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09
차원상인 109화
“일단, 며칠 내로 연락을 주겠다고 하시고 입점 조건은 팩스로 넣어달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다시 수화기를 입에 대는 그를 보던 서우는 그저 입맛만 다신다.
백화점 입점 계약만 하면 떼돈을 벌 텐데 하는 미련에 속이 쓰려왔기 때문이었다.
‘아서라! 일확천금 노리다 쪽박 찰라!’
아버지가 늘 하는 말을 떠올리며 옆에 놓인 물만 들이켠다.
이때 문을 열고 보영이와 서연이 비닐봉지를 흔들며 안으로 들어왔다.
“간식 사왔어요!”
그녀들을 보기 무섭게 사무실에 환호성이 터진다.
점심은 이미 지났지만 계속된 전화 통화로 인해 기력이 소모됐는지 몹시 배고팠기 때문이었다.
두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직원들의 모습에 서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지금 받는 전화를 끝으로 잠시 대기 상태로 돌려놓고 모두들 먹도록 하죠.”
“와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한바탕 소리를 질러대던 사람들은 서둘러 받고 있던 전화를 마무리 하고 회의용 탁자 앞에 앉았다.
그런 그들 앞에 보영과 서연은 가지고 온 떡볶이며, 김밥이 차곡차곡 놓인다.
제법 양도 많은 것이 십 인분 정도는 되어 보이는 듯하다.
“맛있게 드세요!”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서연은 보지도 않은 채 사람들은 앞에 놓인 음식에 고개를 처박는다.
누가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닌데 모두들 전투적으로 먹어댄다.
마치 이제 막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군인들처럼 말이다.
“천천히 드세요. 그러다 체해요.”
서연과 보영은 사람들 손에 컵을 쥐어 주지만 모두들 괜찮다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그들을 보며 웃음을 짓고 있는데 보연이 김밥에 열심히 젓가락질을 해대는 우리 옆으로 앉았다,
“언니죠?”
“우웅? 뭐가?”
“오빠 구두, 가방 SNS에 올린 거 말예요.”
멈칫하던 우리는 아니라는 듯 내젓는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SNS 할 줄 몰라.”
“그래요?”
보영이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뭔가 만지더니 앞으로 들이민다.
“그럼, 이건 뭐예요?”
뭔가 싶어 보던 우리의 낯이 딱딱하게 굳어져 간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여긴 주위 사람들이 그녀가 내민 핸드폰을 본다.
거기에는 며칠 전 인터넷 기사에서 봤던 우현이의 구두를 신은 늘씬한 다리와 파우치 백이 보인다.
밑에 쓰인 글 ‘아까 산 신상 구두! 가죽의 무늬나, 편안함이 매우 만족스럽다. 올 한 해 잇템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한 기사 그대로인 것이 아무래도 현재 상황을 만든 SNS인 것 같았다.
“근데 다리 예쁘네.”
“쭉 뻗은 것이 아주 모델 뺨치는데…….”
평론을 하는 남자들을 쏘아보던 보연이 말을 건넨다.
“모델 뺨치는 게 아니라 모델이에요.”
“모델이라고?”
“배우 겸 모델!”
말을 끝내기 무섭게 그녀는 화면을 바꿔 SNS의 메인 화면으로 바꿨다.
근데 그곳에 자리한 사진이 매우 낯익은 것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이사님! 저거 왠지 아는 사람 같지 않습니까?”
“저도 좀 그러네요.”
대화를 주고받던 이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일순 어딘가로 시선을 돌린다.
그곳은 다름 아닌 대나무 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은 낯을 한 우리였다.
가득이나 당혹스러운데 주위 이목까지 자신으로 향하자 서둘러 부인했다.
“나 아니야! 아니라니깐!”
“그럼, 이건 뭐라 설명하실 건데요.”
보연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엔 우리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얼굴 사진과 ‘WOORIZZANG SNS’이란 SNS 주인 아이디가 보인다.
핸드폰과 우리를 번갈아 보던 사람들은 이내 입을 쩍 벌리고 만다.
“보연아! 지……진짜 우리야? 톱 여배우 우리?”
“어! 맞아!”
맞다는 말에 서우가 입에 물고 있던 김밥을 툭 떨어트린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내가 여배우 우리와 겸상 하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전 하이파이브도 했습니다.”
한 직원이 아까 사무실로 들어올 때 했던 하이파이브했던 오른손을 내보이며 말을 한다.
모두들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이내 자리를 박차고 핸드폰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모두 동작 그만!”
순간 들려온 외침에 얼음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눈동자를 굴려 시선을 뒤로 돌린다.
그러자 퍼렇다 못해 살기까지 돋아진 우리의 차가운 눈빛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모두 자리에 앉는다. 실시!”
무슨 군대에 온 것처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둘러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런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우리는 고개를 돌려 보연을 보았다.
“누구 동생 아니랄까봐……. 꼭 그걸 밝혀야겠어?”
“그럼, 가면이라도 쓰시던가요. 우리라는 이름과 함께 버젓이 얼굴을 드러내 놓고 다니는데 설마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죠?”
잔뜩 찌푸린 우리의 얼굴 아래쪽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보연의 말대로 이렇게 대놓고 다니는데 모르는 사람이 바보다.
그래도 곧이곧대로 수긍하긴 싫었던지 우리는 우현 핑계를 대본다.
“그래도 만세는 몰라봤거든!”
“그래서 지금껏 연애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죠. 눈치라곤 전혀 없는 미련 곰탱이니까 말이에요.”
서우와 사무실 직원들의 가슴속에 미련 곰탱이라는 말이 콕콕 찔러온다.
왠지 자신들을 두고 하는 말 같아 그랬던 것이다.
그들이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우거나 말거나 여전히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순수하고 장미꽃처럼 예쁘다던 만세의 말하고는 완전히 딴 판이네.”
“저 장미 맞아요. 그래서 이렇듯 콕콕 찔러대죠. 장미에는 가시가 있으니까 말이에요.”
“하긴 가시 없는 장미는 또 매력이 없지.”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어보이던 우리가 말을 건넨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만세에게 말할 거야?”
“아니요. 오빠 일을 도와주려고 그런 건데 굳이 말해서 서로 불편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싶어서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숨길 수만은 없으니 오빠에게 슬쩍 귀띔 정도만 해주세요.”
“상황 봐서 그럴 테니까 걱정 마!”
그녀의 말에 보연은 슬쩍 입꼬리를 치켜 올린다.
“그럼 됐어요. 사실 저 언니 자주 보고 싶거든요. 오빠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은 언니 하나니까요.”
“넌 그럴 줄 몰라도 난 너 보기 싫다. 무서워!”
“제가 원래 좀 한 무서움 해요.”
씨익 웃어 보이는 그녀를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만다.
대화를 마무리한 우리는 시선을 돌려 사무실 직원들을 보았다.
“상황이 이런 관계로 앞으로 조심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말하죠. 첫째, 저를 모델로 한 사진 촬영 및 전화 통화 금지. 둘째, SNS 또는 친구, 가족 같은 사적인 모임에서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 것. 셋째, 만세에게 제가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 함구할 것. 이 세 가지 사항을 꼭 지켜주길 바라요.”
단호한 어조의 그녀에 서우는 뒷머리를 긁적댄다.
“그래도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하는 건 좀…….”
“말하기만 해! 구두와 가방에 대한 언급도 취소하고, 앞으로 홍보는커녕 초상권 침해로 한바탕 법정 싸움하게 해줄 테니까 그리 알아!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예!”
한마디로 사무실에 발길을 끊겠다는 협박에 결국 서우는 입을 꾹 다물고 만다.
대충 상황이 정리됐다 싶던 그때 문을 열고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여기가 태령 종합 상사인가?”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리던 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 같이 덩치가 산만한 것이 딱 봐도 조폭이라는 것을 알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정확히 팔 대 이로 머리를 가른 삼십대 후반의 사내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우현인가? 이곳 사장인가 하는 놈 오라고 해!”
“당신들 누구야? 누군데 감히 행패를 부리려 해!”
반말로 일관하는 그에 순간 울컥한 서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그걸 본 한 사내가 나서려하자 팔 대 이 가르마의 사내가 손을 들어 막았다.
“난 천동그룹 의류 사업이사 박한일이다. 할 말 있으니 어서 이곳 사장 나오라고 해!”
예상 밖의 인물 등장에 당혹해하면서도 서우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해 갔다.
“현재 사장님은 출장 중이니 내일 오십시오.”
“그래? 그럼, 가죽이 있는 창고 어디 있는지 불어. 사장한테는 가죽 내가 다 사간다고 하고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가죽을 사간다니? 우린 판다고 한 적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말하잖아. 내가 사간다고!”
박한일은 조금은 강압적인 어조로 소리쳐간다.
하지만 서우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맞선다.
“안 됩니다. 현재 신발과 가방 제조로 인해 가죽을 드릴 수 없습니다.”
“거, 말 안 통하네. 돈 준다고 하잖아! 근데 왜 안팔아!”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말입니다.”
재차 설명하는데도 박한일은 됐다는 듯 휙휙 손을 저었다.
“시끄러! 더 말할 것도 없이 그냥 뒤져서 가죽이 있는 창고 알아와!”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사내들이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한다.
“이……이봐! 뭐하는 짓이야!”
“남의 회사에서 무슨 짓이에요.”
서둘러 일어나 막아보지만 그들에게 떠밀려 날 뿐이다.
“당신들 조폭이야? 왜 이런 짓을……. 크윽!”
난장판을 만드는 그들에게 다가서던 서우가 얼굴을 얻어맞고 쓰러지고 만다.
이를 본 서연이 핸드폰을 들었지만 언제 왔는지 한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쳐다본다.
“신고하면 죽는다! 어!”
살기 어린 그 시선에 서연은 황급히 폰을 치웠다.
옆에서 보다 못한 우리가 나서려던 그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태령 종합 상사 사장인 우현 씨를 찾아 왔는데요.”
순간 모든 이목이 뒤로 쏠린 가운데 진소연이 안으로 들어선다.
박한일의 곁에 남아 있던 사내 둘이 그녀를 막아서려 하지만 뒤이어 들어온 박형만의 손에 간단히 무마가 된다.
기사이긴 하지만 원래 특전사 출신으로 싸움에도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먹 한 대씩 맞고 쓰러진 사내들을 보던 박한일이 눈살을 사정없이 찌푸린다.
“너 지금 누굴 건든 줄 알고나 있어?”
“잘 알죠! 천동그룹 의류 사업부 박한일 이사님!”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에 놀란 그가 재차 살피다 이내 잇소리를 냈다.
뒤늦게 그녀가 백파의 손녀인 진소연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진소연, 네가 여긴 왜 온 것이지?”
“왜 오긴요? 여기 사장님과 전 동업 관계거든요.”
“동업……관계?”
순간 박한일의 낯에 낭패감이 깃든다.
그녀가 등장했을 때 의심했어야 했던 것인데 가죽에 눈이 멀어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들까지 끌고 온 마당에 그냥 물러서기도 그랬던 박한일은 그녀가 말한 동업이 무엇인지 물었다.
“여기 사장님이 이것 말고도 보석을 취급하거든요. 나름 그쪽에 연줄이 있어서 같이 하게 됐어요. 왜요, 그쪽에도 다리를 놓으시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