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10
차원상인 110화
빙긋 웃는 그녀가 오늘 따라가 얄밉기 그지없다.
바드득 이를 가는 상대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주위를 살핀다.
“그나저나 사무실이 꽤나 어지럽네요. 박한일 이사님은 거래할 때 이런 식으로 하나 봐요?”
‘뭐야, 저 여자!’ 하며 주위 사내들이 달려든다.
그걸 본 박형만이 앞으로 나섰고 한바탕 일이 벌어지려는 찰나, 박한일이 손을 들어 멈춰 세웠다.
“그만 가도록 하지.”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이상하긴 했지만 분위기로 보아 뭔가 있는 듯해 사내들은 아무 말 없이 사무실을 밖으로 나갔다.
“진소연! 할아버지한테 안부 좀 전해 주게. 저번에 못 찾아 뵌 것 미안하다고 말이야.”
“남에게 전해 듣는 안부 인사 따윈 좋아하시지 않지만 그래도 이사님 봐서 말씀드릴게요.”
‘할아버지 덕에 사는 주제에! 시건방진 것이 하늘을 찌르는 군!’
욕지거리를 퍼붓던 박한일이 막 발끝을 돌려 가는데 돌연 진소연이 말문을 다시 연다.
“참! 웬만하면 이 회사 사장은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할아버지가 매우 좋아하는 분이거든요.”
이마 가득 골이 파였지만 박한일은 일언반구 없이 그대로 발길을 옮긴다.
괜히 건드려 봐야 백파만 들쑤신 꼴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분노를 삭이며 사무실을 나선 그는 사내들을 데리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쾅!
“빌어먹을 계집! 감히 날 농락해? 어디 두고 보자!”
벽면을 후려친 주먹이 바르르 떨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가 건물 밖으로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오거리 파 두목 조판석이 곁으로 다가선다.
“이사님!”
“왜?”
“아무래도 이번 일에서 빠져야 할 것 같습니다.”
“빠진다고?”
박한일의 성난 눈초리가 그로 향한다.
하나, 별 감흥 없는 듯 뻔히 쳐다보기만 한다.
전 같으면 고개를 떨궜을 조파석이 말이다.
뭔가 있다 싶은 생각에 그 이유가 뭔지 물었다.
“대부가 움직였습니다.”
“대부? 강명운이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사십 년 전, 두 달 만에 서울을 통일한 이로 유명한 강명운은 전국을 통일하다시피 한 조폭계의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하지만 십오 년 전, 검찰에서 대규모 조폭 검거에 나서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조직이 와해되고 말았다.
지금은 뒷방 노인네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소문에 불과하고 현실은 전국을 손아귀에 쥔 채 주물럭거리는 한국 밤 세계의 지존, 대부가 되었다.
정치계, 경제계 거물들도 쉬이 움직일 수 없는 그가 고작 신발과 가방 공장이나 하는 조그만 회사를 위해 일어선 것이다.
진소연과 더불어 강명운까지 나섰다는 말에 박한일은 더욱더 찌푸려져 간다.
마치 참혹하게 구겨진 종잇장처럼 말이다.
“아, 알았다!”
“죄송합니다, 이사님!”
한 차례 허리를 숙인 조판석은 수하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홀로 남아 노기를 참지 못해 부르르 떠는 그의 곁에 직속 부하인 천 부장이 다가왔다.
“이사님!”
“천 부장, 시끄러!”
단숨에 입을 봉해버린 박한일은 붉게 충혈된 눈을 번득이며 내뱉었다.
“내 언제가 꼭 백파, 그 노인네를 죽여 버리고 말 것이야. 꼭!”
상처 입은 맹수의 울부짖음처럼 미친 듯이 소리쳐 댄다.
제5-4장
한편, 박한일이 나가는 것을 지켜본 진소연은 남은 사무실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혹시 이중에 서우란 분이 계신가요?”
난데없는 호명에 어리둥절해 하던 서우는 슬며시 손을 들었다.
다소 긴장한 그를 본 진소연은 피식 웃으며 곁으로 다가갔다.
“사장분이 자리에 없으면 서우란 분에게 전해달라고 해서요. 보석 판매 현황서예요. 보시고 전해 주세요.”
“아, 예!”
무슨 상전 모시듯 서류철을 받으면서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는지 모른다.
얼떨떨해 하는 서우가 왠지 재밌다 싶었지만 겉으로 별 내색은 하지 않았다.
괜히 상대가 기분 상할까봐 그런 것이었다.
막 발길을 돌려 나가는 진소연을 보던 우리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연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설마…….”
뭔가에 충격을 받은 듯 휘청이던 그녀는 이내 주저앉고 만다.
뒤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는 듯 진소연은 박형만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뒤늦게 잘 가라며 인사를 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서연은 탁자에서 물을 가져와 한 모금 마시게 했다.
“언니! 갑자기 왜 그런 거야?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나……나라……. 나라야!”
“우리 언니! 내 말 안 들려?”
“나라가 분명해!”
하나, 우리는 전혀 듣지 못한 듯 딴소리만 해댄다.
서연은 당혹감에 주위를 둘러보지만 모두들 고개만 내젓는다.
그렇게 우리를 두고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 하나가 들려온다.
“뭐야? 사무실 왜 이래?”
이제 막 차원을 건너온 우현과 티아가 난장판이 된 사무실을 보며 한마디 한 것이다.
“그게 말이지.”
얻어맞은 볼을 감싸 쥔 채 일어서던 서우 곁으로 우리가 뛰쳐나간다.
“우리야!”
“언니! 언니!”
사람들이 그녀를 부르짖지만 들리지 않는 듯 사무실 밖으로 나선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우현은 서우에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나중에 이야기 하고 일단 이쪽으로 와 봐!”
뭔가 수상한 눈빛을 자아내면서도 우현은 일단 순순히 응한다.
직원들에게 주위를 정리케 한 서우는 서류철과 어지럽혀진 자신의 책상에서 서류철 몇 개를 꺼내 진소연이 준 것과 함께 들고는 뒤쪽으로 향했다.
다가오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마디 한다.
“너 어디 맞았냐? 볼이 왜 그래?”
“천동그룹 의류 사업이사 박한일이란 사람이 와서 한바탕하고 갔다.”
“천동그룹…… 박한일 이사?”
“그래! 뭐, 가죽 창고가 어디냐고 다그쳐서 답을 안했더니 사무실을 뒤지더라. 내 볼은 그걸 막다가 한 대 맞은 거고 말이야.”
순간 우현의 눈매가 좁혀든다.
말하는 모양새가 일반 사람에게 맞은 것 같지 않아서였다.
“혹시 조폭까지 데려왔냐?”
“그런 것 같은데 백파에서 온 사람들 보고는 꼬랑지 말고 도망쳤어.”
“백파 사람들도 왔었어?”
“어! 진소연인가 하는 사람이 와서 보석 판매 현황서를 주고 갔어. 이거니까 있다가 한 번 봐!”
손에 쥔 서류를 잠시 훑어보다 이내 옆에 둔다.
그리고는 슬쩍 고개를 돌려 서연과 보영에게로 향한다.
“근데 보영이 하고 서연이는 여기 왜 있어?”
“일하는데 간식 좀 먹으라고 사 왔어.”
“그래? 참! 우리는 또 왜 왔데?”
“배고프다고 밥 사달라고 왔는데 전화만 죽어라 받다가 아까처럼 휑하니 가 버렸다.”
밥 사달라고 왔다는 말에 우현은 기가 막혀한다.
“우리, 걔는 여기가 지 안방이야? 어떻게 된 게 툭하면 찾아와!”
“배고플 때 찾아오라고 네가 했잖아?”
“그건 개인적으로 내게 찾아오라는 거지. 회사로 쳐들어오란 게 아니야.”
“그래도 오늘 하루 거래처 전화 받느라 애쓴 사람인데 그리 말하면 되냐?”
회사 일에 도움이 됐다고 해서 그런 것일까?
우리에 대해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서우가 든 서류철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건 뭐야?”
“일단, 이건 어제까지 주문 받은 물량이다.”
그러냐며 끄덕이던 우현은 건네받은 서류철을 보다 이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 숫자가 이래? 킬 힐이 칠만 켤레, 단화 구두가 삼만, 파우치 백이 육만……. 합이 삼십만이 넘잖아! 이거 진짜로 주문 받은 거 맞아?”
“여기 직원들이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전화 상담해서 얻은 거야.”
“그래도 너무 많잖아?”
“너무 많지! 공장장님이 하시는 말로 하루에 만들 수 있는 건 킬 힐 만, 단화 팔천 등해서 총 삼만 쯤 되는 데 현재 받은 주문량에 비해 새 발의 피지.”
그렇다.
현재 우현과 손잡은 공장장이 운영하는 공장은 만들어진 지도 오래됐고 시설도 낙후되어 물품 삼만 개도 겨우겨우 짜낸 숫자인 반면, 주문량은 하루가 멀다 하고 폭등해 현재 하루에만 십만 개에 가까운 상태였다.
이러다 보니 아무리 공장에서 열심히 찍어내 봤자 늘어나는 것은 주문량이요, 걸려오는 것은 독촉 전화였던 것이다.
“생산 라인을 더 늘릴 수는 없데?”
“워낙 오래 된 공장이라 생산 라인 늘리느니 아예 새로 짓는 게 비용 면에서 더 낫단다.”
한마디로 생산 라인을 늘리는 것은 깨진 항아리에 물 붓는 격이란 말이었다.
다시 서류철에 적힌 숫자를 보며 난감해 하던 우현이 물었다.
“공장장님은 이 상황에 대해 뭐라 해?”
“일단, 하청업체에 일을 맡겨 풀어가자고는 하는데 워낙 주문량이 많다보니 동원해야 하는 업체 수도 많아지고 그로인해 각 업체 간의 기술력 차로 물품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해.”
“위험성이 있다는 말이군.”
“아무래도 공장장님께 맡긴 것만큼 신경을 쓰긴 어려울 테니까 말이야.”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한다.
잠시 턱을 매만지던 우현이 재차 말을 건다.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공장장님도 같은 의견이야. 조금 있다가 하청업체 리스트를 가지고 직접 방문하신다고 했으니까 네가 들어보고 결정해.”
“알았어. 그건 그렇게 할게.”
막 서류철을 내려놓기 무섭게 또 다른 것을 들이 민다.
“이건 또 뭐야?”
“업무 제휴를 희망하는 업체하고, 백화점 내 입점 문의를 해온 곳이야.”
우현은 받은 서류철을 살피며 말을 건넨다.
“백화점 내 입점이야 현재 우리 회사 물품들이 잘 팔리고 좋으니 가게 자리 하나 내줘서 그 인기에 자신들도 편승하겠다는 건 알겠는데……. 대체 업무 제휴는 뭘 가지고 하자는 거야?”
“현재 가죽을 사용한 제품 중 많이 사용되는 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해. 신발, 가방 그리고 옷이야. 그중 우리가 생산하는 것은 신발과 가방이고, 남은 한 가지 옷을 만들어 팔겠다는 거지. 우리 가죽으로 말이야.”
“그럼, 아까 천동그룹 이사가 와 가죽을 달라고 한 것도 다 이것 때문이라는 거야?”
“지금 그 가죽만큼 핫한 것도 없잖냐.”
하긴 구두와 가방이 그리 팔린 것을 보면 그런 것도 같다.
잠시 서류철을 살피던 그는 뭔가 떠오른 듯 서둘러 물었다.
“참! 저번에 신발하고 가방 출시한 다음 옷도 만들 예정 아니었어?”
“계획은 그렇게 했는데 정작 공장장님이 공장일로 너무 바빠서 옷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공장 사정이 안 좋은데 억지로 끌고 가려다 보니 다른 곳에는 시선을 돌릴 틈이 없는 모양인가 보다.
콧등을 긁적대던 우현은 슬쩍 고개를 쳐든다.
“그래? 업무 제휴에 관해 네 생각은 어때?”
“옷 제작에 필요한 디자이너나, 공장이 전무한 우리로서는 인프라가 많은 이들과 손을 잡게 되는 것이니 꽤 괜찮은 것 같아. 문제는 나중에 우리가 옷에 관련된 사업을 할 때 그들이 시장을 먼저 선점한 상태라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