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15
차원상인 115화
“오호! 중절모 말인가?”
“그렇습니다.”
뭐가 급한지 받아들기 무섭게 머리에 쓴다.
동경까지 들고 살피던 세가주 남궁현철은 만족스러운 빛을 자아낸다.
“고맙네. 내 이 선물 죽을 때까지 간직하지.”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하시면 되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자네가 준 선물이 아니던가? 당연히 그리 해야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런 그들을 번갈아보던 제갈온형은 두 눈을 껌벅댄다.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중절모도 그렇지만 나이도 어려 보이는 우현과 마치 친우처럼 구는 세가주 남궁현철의 모습이 납득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제갈온형을 보던 우현이 물었다.
“근데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 제갈세가 사람인데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단을 운영하는 이이네.”
“그렇습니까?”
한 차례 주억대던 그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십니까? 이곳 상단주인 장우현이라고 합니다.”
“제갈세가 제갈온형이라고 하…… 아니,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하대를 하려다 부라리는 세가주 남궁현철의 모습에 이내 존칭으로 바꾸었다.
조금은 겁먹은 듯한 상대의 모습에 우현은 대충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듯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왜 사람에게 겁을 주고 그러십니까?”
“명색이 남궁세가의 장로인 자네가 하대를 받는 건 아니라 생각이 드네.”
“그래도…… 아닙니다.”
우현은 자신은 상인에 불과하다며 한마디 하려다 이내 멈춘다.
외부 사람 앞에서 세가주에게 대드는 것은 좀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둘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던 제갈온형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남궁세가의 계보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나, 그 어디에도 장우현이라는 이름은 보이질 않는다.
‘새로 들인 장로인가?’
그렇지 않아도 길바닥에 나앉았던 남궁세가가 이렇게 다시 재기한 연유를 알 수가 없었는데 아무래도 저 우현이라는 자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나중에 돌아가면 조사를 해봐야겠다며 마음먹던 그때, 짧은 한숨과 함께 우현이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하나, 정작 대답은 그가 아닌 총관 남궁천옥에게서 흘러나왔다.
“상단주님!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말해 보세요.”
총관 남궁천옥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축약해서 들려주었다.
말없이 듣고 있던 우현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또한 제갈세가의 속셈이 무엇인지 들으면서 바로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이미 말문을 닫은지 꽤 됐건만 정작 우현에게선 한 마디 말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점차 무거워지는 공기에 숨통마저 조여오던 그때 그의 시선이 세가주 남궁현철을 찾았다.
“제가 지금 돌아와 상단을 파악하지 못해서 그런데 현재 상단의 자금으로는 비단 팔만 필을 구입 못합니까?”
“조금 부족하네만 이번 거래를 끝내면 충분히 가능하다 여겨지네.”
“그럼, 굳이 물품 교환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리 봐도 되네.”
주억대던 우현은 고개를 돌려 제갈온형을 보았다.
“물품 교환 따윈 필요 없다고 합니다만…….”
“하, 하지만 시장에 나도는 비단이 없어지면 필요하실 텐데요.”
“그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돈이 들긴 하겠지만 이곳이 아니라도 구할 곳이 많으니 말입니다. 거기다 현재 제가 개인적으로 비단을 만들려고 준비 중에 있고 말입니다.”
그렇다.
현재 대륙의 영지에 비단 제조가 가능한지 실험 중에 있었고, 굳이 중원이 아니라도 현대에서 비단을 구하면 그만이니 별문제는 없었다.
물론 이곳보다 더 많은 돈이 들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졸지에 외통수에 빠진 제갈온형은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대로 밀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시선을 쳐든다.
‘흥! 과거에 무림제일가라고 해서 지금도 그런 것은 아니지!’
무림제일가란 말은 허울 좋은 이름뿐이라 업신여기던 그는 명망 높은 자신의 세가를 들먹이며 상대를 위협해본다.
“지금 상계에서 우리 세가를 내치고 살아가긴 힘드실 텐데요.”
말을 듣기 무섭게 우현의 표정이 싹 사라진다.
세가를 들먹이는 그에게서 과거 몰핀 남작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티아 역시 그런 그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제갈온형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상단주님이 제일 싫어하는 곳을 건들다니……. 바보군!’
아니나 다를까? 우현의 좁혀든 미간 밑으로 싸늘한 한기가 감돈다.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이 아니라 현재 상황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현재 상황이 그렇다라…….”
빙긋 웃던 우현이 재차 물었다.
“제가 묻죠! 제갈세가는 정말 그럴 수 있습니까?”
“예? 그게 무슨…….”
“진짜로 저희 상단을 무너트릴 수 있겠냐 이 말입니다.”
답을 하려던 제갈온형의 귀에 또 한 번 말이 들려온다.
“잘 대답해야 할 겁니다. 답에 따라 제갈세가 상단을 없앨지 말지를 결정할 테니 말입니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자 눈앞에 여유 가득한 우현이 보인다.
근데 묘하게도 그 모습이 마치 생사여탈을 손에 쥔 염라대왕 같다.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던 제갈온형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럼,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상단주님께선 제갈세가 상단을 없앨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
우현은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남궁세가의 무력이야 어떨지 잘 알고 계실 테고, 제 개인 금력으로 말하면 대략 팔백만 필은 지금 당장 구입할 수 있습니다.”
‘파……팔백만 필…….’
제갈온형의 두 눈이 희번덕대는 것을 넘어 아주 툭 튀어나올 것만 같다.
팔만 필을 구매하는데 만도 세가 재정의 사분의 삼이 들어갔다.
한데 상대는 남궁세가 상단 돈이 아닌 개인이 갖고 있는 돈으로 지금 당장 팔백만 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제갈세가 일 년 재정의 약 십여 배 가까이 되는 금액이며, 황실로 따지면 반이나 되는 엄청난 것이다.
물론 우현이 그 정도로 큰돈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대륙의 상단과 현대에서 하는 사업 자금을 모조리 긁어모은다 해도 삼분의 이 정도 될까 말까 하고 말이다.
다만 분위로 보아 팔만 필이 엄청난 액수이고 그것의 백 배면 상대로 하여금 겁을 먹지 않을까 생각 때문에 그리 말한 것뿐이다.
일종의 블러핑이라고 볼 수 있었다.
‘좀 지나쳤나?’
세가주 남궁현철과 총관 남궁천옥의 분위기로 보아 심했나 싶었지만 상대의 모습은 아무래도 속아 넘어간 것 같아 말을 좀 더 덧붙여본다.
“아직도 저희와 해볼 생각이라면 팔백만 필을 구입할 수 있는 그 금액을 지금 당장 시장에 풀까 하는데 그러면 제갈세가는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분명 입은 꾹 다물려 있는데 제갈온형의 고개는 절레절레 돌아간다.
말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남몰래 실소를 하던 우현은 종지부를 찍겠다는 듯 물었다.
“그럼, 묻겠습니다. 아직도 저희 상단을 상대해 보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답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던 그때 늙수그레한 목소리들이 방 안에 울려 퍼진다.
“거봐! 저놈 쉽게 상대하지 못할 거라 했지.”
“남궁세가에서 그리 많은 돈으로 밀어붙이는데 어찌 이길 수 있겠나?”
“그러니까 왜 저놈이 도발을 할 때 가만히 있었어. 나서서 그만두게 하라고 했잖아.”
“내 이리될 줄 알았나?”
“어쨌든 자네 중절모 받기는 틀렸어!”
“끄응!”
앓는 소리와 함께 두 노인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한 사람은 익히 아는 이로 검은 중절모 없이는 못 산다는 남궁세가 태장로인 남궁조공이었고 청아한 노문사 차림의 한 이는 제갈온형의 큰아버지이자, 전대 가주인 제갈명이었다.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방 안의 모든 이들이 일어선다.
하나,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남궁조공이 손을 내젓는다.
“됐어! 그만들 앉아!”
졸지에 엉거주춤한 채 어쩔 줄 모르던 사람들은 뒤이어 괜찮다는 제갈명의 말에 이내 자리에 앉았다.
“온형아, 그만 하거라!”
왠지 세가의 명예를 실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던 제갈온형의 고개가 들린다.
“크……큰아버님!”
“상계에서 상대의 역량도 모른 채 가름하는 것은 우물에 던져진 개구리가 대해를 가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상단주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순간부터 이미 진 싸움이었다는 말이다. 내 말 알겠느냐?”
제갈명의 말대로 상계는 그 어느 곳보다도 암투와 돈의 힘이 강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상대의 능력이 어떤지도 모른 채 상대하려는 것은 그야말로 불길로 몸을 던지는 불나방과도 같은 일이다.
이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제갈온형이기에 더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제갈명은 시선을 돌려 이번엔 우현에게 말을 건넸다.
“난 제갈명이라고 하네. 온형이가 본의 아니게 자네에게 무례하게 군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저놈이 원래 욕심이 그리 많지 않은 아이인데 이번에 상단 총관이 되면서 조금 과해진 것 같네, 용서하게!”
“욕심이 과한 건 이해하지만 집안 들먹이는 건 고치라고 하십시오. 무슨 애도 아니고 내 집 힘 있다, 잘산다 자랑하는 건 또 뭡니까?”
순간 남궁조공에게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하긴 명망 높은 제갈세가의 후세가 고작 집 자랑하는 철부지 어린애로 바뀌었으니 웃을 만도 하다.
하지만 남궁조공의 비웃음만은 싫은 듯 제갈명이 매섭게 쏘아본다.
그래서일까? 돌연 남궁조공에게서 헛기침 피어오르며 슬쩍 시선을 피해버린다.
그걸 보며 한숨을 내짓던 제갈명은 이내 고개를 돌려 우현을 보았다.
“내, 집에 돌아가자마자 단단히 타이를 테니 그만하게.”
단단히 배알이 꼬인 듯 입을 삐죽이던 우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한 집안의 웃어른인데 계속해서 무시하는 건 좀 그렇다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다음부터는 꼭 그러지 말라 하십시오. 그리하는 이 치고 주위 사람 안 다치게 하는 이는 없으니 말입니다.”
“내 꼭 그렇게 하지.”
가르치는 듯한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닌지라 일단 수긍했다.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제갈명이 아까 하던 거래라는 것을 하자 하였다.
하나, 조금 전 일로 심기가 꼬인 우현인지라 퉁명스럽게 답을 했다.
“아직도 저희와 거래를 하자 하십니까?”
“그리 퉁명하게 하지 말고 일단 조건부터 들어보게.”
제갈명은 아이 달래듯 우현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그가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보낼 수도 없어 일단 조건이 뭔지나 들어보기로 하였다.
“알겠습니다. 그 조건이 뭔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며 주억대던 제갈명은 식솔이 갖다 준 차를 한 모금 머금고는 끊어졌던 말을 이었다.
“현재 본 세가에 있는 비단 팔만 필 중 상단에서 사들이는 액수의 1할을 뺀 금액으로 팔겠네. 물론 필요한 수량만 팔 것이니 굳이 전량 구매할 필요는 없네. 또한 현재 판매중인 색지나 무늬 한지에 대해선 주는 만큼만 구입을 할 것이며 판매할 때는 자네 상단에서 판매액의 1할을 더해 팔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