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16
차원상인 116화
순간 주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누가 들어도 이건 무조건 우현에게 좋은 거래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제갈세가에서 왜 이렇듯 밑지는 거래를 하냐는 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던 우현은 슬쩍 시선을 들었다.
“제 생각엔 그것 말고도 또 조건이 있을 것 같은데 말씀해 보시죠.”
“자네 말대로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네. 그건 바로 앞으로 행해질 양초와 가로등 판매에 우리를 끼워달라는 것이네.”
한껏 찌푸린 우현의 얼굴이 남궁조공에게로 향한다.
사실 양초 판매 사업은 세가 내에서 세가주인 남궁현철, 총관인 남궁천옥, 남궁조공과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어찌 제갈명이 알고 조건으로 걸어올 수 있겠는가? 필시 남궁조공이 가르쳐줬기 때문에 아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선이 맞닿기도 전에 이미 남궁조공의 고개가 홱 돌아가 있다.
‘저 노인네가 남의 밥그릇에 초를 치고 난리야?’
마음 같아선 한바탕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장소가 아닌지라 일단 차후로 미뤘다.
하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아 죽일 듯이 쏘아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일단, 그 조건은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거절의 빛을 내비치는 그에게서 제갈명은 돈 냄새를 맡았다.
사실 남궁조공이 양초가 뭔지 말해줬을 때 반신반의 했었다.
전 중원의 밤을 낮처럼 밝힐 수 있는 물건이라니 대체 어떤 것이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제갈온형의 위협에 애들 집 자랑하는 거라 치부하며 맞서던 그가 이렇듯 말을 흐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돈 냄새가 풍긴다.
“그러지 말고 우리도 껴 주게. 어차피 백성을 위해 만든 물품이니 되도록 많은 이들이 써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면 파는 곳도 많아야지. 안 그런가?”
또 한 번 우현의 시선이 남궁조공을 찾는다.
하나, 이번에도 예상하고 있었는지 고개를 돌리고 있다.
‘망할 놈의 늙은이! 모조리 싹 말해구먼!’
연신 입술을 삐죽이던 우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제갈명을 보았다.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백성들을 위해 쓸 물건을 나라에다 파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백성 개개인에게 따라 파는 게 좋겠습니까?”
“그거야 나라에다…….”
“그렇습니다. 제가 상황을 봐야겠다고 했던 건 황실에 양초를 팔아 왕도와 성도 거리에 기본적인 가로등이 설치되면 그 뒤에 팔기 위해서입니다.”
두 눈을 껌벅대던 제갈명이 되물었다.
“혹시 자네 황궁을 양초로 대낮처럼 환히 밝힐 생각인가?”
“그래야 치안 문제도 가라앉고 할 것 아닙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말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왜 황궁이 어두운지 우현이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색이 황제가 황궁을 밝히고 싶다면 그 누구보다도 환히 만들었을 것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황궁이 해만 지면 십여 군데 초소만 빼고 어둡게 했을 것 같나? 그건 다 이유가 있어서 일세.”
“어둡게 하는 이유가 있다? 대체 그 이유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건 황제의 암살을 막기 위함일세. 자네는 모르겠지만 황궁 구조는 미로처럼 대부분의 건물이 비슷비슷하다네. 특히나 어두운 밤에는 더 구별하기 쉽지 않다네. 그래서 자객들이 황궁에 들어가도 끝내 황제를 찾지 못하고 죽고 마는 것이네. 그런데 자네 말대로 대낮처럼 환하게 밝힌다 치세. 황궁 전체를 금위위로 깔지 않는 이상 황제의 목숨은 쉬이 보장하긴 어려워진다네. 그리고 중원의 각 성도에 팔 생각이라면 차라리 황제보다는 각 성주를 상대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네.”
그랬다.
대부분의 아시아 고대 왕국들 대부분이 왕궁을 환히 밝히지 않는 건 왕이 암살에 당하지 않도록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특히나 중국은 황궁 내 건물을 비슷비슷하게 만들어 더 찾기 힘들게 하였다.
이는 일본이 건물 내에 미닫이문을 많이 만들어 대체 어디로 통하는 문인지, 옆인지, 앞인지 구분을 못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황궁을 환히 밝히는 것은 적으로 하여금 위치 파악하기 쉽게 만들어 결국 암살 위험성을 더욱더 부추기게 된다.
이런 것을 잘 모르는 우현이기에 황궁과 중원 곳곳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현실에 난감해하던 우현은 결국 제갈명의 말대로 백성들 개개인에게 파는 쪽으로 계획을 선회 하였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말씀대로 양초 판매에 끼워드리겠습니다. 대신 아직까지는 판매할 물량이 적은 만큼 마구잡이로 팔면 안 될 것입니다.”
“걱정 말게나! 자네 생각에 따라 각 성주에게 먼저 가로등을 설치토록 한 뒤에 백성들에게 팔 터이니 말이야.”
자신의 생각에 따르겠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우현은 더 이상 거부의 빛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후 우현은 세가주 남궁현철, 총관 남궁천옥, 제갈명과 함께 양초 판매 사업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어 나갔다.
‡ ‡ ‡
설풍의 땅에서 머나 먼 동중부.
흔히 축복이 내린 성지라고도 불리는 그곳에 자리한 소박한 정원이 있다.
정원에서도 유난히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는 자리에 서 있는 자그마한 탁자 밑에 양 무릎을 꿇고 그 위에 놓인 책 위에 맞잡은 양손 얹고 이마를 맞댄 노인 한 사람.
때 하나 타지 않은 새하얀 옷을 걸친 채 두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린다.
그 모습이 너무도 경건하여 사뭇 다가서기도 힘들어 보인다.
이때 피 칠갑을 한 듯 시뻘겋게 몸을 물들인 한 사람이 다가왔다.
커피 잔 두 개가 놓인 쟁반을 들고 가는 그의 발길 뒤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치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듯 말이다.
전혀 상반된 듯한 분위기의 두 사람은 이윽고 마주 섰다.
“성황 폐하! 알카인 왕국에서 가져온 커피입니다.”
감았던 두 눈을 뜬 노인, 아니 알타레스 성국의 황제 엘르느 성황 대주교는 핏물로 얼룩진 엘르느를 보았다.
“오늘따라 핏물이 더욱 진하구나!”
“이교도의 피 입니다. 몸에 좋지 않습니다. 성황 폐하!”
다가오는 손길에 슬쩍 몸을 뺀다.
피식 웃던 엘르느 성황은 시선을 돌려 커피 잔으로 향했다.
한 모금 입에 담아 맛과 향을 음미하던 그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려놓았다.
마치 커피 맛에 대한 답을 하듯 말이다.
“깊은 맛이 느껴지는 것이 좋구나!”
“그렇습니다. 특히 기도를 드리기 전에 마시면 더욱 좋습니다.”
피범벅인 얼굴 위로 선 하나가 그려진다.
한데 그 모습이 너무도 흉측한 것이 안 하니만 못한 것 같다.
“그래,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그렇습니다. 성황 폐하!”
“내용이 무엇이더냐?”
“화이트 그리핀 상단 위성지부를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흐음! 위성지부를 건설하고 싶다라…….”
엘르느 성황은 커피 잔을 받침대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카미엘! 네 생각에는 그가 왜 타국에 위성지부를 설치하는 것 같더냐?”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알카인 왕국 내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관계가 좋지 않다는 이가 누군지 아느냐?”
“친왕파와 조바오니 공작입니다.”
펼쳐 놓았던 성서를 덮은 엘르느 성황이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은 엘카인 왕국 전체와 좋지 않다는 말이 아니더냐?”
“그게 좀 애매합니다. 모양새로 보아서는 친왕파에서 그를 안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말은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가 친왕파나 조바오니 공작과 관련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말이더냐?”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모르겠다는 듯 카미엘이 고개를 내젓는다.
성서를 한쪽으로 치운 엘르느 성황은 커피 잔을 다시 잡았다.
“그럼, 이 나라에 위성지부를 설치하는 것은 그들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이라는 말이 되겠구나!”
“저는 그리 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끄덕이던 엘르느 성황은 다 마신 잔을 받침대에 놓아간다.
“카미엘!”
“말씀하십시오. 성황 폐하!”
“화이트 그리핀 상단에 연락을 해 위성지부 설립을 허락한다 하거라!”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조바오니 공작과 친왕파 측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하거라.”
“두 곳 다 말입니까?”
“이제 막 이정표 앞에 섰다면 어느 쪽이든 선택하게 해야 할 것 아니겠더냐? 친왕파든, 조바오니 공작이든…… 아니면 우리 성국이든 말이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비워진 커피잔을 놓은 카미엘은 쟁반을 들고 일어섰다.
“그나저나 소피에르 왕국 일은 어찌되었느냐?”
“오늘로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
“신의 눈물인 카미엘이여! 그대를 통해 세상의 아픔을 신이 아시게 되시니 이점 명심하고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도록 하라.”
“신의 대리자이자, 뜻인 성황 폐하의 말에 따르겠나이다.”
손을 들어 머리와 입, 가슴을 친다.
이는 신과 땅 그리고 인간을 뜻하는 것으로 일종의 예식이라 할 수 있었다.
뒷걸음하는 카미엘의 숙여진 고개 아래로 살기가 뿜어 나온다.
그것도 무간도의 지옥 불을 보는 듯한 어둠의 기운과 함께 말이다.
제5-6장
타악!
탁자 위에 내려지는 술잔 위로 한 사내가 보인다.
거대한 용맹함의 상징이자, 모든 전사들의 어버이인 전쟁의 신 카샤르 석상을 등에 짊어진 듯 보이는 그가 바로 세투란 제국의 황제 헤베키 곤 테페라 베야크였다.
십자 황관 아래 늘어트린 웨이브 진 머리카락 사이로 맹수를 닮은 듯한 눈빛이 치켜 올라간다.
“친왕파에 반감을 가진 것 같다고?”
“그렇습니다. 베야크 칸!”
숙였던 고개를 들자 테베코 백작 특유의 좌우로 비수처럼 날카롭게 뻗은 수염이 보인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베야크 칸의 입가에 미소가 깃든다.
그리고 황성이 떠나가라는 듯 큰 소리로 파안대소를 했다.
“재밌군! 재밌어! 후작위까지 내리고 그리 품 안에 넣고 살더니만…… 결국 퇴짜 맞게 생겼군.”
“처음부터 그들은 그와 맞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하긴 그렇지. 그런 종이 같은 물품들을 팔고하고 양초를 만들어내는 그 뛰어난 이와 그 작은 알카인 왕국의 속 좁은 이들과는 전혀 맞질 않지.”
피식 웃던 베야크 칸은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그래, 위성지부 건설은 어찌되고 있느냐?”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릭 캐슬이 원하는 게 있으면 전폭적으로 지원 해주도록 해! 괜히 토라지게 하지 말고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그리하고 있습니다. 베야크 칸!”
테베코가 막 고개를 숙이던 그때 어둠 속에서 갈색 지팡이를 든 페페토가 제아르크 마탑 마법사들을 이끌고 걸어 나왔다.
“안녕하셨습니까? 칸!”
“오셨소, 사부!”
술잔을 마시던 베야크 칸은 슬쩍 목례를 한다.