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12
차원상인 112화
그 뒤를 쫓아 우리가 뛰어가려 하지만 한 발 먼저 박형만이 막아섰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 아가씨는 시설 같은데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에요. 나라 맞아요! 나라 맞다고요!”
거듭 말하던 그녀는 시선을 돌려 진소연을 보았다.
“나라야! 나라야! 여기 사장이 만세야! 우리, 나라, 만세 할 때, 그 만세 말이야.”
순간 진소연의 발걸음이 우뚝 섰지만 그뿐이다.
뭔 일 있었냐는 듯 진소연은 가던 걸음을 계속해서 내디뎠다.
재차 외치려는 그녀를 박형만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거칠게 땅바닥에 쓰러트린다.
얼마나 세게 밀었는지 한 번 쓰러진 우리는 쉬이 몸을 일으키질 못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다가오면 저도 손 쓸 수밖에 없으니 그리 아십시오.”
이 말을 끝으로 박형만은 몸을 돌려 차로 향하였다.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몸을 일으키려 애를 썼다.
겨우겨우 상체를 일으키자 차에 올라타는 박형만이 보였다.
“나라야! 나라야!”
미친 듯이 외쳐대는 그녀의 모습에 운전석에 앉은 박형만의 눈살이 험악해진다.
“정말…….”
맺던 안전띠를 벗고 밖으로 나서려는 그를 진소연이 막았다.
“아, 아저씨! 그, 그만 가요!”
돌부처처럼 얼어 버린 박형만은 슬쩍 백미러를 보았다.
그러자 두 줄기 눈물을 새겨놓은 진소연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차에 들어왔을 때부터 울었는지 제법 눈물을 많이 흘린 것 같았다.
난생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데 재차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그만 가요!”
입술을 깨물던 박형만은 시동을 켜고 차를 움직여갔다.
점점 멀어져가는 차 안에서 진소연은 차창에 기대 여전히 엎어져 있는 우리를 보았다.
“우리…… 언니 미안해! 흑! 흑흑!”
그랬다.
그녀 역시 아까 자신을 두고 나라라고 말하는 우리를 봤을 때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하지만 백파를 할아버지로 둔 이상 자연스럽게 적들이 많아진 상태였던 진소연인지라 속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매몰차게 돌아선 것이다.
자칫 자신 때문에 그녀가 다칠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우리가 시야에 잡히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진소연은 차창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박형만이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그때 굳게, 다물고 있던 진소연의 입이 떨어졌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태령 종합 상사 사장이라는 우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사해 줄래……요.”
“회사 말입니까?”
“아니요, 가족 사항이요. 만……세 오빠에게 여동생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굳이 만세가 누구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박형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죠.”
답을 들어서 일까? 눌러 붙은 듯 있던 진소연이 창가에서 떨어져 나온다.
백미러로 그런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쉰 박형만은 조금 전 받은 부탁을 되새긴다.
‘우현이란 자에 대한 조사는 비밀로 해야겠어. 절대 백파님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말이야.’
그 누구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듯 다짐 또 다짐을 한다.
‡ ‡ ‡
지잉!
내려가는 차창 너머로 울고 있는 우리가 보인다.
“나라야! 엉엉!”
무슨 곡을 하듯 울어대는 그녀를 바라보는 한 사내 다름 아닌 천동그룹 의류 사업이사 박한일이었다.
한바탕 성을 내고 뒤늦게 가려다 우연찮게 우리와 진소연 사이의 한바탕 소동을 보게 된 것이었다.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미소까지 띠운 그는 차창을 닫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천 부장을 보았다.
“천 부장!”
“예! 이사님!”
“저 여자하고 진소연이라는 그 싸가지에 대해 조사해 봐! 아, 둘이 갔다던 시설이 뭔지도 알아보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조사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으니 자세하게 알아 봐!”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됐다는 듯 박한일이 손을 휘젓자 천 부장이 차를 출발시킨다.
옆으로 지나쳐가는 우리에게서 시선을 뗀 박한일은 음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었다.
“잘만 하면 진소연이란 저 콧대 높은 계집을 내 품에 안을 수 있을 것 같아.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백파, 그 노인네가 가진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것이야. 큭! 크크크!”
이렇게 우현, 우리, 나라가 그 옛날처럼 또다시 갈라서고 있는 동안, 훗날 백파와 우현간의 싸움의 기폭제가 될 박한일의 음모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제5-5장
박한일 사건이 있은 지도 어느덧 한 달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우현은 대륙에서 하청업체에게 줄 크르베 가죽을 가져오는데 집중을 하였다.
한 번에 두 번, 하루에 총 네 번을 대륙과 현대를 오가며 날라서 그런지 상단을 뒤덮고 있던 가죽도 어느새 창고 반 정도만 남았다.
워낙 공급해야할 물량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나중에 힘들지 않게 미리 챙겨둔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렇게 텅 빈 창고를 채우기 위해 다시 크르베 가죽을 매입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또 한 번 사단을 만들 줄이야.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 영지민은 물론이고 상인들까지 나서서 가죽을 싸들고 오는 바람에 한동안 상단 업무가 마비가 되었다.
이에 헤일러가 불평을 했지만 가죽으로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고 있다는 말에 더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상단 일을 오래하더니 어느덧 상인의 마인드를 가지게 된 헤일러였기 때문이었다.
현대에서는 하청업체가 작업에 들어가면서 회사에 독촉하는 전화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물품의 공급과 수급 또한 원활하게 돌아가게 되었다.
이제 숨 좀 돌릴까 싶었건만 며칠 전 전격적으로 선보인 롱부츠가 또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그동안 롱부츠는 겨울의 상징이라고 할 만큼 여름에는 신기 힘든 구두 중 하나였다.
특히나 신은 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발끝에서부터 밀려오는 그 뜨거운 열기는 살이 익는다 싶을 정도로 덥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여름보다는 겨울에 신기를 선호했었다.
하지만 우현이 들여온 크르베 가죽으로 만든 롱부츠로 인해 이 모든 것이 백팔십도 바뀌어 버렸다.
가죽의 특징 중 하나인 원활한 통풍이 전과는 달리 여름에 롱부츠를 신기 수월하게 만들었고, 뛰어난 신축성으로 인해 다리에 딱 달라붙어 신는 이로 하여금 각선미를 더욱 부각시켜 많은 이들이 패션을 따라, 자신의 취향에 따라 신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무지막지하게 밀려드는 주문량에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청업체와 계약할 때 혹시나 싶어 대여섯 군데 더 늘려 놨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리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우현의 회사가 만든 킬 힐, 파우치 백, 롱부츠는 여성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잇템이 되었고, 그로인해 또다시 무지막지한 주문량이 밀려들었다.
그나마 이쯤에서 멈추면 다행이건만 한국의 이런 기현상에 각국의 언론들이 면발 뽑듯 뉴스를 만들어냈고 그 소식을 접한 많은 외국 기업들이 업무 제휴 및 수출에 관해 문의를 해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한 발 빨리 한국으로 사람을 보내 직접 면담을 신청하는 등 그야말로 아주 글로벌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상황이 이쯤 되자 졸지에 바빠진 것은 우현의 회사에 업무 제휴를 문의했던 한국 내 기업들이었다.
손만 잡으면 대박을 칠 것은 이미 확정된 상태인지라 혹시나 타 회사, 아니 외국 기업에 뺏길까봐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그 결과 지나친 과잉경쟁을 낳게 되었고 기업들은 그야말로 우현의 회사를 모셔가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하루, 아니 한 시간이 멀다하고 갱신되어 가는 계약 조건들에 우현을 비롯해 회사 직원들 모두가 기가 막혀했다.
자고나니 스타가 됐다는 말이 딱 맞다 싶은 상황이다.
다른 사람들은 조건이 좋으니 어서 계약을 하자고 하지만 우현은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럴 것이 앞으로 길어야 1년 반, 짧으면 십 개월 정도 있다가 대륙으로 넘어갈 것을 생각하니 어찌해야 좋을지 결론이 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너무 장사가 잘되도 탈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행복한(?) 고민 속에 빠져있는 동안 어느덧 할인마트 오픈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짝짝짝!
사람들의 박수 속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린다.
동시에 과거 우현 회사 직속상관이었던 김 팀장, 아니 김 점장이 나와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허리를 숙인다.
“오늘 겟 올(Get all) 할인 마트 영등포 본점에 찾아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시작이라 미천하긴 하나 앞으로 정진하여 전국에 저희 할인 마트가 만들어질 때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재차 숙여지는 허리 위로 또 한 번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박수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숙였던 몸을 곧게 폈다.
“저희 매장에 머무는 동안 즐거운 시간이 되시고 원하는 물건을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슬쩍 옆으로 몸을 치우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문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그들에게 직원 몇몇이 작은 봉지에 싸인 백설기 떡을 나누어준다.
휴대하기 편하게 세 손가락 정도 되는 작은 크기라 모두들 부담 없이 받아 든다.
거기다 마트 한쪽에 음료수가 담긴 컵 놓아두고 매장 곳곳에 휴지통을 비치에 어디서든 편하게 버리게 하였다.
물론 직원들이 쓰레기통을 비우느라 수고를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컵을 들고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마셨는데도 매장 안이 그다지 더럽혀지지 않았다.
첫날부터 북적대는 매장을 보며 김 점장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간 힘들었던 일들을 다 보상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친다.
“뭘 그리 보세요?”
“어? 오셨습니까, 사장님!”
시선을 돌리자 고개를 숙이는 티아 곁에 환히 웃고 있는 우현이 보인다.
서둘러 인사를 건네는 그의 곁으로 다가온 우현은 손사래를 치며 말을 건넸다.
“사장은 무슨……. 편하게 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위계질서가 중요한 법입니다. 그리고 어느 회사든 상관이 편하게 말하라는 말이 제일 부담스러운 법입니다.”
“그것도 그렇겠네요.”
과거 영업맨 생활하면서 느꼈던 점인지라 쉽게 인정했다.
슬쩍 시선을 돌려 할인 마트로 향한 우현은 좋다는 듯 끄덕였다.
“아주 좋네요. 그간 고생이 많았겠어요.”
“고생이라 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물품 계약한 거 들여와서 진열한 것밖에 없는데요.”
“그래도 힘드셨을 거 아닙니까? 회사의 지원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냥도 아니고 회사가 바빠서 그런 것을 누구 탓을 합니까? 그리고 첫 매장이라 딱히 지원받을 것도 없습니다. 나중에 2호점 낼 때 지원해 주십시오. 그게 더 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