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14
차원상인 114화
어쨌든 남몰래 중절모에 눈독을 들인 세가주 남궁현철은 사달라고 부탁을 했고 우현은 쾌히 승낙을 하였다.
문제는 사준다고 한 사람이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으니 나름 초조했던 것이다.
선물로 사주기로 한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총관 남궁천옥은 슬며시 말을 건넨다.
“하긴 중절모가 중후한 멋도 있고, 중년의 로망이기는 하죠.”
“주, 중년의 로만? 아니. 노만?”
“로망입니다. 전에 우현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낭만이란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하더군요.”
“중년의 낭만이라……. 왠지 마음에 드는 말이야.”
“저도 그렇습니다.”
둘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다른 장부를 들어 살펴가던 세가주 남궁현철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총관 남궁천옥에게 말을 건넸다.
“참! 이번에 대륙에 파견될 이들은 어찌하고 있는 가?”
“일단, 선별은 끝났지만 창천대와 멸천대 두 곳에서 불만을 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불만이 많다는 말에 세가주 남궁현철은 들고 있던 장부를 놓고 본다.
“불만이라니? 대체 뭔 이유 때문에 그렇다고 하던가?”
“저번에 남궁운혜가 전해온 서찰에 따르면 무력이 강한 이들로 구성해 달라 하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천랑대가 중심이 되어 구성이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야 대륙의 형평상 이곳과는 다른 전쟁에 능한 이들로 뽑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저 역시 그리 설명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이번에 천랑대 대주인 남궁연이 같이 간다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총관 남궁천옥은 슬슬 눈치를 살피며 답을 한다.
그럴 것이 사정없이 좁혀진 미간 밑으로 부릅뜬 호목이 절로 몸을 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세가주 남궁현철은 굳게 다물고 있던 말문을 열었다.
“혹시 공적을 뺏길까 노심초사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정사대전이 끝나 후, 이렇다 할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한 이들입니다. 근데 남궁운혜가 보낸 서찰에 따르면 상단주님이 거주하는 대륙 영지란 곳에는 때때로 몬스터라는 괴물들이 출몰하는데 그에 맞서는 이들이 겨우 오십이 넘는 호위대라는 것과 낭인들뿐이라고 하니 창천대나 멸천대로서는 기회의 땅이란 생각이 들겠지요. 어서 빨리 가 그곳에서 공적을 쌓아 세가의 이름을 드높이고 남궁세가란 곳이 어떤 곳인지 상단주에게 알리고 싶은 그런 곳 말입니다.”
차분히 듣고 있던 세가주 남궁현철은 일리 있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대륙과 중원을 오간다고 해서 굳이 두 개의 무력단체가 있을 필요가 없지. 우리 남궁세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족하니 말이야.”
“창천대나 멸천대도 세가주님과 같은 생각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의 고개가 이내 들려졌다.
“창천대와 멸천대에게 가서 이르게! 대표자 다섯을 선별하고 열흘 뒤 비무를 통해 승자를 가려 많은 이가 이긴 곳에서 대륙에 갈 인원을 뽑을 거라고 말이야. 내 말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그를 보고 나서야 세가주 남궁현철은 놓았던 장부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때 그곳에 꽂혀있던 서찰들이 탁자 위로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제법 많은 것이 못해도 이십여 장은 되는 듯하다.
더러 낯익은 이름도 보이는 것이 좀 이상하다 여긴 그는 이게 무엇인지 물었다.
“아, 일전에 상단주님이 동부와 북부에 지부를 설치하신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것에 대한 소문이 퍼졌는지 두 달 전부터 자신들이 있는 표국에 만들어달라고 건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다 남궁세가 제자들이 하는 표국에서 올라온 건의서란 말인가?”
“아시다시피 저희 세가가 몰락을 한 후 제자들이 하는 표국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개중에는 문을 닫은 곳도 많고 말입니다.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중 세가가 상단으로 재기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어려운 형편을 좀 덜어볼까 해서 보낸 것들이죠.”
“하긴 명망이 높아도 몰락하면 개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무림이니 말이야.”
“그 말씀이 맞습니다.”
세가주 남궁현철은 한숨을 내쉬며 서찰을 바라본다.
연신 요동치는 눈동자가 심난한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다.
재차 내쉬던 그는 슬쩍 시선을 총관 남궁천옥에게 두었다.
“상단주님께서는 뭐라 하던가?”
“솔직히 도와주고 싶어도 지금의 상단 형편으로는 어렵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팽창은 자칫 조직을 방만하게 만들어 간신히 일으켜 세운 상단을 무너트릴 수도 있다 했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 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서 말입니다.”
“하긴 변변한 지부도 아직 설치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단 규모를 키우는 것은 과거의 전철을 밟을 수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아무리 황제라도 천하의 모든 거지를 구제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야. 그런 건 인간이 아닌 신의 능력이니 말이야.”
“하지만 좀 난감합니다. 삼 개월 전만해도 한 달에 두세 통 오던 것이 요즘엔 하루가 멀다 하고 십여 통의 서찰들이 날아드는데 무작정 안 된다고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순간 세가주 남궁현철에게서 한숨이 내쉬어진다.
답답한 그의 마음이 어떨지 능히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건의서를 보낸 이들에게 아직은 때가 아니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답신을 보내게. 그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책일 것 같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남궁천옥이 고개를 주억대던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라는 세가주 남궁현철의 말이 들리자 세가 제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온다.
“가주님! 제갈세가 제갈온형 님이 오셨습니다.”
“제갈온형이?”
그는 고개를 돌려 총관 남궁천옥을 바라본다.
그럴 것이 제갈온형은 제갈세가 소속 상단을 운영하는 이로 얼마 전 끝난 무상연(무가 상단 연합을 뜻하는 말로 무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가들이 운영하는 상단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에 참석했던 이였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시선에 담긴 뜻을 아는지 슬며시 다물고 있던 말문을 열었다.
“최근 제갈세가가 강소성 땅을 사들이면서 비단 사업에 끼어들었다 합니다. 마침 우리가 비단을 매입하고 있는 중이니 서로 거래를 어떻겠냐 하기에 언제 때가 되면 들리라 했는데 예상보다 일찍 온 것 같습니다.”
“항간에 강소성 땅값이 치솟는다 하더니 다 제갈세가 때문인 모양이군.”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거래를 청하러 온 사람을 그대로 보내기는 어려운 법이다.
세가주 남궁현철은 일단 들이라 하였다.
잠시 후, 식솔과 함께 청감빛의 장삼을 입은 한 중년 사내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제갈온형이라고 합니다.”
“어서 오게! 세가주 남궁현철이라고 하네.”
잠시 일어나 상대를 향해 예를 취하던 세가주 남궁현철이 의자를 권했다.
남아 있던 식솔에게 차를 부탁한 그는 상대가 자리에 앉자 이곳에 온 연유에 대해 물었다.
“여기 총관이신 남궁천옥 님을 통해 일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최근 저희 세가 상단에서 새로이 비단 매매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판로가 없어 힘들었는데 마침 남궁세가 상단에서 비단을 매입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 염치 불구하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우리더러 비단 매입을 해 달라 그 말인가?”
“그게 정 불편하신다면 물품 교환도 괜찮습니다.”
세가주 남궁현철의 시선이 상대를 향한다.
말 모양새도 그렇고 왠지 느낌에 비단 매입이 다가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눈가에 짙게 덮인 물욕이 이를 반증해주는 것 같다.
묵묵히 바라보던 그는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물품교환이라? 그럼, 묻겠네. 제갈세가 쪽에서 원하는 품목이 뭔가?”
“듣자하니 색지와 무늬 한지를 공급하는 곳이 남궁세가 상단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저희 쪽에서 나는 비단 전량을 팔 터이니 지금 말한 두 품목의 일정량을 떼어주셨으면 합니다.”
“한마디로 색지와 무늬 한지를 구입하고 싶다는 말이군.”
“비단 매입할 자금이 부족하시면 그리 해달라는 말입니다.”
“자금이 부족하다라……. 대체 얼마나 팔 생각이기에 그러는 것인가?”
“현재 저희가 가지고 있는 비단은 약 팔만 필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팔만 필…….?”
순간 세가주 남궁현철의 미간이 사정없이 좁혀든다.
현재 시장에 나도는 비단은 대략 4~5만 필 정도 된다.
근데 제갈세가가 그보다 웃도는 팔만 필을 가지고 있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은 것 같지만, 지금 한 말을 거꾸로 되짚어 보면 상황이 명료해진다.
즉, 제갈세가는 시장에 나도는 비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비단을 제조하는 대부분의 농가와 거래를 통해 매입했다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시장에 깔린 비단이 모두 소진되는 순간 어떻게든 제갈세가와 거래를 터야 한다는 말이 된다.
‘제갈세가! 본 세가 상단을 노리고 있는 것이냐?’
그랬다.
사실 제갈세가의 상단은 중원 십대 상단에 들 정도로 그 규모가 거대하다.
그런 곳이 굳이 자신들이 하는 사업도 아닌 비단 매매업에 끼어든 이유는 남궁세가 상단의 수익 중 6할을 책임지는 색지와 무늬 한지를 매점매석하기 위한 계책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남궁세가를 나락에 떨어트릴 생각이고 말이다.
남궁현철은 훤히 드러난 상대의 속셈에 은근 노기가 끓어올랐다.
상대가 얼마나 세가를 하찮게 생각했으면 이럴까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것도 깨어지려는 찰라 밖에서 식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단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앉아있던 세가주 남궁현철이 일어선다.
그건 옆에 있던 총관 남궁천옥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갈온형 역시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남궁세가 상단이라 하여 세가주가 상단주일 줄 알았는데 따로 상단주가 있고, 세가주나 총관마저 일어서 맞이할 정도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문이 열리며 한 사내와 함께 벽안의 미녀가 들어온다.
특히나 설풍이 일 듯 냉기어린 얼굴을 가진 여인은 그 미모가 아주 뛰어나 쉬이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멍하니 바라보는 그에 잠시 갸웃대던 우현은 세가주 남궁현철을 향해 말을 건넸다.
“세가주님,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별일 있겠는가? 그보다 좀 늦었군.”
“최근 들어 일이 많아져서 늦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 손을 내밀어 맞잡는다.
난생 처음 보는 인사법에 제갈온형은 잠시 고개를 갸웃댄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우현은 총관 제갈 천옥이 앉았던 자리에 몸을 얹다 뭔가 생각난 듯 꺼내 든다.
“참! 일전 하신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