭔가?”
선물이라는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이 된다.
왕국은 물론이고, 대륙에게까지 신문물을 가져오기로 유명한 그인지라 더욱더 그러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즐기듯 잠시 침묵하던 우현은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린 채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 않아도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소네스는 어디론가 손짓을 했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 시종이 그걸 보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선다 싶더니 누군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근데 한순간 적막이 깃든 듯 조용해진다 싶더니 음악마저 끊기고 만다.
그건 시종이 데리고 온 이가 입은 옷 때문인데 마치 한복을 보는 듯한 모양새와 고결함과 기품이 풍기는, 마치 티끌 하나 없는 듯한 순백의 정갈한 빛이 어린 드레스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사박사박!
조심스레 내딛는 걸음은 어느덧 레조스 왕 앞에 이르렀고 여인은 슬며시 예를 표하였다.
그런 그녀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탄을 금치 못한 채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건 주위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묵묵히 지켜보는 우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역시…… 내 예상대로야!’
왕궁에 오기 전, 레조스 왕의 누이가 결혼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에 그는 결혼 예물로 뭘 할까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냉장고나 TV 같은 걸로 살 수도 없고, 시계나 반지 목걸이는 더더욱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