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06
차원상인 106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네스가 자리를 박찬다.
“캐슬,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자꾸 속인다고 하는…….”
버럭 소릴 지르는 그를 레이젠이 손을 들어 막아선다.
“혀, 형님!”
“그만 하거라! 캐슬의 말이 맞다.”
“하지만…….”
레이젠은 고개를 돌려 소네스를 보았다.
“소네스! 생각해 보거라! 아까 캐슬이 그리 느낄 정도면 다른 이는 어떻겠느냐? 한데 조바오니 공작은 별 이상 없다는 듯 태연하게 넘어갔다. 분명 이상했을 텐데 말이야. 이는 어쩌면 우리에 대해 알아챘기 때문에 눈감아 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가 우리 정체에 대해 알았다는 말이야?”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하긴 우현이 이리 말할 정도로 강한 느낌이 들었다면 조바오니 공작 성격상 왜 그리 행동을 한 것인지 물어봤을 것인데 굳이 참고 넘어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하나, 레이젠의 말대로 자신들의 정체를 알았다면 굳이 티를 내기 보다는 그냥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장소도 왕실 연회장이라 괜히 일을 벌렸다 커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연회장에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사실 소네스와 레이젠이 그곳에 간 것은 조바오니 공작이 연회에 불참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막상 가 보니 이미 그는 한쪽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상황이 이리되리라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굳게 다문 소네스의 입을 보던 레이젠은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캐슬! 미안하지만 어쩌면 우리 때문에 상단이 많이 어려워질 것 같구나!”
“대체 두 분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조바오니 공작이 상단을 해칠 정도로 신경을 쓰는 겁니까?”
잠시 말을 끊던 레이젠은 조금은 굳은 얼굴을 하고 시선을 들어올렸다.
“본시 우리 둘의 성은 페릴이 아닌 그렌필일세. 더 정확히 말하면 서쪽 변방을 지키는 귀족 가문으로 유명한 그렌필 자작가일세.”
“자작이면……. 두 분 모두 귀족이었던 겁니까?”
“솔직히 말해 그렇다네.”
순간 우현의 낯에 당황스러운 빛이 깃든다.
설마하니 그들이 귀족의 자제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당혹감 어린 그를 보던 레이젠은 나지막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이십오 년 전 정도 됐을 것이네. 그 당시는 지금과 달라서 친왕파가 득세할 때였는데 아버님은 이웃 영지의 야만족인 크린케 족과의 토벌에 성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왕이었던 알바세네스 비엔 오넬로 왕의 부름을 받아 왕도로 가게 됐다네. 그곳에서 머물면서 친왕파의 주축이었던 코롬펠 공작 밑에서 일을 했는데 꽤 인정을 받았는지 매번 서신에 어쩌면 백작이 될지도 모른다며 흥분한 글을 남기곤 하셨네. 그때가 우리 가족에게는 제일 행복했던 시기였다네.”
회한에 잠긴 듯 잠시 천장을 바라보던 그는 소네스가 건네는 술잔을 받아 마셨다.
목을 타고 흘러 들어간 쓰디쓴 술이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이내 독한 취기가 되어 올라온다.
그 역한 기분이 레이젠의 기분을 좋게 한 듯 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삼 년이 지났네. 영원할 것 같던 친왕파도 점점 세력이 줄었고, 새로이 실세로 부각된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조바오니 공작일세. 당시 백작이었던 그는 친왕파에 밀려나 뒷방에 처박혀 있던 외척들의 세력을 규합을 하고 그 중심에 자신을 박아 넣었지. 그렇게 단번에 세를 키운 그는 친왕파의 세력을 차츰 갉아먹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암살로, 또 다른 이는 조직 개편이란 미명 아래 왕도에서 먼 영지로 좌천되었지. 그렇게 하나둘 떨어져 나가던 그때 조바오니 공작은 커다란 사건을 터트렸어. 이른바 베테른 내란 전쟁의 시발점인 푸른 사과 반역 사건이 바로 그것이네. 친왕파가 부족한 조세를 충당하기 위해 한 가지 조세법을 발현하는데 그것이 바로 상위 귀족들, 즉 공작, 후작, 백작에게만 매기는 세법이었지. 그렇지 않아도 거듭 된 내란으로 불만이 팽배한 시기에 그들까지 건드는 것은 위험수였지만, 왕국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 하지만 이 조세법은 조바오니 공작의 음모였네. 친왕파 인사 중 하나에게 이것을 발안토록 하고, 그 세법에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친왕파 사람으로 대체함과 동시에 법에 따라 걷은 세금을 일종의 비밀 자금이 되게끔 장부를 만들어 놓는 등 갖가지 방법을 다 썼지. 그 조세법은 친왕파의 비밀 자금 조성 및 훗날 왕위를 찬탈을 위한 것이 되었지. 뒤늦게 알고 바꾸려 했지만 바르켄 소네 후작이 이 조세법에 대해 조사를 명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지. 그 결과 대부분의 친왕파가 그 조세법을 빌미로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죽어야 했네. 그 피바람에 우리 아버지가 휩쓸린 건, 아니 휩쓸릴 수밖에 없었던 건 다름 아닌 조작한 조세 장부가 가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세. 특히나 조바오니 공작이 장부를 빌려갔다 돌려준 뒤라 아버님은 그를 찾아가 왜 이리됐는지 해명을 요구했지만 얼마 못 가 시궁창 밑 쓰레기 더미 속에서 시체가 되었네. 역모 무리가 도피하려 했다면서 말이야. 그렇게 참혹하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그 일로 왕국 기사단이 영지로 몰려와 다른 가족과 친지들 모두 죽임을 당했네. 다행이도 당시 아홉 살이었던 난, 소네스와 함께 이웃 왕국 중 하나인 펠리험 왕국에 귀족 학교에 있었던 터라 화는 면할 수 있었지만 말이야.”
기나긴 이야기가 끝나자 우현에게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듯 먹먹한데 가슴 속에 파묻고 사는 그가 얼마나 아플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아니, 짐작해본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 같았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말이다.
‘그래서 아까 조바오니 공작을 봤을 때 그랬던 것이군.’
조금 전 두 사람이 그의 앞에서 했던 행동들이 다 이해가 간다.
자신이라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능히 그랬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었다.
두 번 다시는 딛고 싶지 않을 이 땅에 굳이 찾아와서 자신을 도와 상단을 하는 것이 납득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묵묵히 있던 우현은 시선을 들어 레이젠을 보았다.
“혹시 말입니다. 저와 상단을 한 것 말입니다. 복수를 위해 그런 것입니까?”
그 사실을 인정하며 레이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생각대로네. 원래는 바딘 백작의 기사단으로 들어가기로 했지만 자네를 만난 후로 계획을 바꾸었네. 상인이면 조바오니 공작 곁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한데 예상과는 다르게 그와의 대립이 너무 빨라지고 말았네.”
“어쩐지 별 연관도 없는 절 도와 상단을 하신다는 것이 좀 믿겨지지 않기는 했습니다.”
지금이야 돈을 보고 하지 않을까하며 대충 넘기긴 했지만 처음에는 왜 이들이 자신을 도우려 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봤었다.
오래 못 가 일에 지쳐 머릿속에서 잊히고 말았지만 말이다.
“의도야 어떻든 처음에 자네를 속인 것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거기다 조바오니 공작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다만 그가 직접적으로 상단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저 또한 대응을 안 할 것이니 그건 명심해 두십시오.”
“잘 알겠네만 그 사람 성격상 그리되지 않을 걸세.”
“뭐, 제 생각도 그렇긴 합니다.”
그간 궁금했던 사항들이 알아서 조금은 속 시원한 듯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그건 레이젠이나 소네스도 그러한 듯 낯빛이 전과는 달리는 좀 편해 보였다.
그렇게 대충 일단락 지어진다 싶던 그때 시종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후작님! 테베코 백작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보니 세투란 제국과 엘테르 성국이 찾아오라 했는데 깜박했네요. 어서 들라 하세요.”
들이라는 말에 시종은 밖으로 나가 테베코를 모시고 안으로 들어왔다.
우현은 그에게 의자를 권하면서 잔에 술을 따라 건넸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대화를 못했네요.”
“이해합니다. 상황이 좀 그랬지 않습니까?”
손에 쥔 술잔을 들어 보이며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그런 그에게 마시라고 손짓을 하며 우현은 안부를 물었다.
“근데 황제 폐하께선 잘 지내십니까?”
“잘 계십니다. 후작님에서 주신 소주란 것을 드시면서 말입니다.”
“소주? 술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순간 테베코와 헤어지기 전 선물로 소주를 준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것을 베야크 칸에게 준 모양이다.
재차 술잔을 기울이던 그는 문든 떠오른 것이 있는지 말을 건네 왔다.
“참!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리입니다만 그 소주라는 것 말입니다. 더 구할 수 없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몹시 마음에 들어 하시는데 말입니다.”
“이제 곧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니 너무 염려 마시라고 하십시오.”
말을 듣고 있던 테베코는 설마 하는 눈빛을 보이며 재차 물어온다.
“혹시 그 술을 팔 생각입니까?”
“조만간 그럴 계획입니다.”
“그거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술 구할 방법 좀 찾아보라며 연일 소리치시는 바람에 곤란했는데 잘됐습니다.”
마치 물에 설탕이 녹아내리듯 한결 낯빛이 부드러워진다.
“맞다! 아까 시연한 양초 말입니다. 저희 세투란 제국에 판매 독점권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 양초가 나오면 마법등 판매에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어 손실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까 싶어 그렇습니다.”
테베코는 피해가 막심하다며 피해 보상을 달라는 듯 말을 건넨다.
그런 그를 보며 웃던 우현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백작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건 안되겠습니다. 마법등과 양초는 제조 방식부터 엄연히 다른 물품인데다가 사용시간도 많이 차이가 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량에서 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습니까? 이래선 마법등을 살 사람도 다 양초로 갈 것입니다.”
툴툴대며 불만을 표하는 그를 본 우현은 슬쩍 입꼬리를 치켜세운다.
자신이 예상한 대로 이야기가 너무 쉽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것도 좀 그렇군요. 제국이 점한 시장을 고스란히 저희가 가져갈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독점권이라도 줘서 어느 정도 피해 보상은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독점권은 좀 그렇고……. 대신 제조법을 사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조……법을 파신다는 게 정말이십니까?”
“세 군데 정도 팔 계획이 있습니다.”
순간 테베코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제법 많이 놀란 듯 실눈 같던 그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하긴 판매 독점권 보다는 제조법을 사가는 편이 백배 아니, 천배는 더 남는 장사이다.
물론 제국만이 아닌 다른 곳에도 팔겠다 했지만 베일에 쌓여있던 우현 상단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일까? 뾰족한 콧수염을 매만지는 손짓이 빠르기 그지없는 것이 급하디 급한 속마음을 대변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